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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구파와 사림파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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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이 고려말부터 조선이 건국되는 격동기의 역사였다면 2권은 성종부터 명종까지 조선이 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다지는 기간의 역사다. 조선 건국의 역동기에 신진사대부가 각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조선 건국에 기여한 내용이라면 2권은 왕권과 신권, 훈구파와 사림파간의 피비린내 나는 투쟁의 기록이다. 임금을 신하가 바꾸는 1번의 반정, 그리고 왕권의 수호를 위해 혹은 훈구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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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이 고려말부터 조선이 건국되는 격동기의 역사였다면 2권은 성종부터 명종까지 조선이 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다지는 기간의 역사다. 조선 건국의 역동기에 신진사대부가 각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조선 건국에 기여한 내용이라면 2권은 왕권과 신권, 훈구파와 사림파간의 피비린내 나는 투쟁의 기록이다. 임금을 신하가 바꾸는 1번의 반정, 그리고 왕권의 수호를 위해 혹은 훈구파와 사림파 간의 권력투쟁으로 인해 발생한 네번의 사화의 이야기는 무엇을 위한 권력투쟁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게 한다. 우리의 역사라고 단순히 미화하길 바래서가 아니라 500년 이상 왕조가 유지되는 흔하지 않는 역사를 가진 조선이-혹자는 조선왕조가 너무 오래 유지되었다고, 그래서 좀 더 진취적인 역사를 이루지 못하였다고 평하는 이들도 있지만- 왕과 신하들간의 암투로만 허송세월 했다고 느껴질만큼 무의미한 권력투쟁으로만 점철된 역사였을까? 훈구파와 사림파간의 투쟁을 방조하며 왕권을 신장시키려 했던 성종이나 중종의 국가관이나 훈구파와 사림파 간에 권력을 위한 암투를 벌리는 와중에도 소위 명분으로라도 내세웠음직한 그들의 국가관과 정치관을 알 수 없었던 점이 아쉽다. 작가가 책의 말미에 퇴계와 율곡의 '理氣二元論'과 '理氣一元論'을 비교하며 사림파의 정치철학이 당시의 정치지형의 변경에 따른 필연적인 변화임을 언급했듯이 당시의 왕들과 훈구파가 무슨 통치철학조차도 없이 칼바람을 일으키는 피에 굶주리고 권력에 굶주린 집단으로 치부하기에는 석연치가 않다. 그러한 내면의 탐색없이 사림파가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는 선언은 날 몹시도 허탈하게 만들었다. 훈구파가 더 이상 공적을 만들어 낼 수 없을만큼 조선사회가 안정되어 씨가 말라버렸는지 정몽주-길재 등으로 이어졌던 사림이 지방에서 어떻게 확장되어 갔는지 알 방법이 없다. 사화와 당쟁으로 대표되는 조선의 정치사를 좀 더 풍부히 관찰하는 시도가 많이 나왔으면 한다.
a*******e 2006.08.14. 신고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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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화의 희생을 딛고 집권세력으로 자리를 굳힌 사림-조선선비 살해사건2
"사화의 희생을 딛고 집권세력으로 자리를 굳힌 사림-조선선비 살해사건2" 내용보기
세조 사후, 훈구 세력의 좌장격인 한명회를 비롯한 훈구세력의 위세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성종이 형 월산대군을 제치고 즉위하게 된 데에는 성종의 장인이었던 한명회의 막후 개입이 크게 작용할 정도로 막강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선 택군(擇君)이었고,이쯤 되면 한명회의 권세는 가히왕을 능가할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럴 즈음 훈구 세력에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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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사후, 훈구 세력의 좌장격인 한명회를 비롯한 훈구세력의 위세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성종이 형 월산대군을 제치고 즉위하게 된 데에는 성종의 장인이었던 한명회의 막후 개입이 크게 작용할 정도로 막강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선 택군(擇君)이었고,이쯤 되면 한명회의 권세는 가히왕을 능가할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럴 즈음 훈구 세력에 맞설 수 있는 정치 세력이 필요했고, 사림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경제적 부와 권력을 독식했던 훈구세력들은 이미 민심을 잃은지 오래였고, 사림들은 농민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사림들은

토지와 관직을 두고 훈구 세력들을 견제했고, 그들과 각축을 벌였다.

하지만 사림의 등장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되기까지, 사림은 엄청한 희생을 당해야 했다.훈구세력들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사림세력을 제거하려 들면서 여러 차례 사화가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

 

연산대의 무오, 갑자 사화, 중종 대의 기묘사화를 거쳐 훈구세력와 사림이 마지막으로 대결을 펼쳤던 것이 명종대였다. 문정왕후에 의해 전대 인종의 외척인 윤임일가가 제거된  을사 사화와 양재역 벽서 사건이후, 사화는 잦아들었고 조선이 개국한지 170여년 만에 사림들은 집권세력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됐다. 훈구 세력은 지는 해였고, 사림의 등용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었던 것이다.

 

며칠 전에도 조선의 4대 사화에 관련한 책을 읽었는데, '조선선비 살해사건2' 역시나 이 4대 사화에 관해서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었다.

사화가 발생하는 과정을 보면 변수가 된 것은 왕의 태도였다. 사림을 중용하다가도 훈구세력과 손을 잡고 사림을 제거하는데 동의하는 순간, 사화가 되는데, 왕은 사람을 기용해 훈구세력을 견제하가다도 사림이 왕권을 제약한다 싶으면 다시 사림을 배척했던 것이다.그렇기에 사림이 집권세력이 됐다는 것은 왕권이 사림에 의해 견제받는 통치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네 차례에 걸친 사화를 겪으면서 역시나 아까운 인재들이 목숨을 잃었다. 무오 사화의 도화선이 됐던 사초를 쓴 김일손을 비롯해서, 기묘사화의 조광조, 김정 등 뛰어나고 대쪽같은 인물들은 사사됐고, 이 외에도 이목과 정굉필,이언적, 노수신 등 수 많은 인물들이 유배형을 당했다.

언젠가부터 조선에서는 권력 투쟁에서의 패배는 곧 죽음이나 유배형 등 극한 처벌을 받게되는 정치 풍토가 됐다는 것, 그런 풍토는 폐지돼야 마땅했다. 사림들이 집권세력이 된 이후에는 정치적 패배자에 대해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은 더하면 더했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림들이 집권 세력이 된후  다시 내부 분열을 하는 과정에서 당쟁이 발생했고, 그 당쟁의 양상을 보면 타협을 모르고 극한 투쟁을 하는 풍조가 괜히 생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당쟁은 목숨을 건 극한 대립을 벌였고, 그런 풍조는 지금까지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총선을 앞두고 정당마다 공천을 하느라 부심하고 있다. 도덕성과 경쟁력을 겸비한 인물을 확보하는 것은 선거에서 승리를 좌우하는 관건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조선의 창업을 주도했던 공신과 훈구세력을 보면서 역사가 주는 교훈을 명시해야 할 것이다. 훈구세력들이 권력과 부를 독점하려 들면서 고인물이 돼갔다는 것을. 변화를 시도하지 않고 기득권에 안주하는 세력과 시대적 소명이 무엇인지 자각하지 못하는 세력에게 민심은 등을 돌리기마련이라는 것을.

 

 

 

 

 

 

e****0 2012.02.29. 신고 공감 5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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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부분 편집.. 꽝이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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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나왔길래 얼씨구나 샀더니 부록부분때문에 기분잡치네.. 조선 전기 공신 부분부터 나머지 표 바탕색을 시안으로 한거 같은데 글자색도 같은 시안으로 하면 대체 어쩌자는건가요?? 글자색을 조금 진하게 했다고 잘보이는줄 아시나본데.. 나같이 눈나쁜 사람은 참 읽기 힘드네. 한자는 알아보기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보이지도 않고.. 눈 좋은 사람도 아마 못읽을 듯 싶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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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나왔길래 얼씨구나 샀더니 부록부분때문에 기분잡치네.. 조선 전기 공신 부분부터 나머지 표 바탕색을 시안으로 한거 같은데 글자색도 같은 시안으로 하면 대체 어쩌자는건가요?? 글자색을 조금 진하게 했다고 잘보이는줄 아시나본데.. 나같이 눈나쁜 사람은 참 읽기 힘드네. 한자는 알아보기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보이지도 않고.. 눈 좋은 사람도 아마 못읽을 듯 싶은 것이.. 읽기 힘드니 있으나 마나 한 부분이네요. 누가 디자인한건지 정말 짜증 지대로네. 댁이 번 읽어 보쇼. 잘 보이나 ㅡㅡ
YES마니아 : 로얄 b*******y 2006.08.02.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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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 살해사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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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38세의 선비로 이 세상에 믿은 것은 전하의 마음뿐이었습니다. 국가의 병통이 가짜로 공신이 된 신료들이 사욕을 추구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이를 막아 국가의 명맥을 길이 새롭게 하고자 했을 뿐 조금도 사심이 없었습니다." 기묘사화 때 국청에 나간 선비 조광조가 한 말이다. 그는 대쪽 같은 선비였다. 너무나 강직했기에 휘지못하고 꺽어야만 했던 불운한 인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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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38세의 선비로 이 세상에 믿은 것은 전하의 마음뿐이었습니다. 국가의 병통이 가짜로 공신이 된 신료들이 사욕을 추구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이를 막아 국가의 명맥을 길이 새롭게 하고자 했을 뿐 조금도 사심이 없었습니다." 기묘사화 때 국청에 나간 선비 조광조가 한 말이다. 그는 대쪽 같은 선비였다. 너무나 강직했기에 휘지못하고 꺽어야만 했던 불운한 인물이다.

태정태세문단세~~~로 시작하는 조선왕조 오백년을 군림해온 임금들, 역사를 배운 학생들이라면 필수적으로 외워야 했던 명단이다. 2편은 그 중 성종부터 명종의 시대까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개중에는 왕권강화에 성공한 임금이 있는가 하면 재위시절 훈구대신들에 끌려다니다 졸하신 임금도 있었다. 유교의 성리학 가치관을 중심으로 뭉친 사대부들, 자신의 뜻을 펼치다 쫓겨난 임금 광해군, 다시 한번 피비린내 풍기는 그 속으로 들어갔다.

행운아 성종, 추존 덕종의 둘째 아들 세자였던 부친이 일찍 돌아가신후 왕권에서 멀어졌다 숙부였던 예종이 일찍이 돌아가신 관계로 조모이신 정희왕후의 선택을 받아 왕위에 오른다. 소혜왕후 한씨(인수대비)는 여훈을 지어 여인들을 더욱 집안에 가둔 인물이다. 그 전까지 어느정도 자유를 누리던 여인들이 성종시절부터 더욱 집안에 갖혀 지내야만 했으며 남존여비(남성의 권리나 지위 등을 여성보다 우위에 두어 존중하고 여성을 천시하는 사상 및 태도)의 기틀을 만들어 주었다 할수 있다. 부인 12명, 자녀 16남 12녀로 성종의 바람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려주는 대목이 된다.

인수대비 한씨는 여러모로 보나 범같은 여인이었다. 기회를 잡아 아들 자산군을 왕위로 올린 것이며 그럼에도 여인들의 발목을 잡은 것이며 폐비 윤씨가 폐비가 되는 과정에 인수대비의 힘이 컸고 그것이 폐비 윤씨를 향한 질투심의 탓이라 할수 있었다. 자신은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온갖 계략이 난무하는 가운데 아들을 왕위에 옹립했지만 단 과실을 차지한 것은 바로 폐비윤씨였고 성종의 사랑 또한 오롯이 그녀 차지였다는것에 앙심을 품었다 할수 있다. (아마도 내가 너무 TV를 많이 보았고 그 영향을 받았나 보다) 폐비윤씨가 살았다면 연산군은 그런 폐륜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 성종의 바람기 탓은 않하고 용안에 상처내었다 하여 앞장 서 폐비를 주장한 이가 바로 인수대비였다.


다양한 책읽기를 하는 과정에서 저자와 공감하는 부분도 많지만 뜻을 달리하는 부분도 적지않았다. 저자 이덕일을 살펴보고 그의 글을 보자면 그는 글속에서 여인에 대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무시하는 경향을 느낄수 있다. 그도 남존녀비 사상가의 한 사람인가? 조금만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글을 써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하게 된다. 마치 조선시대 사대부의 글을 보는듯해서 난감하기도 하다.

무오사화 조선 4대 사화의 시작으로
연산군 4년(1498)의 무오사화, 연산군 10년(1504)의 갑자사화, 중종(1519)의 기묘사화, 명종 원년(1545)의 을사사화를 말한다. 사림파와 훈구파의 대립이었으며 선비와 사대부들의 죽고 죽이는 정쟁의 시작이었다. 연산군의 악행에 있어 가장 큰 역활을 한것은 백모 월산대군부인 박씨 (승평부부인)을 강간했다는데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사실일까? 역사서에 있어서도 뭐뭐 했다더라 라는 사관에 의한 글만이 남아 연산군의 악행을 후세에 전달할 뿐이었다. 연산이 궁에 모은 여인네들 흥청만청 꽃다운 여인들이 1만이나 되거늘 나이든 백모를 강간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랴,

또 만약 만에 하나라도 강간했다면 첫 시도 끝에 자결을 해야 하는 것이 조선의 여인네 이거늘 임신을 했다고 뒤늦게 자결을 한다는 말이 어불성설(
말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뜻)이요, 언어도단(어이없어서 말하려 해도 말할 수 없음)
이었다. 중종반정을 일으킨 무리들에 의해 그것을 정당화 시키기 위한 작업으로 보여진다. 광해군이 실리외교를 펼친 유능한 왕이었다면 인조반정의 주자 인조는 나라와 백성을 전쟁으로 몰아넣고 자신의 안위만을 위했던 무능력한 왕이었다. 친명외교를 내세우고 강한 청을 배척하여 그의 재위 시절 백성들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큰 난을 맞아야 했다.

그 시기는 당쟁의 역사였으며 사대부들은 전쟁의 난을 겪고도 자신의 뜻을 꺽을 줄 몰랐다. 그들에게 백성들을 생각하는 애민의 마음이 있기는 한 것일까? 신하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나약한 왕이며 자신들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하여 왕을 몰아냈던 당시 사대부와 사림들의 위세란, 조선은 그렇게 나약해지고 병들어 가야했다. 인조의 친명배금정책으로 조선은 두번의 전쟁을 겪으며 나약해졌고 당쟁으로 인해 한 번 더 절망해야만 했다. 왕이 왕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했던 나라, 신권을 왕권위에 두려했던 방약무도했던 도당들, 그들로 인해 조선의 백성들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날 길이 없었다. 그런 조선이 과연 500년을 유지할 가치가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 볼일이다.

 

s*******1 2017.03.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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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책 - 조선 선비 살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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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선생의 조선 선비 살해사건은 조선의 건국에서 중종반정까지의 조선의 정치   사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사실 조선의 왕들은 이전의 다른 왕들에 비해서 분명 왕   권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물론 너무나도 정치적으로 뛰어났던 왕들이 있었기에 강   력한 왕권을 휘두르기도 했으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조선의 왕만큼 신하들과의   협력이 요구되는 왕들도 존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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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선생의 조선 선비 살해사건은 조선의 건국에서 중종반정까지의 조선의 정치

 

사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사실 조선의 왕들은 이전의 다른 왕들에 비해서 분명 왕

 

권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물론 너무나도 정치적으로 뛰어났던 왕들이 있었기에 강

 

력한 왕권을 휘두르기도 했으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조선의 왕만큼 신하들과의

 

협력이 요구되는 왕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건국이 이전의 국가들처럼 무장들이 중심이 된 나라가

 

아닌 고려말의 혁명파 사대부와 온건파 사대부라는 이름으로 불린 문신들과 신진

 

무인 세력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건국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은 결코 왕이 절대

 

적인 권력을 보여주기에는 처음부터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왕위 계승을 둘러싼 다툼들 속에서 조선은 왕과 신하가 서로 견제하

 

는 국가가 되어갔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원시적인 입헌 군주제에 가까웠다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책 '조선 선비 살해사건'은 그러한 조선의 특수성

 

위에서 보여진 신하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1권에서 처음 권력을 잡은 훈구파 대신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2권에서는 정치

 

의 전면으로 나서는 과거의 고려말의 온건파 사대부들의 후예들이 조선의 정치 한

 

복판으로 뛰어들어 그들의 성리학적 기반위에서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아가는 모습

 

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이 정치적으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은 온통 피빛으로 물들

 

어 갔다는 점에서 우리 역사의 비극이 이미 잉태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책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결국 그렇게 정권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사림

 

들은 이후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시대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이책이

 

끝나고 이어지는 시대가 왜란과 호란을 통하여 시대가 변화하는 시대였기 때문일

 

것이며, 그리고 사람들의 학문인 성리학이 문약의 대표적인 나라인 송나라의 학문

 

이었기에 더욱더 큰 비극을 내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들의 비극적 상황을 일찍 깨달은 사림들은 바꾸려는 모든 시도

 

를 자신들의 피로 보상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 역사의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는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조선 선비 살해사건까지는 아직 희망을 볼 수 있는 사림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적어도 그들이 정권의 핵심으로 자리 잡을 때 까지의 모습을 본다면

 

이시기까지의 사림들은 분명 젊었고, 깨어있었던 이들이었다. 물론 한계도 갖고 있

 

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한계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알고 있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슬픈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을 바꾸고, 백성을 지켜보겠다는 마음

 

으로 강력하게 개혁을 추진했더 조광조와 그의 후계자들의 모습들은에서 지금에서

 

는 우리의 주변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된 그런 정치가들을 생각해보면 우리의

 

현실에서는 그들이 부러울 뿐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m******d 2010.01.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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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선비살해사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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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의 어떤 나라든 인물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역사의 흐름이나 결과는 동일하다. 전편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선의 역사는 血의 사투라 보아도 무리가 없는 듯 하다. 과거 작가 박종화님의 고려, 조선 왕조실록의 장편을 읽어 보았으나 그 진실함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작가의 주,객관적인 사상이 필력되었기도 하지만 고증작업이 어려움이 있기도 하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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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의 어떤 나라든 인물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역사의 흐름이나 결과는 동일하다. 전편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선의 역사는 血의 사투라 보아도 무리가 없는 듯 하다. 과거 작가 박종화님의 고려, 조선 왕조실록의 장편을 읽어 보았으나 그 진실함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작가의 주,객관적인 사상이 필력되었기도 하지만 고증작업이 어려움이 있기도 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본 서적의 내용을 보아 정설적인 내용으로 說하기에 고려 공민왕부터 조선 선조초까지의 실록을 2권의 책으로 간략히 피력한 것이 읽기에는 또한 알기에 부담이 없습니다. 본문 내용을 간략히 쓰라면, 책을 전채 읽는 것이 차라리 좋을 듯 하다. 그런데 항상 조선조의 역사를 알때마다 느기는 것인데 세종, 이황, 이이가 다른 선인 보다 많은 존경과 칭송을 받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즉, 세종을 보자 한나라의 글자를 창재하였다고 하지만 이하 많은 학자들의 공동의 결과이고, 가정사는 누구보다도 여자가 많으며, 父(세조) 처럼 후환의 환란을 미연에 대비 못한점으로 많은 이를 죽게한 점 으로 과연 성군인가? 이황이나 이이는 이기이원이나 이기일원으로, 문장과 미래의 예측을 들고 있지만 본인의 안위만을 찾는 결과로 죽기를 각오하며 충언을 한 일이 그렇게 있는지 훈구와 사림의 치열한 공방 속에 결국의 후학의 양성이라는 핑계로 정계를 물러나 제자들의 입을 통해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비겁함이 있는 듯한 일반적 선비에 비할 바 없는데, 차라리 치우(자오지)천황, 광계토대왕, 이순신장군, 그외 다수를 重하다 할 수 있다. 문치를 우선으로 하는 과거나 지금도 똑같지만 결국은 붓이나 펜(文)으로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칼과총(武)이 결론짓고 태평천하가 이루어질때서야 문이 우세하다는 것이 정답아닐까?

[인상깊은구절]
지금 사람들은 아무런 일이 없는 평지 위에 서서 자기 생각에 따라 옛사람의 시비득실을 점검한다. 이는 매우 쉬운 일이다. 그러나 일이 실제로 자신에게 당도했을 때 어찌 옛사람의 발꿈치인들 따라가겠는가. 말을 만들어 보이지 않는 흉을 찾아내려 한다면 천하에 어찌 존경하고 숭상할 만한 현인군자가 있겠는가? 서해 유성룡이 을사사화때 추관 이언적 행위에 대해 비판한 이이 율곡 말에 대해 반박한 말 - 결국 서해나 이이도 임란 당시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이순신의 억울한 사실을 대놓고 해명하거나 구제하지 못했다.
l*****8 2006.10.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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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선비 살해사건 2 - 이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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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말이 있습니다... '강한자가 살아남는것이 아니라, 살아남는자가 강한것이다'조선전기의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결을 보면, 왠지 위의 말이 생각납니다..네 번의 사화를 걸쳐...'사림파'들은 엄청난 시련을 겪고 수많은 선비들이 죽게 되지만..결국 그들은 살아남았고...최후의 승자가 되니까요.....(물론...사림파가 승리해도..다시 당쟁이 시작되니....ㅠㅠ)'수양대군'이 '계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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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말이 있습니다... '강한자가 살아남는것이 아니라, 살아남는자가 강한것이다'

조선전기의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결을 보면, 왠지 위의 말이 생각납니다..

네 번의 사화를 걸쳐...'사림파'들은 엄청난 시련을 겪고 수많은 선비들이 죽게 되지만..

결국 그들은 살아남았고...최후의 승자가 되니까요.....

(물론...사림파가 승리해도..다시 당쟁이 시작되니....ㅠㅠ)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킨 이유는...바로 '왕권강화'입니다..

어린 '단종'을 둘러싼 신하들의 권력이 왕을 뛰어 넘는것을 견디지못하고 시작한 일인데..

'세조' 자신이 일찍 죽자, 공신들의 나라가 되어버리는 부조리가 발생하게 되는데요..


'세조'의 아들이 일찍 죽자, 공신들의 탑인 '한명회'는 '인수대비'와 밀약을 맺고

왕이 될 가능성이 아주 적었던 '자산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성종'은 어린나이에 왕이 됩니다...그리고 공신들의 천하가 되지요..


그렇다고 '공신'들의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닌데요..바로 '시간'입니다..

'한명회','신숙주'등...'공신'들의 탑들이 늙어 죽고..

'성종'은 성인이 되어 스스로 정치를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눈여겨본 사람들이

바로 '훈구파'에 대적할 '사림파'의 선비들이였지요..

'김종직'은 '정몽주'와 '길재'의 계통을 잇는 성리학자로서 '성종'의 총애를 받게 됩니다.


그렇다고 정치력이 뛰어난 '성종'은 무조건 '사림파'만 등용하진 않았습니다

적절히 두 파의 세력을 견제하며, 나라를 잘 이끌어갔는데요..


성군이던 '성종'에게 두가지 약점이 있었으니..

지나친 '세종' 따라잡기로 건강을 해쳤다는 점과..

지나친 여색으로 그 건강을 더 해쳤다는 점이지요..ㅠㅠ


결국 37살의 나이로 죽게되고..'연산군'이 그 뒤를 잇게 됩니다..

예전에 어떤 책을 읽어보니..

'연산군이 처음에는 정치를 잘 했다, 다만 어머니의 죽음진실로 충격을 받았을뿐'이라고 하던데'

책을 읽다보니...원래부터 정치적인 능력은 그다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거기다가 '연산군'의 첫 '사화'는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이 없었으니까요..


'훈구파'와 '사림파'를 적절하게 정치에 이용했던 '성종'과 달리..

'연산군'은 '사림파'의 잔소리를 처음부터 싫어했습니다..

'훈구파'는 '연산군'의 마음을 꿰뚫어보고....'김종직'의 '조의제문'사건으로 '무오사화'를 일으키는데요


수많은 '사림파'들이 죽거나, 귀양을 가게 되고...'훈구파'의 공신들이 득세를 하는 가운데..

'연산군'은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 이야기를 알게 되지요..

그리고 '갑자사화'를 일으켜,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이 없는 '훈구파'들을 제거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왜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이 없는 사림파들을 죽이기 시작했을까요?...

정신적인 착란과 원래부터 사림들을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거기다가 더이상 자신의 권력의 방해물이 없어지자, 그는 점점 막가기 시작합니다..


결국 폭군의 말로는 조선의 첫 반정으로 왕에서 물려나게 되고..

'진성대군'은 하루 아침에 왕위에 올라 '중종'이 됩니다..

'왕자의 난'이나 '계유정난'과 달리 '진성대군'이 반정에서 한일은 없었기에...그는 허수아비왕이 되었고

반정공신 3탑이....연산군의 권력을 나눠가지는데요..ㅠㅠ

(흥청의 여인들을 돌려보낸게 아니라...이넘들이 나눠서 데려갔다는데요..ㅠㅠ 나참...똑같은 넘들인...)


그러나...반정공신들이 한넘씩 죽어나가고...

'중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사림파'의 '조광조'를 등용하기 시작합니다..

'조광조'는 '성리학적'인 조선을 위해 개혁을 단행하는데요..


그러나..너무 급격한 개혁은 반발을 일으켰고, '중종'은 총애하던 '조광조'가 지겨워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다시 '훈구파'의 반격은 시작되었고...'기묘사화'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마지막 대결이자, 마지막 시련인 '을사사화'가 벌여지게 되지요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사림파'의 집권을 막지 못했고..

'이황'의 등장으로, '사림파'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중심이 됩니다..


'조선 선비 살해사건'을 읽으면서...정말 바른말을 하면 오래 못사는구나...ㅠㅠ

바른말 하던 '충신'들은 모두 죽어나가고..결국 '간신'들이 득세하는 모습을 보며..ㅠㅠ

예나 지금이나...왜 '정치인'들은 이 모양일까? 생각만...


'김종직'의 '조의제문'은 '김종서'를 충신이라고 말했을 뿐인데...말입니다.

'사림'들은 '연산군'에게 바른 소리했을뿐인데..

'연산군'에게 잔소리한다는 이유로...죽어나간 선비들...

(물론 잔소리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만...ㅠㅠ )


그런데도 '사림파'들은 결국 승리하게 된 원인은...바로 '제자양성'인것 같습니다..

낙향하여, 그곳에서 절망하고 산것이 아니라..

그들은 끊임없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키워나가다 보니....

나중에는 조선중기와 후기의 중심세력이 된 이유가 아닌지? 말입니다


학교 다닐때...4대 사화에 대하여 외우기식으로만 공부했는데..

이렇게 4대 사화의 배경이나 스토리를 제대로 알수 있어서 좋았던 시간 같았는데요...

s*****o 2016.03.2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조선 선비 살해사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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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마침내 권력을 둘러싼 수구 세력과 개혁 세력의 대혈투가 시작된다. 오랜 은둔을 끝내고 중앙 정계에 진출한 조선의 개혁 선비들. 그들은 연산군 4년 임사홍이 연산군에게 던진 한마디에 의해 최초의 위기를 맞는다. 이에 사림의 영수 김종직을 비롯한 많은 선비들이 죽음을 맞는다. 이를 시작으로 연산군 10년 갑자사화, 중종 14년 조선 역사상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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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마침내 권력을 둘러싼 수구 세력과 개혁 세력의 대혈투가 시작된다.
오랜 은둔을 끝내고 중앙 정계에 진출한 조선의 개혁 선비들. 그들은 연산군 4년 임사홍이 연산군에게 던진 한마디에 의해 최초의 위기를 맞는다. 이에 사림의 영수 김종직을 비롯한 많은 선비들이 죽음을 맞는다. 이를 시작으로 연산군 10년 갑자사화, 중종 14년 조선 역사상 가장 개혁적인 선비로 꼽히는 조광조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기묘사화, 그리고 명종 원년 인종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인 사림파와 훈구파의 피비린내 나는 을사사화 등이 연이어 일어나고…. 조선 역사상 가장 많은 선비들이 죽음을 맞이한다. <사화로 보는 조선 역사>의 개정판.
j***5 2008.09.1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조선 선비 살해사건2 - 이덕일
"조선 선비 살해사건2 - 이덕일" 내용보기
<2006년 10월 31일> 1권보다 약간 더 두꺼운 두께로 약간 주춤하게 했지만 역시 작가의 숨가쁘게 이끌어가는 조선사의 이야기들로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각종 사화들로 인해 핏빛으로 얼룩진 2권이었다.  2권에서 많은 지면을 차지한 부분은 역시 연산군 시대.어머니의 폐비된 사건과 그 이후 모함으로 인한 억울한 죽음이었음을 알게 된 연산의 광기는 가면 갈수록 스스로도
"조선 선비 살해사건2 - 이덕일" 내용보기

<2006년 10월 31일>

 

1권보다 약간 더 두꺼운 두께로 약간 주춤하게 했지만 역시 작가의 숨가쁘게 이끌어가는 조선사의 이야기들로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각종 사화들로 인해 핏빛으로 얼룩진 2권이었다.

 

2권에서 많은 지면을 차지한 부분은 역시 연산군 시대.

어머니의 폐비된 사건과 그 이후 모함으로 인한 억울한 죽음이었음을 알게 된 연산의 광기는 가면 갈수록 스스로도 멈출 수 없는 탈주한 열차와도 같았다. 유배나 사약은 처벌 축에도 끼지 못했다. 갖은 고문 끝에 능지처사로 다스렸고 그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아 찢겨진 신체 부위를 각 지방으로 돌려 보게 했고 거리에 효수하기도 했다. 이미 죽은 자도 무덤을 열어 시체를 부관참시했으며 삼족과 친척 중 남자는 모두 죽여 씨를 말렸고 여자들은 관기나 종으로 삼았다.

 

그는 자신의 행위를 간혹 깨닫기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복수는 이미 끝내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아니, 멈추고 싶지가 않았을 것이다. 이미 그는 명령 한마디면 모두 이루어지고 말 한마디에 모두들 벌벌 떠는 권력의 맛에 취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정말 광기라고 할 만한 모든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 정승과 대신들의 부인들을 궁으로 불러들여 겁탈하기도 했고 어머니의 길일에 궁 뜰에서 백주대낮에 섹스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그는 결국 폐주되어 연산군으로 남았다. 연산군과 관련된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언제나 그는 폭군으로 불린다. 그의 마음속에 맺혔던 울분과 슬픔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가 그렇게 폭군으로 치닫을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을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임금은 하나뿐이고 모두들 임금을 섬긴다. 하지만 그 권력이라는 것이 언제나 공신들에 의해 팽팽한 줄다리기일 뿐이었다. 많은 왕들 중 세종대왕을 제외하고 공신책봉이 되지 않은 시대가 없었을 만큼 임금은 공신들의 힘으로 군왕의 자리에 앉았다 할 수 있었지만 군왕이 된 후에는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었다. 공신들이 임금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조선왕조 시대에 연산은 가장 강력한 왕권을 수립했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쉬웠던 것은 멈출 줄 알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폐주가 된 후 유배지에서 늦은 후회를 했던 그의 모습에서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성종시대에 등장해서 언론의 물꼬를 텄던 사림의 등장으로 군왕과 공신들의 양대 권력의 균형이 잡히는 듯 하였으나 명종 때에 사림이 다시 둘로 쪼개어져 당쟁으로 이어질 기미를 보인다.

 

3권에는 아마도 군왕과 훈구공신과 쪼개어진 사림파들과의 각축전이 벌어질 터이다. 흥미진진한 권력의 싸움, 그 가운데 새우등 터지는 선비들의 죽음이 다시 이어진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c*****4 2017.08.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