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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 저 | 해냄 | 2006년 07월 | 페이지 266 | 441g | 정가 : 9,000원 ![]()
나는 [훈장]이 훈장선생님의 그 訓長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읽다보니 아버지가 받은 勳章을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미친개와 아들 미친강아지의 이야기. 인상깊었지만 속상했고 마지막 장면의 나름대로의 아들이 연출한 화해를 만나니 마음이 쓰렸다. [견습어린이들]은 35년만에 최초공개라고 했다. 그래서 받자마자 냉큼읽었는데, 오! 맙소사. 어린이가 그 어린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나머지 두 가지 이야기는 내가 첫번째로 갖고 있던 책에 있던 단편들이었다. 그 하나는 [꽃과 사냥꾼]으로 내가 아는 러브스토리 중 꽤 충격적이었던 러브스토리 였고, [개미귀신]도 그에 못지 않는 러브스토리였다. 오랜만에 이외수 선생님의 오래된 단편들을 읽으며, 마음이 묘하게 뒤집히는 경험을 했다. 요즘 이분의 글은 너무 변하셨다. 우결에도 출연하시는거 같던데. 흠흠.
책은 손에 잘 들어오는 크기의 양장으로 책갈피끈이 곱게 붙어 있다. 평범한 양장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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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지. 제목이 훈장인데, 나는 훈장보다 개미귀신에 더 애착이 같다. 주인공이 이외수 작가님의 소설 식물인간 주인공과 비슷했기 때문인가. 이외수 작가님의 책 속에 주인공은 폭력, 술, 외로움, 천재 그리고 바보가 공존한다. 이외수 작가님이 원래 화가를 하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훈장 주인공이 그림을 그렸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그림을 그리는 이야기, 그러나 환영 받지 못하는 이야기들.
“고양이를 사서 저 우리 속에 한번 넣어줘 볼까?” “아마 고양이는 괴로워할 거야. 자기가 처음 보는 이 흰털의 음식물이, 먹어서 부작용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하나님은 무슨 이유로 내게 이 많은 은총을 내리셨을까, 이렇게 많이 한꺼번에 잡아먹어도 죄가 되지 않을까, 너무 너무 행복해서 괴로워할 거야.” “행복이 뭐야.” “즉, 불행을 확인시켜 주는 거지 뭐.”
그의 책은 우울이 서려있다. 특히, 훈장은 읽고 나서 뭐라 더 이상 말할 수 없을 만큼. 드라마 같은 현실은 없다, 현실 같은 책만 있을 뿐. 알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짓이겨 가며 내일이란 꿈을 갖고 산다. 그래서 자기계발서나 해피엔딩 소설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하겠지. 그렇게 따지자면 이 책은 마주하면 할수록 암담하긴 하다. 현실을 그리고 있으니까.
“부럽군요, 부러워. 어디로든 도망쳐버릴 수 있으니까.” “한숨 쉬지 마. 내 눈썹 나부껴.” 나는 그녀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손을 얹으면서 우울하다, 라고 말했다. “우울은 젊은 사람들이 모두 걸려 있는 병이래요.” “가을에만 우울해, 고약한 병이야.”
그의 책을 말한다. 예술, 우울함, 죽음 그리고 나지막한 사랑. 그런데 단편 중에서 훈장과 견습 어린이들은 어려웠다. 잘 읽히기는 했으나, 와 닿지는 않았다. 아직 나는 멀었나? 꽃과 사냥꾼, 개미귀신은 읽는 내내 애착이 같다. 꽃과 사냥꾼은 울 수 없어 웃음이 난 이야기라고나 할까. 박동하 이 남자, 정말.
그녀와 헤어진 후로 나는 썩어가는 내 폐를 학대하면서 독한 술을 마시곤 했다. 취하면 헤매었고, 헤매면서 또다른 여자를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러나 누가 다시금 내 곁에 있어주다가도 쉽가리 나를 포기한 적이 몇번이더냐. “아버지는요?” “안 계십니다.” “어머, 그럼 어머니는요.” “갈포 시내에서 사랑의 묘약을 팔고 계십니다.” “사랑의 묘약이라뇨?” “술…….” “네에, 실례지만 학교는?” “엉성한 대학을 3학년까지 다니다가…… 데, 데모 주동자로 누명을 쓰고 잘려버렸습니다.” “대학생이면 공부나 하시잖구 데모는 왜 해요. 공부하기가 싫어서였나요?” “허허…….”
괴짜인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였다. 아…… 그리고 우리는 아무런 것도 말할 수가 없었다(_219p) 이정도. 세상과 마주하지 않는다는 게, 순리대로 살아가지 않는 다는 것이 단지 ‘괴짜’로 국한 될 일일까. 늘 언급하지만 우린 어떤 것에 미쳐본 적이 있을까. 아무것도 듣지 않고 마주하지 않고 내 주장대로 지켜 낼 수 있을까. 괴짜라 치부해버렸지만 어쩌면 우리는 그를 동경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제일 인상 깊게 보았던 마지막 이야기 ‘개미 귀신’ 말더듬이의 삼촌 이야기. 비극적이게 다리도 절고 있는 그 삼촌 이야기. 신이 삼촌에게 내려준 혜택은 단지 그림에 대한 재질과 정열 그것뿐. 그러나 단지 그것뿐일까?
“그, 그럼 개, 개미귀신이 무, 무얼 먹고 사는지 아십니까?” 다시 삼촌이 남자에게 물어보았었다. “개미를 먹고 살지 않습니까?” “마, 맞습니다.” 삼촌은 잠시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더니 다시 그 남자에게 질문을 던졌었다. “그, 그럼 개미귀신이 크크, 커서는 무엇이 되는지 아십니까?” 그러자 남자는 대답하지 못했었다. 삼촌은 그 다음부터는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고, 그 남자가 개미귀신이 커서는 무엇이 되느냐고 물어보아도 그냥 묵묵히 캔버스 앞에 앉아 그림만 그리고 있었다. 그 남자가 약간 무안한 표정으로 삼촌의 그림에다 잠시 한눈을 팔다가, 원 별 자식 다 보겠네 하는 표정으로 쾅 닫고 화,실을 나가버리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삼촌은 입을 열었다. “그림은 취, 취미 삼아 그리는 게 아니야…….”
그들이 행복했던가 불행했다는 가는 우리가 추측할 수도 추측해서도 안 되는 문제 같다. 이 소설이 어둡다는 평을 많이 받고 있는데 나는 전혀 모르겠다. 물론, 책 곳곳에 우울이 서려있긴 하다. 모두 온전한(몸 건강한 혹은 정신적으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과연 몸이 성하다고 해서 온전한가. 나는 차라리 그들이 부럽다. 그 끝이 무엇이든 간에, 지금처럼 아무것도 없는 시간을 축내는 우리보다는 하나의 목적을 갖고 달려가는 것이 진짜 인간답게 사는 것이 아닌가. 외로움도 알고 무서움도 살아가는 고됨도 그들은 모두 경험하고 그것들에 대해 어필한다. 그들의 감정이 살아있다는 증거겠지, 요즘에 감정을 갖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정도? 여전히 우리는 가야 할 길이 멀다.
유쾌하진 않겠지만, 마주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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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장외인간, 괴물 그리고 훈장으로 이어지며 이외수의 책을 읽어내고 있다. 그사이 또 한권의 신작, 절대강자가 출판되었다고 한다.
앞서 읽은 세권에서의 이외수만의 공통된 공간과 인간이 존재한다.
지리적 공간은 춘천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고, 인간은 '기이하다'고 말할 수 있는 예술에 집착하는 자의 모습이 함께 한다.
대체로 그 '예술'은 '시'와 '미술'에 깊이 빠져들어있다.
처음 제목만 본 훈장은 가르치는 훈장인 줄 알았는데, 가슴에 다는 누군가 권위있다고 알려진 기관이나 사람이 하사한 치사품인 훈장이었고, 그것은 아버지로 연결되는 트라우마의 현신이다. 훈장속에 삶을 매몰시켰던 자살한 아버지를 그려내는 작업으로 스스로를 끝까지 몰고가는 한 젊은 화가의 그림그리기.
소설집인 만큼 단편 몇개를 묶은 책이고, 견습아이들은 유쾌하다. 견습아이들은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라고 한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신선하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개미귀신, 꽃과 사냥꾼.
뭐라고 꼭 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장외인간,괴물,개미인간, 꽃과 사냥꾼 모두 묘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고, 내 머리속에서 뒤죽 박죽이 된다.
정신병원은 폐병환자 병동과 얽히고, 마그리트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승냥이를 그리는 화가와 그림세계의 끝을 보며 삶도 동시에 끝장낸 화가, 많은 것들이 저 깊은 곳에서의 동질을 공유하며 외수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자꾸만 우울해져서 이제 좀 더 밝은 이외수의 글을 찾아 읽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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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외수가 작가의 길에 들어선지도 언 30여년이 되었다. 지금은 누구나 공감하는 유명인이다.
그를 포장할때는 강조되는 것이 누구하고도 차별되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글의 표현이라 말한다.
어느날 그가 강연하는것을 TV에서 본 일이 있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
"그말을 듣고 친절한 금자씨가 대답했습니다." "너나 잘하세요."
이것이 바로 이외수의 색이다. 그래서 그 색의 발원지 즉,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한 데뷔작 "훈장"을 접하게 되었다.
처음 첫장을 펴는순간 강한 문장이 눈에 들어와 "역시 이외수" 라고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들지만 그것도 잠시 지금에 비하면 그의 색이 많이 옅다. 당연한 말이다. 강산이 세번 바뀐 지금까지 그의 색이 바래지거나 짙어지지 않다는것. 처음 그대로인것은 그는 천재!, 너무나 강직한 옹고집!, 또는 발전없는 작가! 등이라 하겠다.
"훈장"은 지금의 작가 이외수의 색을 강하게 느낄수는 없지만 그의 가장 순수했던 그때 그시절을 엿볼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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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책이 쉽게 쉽게 읽혀서 참 좋다.
문장도 감각적이어서 꽤나 즐겁다.
훈장 앞부분의 미친 개라 불리는 아버지의 묘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겐 꽤나 파격적이었다. 뒷부분은 꽤나 흐물흐물 해져서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문장을 빼면 특기할 만한 점은..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문장만으로도 읽는 이를 즐겁게 해주기에 가볍게 읽기에 좋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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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외수의 에세이를 통해 70-80년대 작가가 얼마나 극단적인 가난과 싸우며 살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당시, 그야말로 소설가로서의 그의 인생 초반에 씌여진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러한 것을 자연스레 떠올리기도 했다. 하루에 한끼도 못먹으며, 겨울에 난방도 없는 골방에서 이 글을 쓴건가? 하고. 한편으론 책을 읽으며 아파트가 세상을 다 덮어버리기 전의 우리나라 풍경도 떠올랐다. 80년대 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서 아파트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까. 거미줄 처럼 이어지는 좁다란 골목골목들과 그곳에 자리한 수많은 단독집들. 그 밤. 소설은 아주 내게 큰 감명이나 인상을 주진 않았다. 방금 전 글에서 언급한 '성석제의 참말로 좋은날'처럼.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은 읽으며 인상적인 부분을 더 여러군데 발췌해 놓았다. 작가의 세상에 대한 깊은 관찰과 고민으로 탄생시킨 작품속으로 잠깐 떠나볼까? --------------------------- 사실 아버지는 여러 가지 동물들을 술 안주로 삼았다. 먹어서 죽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모두 술 안주로 삼는 것 같았다. 그 중에서 특히 아버지가 좋아한 것은 뱀이었다. 엄마가 병으로 죽고부터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자주 엄마의 무덤을 찾아 갔는데 그 때마다 아버지의 손에는 소줏병 두 개가 쥐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소주를 엄마보다 더 좋아했던 것은 아닐까. --------------------------- --------------------------- 교회는 내게 있어 타향 같은 곳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얼굴에 희망이라는 것을 번들번들하게 칠해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집이었다. 목사와도 집사와도 나는 다른 애들처럼 친하게 지낼 수 없었다. 이렇게 심심한 곳으로 나를 데리고 오는 계모가 약간은 미웠다. 언제나 나는 전학온 지 며칠 안 되는 녀석처럼 겉돌고 있었다. 그저 졸리운 곳이기만 했다. --------------------------- --------------------------- 우리는 거의 같은 시기에 태어난 우리들 나이 또래 중에서 가장 불행한 환경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동류항으로 삼고, 너무도 어둡고 습기찬 땅에서 재배되고 있는 여러 해 살이 식물에 불과했다. 아버지가 만들어 준 토양에 뿌리를 박고 아버지가 부여하는 물을 빨아 올리면서, 그 나태와 무관심의 관찰 기록부에 검사 또는 효자의 기대로 커 나가고 있었다. 결국 우리들은 아버지의 버림받은 한 생애를 위하여 아버지가 원하시는 꽃을, 아버지가 원하는 열매를 만들어 내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미 우리들은 불량 품종으로 시들어 가고 있었다 ---------------------------
--------------------------- 다방은 만원이었다. 거의가 젊은 사람들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담배 연기 자욱한 이 다방에 앉아 만연된 이산화탄소를 마시며, 다방 조명만큼이나 그늘 끼인 얼굴을 하고 순도 낮은 오십 원어치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오십 원어치의 시간과 오십 원어치의 의자와 오십 원어치의 음악을 빌려 잠시 쉬고 있었다. 레지들이 조금도 웃지 않는 표정으로 통로를 왕래하며 엽차와 눈총과 하품을 덤으로 탁자 위에 날라다 주고 있었다. "미치겠어요. 글이 안 돼서." "미치기가 얼마나 힘들다고. 나도 못 미치는데." "쳇, 자긴 또 뭔데." "나는 천재야. 무엇이든 실패해 버리는 데 천재지. 요즘 계속 덜컥덜컥이야. 어딘가 고장이 난 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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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훈장은 이외수의 근작과는 거리가 좀 있다.
깊어가는 가을에 오늘처럼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그저 내가 사랑하는 나의 삶과 주변에 엄연히 존재하는 타인의 삶들과 교차하거나 부딪치는 때에 생기는 마찰음과 환호, 기쁨과 슬픔, 상처등이 제대로 '표현'되지도 못하고 사라진다.
나에게 이외수는 존경이다. 제대로 표현하는, 죽임이 아니라 살림의 글쓰기를 하는 저자로서 말이다. 혹자는 거렁벵이 날나리 같은 청춘이 미인을 얻어내는 교묘한 말솜씨나 집한칸 없는 서민으로서 글솜씨 하나로 '집'을 얻어내는 능력을 존경할 수도 있다.
근작에 반했던 나에게 그의 옛(?) 작품들은 신선함과 함께 '노력'이 가져오는 결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아주 흥미롭게 읽었고 감탄을 하게 했던 그의 장편소설들에 비해 다소 지루하게 까지 느껴졌던 소설집은 오히려 나를 포함한 많은이들에게 자신감을 준다고 하면 지타친 비약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