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디슨이 달걀을 품어 닭으로 부화시키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초등학교를 다닐 때였습니다. 선생님은 ''에디슨의 달걀''을 이야기하면서 호기심과 상상력을 강조했었습니다. 진짜 호기심과 상상력이 풍부했더라면 선생님이 좋아했을까 의문이거니와 당시에도 에디슨을 웃기는 녀석이라고 치부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에디슨의 달걀은 꽤나 심각한 사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과학자가 생명에 손을 뻗치려고 시도한 사건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십중팔구 실패했을 것입니다. 아니, 실패했어야 했고 실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생명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에디슨들은 전혀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달걀을 품은 할아버지』의 주인공 앙트완 할아버지는 에디슨과는 다른 경우로 여겨집니다. 앙트완 할아버지에게서는 생명을 존중하는 유쾌한 할아버지의 너그러움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아리가 앙트완 할아버지에게서 마침내 콕콕 톡톡 알을 깨고 나왔을 것이고요. 하여 앙트완 할아버지는 반갑습니다. 그러다 보니 앙트완 할아버지의 불룩한 배 위에 서서 앙트완 할아버지와 눈을 맞추는 병아리 그림이나 앙트완 할아버지의 복슬복슬한 턱수염에 둥지를 틀고 앉아 있는 병아리 그림을 보다 보면 마치 내가 한 마리 작은 병아리라도 된 것처럼 온몸에 푹신한 기운이 흐릅니다. 산책하는 할아버지를 따라 이곳 저곳을 휘저으며 삐악삐악 다니고 싶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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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01 새로 깨어나는 두 사람 ― 달걀을 품은 할아버지 기 드 모파상 원작 웬디 앤더슨 홀퍼린 글·그림 조국현 옮김 봄봄 펴냄, 2006.7.20. 오늘날 학교를 보면, 학교에서 아이한테 가르치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참말 제도권학교에서는 아이한테 어떤 이야기도 못 가르칩니다. 이렇게 말하면 고개를 갸웃거릴 분이 많으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참으로 학교는 아이한테 어떤 이야기도 안 가르칩니다. 왜 그러할까요? 학교는 아이들한테 ‘교과서 지식’만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교과서 지식이 아닌 ‘이야기’는 하나도 안 가르칩니다. 이를테면, 학교는 시험공부에 도움이 될 지식은 가르치되, 아이들이 집에서 집일을 돕거나 건사하거나 맡을 수 있는 ‘이야기’는 못 가르칩니다. 학교에서 교사 노릇을 하는 어른들부터 스스로 집살림을 알뜰살뜰 건사하는 사람이 드물 뿐 아니라, 집살림을 알뜰히 건사하더라도 이 이야기를 섣불리 들려주지 못해요. ‘교과서 진도’를 나가야 하고, ‘시험공부’를 시켜야 하니까요. .. “이 게으름뱅이 영감탱이야! 그렇게 놀지만 말고 나 좀 도와 달란 말이에요!” 할머니가 들볶아도 할아버지는 그냥 껄껄 웃었어요 .. (5쪽)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스무 살이 되어도 홀로서기를 할 줄 모릅니다. 고등학교를 마친 뒤 대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살섞기나 짝짓기를 할는지 모르나, 서로 아끼고 돌보면서 삶을 짓는 사랑은 하지 못합니다. 이제껏 배운 적이 없고, 본 적이 없으며, 알아보려 한 적도 없어요. 아이들은 밥짓기를 집이나 학교에서 배우지 않습니다. 집에서는 입시를 잘 치르도록 돕기만 하고, 학교에서는 도시락조차 없이 급식만 먹입니다. 아이들은 옷짓기나 집짓기를 집이나 학교에서 구경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어디에서나 옷은 가게에서 사다 입을 뿐, 손수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하지 않습니다. 집을 스스로 지어서 사는 사람은 없고, 다들 돈을 벌어서 아파트나 빌라를 사거나 빌려서 지내려 할 뿐입니다. .. 할머니는 닭들에게 가서 말했어요. “사랑스런 닭들아, 이제부터 앙트완 할아버지가 알 품는 것을 도와줄 거야!”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와서 찢어지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노란 암탉에게 달걀을 열 개 품으라고 했어요. 자, 이건 당신 몫이에요. 깨지지 않게 조심해요!” .. (13쪽)
기 드 모파상 님이 쓴 글을 바탕으로, 웬디 앤더슨 홀퍼린 님이 새롭게 엮었다고 하는 《달걀을 품은 할아버지》(봄봄,2006)를 읽습니다. 할머니한테는 늘 게으르다는 소리를 듣는 할아버지인데, 언제나 허허 웃으면서 지나갔다고 해요. 할머니는 이런 할아버지가 못마땅해서 더 들볶으려고 했답니다. 어느 모로 보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둘 다 옳습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는 집일을 거의 건사하지 않아 할머니 혼자 늘그막에도 온갖 일을 해야 합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조금 더 느긋하거나 너그럽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실마리는 하나이지요. 할머니가 조금 더 느긋하거나 너그러우려면 할아버지가 집일을 거들면 돼요. 허허거리기는 그만두고 말이지요. .. 할아버지가 품은 알에서는 병아리가 몇 마리 나올지, 어떻게 생겼을지, 또 할아버지처럼 슈크림이 빵을 좋아할지 정말 궁금했거든요 .. (19쪽)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저마다 스스로 달라져야 합니다. 두 사람은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이때 두 사람한테 ‘달걀’이 실마리가 됩니다. 아이가 따로 없이 둘이서만 지낸 삶인데, 할아버지가 그만 허리를 다쳐서 몸져누워야 할 적에, 할머니는 이웃사람 이야기를 듣고는 할아버지더러 달걀을 품으라고 시켜요. 할아버지는 어떻게 달걀을 품느냐고 따졌지만 할머니 말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몸져누워 꼼짝을 못하기도 하니까 달걀을 품고 맙니다. 닭이 낳은 알에서 깨어나는 병아리는 ‘늘그막까지 아이가 없는 두 사람’한테는 새로운 목숨이자 숨결이요 아이와 같습니다. 병아리도 아기와 똑같이 사랑스럽습니다. 병아리와 아기는 서로 아름다운 목숨이요 숨결입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이제껏 늘 보던 병아리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삶이 되면서, 두 사람은 저마다 새로운 몸짓이 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 허물을 벗고 새로 깨어나는 셈입니다. .. 마침내 마지막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왔어요. 할아버지는 병아리에게 다정한 미소를 지어 주었어요. “보드라운 깃털을 가진 친구야, 여기가 마음에 드니? 자, 여기 빵 부스러기를 먹어. 물도 마시렴. 너도 슈크림을 좋아할 거지, 그렇지? 우리 모두 네가 나오길 기다렸단다. 봐, 저 달도 널 보고 웃고 있잖아.” .. (27쪽)
함께 살림을 짓는 사람은 함께 사랑을 짓는 사이입니다. 서로 사랑을 나누는 사람은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이입니다. 같이 삶을 가꾸는 사람은 같이 한길을 걷는 사이입니다. 이야기책 《달걀을 품은 할아버지》에 나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새로운 삶에 눈을 뜹니다. 할아버지는 집일을 돌보는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고, 할머니는 한결 느긋하면서 너그럽게 할아버지와 마주하는 기쁨을 느낍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사내는 바깥일을 한다면서 집일에 등돌리는 바보스러운 짓을 그쳐야 합니다. 가시내는 사내가 바보스러운 짓을 벌이더라도 더욱 따사로운 손길로 어루만지면서 슬기로운 살림으로 이끌 수 있어야 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깨어나야 하고, 두 사람은 저마다 아름다운 숨결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4348.3.30.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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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진짜 달걀을 부화시킬 수 있을까? 이런 시도조차 해 본 사람이 있을까? 제목에서 부터 아이들에게 궁금증을 유발하는 데다가 그 유명한 모파상까지 연관되어 있으니 자연 손이 가는 책이다. 잔소리 많은 할머니가 시킨 일이지만 할아버지는 달걀을 부화시키기 위해 음악도 듣고 목소리도 낮춰 가면서 정성을 다했다. 사랑의 힘으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할아버지는 자신의 사랑으로 태어난 병아리들에게 새로운 관심과 더 많은 사랑을 쏟게 된다. 사랑을 가르치는, 더 나아가 부모의 심정까지도 엿볼 수 있는 따뜻하고 유쾌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