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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을 더해서 -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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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나라는 존재하는가?어떤 나라가 이상적인가?가끔 북유럽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부럽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완벽하진 않지만, 거기도 거기의 문제가 있지만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습들에서부러움을 느끼는 것 같다.북유럽 관련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단어는나는 사회적 합의였다.문제가 생겼을 때 끊임없이 토의하고 토론하고 고민해서사회적으로 합의를 보
"내 생각을 더해서 - 유토피아" 내용보기
이상적인 나라는 존재하는가?
어떤 나라가 이상적인가?
가끔 북유럽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
부럽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완벽하진 않지만, 거기도 거기의 문제가 있지만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습들에서
부러움을 느끼는 것 같다.
북유럽 관련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단어는
나는 사회적 합의였다.
문제가 생겼을 때 끊임없이 토의하고 토론하고 고민해서
사회적으로 합의를 보고 실행해 보는 것이다.
틀렸으면 다시 선회하면 된다.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의 독단보다는 더 나은 길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우리의 의식은 더 성장해야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살고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살고 있다.
북한은 공산주의를 살고, 사회주의를 살고 있다.
흔히 헷갈리는데 자본주의에 대비되는 것은 공산주의이고
우리나라 복지의 많은 부분은 공산주의가 있었기에 파생된 것이다.
민주주의에 반대되는 혹은 대비되는 제도는 사회주의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경제에 대한 것,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정치 체계에 대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공산주의를 나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본다.
공산주의자들도 인간의 의식이 충분히 성장했을 때 실행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우리의 인식은, 의식은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다.
공산주의의 가장 큰 적은 인간의 욕심과 비교이다.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이 받고 싶고,
남과 비교해서 편하고 싶은 것 등이 공산주의를 오지 못하게 한다.
공산주의가 무조건 악이 아니다.
더 토론하고 개개인의 의식의 성장을 통해 나가야 할 길일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다. 틀리다면 틀린 대로 우리는 서로 생각을 교환하고 나가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길이 막힌 것 같다. 
무조건 내 생각이 옳다고 하는 것들이 앞으로 전진하는 것을 막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식의 성장과 세상의 진보와 발 맞추어 우리가 해야할 것은 결국 똘레랑스다.
관용이라고도 하는 이 똘레랑스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서 온다.
다양한 세상이기에, 다양성의 존중이 필요하다.
사실 그래서 난 TMI로 조선시대 사람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늘 고민한다.
아직 나도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 힘듦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조선시대라고 했지만 명확하게는 현대 이전의 시대에서는
답이 정해져 있었다. 
어른들의 답이 정답이었다. 
똑같은 삶을 살며 이미 경험한 어른들의 답은 거의 진리였다.
하지만 세상이 다양해지며 경험은 어떨 때는 무용한 것이 되었다. 슬프게도.
그래서 그 다양성을 더 인정해야 하는데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어쩌면 그래서 난 아직 현대인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똘레랑스의 자세로 공동체의 회복이 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간다면 유토피아가 언젠가 올까?
유토피아의 몇몇 이야기는 우습게도 보인다.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다.
하지만 요체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상상과 
인간의 나아감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계속 생각해야 한다. 무엇이 옳은지.
종교에 대한 유토피아의 입장이 있는데 짧게 전해 본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따르는 것이라고 했다.
나도 동의한다.
우리는 목사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종교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
내가 교회를 다녀도 어떤 당을 꼭 지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지금 교회는 과연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었는지?
그리고 제대로 믿고 있는 것인지?
자정 능력이 있는지?
왜 맨날 욕을 먹으면서도 변화가 없는지?
기독교는 기독교에게 물어야 한다.
칼뱅주의에서 기독교는, 개신교는 계속 개혁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의 모습은 무엇인가? 
내가 기독교여서 기독교를 예를 든 것뿐이다. 
그래서 더 고민하자.
더 나은 것은, 앞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빠르지 않아도 된다. 
틀리면 돌아오면 된다. 
천천히, 한 발 한 발 나가면 된다.
책의 내용보다 나의 생각이 더 많이 들어간 독후감이 되어 조금 미안하지만,
다음에 더 꼼꼼하게 읽고 다시 리뷰를 남길 생각이다.
그때는 현대지성판의 유토피아가 될 것 같다.  
YES마니아 : 골드 h****9 2025.02.23.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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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급한 현실에 목말라하며 간절히 올려다 볼 별을 그리다
"갈급한 현실에 목말라하며 간절히 올려다 볼 별을 그리다" 내용보기
얼마 전 캐이블 TV 영화 채널에서 방영된 '사계절의 사나이'를 보았다. 인생의 절정기라 할 수 있는 대법관 시절에서부터 헨리 8세와의 불화로 비극적인 종말을 맞기까지 수년 동안에 걸친 토마스 모어의 드라마틱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었다. 런던탑에 갇혀서 옥창(獄窓)으로 스치는 사계절을 음미했다는 말인지 아니면 시대의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의연한 모습을 오롯
"갈급한 현실에 목말라하며 간절히 올려다 볼 별을 그리다" 내용보기
얼마 전 캐이블 TV 영화 채널에서 방영된 '사계절의 사나이'를 보았다. 인생의 절정기라 할 수 있는 대법관 시절에서부터 헨리 8세와의 불화로 비극적인 종말을 맞기까지 수년 동안에 걸친 토마스 모어의 드라마틱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었다. 런던탑에 갇혀서 옥창(獄窓)으로 스치는 사계절을 음미했다는 말인지 아니면 시대의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의연한 모습을 오롯이 간직해왔다는 것인지 제목이 뜻하는 바는 중의적이고 모호했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모어의 심원한 내면은 또렷이 읽혀졌다. 마음의 결이 어느새 모어의 그것에 옮겨 들어가 그의 심경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개인적 좌절이 심하거나 시대의 질곡이 처참하고 가혹할 때 우리는 흔히 초월을 꿈꾼다. 그것은 때론 도피나 일탈로 보이기도 한다.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꿈꾸고 그 구체적인 모습까지 구성해 내었다는 사실은 헨리 8세 당시의 영국의 상황이 어땠는지 그리하여 의식 있는 선각(先覺)들이 얼마나 부심하며 초월과 일탈을 꿈꾸고 자신만의 관념세계로 도피하려했는지 여실히 반증해주고 있다. 누적된 봉건적 폐습과 엔클로저 운동 등의 사회 변동으로 말미암아 민생의 피폐가 극에 달한 최악의 상황을 목격하고 영국 사회에 대한 기대를 접은 채 상심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모어에게 결정적인 시련이 닥쳐왔다. 폭군 헨리 8세의 전횡이 극에 달한 계기가 바로 앤 블린과의 재혼문제로 불거진 로마 카톨릭과의 갈등이었다. 토마스 모어는 로마 교황청과 결별하고 수장령(首長令)을 선포한 헨리 8세의 조치에 대해 침묵으로 반대 의사를 단호히 표명하였다. 그 침묵의 무게는 허다한 변설의 논증보다 더 압도적이었을 것이다. 헨리 8세의 심기를 지극히 혼란스럽게 했을 것이다. 당연히 반역자들의 감옥, 런던탑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어가 꿈꾸었던 지도자와 염원했던 세상은 지상 어디에도 없었다. 초월을 꿈꿀 수밖에, 그리하여 현실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위안을 충만하게 누릴 수 있는 마음의 공간으로 스스로를 유폐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소설 『유토피아』의 집필 시점은 수장령(首長令)에 대항하다가 시련을 당한 사건이 있기 훨씬 전의 일이지만 모어의 심성이나 내면의 지적 경향이 늘 현실에 목말라하고 이를 일거에 해결할 원대한 구상을 관념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었기에 그의 저작과 삶은 수미상관 이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생활의 최선의 상태에 대해서의, 그리고 유토피아라고 불리는 새로운 섬에 대해서의 유익하고 즐거운 저작>이라는 유토피아의 원제에서 시사하고 있듯이 모어는 중첩된 모순으로 인해 한계 상황에 처한 영국 사회를 최선의 상태로 만드는데 있어 점진적 개량의 방법은 유용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근본적인 재구성을 통해 기존 질서와는 완전 딴판인 대안 사회를 모색한 결과 유토피아라는 관념을 조출해낸 것이다. 그리고 당시 영국 민중들의 의식 수준을 감안해서인지 그 새로운 섬의 지도자는 주도면밀하게 계획적으로 국가를 다스리는 독재자로 설정하였다. 그리하여 강력한 권한에다가 지혜를 겸비하였으며 민중에 대한 애정과 그들의 민생을 해결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충만한 지도자에 의해 최선의 상태로 운영되는 완전히 새로운 섬 유토피아가 우리 앞에 그 정교한 면모를 드러내게 되었다. 모어가 유토피아의 모습을 근거까지 제시하며 세밀하게 그려낸 이후에 수많은 이상향의 모델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것은 시대의 질곡에 갈급한 심령들의 마지막 아우성이고 도피처였다. 때론 종교적 파라다이스로 혹은 과학적 사회 변동 이론의 모습으로 더러는 수련을 통한 인간 내면이 도달하는 경지로 그것은 이해되기도 하였다. 지식 정보화 시대인 요즈음에는 정보화 사회가 실현된 모습을 유토피아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그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가상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기에 바야흐로 지상 낙원이 도래했다고 볼만도 하다. 그러나 암울한 현실을 초월하기 위해 떠올린 이상향이란 원래 실존하지 않는 것이다. 존재할 수 없기에 이상향인 것이다. 현실에서 이룰 수 있는 범위의 일이라면 유토피아라는 관념으로 상정하지 않고 즉각 실천적 몰입으로 이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토피아는 당대에 이루려고 덤벼들 성질의 것이 아니고 다만 원대하게 지향할 따름인 것이다. 또 그것은 자칫 디스토피아(distopia)로 치달을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관념이다. 유토피아로 설정한 것들이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것인지 예기치 못한 부작용으로 큰 폐해만 끼칠 건지 아직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보화사회가 매트릭스(matrix)나 판옵티콘(pan-opticon)이론을 통해 지적된 바와 같이 정보 감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유토피아는 실제로는 없는 것이며(no place = utopia) 더구나 그 관념을 현실화하려는 시도는 자칫 우리에게 디스토피아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토피아는 우리의 머리와 가슴속에 언제까지나 새겨져 있어야 한다. 유토피아 개념이 비현실적이고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백안시하여 우리의 의식세계에서 배제해 버린다면, 그리하여 이상향을 염원하고 동경하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 인류는 암울한 현실을 무슨 수로 버티며 바람직한 미래를 구성하기 위한 동기 유발과 헌신을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럴 때에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어떻게 해결되며 또 정체를 모면할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면 아찔한 일이다. 따라서 관념적으로 상정한 이상형(ideal type)일 뿐이고 또 역기능이 클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유토피아는 인간 개인의 내면적 위안을 위해서나 사회 집단의 더 나은 미래를 열어나가기 위해서도 반드시 간직해야할 소중한 관념인 것이다. 어두움이 짙을수록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별처럼, 도탄에 빠져있던 우리 인류에게 새로운 사회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해준, 이상향의 비전을 또렷하게 제시한 토마스 모어에게 갈급한 현실에 목말라하며 그 별을 간절히 올려다볼 모든 이들이 더 없는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a*****7 2005.12.1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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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내용보기
16세기, 영국 사회는 정치적 혼란, 종교적 흔들림 그리고 엔클로저 운동을 필두로 일어나는 경제사회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영국 역사상 어쩌면 가장 격변기였을지도 모르는 그 시대를 살아갔던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그리스어인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땅’ 이라는 뜻이다. 토마스 모어가 사용한 이 제목은 그가 꿈꾸는 사회가 이상적임을 나타냄과 동시에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내용보기
16세기, 영국 사회는 정치적 혼란, 종교적 흔들림 그리고 엔클로저 운동을 필두로 일어나는 경제사회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영국 역사상 어쩌면 가장 격변기였을지도 모르는 그 시대를 살아갔던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그리스어인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땅’ 이라는 뜻이다. 토마스 모어가 사용한 이 제목은 그가 꿈꾸는 사회가 이상적임을 나타냄과 동시에 현실 사회 그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그는 유토피아가 어디 위치하는 섬인지 알지 못한다고 이야기함으로써 그 실재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그의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이 공허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글에는 유토피아의 현실화를 향한 강렬한 열망이 담기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돋보였던 것은 모어의 종교관이었다. 숱한 개혁운동을 경험하긴 했어도 기독교는 여전히 그 사회를 지탱하는 하나의 거대한 축이었다. 하지만 모어는 기독교 안에 존재하는 타 종교를 향한 배타성에 눈을 떴던 것 같다. 그에 따르면 유토피아에 사는 이들은 다양한 신을 섬기고 자신과 다른 신을 섬기는 이에게도 관용을 베푼다. 관용은 유토피아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질서로 이야기되고 있다. 이는 비기독교 사회에 대해 미개하게 여기고 더 나아가 그들을 강제적으로 기독교 문화에 편입시켰던 그 시대의 문화로 보아할 때 가히 파격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영국에 불어오고 있는 산업화로 인한 불평등의 가속화에 대해서도 유토피아의 모습을 통해 비판하고 있었다. 유토피아 인들은 화폐나 각종 보석 등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오히려 그러한 것에 관심을 보이는 행위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통치자가 존재하지만 그것은 태생적 신분이나 경제력이 아닌, 국민들의 신임에 의한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극소의 제도만을 갖추었지만, 그로 인해 제도의 노예가 되지 아니하며 관행적인 일 처리로 고통 받지 않는다. 민주적이며 동시에 모든 이에게 권리가 주어지는 듯한 모습은 다소 작은 규모의 국가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한계는 존재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는 그가 살고 있던 시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리스적인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식의 사고에 충만해 있는 듯 했다. 책의 곳곳에서 보여지는 유토피아 사회의 노예제는 그다지 민주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유토피아를 너무도 아름다운 곳으로 묘사한 나머지 다른 사회에서 자유인으로 사는 것 보다 유토피아에서 노예로 사는 것을 사람들이 더 선호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비록 그 사회가 막무가내로 사형을 남발하지 않는 발전적인 모습을 보이고는 있었지만, 노예에게 같은 종류의 옷을 입히는 것을 뛰어넘어 귀의 일부를 잘라내는 행위를 했던 것을 오늘날에 유토피아라 이야기할 수는 없을 듯 하다. 또한 타 국가와의 전쟁 모습 역시도 되도록이면 자국민의 희생을 방지한다는 측면에서는 과거의 무조건적인 진군과는 거리가 멀어보였지만, 고도의 심리전을 통해 상대방이 스스로 무너지도록 이간질 하는 모습 등을 아름답다고 평가하긴 힘들었다. 그가 살았던 시대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많이 달라졌다. 그렇기에 모어가 꿈꾸었던 유토피아는 더 이상 긍정적인 의미의 유토피아일 순 없을 듯 하다. 하지만 가능치 않다는 것이 꿈꾸지 않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또 다른 유토피아를 꿈꾸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보다 이상적인 사회를 그리고 그 사회를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사회의 진보를 가능케 한다. 앞서 꿈꾸는 사람들이 존재했기에 사회가 오늘날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지 싶다.
이달의 사락 q*****2 2003.09.2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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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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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란 흔히 인간이 염원하는 이상향의 세계로 사용된다. 거의 고유명사화 되어있다. 유토피아는 뭔가 꿈에서 갈 수 있을 것 같은, 천국이 있다면 그런 곳일 것 같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이 그리는 유토피아가 있겠지..   유토피아라는 말은 토마스 모어가 그의 저서 '유토피아'에서 사용한 것인데 원래의 어원은 'U(없다)'와 'topos(장소)'의 복합어로서 '어디에도 없는 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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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란 흔히 인간이 염원하는 이상향의 세계로 사용된다. 거의 고유명사화 되어있다.

유토피아는 뭔가 꿈에서 갈 수 있을 것 같은, 천국이 있다면 그런 곳일 것 같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이 그리는 유토피아가 있겠지..

 

유토피아라는 말은 토마스 모어가 그의 저서 '유토피아'에서 사용한 것인데

원래의 어원은 'U(없다)' 'topos(장소)'의 복합어로서 '어디에도 없는 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라는 뜻 되겠다.

이 책이 쓰여졌던 시대는 영국 절대왕정 시대라고 하는데, 그 당시에 사회제도나

생활상에 비추어 봤을 때 토마스 모어의 생각은 가히 혁신적이라 할 수 있었다.

마치 사회주의에서나 볼 수 있는 사유 재산의 폐지, 모든 재산의 국가소유, 노동력의 국가관리

생산품의 공동분배 등의 개념을 주장했고,

당시 영국의 정치 및 사회제도, 그리고 최고권력인 왕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견해를 견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부분은 토마스 모어의 개인적인 성품에서도 볼 수 있다.

토마스 모어는 왕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결국 처형되는 운명을 맞게 되는데,

한마디 말로, 사형을 면하는 것은 물론, 부귀영화를 취할 수 있었지만,

끝내 자신의 양심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선택하게 된다. 멋진 양반이다.

이런 올곧고 유유자적한 성품은 그가 감옥에 있을 때와 처형당할 때에도 일면 보여진다.

모어의 부인이 런던탑으로 찾아와, 고집을 부리다가 안락한 집을 두고 '이 답답하고

더러운 감옥'에서 사니, 바보라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집은 우리 집보다는 하늘에 가깝지 않은가?'라고 다시 한번 멋진 양반...

그리고 처형을 당할 때 사형 집행리에게

'기운을 내게군의 직책 수행을 주저할 필요는 없네. 내 목은 대단히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라고 태연히 농담을 하며 최후를 맞이했다고 한다. 쿨하시군..

 

토마스 모어는 자유로운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민중을 위해 왕이 있으며 왕은 민중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그가 생각한 이상향을 현실 정치에 적용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올곧은 자세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비판적인 정신은 문득 오늘을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c****s 2011.03.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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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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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적인 이상사회를 그린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흔히 이상향을 뜻하는 이 유토피아라는 말은 1516년 토마스 모어가 처음 사용한 말이라고 한다. 이말은 아무것도 없는 '무'라는 단어와 장소를 뜻하는 그리스어의 합성어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 토마스모어는 이 작품속에서 어떤 유토피아를 그리고 싶었던 걸까? 그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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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적인 이상사회를 그린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흔히 이상향을 뜻하는 이 유토피아라는 말은

1516년 토마스 모어가 처음 사용한 말이라고 한다.

이말은 아무것도 없는 '무'라는 단어와 장소를 뜻하는 그리스어의

합성어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

토마스모어는 이 작품속에서 어떤 유토피아를 그리고 싶었던 걸까?

그시대에 어떤 사회적 배경들이 그로하여금 이상향을

꿈꾸게 하였는지 그가 그린 이상적인 사회,

그것의 이야기를 풀어보자.

 

영국의 산업혁명 초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있는 작품 유토피아.

이 작품은 토마스 모어가 한 선원으로 부터 이상의 나라

유토피아의 제도와 풍습등에 대해 들은 것을 기록한 형식으로

이상사회를 묘사한 작품이다.

1부에선 영국의 사회 현실을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고

2부에선 유토피아라는 완전한 사회를 설계하고 있다.

토마스 모어가 꿈꾼 유토피아.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인지

책속에 묘사되어 있는 그곳의 생활상은....

d*****2 2008.12.0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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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향, 유토피아...
"이상향, 유토피아..." 내용보기
유토피아란 '어디에도 없는 곳'(영어로 no place)이란 뜻이다. 즉 현실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이상 세계가 유토피아이다. 영국의 산업혁명 초기를 배경으로 하는데 유토피아를 방문한 라파엘은 토착, 구조화된 영국 사회에서는 유토피아를 실현할 수 없음을 알고 왕의 고문관이 되기를 거절한다. 이 책에는 유토피아라는 완벽한 사회의 즐겁고 교훈적인 내용이 실려 있다. 이 책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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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란 '어디에도 없는 곳'(영어로 no place)이란 뜻이다. 즉 현실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이상 세계가 유토피아이다. 영국의 산업혁명 초기를 배경으로 하는데 유토피아를 방문한 라파엘은 토착, 구조화된 영국 사회에서는 유토피아를 실현할 수 없음을 알고 왕의 고문관이 되기를 거절한다. 이 책에는 유토피아라는 완벽한 사회의 즐겁고 교훈적인 내용이 실려 있다. 이 책에서는 현실에 대한 풍자를 눈에 띄지 않게 조심스럽게 그렸으며 그러면서도 가볍지 않게 진지하고 성실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유토피아의 본질은 윤리에 입각한 도덕철학인데 이기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였으므로 고대 사상 중 에피쿠로스와 스토아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쾌락이 자연이 준 은총으로 생각하면서도 이성에 입각한 윤리관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유토피아의 사상은 모어가 그리는 그리스트교 사상인데 중세 말의 유연성 없는 종교성에 대한 반성으로 '미트라스' 라는 페르시아의 신을 딴 것이다. 유토피아의 이상적인 사회제도 및 정치, 정치, 종교, 사상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여러 분야에서 많은 것을 시사해 줄 것이다.
1***9 2000.05.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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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이들의 꿈 - 아틀란티스는 과연 존재하는가?
"모든이들의 꿈 - 아틀란티스는 과연 존재하는가?" 내용보기
부제: 모어의 유토피아는 진정한 유토피아 인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관한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많이 들어왔다. '어디에도 없는곳'이자 '이상향'인 나라, '무릉도원'……. 주변 사람들로부터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나만의 유토피아를 그려보고 흐뭇해하던 옛 일이 떠오른다. 얼렁뚱땅하고 내맘대로인 나만의 유토피아란 내가 맨 꼭대기로 올라가 있는, 그야말로 '나'라는
"모든이들의 꿈 - 아틀란티스는 과연 존재하는가?" 내용보기
부제: 모어의 유토피아는 진정한 유토피아 인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관한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많이 들어왔다. '어디에도 없는곳'이자 '이상향'인 나라, '무릉도원'……. 주변 사람들로부터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나만의 유토피아를 그려보고 흐뭇해하던 옛 일이 떠오른다. 얼렁뚱땅하고 내맘대로인 나만의 유토피아란 내가 맨 꼭대기로 올라가 있는, 그야말로 '나'라는 한 개인을 위한 놀이방, 하나의 시나리오일 뿐이었다. 그러나 모어의 생각은 나와 조금 달랐다. 유토피아에서는 사유재산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회에 대해 열성적으로 일을 한다. 인상 깊었던 한가지는 유토피아의 사람들이 농사를 필수교육으로 익혀, 모든이의 직업이 되고 각자 특수한 기술을 양친 아래서 배운다는 점이다. 물론, 유토피아에서는 어린이가 다른 기술을 좋아할 때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양자로 들어간다. 또 다른 한가지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업을 가지기 때문에 하루에 6시간만 일을해도 된다는 것이다. 유토피아의 경제제도는 내가 알고있는 공산주의와 매우 흡사했다. 학교에서 배워온 '이윤 추구의 동기가 없으면 누구나 게을러져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위해 일해 주기를 바라게 된다.' 는 반론에 대해서도 모어는 여러 가지 유토피아의 제도와 사람들의 관념등을 근거로 타당성을 제시해왔다. 이쯤 되어서 나는 유토피아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문점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유토피아가 모든 사람들의 이상향이자 천국일까……. 내가 책에서 느낀 유토피아는 고립된 하나의 섬에 불과했다. 물론 처음에 읽어가면서 '정말 이렇게 좋은곳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만큼 번듯하고 잘 짜여진 사회조직이었다. 하지만, 유토피아의 시민이 되려면 그 나라의 제도에 맞는 '완벽한 인간'이 되어야만 한다. 유토피아 사람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란 비슷한 심미안을 가지고 있게 마련인데도 진주나 보석, 금·은 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점이라든가 흔히들 추구할만한 (특히 동물이라면, 인간도 하나의 동물이므로) 쾌락에 대해서 하나의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점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철저한 교육을 받아 개인의 도덕관이 확실하게 정립되어 있어야만 가능하다. 타국의 사람들이 금화등을 좋아하기 때문에 돈으로 매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유토피아 사람들에게는 전혀 필요 없는 것이니 타국민을 매수할 만한 양의 돈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는 생각은 모순된다. 또,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시포그란투스나 트라니보루스에게 여행 허가증을 얻어야만 한다. 허가증 없이 여행을 가면 비난을 받고 노예가 된다. 6시간 일을 하고 난 나머지 시간에는 게으름이나 방종에 허비하지 않고 건전하게 이용한다는 조건으로 기호에 따라 자유롭게 보낼수 있다는 '보장된 자유' 에 대해서 또 다시한번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다른 도시에 가서도 일을 해야만 하는 여행은 그다지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허가증이라는 하나의 증서로 노예가 되고 자유인이 되는 아이러니컬한 대목들은 허탈한 웃음이 나오게 만들법 했다. 유토피아에 대해서 가장 많은 거부감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철저한 가부장적인 제도를 가지고 있는 점이다. 여성 인권보장 사회운동가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당장에 분노를 일으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책의 어느곳이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 '아내는 남편의 집에 들어가서 살고..' . '여자를 성직자로 선출하는 것을 금지하지는 않지만 여자가 성직자로 선출되는 경우는 거의없고, 선출된다 하더라도 나이든 과부로...' , '집에서 아내는 남편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동안의 게으름과 죄를 모조리 고백하고...' 라는 등의 내용만이 언급되어 있었다. 책의 어느 곳에도 '남편은 아내를 존중하고 아내의 일을 도우며 아내를 이해해주고 사랑으로 대한다.' 라는 등의 내용이 마치 머리에 **가 있는 듯 여간 찝찝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모어의 머릿속은 처음부터 남자의 아래에 여자가 있는것이라는 생각이 뿌리박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법적인 문제에 대해서 언급할때도, 결혼풍습에 관해서 얘기할때도 항상 '남자'쪽의 입장에서 서술하던 것을 기억한다. "물론 아내가 결혼 후에 보기 흉하게 된다면 남편은 운명을 감수해야 합니다." 결혼 풍습중, 결혼 전에 신부의 나체를 신랑에게 보인다는 풍습을 소개하던 중 나온 문장이다. 그렇다면 과연, 여자들이 보기에 남편이 흉해지는 경우는 없는것일까? 이 외에도 문장 곳곳에서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식의 얼굴 달아오르는 부분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유토피아 시민들은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찬양까지 받는 다는 점이다. 마치 '해리포터'에서 죽도록 무일푼의 가사노동을 하면서도 그것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집요정과 같이. 나로써는 굉장히 안타까운 부분이 아닐수 없었다. 유토피아는 이미 남자들을 위한 파라다이스였다. 유토피아의 모순을 또다른 부분에서도 발견된다. 유토피아의 노예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바람직하고 훌륭하다는 점이다. 무엇이든지 잘하는 사람이란 있을수 없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들 나름대로의 장단점이라든가 생활방식에 따라서 조금씩 다를수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유토피아의 시민들은 항상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서 욕심도 없고, 학문연구에 관심이 많으며 타국에 대해서도 관용적이고 전쟁또한 잘한다. 똑같은 소재의 똑같은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똑같은 모습의 집에 살아가는 올바른 사람들……. 과연 그 나라는 재미있을까? 책을 통해 토마스모어의 유토피아를 그려나가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불만족이 없는 나라란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역시 모든 이의 유토피아란 '어디에도 없는곳'이라는 정의가 맞는 듯 하다. 한 사람이 만족스러우면 나머지 사람들이 불만족스럽게 되는 것은 상대적인 일이니까. 비디오로 접했던 '트루먼쇼'를 떠올렸다. 영화 감독은 트루먼이 태어났을 때부터 특수 제작한 하나의 무대세트 안에서 트루먼의 성장과정을 찍었고, 그를 믿게 하기 위해서 안전하고 걱정없이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던 트루먼은 어른이 될 때까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었지만,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곳이든지 선과 악, 그리고 옳고 그름,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공존해야 그 곳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라고 본다. 그것을 인위적으로 억제하기 위해

[인상깊은구절]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 '아내는 남편의 집에 들어가서 살고..' . '여자를 성직자로 선출하는 것을 금지하지는 않지만 여자가 성직자로 선출되는 경우는 거의없고, 선출된다 하더라도 나이든 과부로...' , '집에서 아내는 남편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동안의 게으름과 죄를 모조리 고백하고...'
q*******7 2001.07.2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유토피아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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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나 꿈의 이상향 - 유토피아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보통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꿈의 세계를 가리킬 때 이 유토피아를 말한다. 이 책이 쓰여질 당시 유럽은 군주들은 자신들의 부를 키우기 위해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가혹한 노동을 시켰다.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유토피아에서는 시민은 평등하고 재산 공유제가 시행되고 있다. 그리고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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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나 꿈의 이상향 - 유토피아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보통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꿈의 세계를 가리킬 때 이 유토피아를 말한다. 이 책이 쓰여질 당시 유럽은 군주들은 자신들의 부를 키우기 위해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가혹한 노동을 시켰다.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유토피아에서는 시민은 평등하고 재산 공유제가 시행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노동하기 때문에 적은 노동시간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큰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만약 모든 재산이 공유제라면 누가 꿈이나 희망을 갖고 일을 하겠는가. 아마 그런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아무런 이상을 갖고 살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인상깊은구절]
라팡엘이 이와 같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여러가지 의문점이 머리에 떠올랐다. 나는 그 나라의 법률이나 관습 중에는 우스운 것이 상당히 많다고 생각했다. 곧 돈은 제거한 공유제도는 매우 불합리했다. 그런데 돈을 사용하지 않는 공유제도는 본질적으로 귀족 정치의 종말을 의미할 것이며 따라서 어느 나라에서나 진정한 영광으로 여겨지는 모든 권위와 광휘와 존엄의 종말을 의미할 것이다.
s***1 2000.11.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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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장미빛 유토피아는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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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파라다이스, 천국,극락...모두가 우리가 이상향으로 생각하고 도달하고자 하는 "꿈의 동산"이다.사실 이런 곳들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현실에 살아가는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정말 장미빛 유토피아가 존재하는걸까? 난 이렇게 생각한다.실제로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들은 존재하지 않을거라고...아니면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그런 곳들에 다가갈 수 없을거라고...다만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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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파라다이스, 천국,극락...모두가 우리가 이상향으로 생각하고 도달하고자 하는 "꿈의 동산"이다.사실 이런 곳들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현실에 살아가는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정말 장미빛 유토피아가 존재하는걸까? 난 이렇게 생각한다.실제로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들은 존재하지 않을거라고...아니면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그런 곳들에 다가갈 수 없을거라고...다만 우리가 그런 사회에 좀더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고 힘을 기울이면서 살아가는게 세상사는 이치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정말 토마스 모어가 말한 유토피아가 존재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사람사는 곳이 어찌 절대적으로 선하겠는가? 단지 그런 사회에 대한 갈망과 또 궁극적으로 도달할 수 없을거라는 아쉬움의 반로가 바로 이 책, 유토피아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s*****0 2000.06.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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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보는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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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를 다시 펼쳐 보게 된 것은 인터넷을 헤메다가 우연히 어느 님이 쓴 서평을 보고서 자세히 일독을 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청소년기에 접했던 유토피아는 '아! 그런 사회도 있을 수 있겠구나' 정도였는데 '안락사'라든가 '법률의 최소한 필요성' 등이 씌여있다는 서평을 보고는 그런 내용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나를 다시 유토피아의 세계로 이끌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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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를 다시 펼쳐 보게 된 것은 인터넷을 헤메다가 우연히 어느 님이 쓴 서평을 보고서 자세히 일독을 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청소년기에 접했던 유토피아는 '아! 그런 사회도 있을 수 있겠구나' 정도였는데 '안락사'라든가 '법률의 최소한 필요성' 등이 씌여있다는 서평을 보고는 그런 내용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나를 다시 유토피아의 세계로 이끌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상당히 파격적이었을 '공상적 사회주의' 내용의 책을 불혹의 나이에 접한다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왜냐하면 그간 세파에 찌든 머리를 리후레쉬하게 해주는 내용이기 때문에... 6시간의 성실한 노동만으로 충부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곳, 그토록 우리 주변을 옭아메고 있는 법률이 그리 필요하지 않는 곳, 마치 로마인들이 그리 했던 것처럼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곳((?.. 우리 사회는 아직도 종교간의 갈등이 있지 않을까?)이기 때문이다 토마스 모어의 자구 하나 하나에 너무 얽메이고 비판을 하기 보다는 큰 흐름속에서 읽어 보고 모어의 상상을 함께 즐겨보는 독서방법이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j*****6 2001.08.2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