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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엘료의 작품은 전부 재미있게 다 읽었다.(국내에 소개된 책은...^^;;)
그런데, 이 순례자가 내 기억으로는 가장 나중에 출판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분명히 작가의 유명세를 이용한 책 팔아먹기 수단이 아닐까,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책 읽을 거리가 마땅하지 않은 순간에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읽으면서도 나의 불순한(?)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책이 너무 괜찮았다.
괜찮았다는 표현은...참 어중간한 표현인데...
음..책을 읽을때 어떤 책이든 마음에 드는 부분은 줄쳐놓고, 접어놓고, 메모하면 보는 경향이 있는데,
순례자는..여러 군데 접고, 줄 긋고, 메모하면서 봤다.
개인적으로
연금술사, 순례자 는 은근히 사는게 지루해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11분,피에트라 강가에서... 은 웃게 만들고 싶은 사람에게,
악마와 미스플랭 은 복잡한거 싫어하는 사람에게
베로니가 죽기로 결심하다 는 개성이 강한 사람에게 선물하거나 권해준다.
그리고 오 자이르,는 잘 추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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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처녀작을 만나는 것은 그 작가의 작품 세계와 철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관찰이 된다. 더욱이 그 작가의 현재적 나침반이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감동과 전율을 일으키고 있음을 가리킨다면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작가의 현재적 우주를 과거의 시간대와 함께 음미함으로써 미래의 우주를 기대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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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로는 '순례자'가 먼저 이지만 다른 많은 이들처럼 '연금술사'를 먼저 읽었기에 책을 대하는 첫 마음은 매우 편안했다. 게다가 읽는 이로 하여금 잔잔하게 미소짓게 하는 글은 코엘료의 이름으로보나 인상으로보나 매우 당연한 기대였기 때문이었다.
시작이 약간 빡빡한 듯 싶었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곧 '연금술사'처럼 잔잔한 물결이 일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찾아낸 모든 방법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로 인해, 우리를 떠난 누군가로 인해, 그리고 우리를 떠나려 하지 않는 누군가로 인해 고통을 받지요."
이 구절을 만나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어쩌면 이 책이 그토록 찾던 '진지한 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제 만날지 모르는 멋진 구절을 두고두고 기억하기 위해 빨간펜을 들고 한단어 한글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게 되는 책을 만나는 건 언제나 멋진 행운이다. 무심코 지나칠지도 모르는 문맥속에 자아성찰을 위한 멋진 보물이 숨겨져 있어 우연히 그러나 집중력있는 노력으로 그걸 찾아낼수만 있다면 내 자신이 한단계 도약할수도 있는 멋진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다른 책이라면 아마 '검'의 사용법을 알려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검'의 사용법을 알고 싶다는 욕망조차 잊어버리게 만드는 마법을 부리면서도 원래의 목적을 희석시키지 않는다.
"... 양은 내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따위는 영원히 잊어버리라고. '선한 싸움'을 이끌어갈 모든 사람에게 다시 힘이 솟아나듯, 내게도 새로운 힘이 다시 솟아날 거라고. 언젠가 인간이 다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날이 올 것이고, 그러면 온 자연이 그의 안에 잠들어 있던 신이 깨어났음을 축복하리라고, 어린양의 눈은 내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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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 발간되는 파울로 코엘료의 최신작이지만 사실은 파울로 코엘료의 처녀작이다. <연금술사>의 성공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 책을 만나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1986년, 작가 본인이 순례자의 길이라고 불리는 '산티아고의 길'을 걸으면서 겪게 되는 영적인 체험과 자아를 찾게되는 자전적인 이야기이다. 또한 가장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책이다. 생소한 종교 단체인 '람'이라든지, 종교 의식에 관한 부분은 조금은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자기계발적인 성격때문에 괜찮은 것 같다. 책을 읽으면 재미보다는 명상을 하는 듯한 정적인 느낌이 든다.
또한 이 책을 통해서 <연금술사>,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등의 그의 작품들의 초석이 마련된다. 그 책들 속에 담긴 메시지들을 이 책 안에서 발견 할 수 있다.
인간은 살아 있는 것들 가운데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자각하는 유일한 종입니다......바로 그 죽음이 삶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들을 실현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줍니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그것을 찾아 떠나는 칠백킬로미터의 산티아고의 길을 떠나는 주인공과 그의 안내자 페투르스, 온전히 걸어서 그 길들을 거치면서 처음부터 하나 하나씩 다시 배우고 깨우치게 된다.
무엇보다도 안정된 현실을 버리고 과감히 길을 떠난다는 것에 그 의미가 큰 것 같다. 산티아고의 길을 걸으면서 자신의 무한함과 가능성을 믿고, 평범한 사람들의 길 위에 있는, 삶에 조금만 귀 기울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행복의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삶은 매 순간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니까요...... 매일의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도 솔로몬 왕처럼 지혜롭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강인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자기 자신을 적대시하게 되고, 결국엔 스스로 자신의 가장 큰 적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자신의 꿈은 유치하다거나, 실행하기 힘들다거나, 인생에 대해 몰랐을 때나 꾸는 꿈이라고 스슬를 합리화 하면서 말이죠......용기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꿈을 죽여버리는 겁니다.
꿈들을 죽일 때 나타나는 첫번째 징후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가장 바빠 보였던 사람조차 무엇이든 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 피곤하다고 말하고, 정작 자신들이 하는 게 거의 없음을 깨닫지 못하면서 하루가 너무 짧다고 끊임없이 불평을 하지요.
꿈들이 죽어가는 두번째 징후는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확신입니다. 삶이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모험이라는 것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스스로 현명하고 올바르고 정확하다고 여깁니다. 아주 적은 것만 기대하는 삶속에 안주하면서 말이죠.
마지막으로 그 세번째 징후는 평화입니다. 삶이 안온한 일요일 한낮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자신에게 대단한 무엇을 요구하지도,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구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리고는 우리는 자신이 성숙해졌다고 여깁니다. 젋은 날의 환상은 내려놓고 개인적이고 직업적인 성취를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내 모습의 단면을 찔린 듯한 기분이 드는 부분이었다. 나는 꿈을 향해서 열심히 산다고 자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꿈을 죽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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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년여전 우연히 알게된 산티아고 순례길에 한참을 관심 가진 적이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인해 아직까지 그 길을 밟아 보진 못했지만... 언젠가는 그 길위에서 내 자신을 정말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으리라는 믿음...
지난주부터 읽기 시작한 이 책...
이래서 시간없고 저래서 시간없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로 한동안 책읽기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 못하다가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큰맘먹고 하루에 약 40여분 가량 독서에 투자하기로 맘먹고 처음 스타트를 끊은 책...
사실 파울로코엘료의 책은 첨이다. 집에 이미 1여년전에 구매해둔 연금술사 가 있지만 아직 시도전이고 우선 이 책을 먼저 읽어야겠다고 맘먹고 책을 펼쳐들었다.
좀 쉽고 흥미로웠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이책은 그렇지는 않다. 종교적은 냄새도 정말 많이 나고 그래서 비종교인인 내가 읽기엔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이며 배경들이 많이 나왔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지나면서 작가가 만나게되는 여러가지 난관들을 그가 그의 마스터와 어떻게 헤쳐나가는지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를 잘 묘사한 책이다.
한번 읽는 것으로는 아직까지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든지라 언젠가 밟게될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을 앞두고 다시 한번 읽어야 할 것 같다.
-11월 29일 일요일 오전 9시 30분에 이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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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묘한 곳이다. 유럽의 끄트머리에 속하긴 하지만 한 때 이슬람 문명의 세례(?)를 받기도 했다. 톨레도나 코르도바와 같은 곳에는 여전히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뒤섞인 건물들이 즐비하다. 마치 예루살렘이 기독교의 성지임과 동시에 이슬람교의 성지인 것처럼…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도 이러할까? 스페인 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산티아고는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기독교 성지이며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부터 800km에 이르는 길은 ‘순례길’이라 불릴 정도로 해마다 많은 이들이 걷고 있다. 생장피에드포르에서부터 시작한 저자의 일정 역시 산티아고 순례길을 따라 진행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들 중 자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은 이는 몇이나 될까? 오늘날과 같이 이성이 중시되는 시대에도 많은 이들은 종교적 영감으로부터 자유롭질 못하다. 도킨스와 같은 이는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꿈꾼다고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타인에게 강요치 않는다는 전제 하에 신앙을 갖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곤 한다. 인간은 갈대와도 같아서 언제나 합리적으로만은 살 수 없기에… 가끔씩은 우리 자신의 목소리로 진술할 수 없을 법한 차원의 일들과 우린 만난다. 내가 누구이며 왜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어디로 가는지, 이처럼 초보적인 질문조차도 대답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네 긴 인생 전부를 필요로 한다. 하물며 이보다 더 복잡한 문제들 앞에서 끊임없이 주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산만한 주위를 정돈하고, 되도록 정신을 집중하는 고된 작업을 수 차례 반복하면서 우린 그렇게 우리 자신을 알아간다. 나름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던 저자가 모든 것을 놓아 버린 채 산티아고를 향해 걷기 시작하는 그 순간 역사는 시작되었다. 그의 그러한 결단이 아니었더라면 우린 파울로 코엘료라는 탁월한 작가와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이 그를 떠나게 만들었던 것일까? 1492년 기독교 평신도회에서 창설한 ‘람’이라는 단체로부터 마스터가 되기 위한 서품식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하고 있었다. 모든 의식이 끝나고 검만 받으면 되는 그 순간 돌연 의식은 중단되었다. 이제는 마법사로서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하던 때에 찾아온 절망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검을 찾기 위한 순례자가 되었고, 그런 그의 머리 속에 오로지 검 생각만이 가득했던 건 당연했다.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템플 기사단과의 만남 등 이 책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가득했다. 람이라는 단체, 마스터가 보여준 기적, 순례길을 안내하는 페트루스의 존재 등 애초부터 이야기는 이성적인 차원에서 설명될 수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정마다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훈련들을 접하며, 나는 내 영혼조차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는 씁쓸한 현실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인공이 자기 안의 두려움과 대면하고, 더 나아가 이를 극복함으로써 검에 한 걸음씩 다가갈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부단한 노력을 반복하다 보면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두려움의 존재에 눈을 뜨게 되고 인생의 의미에 수긍하는 내 자신과 만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목적지를 묻지 않는다. 왜 그 곳에 가야 하는지도 알지 못하는 어린 아이도 그저 세차게 달릴 것을 요구 받는다. 중, 고등학교 시절을 그렇게 견디었고 대학을 그렇게 진학했으며 사회 생활 역시 그렇게 시작했을 것이다. 어쩌면 결혼이나 아이 양육 역시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전투적인 자세를 나를 돋보이게 하는 경쟁력이라 믿으며, 이를 잃지 않기 위해 매몰차게 자신을 향해 채찍질을 가하는 사람들, 하지만 아픈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주인공이 소유에 집착해 검으로 무엇을 할지 생각지 못한 것처럼 가리비껍데기를 손에 쥔 채 끊임없이 달리고만 있는, 우리 모두는 순례자이며 인생이라는 순례를 지금 하고 있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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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종종 '책 속에 책'을 발견하곤 하는데, 보통 이런 책들은 인용 글을 통해 언급되곤 한다. 예전부터 무언가를 모으는 것에 취미를 가지고 있어 이런 책들도 여기저기에 모아두곤 했는데, 이번에 그렇게 모아둔 책 중 한 권을 뽑아 드디어 읽게 되었다.
이번에 읽게 된 <순례자>는 파울로 코엘료가 집필한 첫 책이자 그의 경험담을 담고 있는 책으로, 저자의 솔직한 내면과 그의 영적 탐색 과정은 물론 순례길을 걸으며 삶의 이치를 깨달은 순간들을 담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특별한 목적 없이 그저 바라기만 하는 삶을 살았던 그는 최종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의 여정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온갖 고난의 경험을 하게 되면서 마침내 '산티아고의 길'의 끝에 다다른 순간 삶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세상의 신비를 발견하고 자신이 사람들의 우위에 있음을 증명받고 싶어 시작한 길이었다. 그러나 곁에서 자신을 다독여주고, 끊임없이 올바른 길로 안내하는 안내자 페트루스와 함께 하면서 삶의 진정한 의미와 깨달음을 얻게 된다.
파울로 코엘료는 자신의 삶을 바꿔준 산티아고 길을 순례 20주년을 맞아 아내와 함께 다시 한번 걷는다. 무지하고 무모했던 스무 해 전 그날을 떠올리며. 그리고 그런 자신을 이끌어준 안내자 페트루스에게 감사하며.
어쩌면 우리가 찾고 있는 특별하고 행복한 삶은 아주 가까이에 있는지도 모른다. 미처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잘못된 오해로 무의식중에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리석었던 자신을 반성하는 것은 물론 순례길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꿈을 찾을 수 있었던 파울료 코엘료의 <순례자>를 지금부터 만나보자!
파울로 코엘료가 자신만의 검을 찾기 위해 떠난 여정에서 그가 찾던 '검'은 무엇이고, 또 그가 마지막에 깨달은 진리는 무엇인지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놓지 말기를 바란다!
저자인 파울로 코엘료는 기독교 단체 중 하나인 '람'에 소속되어 있는 일원으로, '람'은 1492년 기독교 평신도회에서 창설한 오래된 단체다.
모든 수련을 마치고 마침내 람의 마스터로 승격되는 서품식을 앞두고 저자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데, 마스터가 되는 순간 자신은 더 이상 무엇도 숨길 필요가 없는 마법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의 의식에서 자격 미달로 '새 검'을 하사받지 못하면서 마스터가 되지 못한다. 대신 검을 찾기 위한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게 된다.
----- 16페이지 中
가장 중요한 천상 서품식의 날. 새 검을 받지 못하게 된 그는 무방비 상태에서 무력하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마스터는 그의 손가락을 짓밟는 폭력으로 다시 증오로 가득한 세속의 땅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그가 새 검을 하사받지 못한 이후로 벌써 일곱 달이 지났다. 만사를 제쳐두고 순례에 나서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도 그의 머릿속은 온통 브라질에 남겨두고 온 일에 대한 걱정으로 꽉 차 있지만,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프랑스 남부의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시작해 스페인 북부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끝나는 '산티아고의 길'로의 여정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안내자 페트루스가 함께 하게 되는데, 다른 순례자들과는 다른 행보다.
기독교에는 기독교 탄생 이후 천년 동안 세 개의 신성한 순례길이 존재한다.
첫 번째 길은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의 무덤으로 가는 길로, 이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로마의 방랑자'라고 불렸다.
두 번째 길은 예루살렘의 예수의 성묘로 향하는 길로, 이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수상가'라고 불렸다.
마지막 세 번째 길은 이베리아반도에 묻힌 사도 야고보의 성 유골에 이르는 길로,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에게는 '순례자'라는 이름이 주어졌고, 가리비 껍데기를 상징으로 선택했다.
그는 세 번째 길로 떠나게 된다.
페트루스를 만나기 위해 우선 그는 프랑스의 생장피에드포르로 가서 사맹 부인을 만나 복종에 대한 맹세와 안내자를 만나는 방법을 전해 듣는다.
그들은 자신을 도울 사람들과 접선 시 고대 언어를 주고받는 것으로 서로를 확인했는데, 고대의 언어는 예전에 성전에 속했거나 지금 속해 있는 단원들끼리 서로 알아볼 수 있는 암호와 같은 것이었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약 사십분을 걷자 오래된 우물이 나타난다. 그곳에서 검은 머리칼에 집시처럼 보이는 쉰 살 가량의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자신을 '파울로'라고 소개하며 원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
이에 저자는 검을 찾으러 왔다고 말하는데, 이에 파울로는 원하면 대신 찾아줄 수도 있다면서 대신 당장 결정하라 말한다. 이에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그때 갑자기 뒤에서 아주 투박한 억양의 스페인어로 말하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는 "산이 높다는 걸 알기 위해 산에 올라가는 건 아닙니다"라는 암호를 말하는데, 저자는 순간 아차 싶은 생각이 든다. 성급한 마음에 가장 기본적인 보호의 규칙조차 잊어버린 채 처음 만난 낯선 이에게 선뜻 자신을 내맡겼기 때문이다.
갑자기 나타난 그 남자는 카키색 버뮤다팬츠와 땀에 젖은 흰 셔츠를 입은 마흔 살 가량의 남자였는데, 집시와 몇 분간 시선을 마주한다. 그러다 마침내 집시가 그 자리를 떠나게 되면서 남자는 '페트루스'라며 자신을 소개한다. 그리고 이내 다음에는 조심하라는 말도 덧붙인다.
그렇게 둘은 안내자와 순례자로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의 여정에 들어서게 된다
앞서 만난 집시 '파울로'는 악마로, 사실 저자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방해하는 요소이며 추후 순례길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강가에서 고무공을 가지고 놀고 있는 사내아이로 나타나 유혹하기도 하고, 개로 나타나기도 하며, 폭포로 나타나 끊임없이 저자를 시험하고 유혹한다.
이는 저자에게만 해당되는 개인 악마로, 전형적인 세 가지 방식으로 저자를 유혹하는데 협박과 약속, 그리고 저자의 약한 면을 건드리는 것으로 괴롭힌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저자는 점차 기시감을 느끼게 되고 이로 인해 때로 저항감을 느끼기도 한다.
초반만 하더라도 저자는 검을 찾기만 하면 비로소 마스터처럼 위대한 것들을 행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악마의 유혹에 쉽게 걸려든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쟁취하면 된다는 생각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페트루스는 그에게 마스터가 검을 건네주기를 거부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주지만,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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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페트루스는 여행하는 동안 람의 의례로 알려진 몇 가지 훈련과 의식을 가르쳐 줄 것이라고 말한다. 아직은 미처 깨닫지 못한 지혜를 얻기 위해 그는 그렇게 안내자를 따라 순례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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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그 길은 아가페를 포함해야 합니다. 41페이지 中
순례길을 걸으며 어느새 페트루스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씩 풀어놓기 시작했는데, 자신은 이탈리아인이며 산업 디자이너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안내하면서 람의 의례들을 가르치기 위해 이곳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안내자를 통해 시작된 고난이자 배움의 시작은 똑같은 장소를 각각 다른 길들로 네댓 번씩 걷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는데, 그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에 대해 안내자인 페트루스는 검을 찾는 일에 집착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걸 잊어버린 거라며 길을 따라 움직이는 과정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걸 깨닫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오직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욕망만이 앞섰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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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하며 저자에게 필요한 가르침을 길을 걸으며 하나하나 짚어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페트루스는 종종 검을 찾는 이유에 대해 그에게 묻곤 했는데, 이를 통해 페트루스가 전하는 깨달음과 그의 생각의 변화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생각의 변화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검이 자신에게 성전의 권능과 지혜를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에 안내자는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당신의 검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람의 의례와 자신의 직관을 결합하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람의 의례는 성전의 쓸모없는 지혜처럼 되어버린다면서 아는 것을 행동으로 실행해야 함을 강조한다.
----- 230페이지 中
그리고 자신의 결정이 제대로 된 판단이지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말한다.
페트루스는 지속적으로 그에게 묻고 확인하면서 그가 탐욕과 오만, 미혹에 빠질 때마다 당신은 평범한 순례자일 뿐이며,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아직 무언가 부족하다고 이야기한다.
여정은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지속되었으며, 그 속에는 겉으로 보이는 고난과 내면을 가꾸는 람의 의례가 함께 있었다. 안내자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지침 때문에 때론 이해가 안 되는 일도 서슴없이 해야 했는데, 후에 이것 또한 훈련과정 중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람의 의례는 대부분 홀로 자신의 내면과 소통하는 방식이었는데, 호흡과 자세, 춤 등을 활용해 내면에 자리한 무의식의 자아와 대화를 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순례길의 끝에 이르러서야 그는 이런 훈련들이 얼마나 큰 효과를 발휘했는지 마침내 알게 되는데, '잔인성 훈련'은 내 마음이 얼마나 나를 저버릴 수 있는지, 또 나 스스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을 하게 하는지, 그 밖에도 나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감정에 빠져들게 하는지를 깨닫게 해줬다.
또 '산 채로 매장당하는 훈련'을 하고 난 이후에는 사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던 나 자신에 대한 깊은 후회를 하게 되었는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충만한 삶을 즐기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람의 첫 번째 의례
■람의 두 번째 의례
■람의 세 번째 의례
■람의 네 번째 의례
■람의 다섯 번째 의례
■람의 여섯 번째 의례
■람의 일곱 번째 의례
■람의 여덟 번째 의례
■람의 아홉 번째 의례
■람의 열 번째 의례
■람의 열한 번째 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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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로 언제나 사람들은 성지 순례가 계시에 이르는 가장 객관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여겼던 것이지요.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조금씩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가고, 구하는 자에게 삶이 관대하게 베풀어주는 수많은 축복을 답례로 받아들이면서 말이죠." (...) 51페이지 中
성지 순례를 통해 사람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여행을 통해 얻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익숙해서 놓치고 있는 사소한 즐거움과 작은 호의에 대한 감사 등.
우리는 사실 알고 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하지만 익숙해지면서 그 모든 행위들을 그저 멈추고 있다는 사실을.
52페이지 中
페트루스는 지속적으로 유혹에 이끌려 결과만을 좇는 저자에게 지속적으로 말한다. 스스로 행해야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페트루스 자신도 이곳에 있는 것이며 지금 여기 있는 것에 깊이 만족하고 있다고 말한다.
54페이지 中
초반에 앎과 지혜에 대해 저자는 상당히 오만했다. 자신이 무엇을 좇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대단한 사람이 되기만을 바랐으며 스스로에게 도취되어 왜 자신이 순례길을 걸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의심에 의심을 거듭했다.
그것을 꿰뚫고 있던 페트루스는 그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어쩌면 우리도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에 도취되어 망각하며 살고 있진 않은지 생각해 볼 때다.
67페이지 中
어쩌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단단한 세속의 껍질 때문에 진정한 모습이 드러나고 있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세상의 기준에 맞춰 썼던 가면을 부숴보자. 그리고 내 안에 감추고 있던 진정한 삶을 들여다보자. 거기 진짜 내가 바라던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선한 싸움은 우리가 간직한 꿈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용기백배하지만 그땐 아직 싸우는 방법을 알지 못했고, 마침내 그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을 때는, 전장에 뛰어들 용기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적대시하게 되고, 결국엔 스스로 자신의 가장 큰 적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
꿈들이 죽어가는 두 번째 징후는,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확신입니다. 아주 적은 것만 기대하는 삶 속에 안주하면서 말이죠. 이때는 오직 '선한 싸움'을 치르고 있다는 것만이 중요하지요.
마지막으로, 세 번째 징후는 평화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대단한 무엇을 요구하지도,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구하지도 않게 됩니다. 즉 '선한 싸움'을 벌이기를 포기한 것이죠. 77~79페이지 中
'선한 싸움'이 현대에서는 내면으로 옮겨오면서 정신적, 심리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워진듯하다. 선한 싸움은 우리가 간직한 꿈으로 행해지는데, 정작 싸울 준비가 되었을 때는 용기가 없어 포기하게 되면서 스스로 자신의 큰 적이 된다는 사실은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공감이 가는 문장이다.
이에 대해 우리가 흔히 하는 핑곗거리는 그 징후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거나, 아주 적은 것만 기대하며 스스로에 대해 지나치게 확신을 가지고 있거나, 아예 아무것도 벌이지 않는 상태, 즉 포기 상태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현대사회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의 꿈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곧 실패하는 것, 용기를 가지는 것, 그리고 그 외의 징후들에 대해 관대해지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단호하게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주위의 모든 것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모든 것 속에서 당신이 '선한 싸움'을 이끌어 승리하고자 하는 의지가 나타나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과 모든 것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오만한 전사가 되고 말 것이고, 그 오만함은 결국 우리 자신을 파괴하고 말 것입니다. 너무나 자신만만한 나머지 전쟁터에 함정들을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97페이지 中
이 문장을 달리 풀어서 말하면,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으며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을듯하다. 여기에 더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 무언가를 쟁취하고자 하는 의지는 필수이며, 주위의 모든 것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홀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것은 오만이며,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상황에 도래하게 될 것이라며, 서로 필요한 것을 나누고 이루어 나가는 것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문장으로 보인다. 어쩌면 지금과 같이 힘든 시기에 가장 필요한 문장이 아닐까 싶다.
123페이지 中
어쩌면 우리는 너무 일찍 포기를 선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삶은 나에게 많은 것들 주려고 하는데 정작 그것을 받을 사람은 아무것도 받으려 하지 않는다.
어쩌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부정적 관점을 가지고 있어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문장이다. 조금만 관점을 달리해보자. 바라기만 한다면 세상은 무궁무진한 보물들로 가득 차 있으며 그것을 온전히 내 것으로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놓친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자신이 느끼는 권태와 패배를 세상의 탓으로 돌려버리죠. 모든 것에 정당함을 부여하는 이 매혹적인 힘, 즉 열정의 형태로 현현하는 아가페를 빠져나가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임을 잊은 채 말이죠." 158~159페이지 中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도중에 겪게 되는 사소하지만 작은 실패에 열정까지 잃어버리지는 말자. 그 실패는 삶에서 아주 작고 미약하다. 그것으로 인해 삶의 전부를 놓치는 어리석은 실수는 부디 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만약 권태와 패배를 겪으며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다면 내면의 열정이 빠져나간 것은 아닌지 살펴보자. 그리고 다시금 꽉 붙잡고 놓치지 말자.
174페이지 中
무언가를 이루고자 한다면 어떤 일이라도 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반드시 기억하자. 공격이나 도망을 비겁하거나 폭력적인 행위로만 간주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 또한 무언가를 하는 '행위'임을 잊지 말자.
207페이지 中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문장 중 하나다. 앎과 지혜를 알고만 있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을 실제로 적용하고 실천할 때야말로 진짜 의미 있는 일임을 기억하자!
208~209페이지 中
안내자와 순례자로써 함께 한 이들의 여정에서 가르친다는 것과 배운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가능성을 보여주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211페이지 中
망설이느라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던 문장이다. 일단 결심한다면 고민하던 것들은 생각보다 쉽게 풀릴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256페이지 中
귀 기울여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자.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삶의 매 순간 아낌없는 조언을 건네고 있을 것이다.
274페이지 中 -----
다시 한번 스스로를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자신이 지혜롭다고 철석같이 믿고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대체로 그런 상황에 처해있을 경우 해야 하는 행동에 있어 반대로 행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참고하자.
1. 누군가를 가르칠 때 비로소 배울 수 있다는 것!
----- 278~279페이지 中
보통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주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얻기보다 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이 순례길에 오른 안내자 페트루스는 이 여행이 끝나갈 때쯤 비로소 가르침을 통해 스스로 배울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직접 '경험'하고 직접 '체험'하며 겪어내는 모든 것들이 결국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의미이며 이 길을 안내하는 일을 통해 스스로 더 강인해지고 성장할 수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페트루스의 안내자 역할은 또다시 저자에게도 반복적으로 일어날 것이며, 그 길에서 저자는 또 다른 배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것도 짐작해 볼 수 있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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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저 자신과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 하지만 받아들이기가 너무도 어려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 이 먼 길을 걸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이 힘을 지닐 수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마침내 실현되려는 꿈을 그냥 놓아버립니다. 그들은 자신의 행복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선한 싸움'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세상의 것들에 갇혀 있는 포로들입니다. 무엇을 할지도 모른 채 검을 찾기만을 바랐던 저 자신처럼...." 321~322페이지 中
사람들은 행복해지기를 염원하지만, 실상은 가지고 있는 행복을 거부하며 걷어차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행복해지는 것은 죄가 아니며, 누구나 귀를 기울이면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
더불어 행복은 지극히 개인에 속하는 일이기에 이것은 타인에게 얻을 수 없으며, 행복이라는 원형 또한 없음을 기억하자.
내가 원하는 진정한 행복은 내 안에 이미 있다!
처음에 저자가 검을 찾고자 했던 이유는 검이 성전의 권능과 지혜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은 하나의 결과일 뿐이었다. 순례길의 여정을 이어나가며 그것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보다는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함을 깨닫게 되면서 저자는 그 검을 실제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함을 알게 된다.
이를 통해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검의 비밀은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검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찾는 것이었다.
----- 311페이지 中
지금 당신이 만약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면, 그 욕망에 대한 확실한 목적성을 부여하라! 단순히 욕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에 그친다면 그것의 의미는 퇴색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욕망하는 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욕망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그러면서 수행 중에 자신이 가지지 못했던 가장 핵심이자 마지막 관문에서 통과하지 못해 순례길을 걸어야만 했던 목적을 제대로 파악하게 된다.
그것은 나는 나 자신의 주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 그리고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세상과 대화하는 법을 배우게 되면서 초반에 의구심을 가졌던 페트루스의 말들이 옳았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스스로를 가르치면서 저자는 그토록 되고자 했던 마스터로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다.
저자는 페트루스를 만난 후로 자신 안의 많은 것이 변했음을 느낀다. 브라질에 대한 향수와 그곳에 두고 온 일에 관한 걱정은 뇌리에서 거의 잊혔으며 매일 밤 점점 더 자신의 목표가 더 선명해짐을 느낀다.
페트루스는 그와 함께 하는 동안 매일같이 산티아고의 길이 모든 이의 것, 평범한 사람들의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은 그를 적잖이 실망시켰는데, 자신은 순례를 통해 소수의 선택된 자들 가운데서도 으뜸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고, 특별한 묘약이나 천국 문을 열어주는 의식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부 사실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트루스의 말은 그와 정반대였으며, 선택된 자들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라고 묻는 대신 마음속의 열정을 깨워줄 무언가를 실행하겠다고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국문의 열쇠는 열정을 쏟아 행하는 그 일 속에 있으며, 삶이 기적임을 믿으려는 의지가 기적을 낳는 것임을 말하고 있었다.
깨달음을 얻은 저자는 남은 삶의 단 하루라도 비겁하게 살지 않을 것을 결심하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훗날로 미루는 것은 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더불어 살아가면서 치러내야 할 싸움들을 피하지도 않을 것이며 어떤 순간에도 행하는 아주 작은 몸짓 하나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임을, 후회라는 죄악을 하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다짐한다.
이 책에서는 이후 저자의 행방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는데, 안정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자신의 진짜 꿈을 좇아 스스로를 바꿔나가기로 결심한 그는 그동안 용기를 내지 못했던 꿈인 작가가 되는 것에 도전한다. 그리고 마침내 처음으로 이 책을 쓰는 것으로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처음에 저자는 아마 세상의 신비를 발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통해 세상에는 신비란 없다는 것을 일깨우게 되면서 오히려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행복을 찾아 떠나게 된다.
만약 지금 행복을 바라거나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다면,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길>을 통해 잠재된 행복을 찾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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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길에선 순례자의 자기성찰의 과정을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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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사를 읽으며 생각했다. 이것조차 소설의 일부일까. 아니면 정말 진실함이 묻어난 헌사일 뿐일까. 책의 첫장은 보통 "...에게 바칩니다"라고 간략히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파울로 코엘료는 헌사를 한 장 반이나 작성했다. 왜 그랬을까. 무엇 때문에 구구절절하게 적어야 했을까. 헌사를 보면 십 년 전, 영적 탐색을 목적으로 한 순례의 길에 대한 후회가 담겨져 있다. "시간 낭비"라는 단어를 써 가면서. 람이라는 단체를 떠날 생각까지 했던 그에게 마스터는 순례의 길을 추천했는데, 그 길에서 페트루스를 만났다. 그리고 처음의 후회와는 달리 그 깨달음의 의미를 알게 되고 쓴 책이 출판되었을때 페트루스는 연락을 거절했다.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그저 세월의 힘에 못이겨 연락이 끊긴 것인지는 정확치 않으나 저자는 이 책을 그에게 바친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가 장장 한장반이나 되는 페이지 속에 설명되어져 있다. 그래서 이 헌사가 진짜인지 아닌지 헷갈린다고 말하는 것이다. 순례자의 길은 고난와 가난이 함께 하는 길이다. 알고자 떠나는 길이 아니라 깨닫고자 떠나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처음엔 그 차이를 알지 못했다. 그저 칼을 찾기 위한 목적성 여행을 떠났으며 그것으로 인해 여행길이 내내 짜증스러웠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당신은 죽을 때까지 아주 사소한 결정 하나라도 당신 인생에 관해 다른 사람이 결정하도록 용납할 사람이 아니에요."라는 아내의 말을 빌어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고집스러운 사람인지 우리는 알 수 있다. "로마의 방랑자"라고 불리는 성 베드로의 무덤으로 가는 길, "수상가"라고 불리는 예수의 성묘로 향하는 길, "순례자"라고 불리는 사도 야고보의 성 유골에 이르는 길. 이 세가지 순례길 중에 그는 순례자의 길을 택했다. 그 길을 걷는 동안 그의 머릿속은 온통 검에 대한 생각뿐이었고 그 본질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었다. 검은 하나의 결과일 뿐인데, 그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여행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 길에서 깨달음을 발견해냈다. 순례자의 길이 그를 변화시킨 것이다. 기적에 가까운 깨달음은 아니었지만 그는 이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의 삶은 같아 보이면서도 결코 같지 않아졌다. 이것은 진실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