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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시간에 식탁에 앉는 식구들은 누구인가? 밥먹으라는 소리를 들은 자. 배가 고팠던자. 식탁이 차려 지는것을 본자, 그때 쯤이이면 식사 시간이라는것을 미리 알았던 자들이다. 나는 형제 자매가 아주 많은 집안에서 자랐다. 밥먹을 시간이 되면 식탁에 둘러 앉는 머리수가 많은 그런 집.... 20년 가까이 사귄 사람이 있는데 한번도 대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 관계라면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거나, 일방적인 사랑이거나 잘못된 만남이 분명하다. 하지만 하나님과 나 사이는 일방적인 사랑도 아니요 잘못된 만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며 커피 한 잔 마시지 못했다.
주거니 받거니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시간 을 20년간이나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심 좋은 사람들이 종종 하나님이 자기에게 무슨 말을 해주었다는 말을 들으면 이런 말을 떠 올리며 스스로를 위로 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말하는것은 기도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정신분열]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쪽이 정상이 아니라 듣지 못하는쪽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속 편하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20년의 세월은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확실히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 척 스스로를 속이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의 이름을 부르듯이 나의 이름을 불러 주지도 않았고, 기드온에게 나타나셨듯이 양털을 물로 만들어 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들어 주시지도 않으셨으며. 모세에게 하신것 처럼 " 네 발의 신을 벗으라"는 신발가게 아저씨 같은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다소 섭섭한 심정으로 울화가 치밀듯이 하나님이 왜 내게 음성을 들려 주지 않으셨나 파 헤쳐 보겠다는 각오로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을 다 읽은 후 나의 마음은 바뀌었다. 이제 하나님이 음성 보다 다른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내가 지금껏 궁금하게 여겼던 것은 하나님이 직접 말씀 하시는 구체적인 음성이었다.
예를 들자면 하나님이 배한성의 목소리로 이야기 하시나 천둥 번개 같은 우뢰의 소리로 이야기 하시나 한국말로 하시나 만국 공통어인 영어로 이야기 하시나 이런것에 흥미와 관심을 가져왔다는 것을 깨닫은 것이다. 마치 속임수가 분명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쇼를 보는 것처럼, 마술사의 트릭을 파헤치려는 의도로 하나님의 음성의 실체를 알아 내겠다는 나의 어리석은 의도를 깨닫고 낯이 뜨거워 졌다. 이제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보다는 들으려는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우리 집 밥상으로 돌아가서... 밥을 먹지 못한 식구는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다. 꼭 누군가가 아니라 그때 당시의 환경으로 인해.... 아주 어려서 우유를 먹어야 하는 동생과 티브이 앞에 앉아 정신을 다른곳에 팔고 있거나 자기일에 바빠 먹으라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거나 아예 밥에는 관심이 없는 식구들에게 식탁은 거두어 졌던 것을 기억한다. 한 가정의 소박한 식탁에서 조차 밥을 먹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밥상에 앉을 때 무슨 음식이 차려졌나 기대하는 심정으로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식탁에 앉을때 반찬과 밥만이 존재하는 밥상이 아니라 영양과 정성이 깃든 거룩한 식탁이 되는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그동안 어떤 자세로 하나님께 다가 갔으며 어떤 기대를가지고 하나님을 떠 올렸는가 되돌아 보게 되었다.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사람들은 다양 했다. 그러나 그들은 "들을 귀 있는 자들" 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너무나 인자하게 하나님의 음성과 함께 하는 삶의 공식을 들려 주기도 한다. 기초단계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단계를 세세히 다루고 있다. 볼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은 읽어 보시길....*^^*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며 모든 책은 끝까지 인내를 가지고 읽어야 한다는 진리를 또 한번 깨달았다.
마지막장이 진국이었기에~~~ 우리가 비록 현실이라는 가시적 세상을 살고 있지만 실재 자체는 아니라는데 '인생을 걸어야 함'을 강조 하며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며 인간의 생각과 마음과 모든 인격적 실체가 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재확인 하였으며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 하신 이유는 그가 "보이지 아니하는 것을 보는 것 같이 참을" 줄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확신이 들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보이지 않음에도 그가 계심을 믿고 들으려는 자세를 가지고 우리의 오감을 열어 그분과 대화하기를 원하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든 말씀해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믿는 사람들은 혹 그동안 누군가로 부터 그분이 침묵하신다는 사실에 세뇌 당하지는 않았는지, 말씀하지 않는 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 온것은 아니었는지 귀를 막고 멍청히 앉아서 찬양하고 손뼉치는 예배드리는 로봇은 아니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지면 좋을것 같다.
은밀한 중에 계신 내 아버지를 보지 않고 믿으며 내 마음속에 이야기 하여 주시는 분이 바로 주님임을 확신 할 수 있게 되기를 .......책안에 있는 맛보기 구절들.....[영적인 사람이란 일정한 영적 행위를 하는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하나님과의 대화적 관계에서 길어 올리는자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은 성령님께 자신을 열어 드리기 위함이다. 약을 먹거나 계획에 따라 운동하듯이 성경을 읽는 사람의 상당수가 영적인 진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입증된 사실이다. 1년동안 성경의 모든 단어를 눈앞에 스쳐가게 하는 것 보다 딱 열구절만 내 삶의 본질로 바꾸는 편이 훨씬 낫다.]
하나님은 책을 통해 단순히 하나님이 음성을 듣는 것 보다 무엇을 말씀 하셨는가를 기억하기 바라시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은 음성 듣기를 간절히 원했던 나에게 이런 책을 통해 상세하게 구체적으로 응답해 주시는 분임을 알게 되었다. [인상깊은구절] 영적인 사람이란 일정한 영적 행위를 하는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하나님과의 대화적 관계에서 길어 올리는자다. 우리의 성숙의 절정은 항상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설사 하나님의 말씀이 한마디도 들려오지 않는다해도 주어진 시간과 장소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안에 설 수 있을 만큼 그분의 손길 아래서 훈련되는것. |
| 달라스 윌라드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모략'이라는 책에서였다. 그 때 느낀 감동은 책 읽기를 통한 치유를 주었다. 삶의 어려움속에 예수님의 8복을 현대적으로 그리고 나에게 전해준 그 글은 정말 내 인생의 화이팅이었다.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성경에보면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고 하는데, 이런 의심을 가질 수 있다. 내가 들을 귀가 없어서 못 드는 것인지, 들을 마음이 없어서 못듣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음성이 없는 것인지. 이 책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지적으로 알려준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때 증명해 보이라고 한다. 이적, 표적을 보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요구를 거절하신다. "그렇게 거절하신 이유는, 아무리 놀라운 기적을 행해도 보는 이들의 개념과 사고 방식이 잘못되어 있어 결국 부질없는 일이 되리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기적이 하나님의 존재를 더 확연하게 나타낼 수는 있어도 믿음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장 자주 되풀이하신 말씀 중 하나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였다. 이 말은 물리적인 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자 하는 마음이다. 즉 하나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들을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순종하며 변화될 준비가 덜 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대화이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의 반응없이 일방적인 말만 한다면 관계가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대화하는 과정을 주께 인도해주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을 목자라고 한다. 하지만 목자들 가운데 성경의 명령과 어긋나게 하는 자들이 많다. 그들은 외관상은 그럴 사 하지만 '내 교회', '내 사역'만을 추구한다. 그래서 모든 것이 자신의 능력으로 되는 줄 착각하고, 종파주의, 교회 외형(건물크기, 헌금액수, 교인 수) 등 만을 강조한다. 중심에서 벗어난 행동이다. 요즘 한국교회도 이러한 경향으로 남의 교회 신도 빼가기처럼 교인의 수평적인 이동만을 보이면서 부흥되었다고 자랑하곤 한다.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인데 그곳에 상업기독교로 교인을 소비자로 바라보고, 교회크기를 기업의 크기처럼 생각하는 세태를 보면 안타까움이 생긴다. 그리고 그 위에 절대적으로 권력을 행하는 재벌총수처럼 군림하는 목사들도 중심을 벗어났다. 교회의 주인을 생각하고, 그들의 목적은 군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선한 관계로 양들을 인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단들도 잘 못된 하나님과의 대화를 가르친다.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도 수 많은 이단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1인 혹은 소수에 의해서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전제로 한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은 그 단체 상부의 말씀에만 동조하고, 지도자의 명령이라면 상식조차 버리는 행위를 해야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소수에게만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오는 것이다. 우리가 훈련이 안되어 있고, 듣고자 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못듣는 것이다. 또 우리가 이렇게 구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날마다 잠깐 동안 하나님 앞에 앉아 묵상하며 가만히 있으라. 그리스도의 내주하심의 진리를 깨닫게 해 달라고 성령께 구하라. 이 비밀의 영광의 풍성한 것이 무엇인지를 기쁜 마음으로 가르쳐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라."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율법주의를 조심해야 한다. 언제나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복을 받는 다는 생각을 가진다는 것은 미신적인 태도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세상적인 인과응보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인과응보로 간다면 인간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를 위해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생각하며 그 말씀에 감사함과 그리고 순종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얼마 전까지 성경을 읽을 때 진리가 무엇인지 찾을려고 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이 무오하고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을 전제로하고, 이젠 순종함으로서 읽을려고 한다. 감사함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이 책은 내게 성경 이라는 것, 신학이라는 것을 지적으로 풀어준 책이었다. 감동보다는 만족이 큰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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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만큼 소중하고 가슴벅찬 경험이 또 있을까? [하나님의 모략]이라는 책으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바 있던 달라스 윌라드는 이 책을 통해 성경적이면서도 균형잡힌 시각으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책은 단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누군가의 단편적인 경험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의 의미와 방법을 폭넓고도 설득력있는 논리로 제시하고 있다.
인격적인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대화하기 원하신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영적 안테나가 하나님을 향해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결코 자기를 자랑하기 위한 영적 악세사리도 아니고 자기의 삶의 무게를 덜기 위한 영적 방편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특정 유형의 더 큰 삶 안에 놓여 있지 않는 한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그것은 곧 자신의 전존재를 하나님의 뜻에 맞추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감으로 그분과 막힘없는 사랑의 교제를 누리는 데 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와 인격적 교제를 사모하는 내적 태도야말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비결이다. 시행착오를 포함한 많은 경험과 모험을 통해서만 누릴 수 있는 이 축복을 외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인생은 없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우리에게 표적이 임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수준에 맞춰 우리를 만나 주시기 때문이다. . .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 표적을 보여 주실 때 그것은 우리가 최종 응답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다. 표적은 우리가 제 길로 들어섰다는 의미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뉴욕 100마일'이라는 표지판을 지나갈 수 있다. 이 표지판은 뉴욕에 도착했다는 뜻이 아니라 제 길로 들어섰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표적 없이도 그분의 인도의 손길을 분별할 수 있는 수준으로 데려가기를 원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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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라드의 책 중 세 번째로 읽은 책이다. 앞서 두 권, <하나님의 모략>, <잊혀진 제자도>와 함께 읽었기에 세 번째라는 의미가 크지는 않다. 그렇지만, 애초에 이 세 권의 책을 집어 든 계기가 바로 이 책 때문이었음은 언급하고 싶다. 신자와 불신자를 떠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말과 문자로 대표되는 언어는 생물 중에 오직 인간만 보유하고 있는 특징이다. 그 언어는 축적되어 지식이 되고,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면서 이러한 지식은 문명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원숭이나 돌고래도 의사소통을 하고, 벌이나 개미가 집단 지성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동물의 의사소통 체계가 인간의 그것처럼 발전하였는지를 되묻고 싶다. 그래서, 인간의 언어는 특별하고, 그 특별한 언어는 하나님을 닮은 것이다. 창세기 1장의 창조의 첫 순간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빛을 창조하셨다. 이처럼, 언어가 하나님과 인간 모두에게 특별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신자들 가운데에는-또는 목회자들 가운데에도-이 것이 하나님께 받은 말씀이라고 확신하며 이야기하거나 설교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문제는, 같은 문제에 대해 전혀 다른 또는 상반되는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하는 두 사람이 나왔을 때 극명해진다. 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걸까? 나는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내가 들은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들을 가지고, 이 책을 열었다. 윌라드의 책은 성경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만큼, 안전하기도 하고, 따라서, 성경에서 제시되는 이외의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후에도 마음이 후련하지는 않다. 이 책으로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답을 얻고자 했던 내가 오히려 반성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가장 근접한 답을 제시한 사람은 파올로 코엘류라고 생각한다. 그의 책 <연금술사>에서 주인공이 결국 자기가 걸어야 할 길을 발견하게 되고, 그 길을 발견하기까지 그 길에 대한 힌트가 여정 곳곳에 있었고, 인생을 살아온 시간 곳곳에 이정표로 자리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생각한다. 공기가 너무 많고 풍부하기에, 우리가 가끔 아니 자주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음성의 흔적들이 너무 많이 있는데, 그것을 도리어 발견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듣기를 갈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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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지적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다는 것은 매우 영적인 듯해 보이지만 이 책의 분위기는 차분하며 변증적이며 정리를 하려고 하는 분위기다. 저자는 책의 초반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반감을 가지는 다수의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그 당위성을 변증한다. 중반 들어서는 하나님의 미세한 음성을 분별하는 것과 그것의 중요성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에 한계성을 두지 않는 것, 그 음성이 오는 다양한 형태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본인은 조이 도우슨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에 비해서 이 책에서 크게 감동을 받지는 않았다. 도우슨의 책은 좀더 실용적이고 신비적인데 비해 본 책은 지적이다. 그러나 세부적이며 정리된 면에서는 달라스 윌라드의 이 책이 좀더 나은 것 같다. |
| 하나님을 만난 체험을 나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곤 한다. 그것은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잘 알고 있는 누군가가 나의 뒤에서 내 전존재를 살며시 안아오는 것과 흡사한 느낌이었다. 나의 전존재가 그것을 지각했지만, 그가‘ 뒤에서’나를 안으셨기 때문에‘만남’이후로 나는 더더욱 그분을 가까이 만나고자 하는 갈망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되었던 것 같다. 더욱 가까운 하나님과의 만남을 추구하면서 항상 중심에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분의 ‘음성’에 관한 것이었다. 성서의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분명 그 분과 대화적 관계에 놓여 있었고, 우리 주님도 분명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요10:27)’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이미 그분의 음성에 대한 체험과 과정 가운데 있는 가운데서도 계속될 만큼 분명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달라스 윌라드의 「하나님의 음성」은 내게 그 분의 음성 앞에 성큼 다가설 수 있게 해 주었다. 저자는 본서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의 전반을 폭넓고도 깊이 있게 다루어 주고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고 마음깊이 동의했던 부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이란, 음성자체를 추구하기 이전에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와 교제 안에 놓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삶의 여정 가운데 우리는 많은 선택을 해야하고, 그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한 부담 가운데 우리는 안전과 성공을 보장받고자 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품게 되는데, 그러한 목적으로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구하는 것은 점장이에게 가서 묻는 것과 크게 다를바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간다는 틀 안에서만 의미가 있다는 말은 매우 중요한 지적인 것 같다. 하나님의 음성이 초신자들보다 신앙적 성숙의 토대가 견실한 사람들에게 잘 들려진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본서는 머리말과 후기를 제외하고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제 8장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실제적인 방법을 제시하지만, 그에 앞서 7장에 걸친 검토작업을 선행하는데 (- 1장 : 그리스도인의 긴장, 2장 하나님과 대화에 관한 오해, 3장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방식, 4장: 하나님이 우리와 대화 하신다는 개념에 대한 반론 검토, 5장: 세미한 음성의 우위성, 6,7장: 성경의 중심성 -) 이 부분이 더더욱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여러가지 동기들에 대한 검토는 우리 자신의 신앙의 상태를 친절하게 점검해 준다. 잠시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바람직한 방법에 대한 성경적 접근과 제시가 더 이상 우리로 하여금 그 자리에 머물러있지 않도록 도움을 주기에 본서의 유익은 더더욱 큰 것 같다. 때문에 실질적 방법의 제시부인 8장만 읽어서는 이 책의 진가를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1:1). 하나님의 존재방식을 우리는 다 알 수 없으나 우리에게 계시된 바로는 그가 다양한 형태 중 <말씀의 형태>로 존재하시기도 하신다는 것이다. 말씀은 기록된 형태 외에도 ‘음성’으로 들려올 수 있다. 출애굽기 19장9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은 음성으로 말씀하시기도 하지만 음성 아닌 다른 것으로도 말씀하시기도 하신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저자는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 음성으로 소통하는 것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을 잊지 않는데, 이것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심과 그 분과의 교제의 풍성함을 <음성>이라는 것에 제한하는 오류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 같다. 8장으로 본서는 끝이 날 수 있음에도 저자는 9장을 구성하여 정리와 당부에 해당하는 점검을 잊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목표로 삼기보다는 그 분과의 사랑의 관계 안에서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며, 그럴 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진실로 그렇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안에 거하는 삶이 청각으로 듣는 그 분의 음성보다 더더욱 확실한 또 다른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 가운데 거하는 성숙한 신앙 안에서 그 분의 뜻을 분별하고 그 음성을 듣는 것만이 전부라고 볼 수는 없는 것 같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삶에 말씀하고 계시며, 하나님 자신과 그 분의 음성이 별개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저자가 본서를 저술 목적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워야하는 것이리라... 하나님의 음성에 관한 책들을 여러 권 읽어보았지만, 본 주제를 이처럼 풍부하고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 책은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내용과 관련된 6∼8개의 질문을 제시하여 읽은 내용에 대해 꼭 되짚어보아야 할 것들을 놓치지 않도록 배려한 부분도 본서의 탁월한 점이라 생각된다. 함께 읽고 제시된 질문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나누어 보는 것도 매우 유익할 것 같다. 또한 각 장마다 저자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해 주는 적절한 주가 인용되어 있는데, 그 근거들이 너무 귀한 내용들이라 책을 읽는 내내 책 뒤에 편집되어 있는 주主를 들추며, 이것이 어느 책에서 인용된 것인지 확인하고자 했다. 좋은 책은 역시 좋은 저자와 좋은 근거자료에서 나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에 소개된 책들 중 한국어판으로 번역되어 있는 책에 대한 소개가 좀더 상세했으면 하는 바램이 없지 않다. 윤종석님의 번역도 원본의 의미를 전달해주는데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좋은 책을 번역 소개해주신 IVP와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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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여러가지 방법들, 혹은 하나님의 음성을 구분하는 분별력들에 대해 기록해놨어요. 사람과 사람과의 사귐에도 많은 노력과 대화가 있어야 하듯, 더욱이 인간과 다르신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 연구와 시행착오들이 속에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리라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달라스 윌라드의 <하나님의 음성>과 김영봉의 <사귐의 기도>를 추천하고 싶어요. |
|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이상하게 생각한다.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보편적인 하나님의 음성 듣는데 유의점을 소상하고 세밀하게 일러 준다. 궁금한 내용은 책을 읽는 동안 풀어지겠지만 근복적인 질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근본 목적이 무엇인가?" 항상 자신을 질문에 분명한 대답을 가져야 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이름으로 위협하고 공포에 빠지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정직함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정직한자와 대화하시니까 우선 하나님의 음성듣기 전에 우리가 갖추어야 할 것은 정직이다.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미명아래 저질른 우리의 죄악을 용서 해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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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말해, 항상 하나님께 나아가 구체적 지침을 구하기보다는 언제라도 들을 수 있는 조용한 내면의 공간을 가꾸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1. 요약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이 가능한가? 무슨 ‘믿음 없는’ 소리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공개적으로는 아니라도 마음 한 편에 늘 품고 있는 질문이 아닐까? 왜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들렸던 하나님의 그 음성이 나에게는 들리지 않는 걸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은 그런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기 위해 쓰였다.
저자는 우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역설한다. 저자는 말한다. “개인적인 대화 없이 어떻게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인격적 동행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래도 질문은 남는다. 하나님과의 대화가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왜 나는 듣지 못하는가? 나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는 걸까?
보통 이런 질문이 나오면, 이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각 방법의 장단점을 서술하는 내용이 나올 차례지만, 달라스 윌라드는 그런 식으로 내용을 진행시키지 않는다. 도리어 처음에 말했던 주제,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가 하는 주제를 좀 더 심화시킨다.
하나님은 우리를 혼자 놓아두지 않으시며(사실 그것이 당연하다.), 온 우주가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 존재하고 있다.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와 구원은 오직 그 분의 말씀을 통해 이루어진다. 저자는 이런 식의 설명방식을 택함으로써, 독자에게 자신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대화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그렇다면 달라스 윌라드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저자가 중점적으로 말하고 있는 ‘방법’은, 마음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저자는 다른 방식들과 함께 이 방법을 잘 분별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오해를 하면 안 된다. 저자는 우리에게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마치 로봇처럼 어떤 명령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삶을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다. 사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라는 개념에서 이런 식의 기계적 삶의 방식을 이끌어내는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방법 대신 원리를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오류를 극복하고자 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음성을 듣는 삶’에는 보다 풍성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 저자가 말하려는 핵심 가운데 하나이다.
2. 감상
책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단지 저자의 이름만 보고 빼어 든 책이다. 얼마 전 읽었던 ‘마음의 혁신’의 내용이 너무나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마음의 혁신’보다 몇 년 앞서 출판된 책이었는데, 긴 호흡의 문장들, 개념에 대한 깊은 설명, 목표를 설정해두고 그 지점을 향해 큰 흔들림 없이 차분하게 접근해가는 방식 등, 저자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이라는 개념 안에 담긴 풍성한 의미들에 대한 깊은 묵상 끝에 나온 고찰들이다. 단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에 관해서 ‘알아내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음성 안에 살 때만 경험할 수 있는 놀라운 변화와 관련된 설명은, 전에 이 주제와 관련해서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구체적인 방법을 기대하며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면, 때로 이 책은 지루하게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아예 그런 ‘방법론’에 관한 설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방법에 대한 설명은 책 전체 내용 중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 목적이라면 1장과 2장, 5장과 8장을 중심으로 읽어보기 바란다. 가능하다면 9장까지 함께 읽는다면 더 좋을 것이다.
멋진 글이다. 다만 지나치게 잦은 만연체의 문장들은 개념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하는 데는 유리할지 모르지만, 독자에게 읽기 힘든 책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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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큐티라는 말이 교회 전반에 걸쳐 유포되면서 가장 핵심으로 떠오른 말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었다. 대부분 묵상과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서 다룬 책들에 공통적인 것은 경건주의적인 개인의 열심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달라스 윌라드의 "하나님의 음성" 단연 돋보이는 책이었다. 이 책 가운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열심"이라기 보다는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탁월함"이다. 물론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심이 적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의 열심은 그의 탁월함 때문에 더욱 빛나게 된다.
아마도 윌라드의 전저작 "하나님의 모략"을 의식해서인지 제목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번역되었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먼저 인간이 하나님의 음성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대전제 위에서 시작한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성도로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그 무엇임을 밝힌다. 그에 의하면 음성을 듣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과 지속되는 사랑의 관계이다. 즉 훌륭한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 보다 더 나아가서 사랑의 관계를 유지해 가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다는 것을 개인의 경건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부름 받은 사람의 전체적인 삶의 관점에서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음성을 들려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길을 알려주시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성품을 개발"하기 위해서 음성을 들려주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성경을 통해 제시한다. 그러나 그는 독자들에게 단순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보다 그분과의 사랑의 관계 안에서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을 기본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더불어 존재한다는 방식이요 하나님과 인격과 삶을 공유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적음 분량이지만 책은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경건 서적류와는 조금 다르다는 점을 여기서도 알게 된다. 하지만 인내하며 읽어내려가다 보면 윌라드의 탁월함과 아울러 우리와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마음과 또 그와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개인 경건과 묵상에 관한 한 분명 획을 그어줄 수 있는 귀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장려하는 일은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물론 그렇다. 모험은 비극으로 끝날 수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깊은 물에 뛰어든다는 것을 안다. 이 문제는 반드시 다뤄져야 한다. 그러나 죽음과 비극은 얕은 물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찾아올 수 있다. 그 사실을 심각하게 경고한뒤 우리가 목회적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음성과 그것이 자신의 삶 속에서 들려우는 방식을 이해하도록 사람들을 지도하는 일이다. 처음부터 너무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는 일이 자신의 개인적 체험과 실험을 통해 배워야 하는 일임을 사람들에게 분명히 깨우쳐 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