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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의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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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의 뇌에 대한 인식 >저자는 자신의 아들인 맥스의(5살) 이야기를 들려준다. 맥스가 하는 말에 따르자면 잠이 들려면 뇌를 써야 하지만 꿈을 꾸는 것은 뇌가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슬픔을 느끼는 것도, 동생을 사랑하는 것도 뇌가 하는 일이 아니었다. 맥스는 뇌가 도움을 주기는 할지언정,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말했다.이는 아이들이 뇌를 어떻게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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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의 뇌에 대한 인식 >
저자는 자신의 아들인 맥스의(5살) 이야기를 들려준다. 맥스가 하는 말에 따르자면 잠이 들려면 뇌를 써야 하지만 꿈을 꾸는 것은 뇌가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슬픔을 느끼는 것도, 동생을 사랑하는 것도 뇌가 하는 일이 아니었다. 맥스는 뇌가 도움을 주기는 할지언정,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말했다.

이는 아이들이 뇌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보여준다. 즉 뇌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에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교육을 통해 알고 있다 .즉 뇌가 없으면 사람들이나 그 밖의 동물들도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 깡충깡충 뛰거나 이빨을 닦거나 하는 신체 행위에 두뇌가 필효하다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한다. 또한 자신의 행위자체는 (화내고, 슬픔을 느끼고, 꿈을꾸는) 뇌가 아니라 자기자신이 한다고 생각한다.

< 아이들의 사후문제에 대한 인식 >
어린 아이에게 생쥐가 죽었다고 설명했을 때 아이들은 생쥐가 죽었다는 사실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생쥐의 어떤 영적인 영속성에 대해서는 계속 믿는 듯한 이야기를 했다. 즉 굶주려 죽은 생쥐는 죽은뒤에도 계속 배고파할 것이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뇌는 생각을 하지만 자신의 행위는 '내'가 직접하는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사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는 아이들의 믿음..... 이 타고난 성향은 우리가 종교에 대해 갖고 있는 믿음같은 형이상학적인 사고가 이미 아기때부터 타고 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은 직관을 따르는 우리의 데카르트적 관점의 결과물이다. 육체의 경험은 자아, 즉 영혼의 경험과 다르다고 한 데카르트의 직관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라. 

즉,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을 때 육체와 영혼의 이원성에 대한 인식은 이미 아기때부터 갖고 있는 시각이란 것이다. 영혼이 실제하는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이런식으로 이 책은 아기의 타고난 보편적 특성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 현대인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 의중을 파악하는 아기 >
이런 성향이 가능한 것은 아기들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능력이 그 시초가 된다. 또한 아기는 사람 얼굴을 좋아하며 동정심이나 공감의 능력도 크다. 얼굴표정과 비언어적인 몸짓을 해독함으로서 이미 태어날 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줄(?) 알게 되는 것이다.  

아기들이 아무렇게나 끄적 끄적 그린 낙서같은 그림에도 아기의 생각이 반영이 되어 있다고 한다. 즉 네살정도 아이가 막대사탕과 풍선을 그렸다고 하자. 아이가 그린 이 그림은 겉으로 보아서 똑같아 보여 무엇이 사탕이고 풍선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는 자신이 풍선이라고 생각하고 그림을 그렸다면 그 그림을 끝까지 풍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는 어른의 의도에 따라 그림이 무엇인지 설명하곤 한다. 어른이 숟가락과 포크를 테이블에 같이 놓고 애매하게 그림을 그렸다고 하자. 그림은 엉성해서 숟가락처럼도 보이고 포크처럼도 보인다. 그런데 어른이 만약 숟가락을 유심히 보면서 그림을 그렸다면 그 그림은 숟가락이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이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의도를 파악하거나 파악하려고 노력한다는 이야기다.

반대로 자폐아들을 생각해보면 이들은 인간사이의 감정이나 몸짓언어를 이해할 줄도 해독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세계에 갇혀버린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의 의중을 파악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 본질을 추구하는 아기 >
의중을 읽는 아기들의 선천적인 능력은 곧 어떤 범주에 이름을 부여하고 그것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홍길동, 김길동, 이길동등 서로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이것들을 뭉뚱그려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렇듯 특정한 범주에 이름을 붙이기에(토마토, 과자, 꽃, 행정부, 국가등등) 그것에 대해 설명하려는 욕구가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뭉뚱그려서 범주화하는 능력은 우리의 일반적인 사물에 관한 것 뿐 아니라 종교나 사상등 형이상학적인 문제에까지 우리 인식의 지평을 넓흰다. 

이렇게 명명한 실체에 대해 의미를 추구하는 능력은 본능적으로 사람에게 의미론적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이를 종교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지적인 존재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창조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무엇에 이름을 붙이면 거기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존재등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한데 진화적인 설명은 사람의 직관으로 바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이론을 처음 접하고 다윈의 부인이 남편에게 했던 유명한 말에 충분히 공감히 가리라 "여보, 그것이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마음 한복판에서는 아기때부터 존재의 기본 껍데기(육체)위에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고 본능적으로 믿는 믿음, 그것이 존재하며 그렇게 애초에 설계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적인 발견은 우리에게 합리적인 사고의 틀을 제공해주지만 때로운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 그밖에..... >
이 외에도 책에서는 선악(사회관습과 범죄에 대한 구분), 도덕적 감정(동정심, 이타적감정등), 협오감 등을 거론하며 이 모든 것은 아기때 이미 부여받은 천성들이 커가면서 발현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아기때의 천성은 커가면서 후천적인 영향을 받아 변화할 수도 있다. 교육이나 고정관념, 사회적 관습에 의해서 말이다. 그래서 때로는 교육에 의해 고정된 관념이 들어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일도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인간 이외의 영장류를 처음 본 사람들중에는 그들을 다른 종으로 보지 않았던 사람도 더러 있었다. 

아프리카에 도착한 최초의 지중해 사람들은 어느 섬의 서식 동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이쪽 만의 외진 곳에 있는 어느 섬에는 야만인들이 넘쳐났다. 여자도 있었는데 수적으로 휠씬 우세했다. 그들은 털복숭이 몸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쫒았으나 남자는 한면도 자블 수없었다. 다들 도망쳤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파른 곳으로 도망치거나 돌을 던지며 자신을 방어했다. 하지만 여자는 세 명 생포했다. 깨물고 할퀴고... 우리를 따라가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죽여 가죽을 벗긴 다음 카르타고르 갖고갔다. 원주민들은 이 야만족을 고릴라라고 불렀다.

이런 식으로 후천적으로 변화되는 것은 문화나 사회적 관습, 혹 특정 사람이나 사물, 사상에 대한 견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두고 진화해 온 인간 행동의 보편적인 관점은 고정불변한 것이다. 

< 맺음 >
이 책은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지만, 쉽게 책장이 넘어가 지지 않았다. 그것은 책속에 어떤 철학(?)같은 내용도 포함되어 있고 문맥들을 가끔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서구의 문화나 TV드라마등 우리가 직관적으로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했다. (미국유머가 한국에서 통하지 않듯이....) 번역자의 좀더 자세한 주석이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어쨌든 흥미롭다. 갓 태어나 막 우는 아이들의 뇌속에 이미 성인의 사고방식의 매커니즘이 자리잡혀 있다는 사실의 신비와 그 베일을 하나하나 벗겨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 자신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j******7 2007.04.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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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의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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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봤을 근원적 물음이다. 다소 철학적인 제목의 이 책은 일단 하나의 사례로 가볍게 해답에 다가선다. 마룻바닥에 빨간 얼룩이 있다. 아빠가 세 살배기 아기에게 “벽에 페인트칠하다 흘린 거란다. 뭐처럼 보이니?”라고 묻자 아이는 “페인트 얼룩”이라고 답했다. 똑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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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봤을 근원적 물음이다. 다소 철학적인 제목의 이 책은 일단 하나의 사례로 가볍게 해답에 다가선다.

마룻바닥에 빨간 얼룩이 있다. 아빠가 세 살배기 아기에게 “벽에 페인트칠하다 흘린 거란다. 뭐처럼 보이니?”라고 묻자 아이는 “페인트 얼룩”이라고 답했다. 똑같은 얼룩을 놓고, 다른 아이에게는 “심심해서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거란다”라고 말한 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아이는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예술’이라는 개념을 배우지 않은 유아들이 ‘창작자의 의도’를 알고 대답했을 리 없다. 미국 예일대 심리학 교수인 저자는 “유아들이 우연으로 만들어진 것과, 의도를 갖고 만든 대상을 구분해 생각했기 때문에 대답에 차이가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요소를 이 같은 차이에서 찾는다. 아이들조차 자연적 세계와 인위적 세계를 구분할 줄 안다.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의 차이, 혐오스러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낸다. 여기서부터 영혼이, 종교와 예술이, 웃음과 유머가 생겨난다. 육체와 정신은 분리돼 있다고 이원론을 주장한 데카르트처럼 인간은 태생부터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를 분리해 생각하는 ‘선천적 이원론자’인 것이다.

저자는 바퀴벌레가 빠진 우유를 먹지 않는 세 살배기, 아이들이 산타크로스를 신으로 보는 과정, 죽은 생쥐로부터 영혼의 지속성을 감지하는 방식, 괴물과 마녀를 무서워하지만 상상 속의 가짜라고 인지하는 모습 등 다양한 실험과 사례로 ‘인간이 선천적 이원론자’임을 증명해 보인다.

발달심리학과 문화인류학의 연구성과를 인용한 만큼 이해가 힘든 대목도 많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 ‘레인맨’ 같은 대중영화와 앤디 워홀의 유명 미술작품 등을 예로 들어 독자들이 학술적 논의를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

a******1 2008.05.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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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얘기가 전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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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가 한말이란다. 인간이 혹은 ‘나’라는 사람이 실존 하는지에 대한 나름 명확한 대답이라고 느낀다. 책의 제목이 ‘데카르트의 아기’다. 뭔가 이 아기는 특별할 것 같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존재를 알고, 심지어 다른 아기들에게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하는지 가르쳐 들것 같다. 이 아기 나를 특별한 세계로 이끌 것 같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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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가 한말이란다. 인간이 혹은 ‘나’라는 사람이 실존 하는지에 대한 나름 명확한 대답이라고 느낀다. 책의 제목이 ‘데카르트의 아기’다. 뭔가 이 아기는 특별할 것 같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존재를 알고, 심지어 다른 아기들에게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하는지 가르쳐 들것 같다. 이 아기 나를 특별한 세계로 이끌 것 같다는 생각에 책을 들게 됐다.


 데카르트가 유물론자 인지 유신론자 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내가 생각하기론 유신론자 인듯 싶다. 그는 책을 낼 당시만 해도 자신이 내는 책이 교회에서 파문당하길 원치 않았던 사람이다. 결과적으로 책은 기독교에서 금서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신을 통해서 믿게 되었고 그 후에 그가 한말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다. 이만하면 유신론자 아닌가.

 제목과 달리 저자는 독특한 입장을 취한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되는 주장들을 중립적으로 잘 소개하는 듯 하면서 종국엔 진화론의 손을 들어 준다. 반드시 유신론자가 진화론을 거부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부분의 유신론자(특히 기독교)는 아직 창조론에 무게를 둔다. 


 저자는 아기(심지어 자신의 아기도 동원된다)라는 피 실험자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혐오감, 본질에 대한 인지, 도덕성 등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듯 한 부분을 아기들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결론을 내는 방식으로 글을 써내려간다. 부분적으로 실험 환경이 모순 없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나 싶기도 하고, 일부 반응을 일반적 견해 혹은 결론으로 가져가려는 것이 억지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하나 예를 들자면 혐오감 반응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아기들이 생후 얼마 지나지 않은 아기들은 혐오감이란 거의 없단다.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학습하게 되어 혐오감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더러운 것, 위험한 것 등을 경험하고, 교육을 통해 인지하게 된단다. 그렇게 됨으로 꼭 일치하지 않은 것들이라도 비슷한 점 혹 패턴(냄새 혹은 생김새 등)을 통한 반응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렇다면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나 유사하지 않는 것에는 혐오감이라는 반응은 나타날 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내 조카는 어렸을 때부터 혐오감이란 찾을 수 없었다. 다르게 얘기 하자면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 반응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주변의 다른 아이 엄마들 얘기를 들어 보았다. 자신의 아기는 전혀 혐오감 반응 없이 자라 왔다는 분도 있었고, 또 한 분의 아이는 새로운 것에는 무조건 거부반응 만을 보여 왔고 지금 까지 그렇다고 한다(그 아이는 현재 5살이다).

 나 또한 실험을 해보고자 했다. 갓 태어난 아이들 혹은 생후 24개월 이전의 아이들을 충분히 확보 하지 못한지라 보육원 교사와 산부인과 간호사들, 아이 엄마들과의 만남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마 실험의 결론을 내고 싶었다. 내가 한 실험은 어떤 사물의 움직임을 처음 그리고 재 관찰 하였을 때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험 환경 자체가 완벽하게 구성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아기들은 주사기를 인지 할 수 있으며, 그 것은 혐오감의 대상이다.’첫 번째 실험은 이런 내용을 전제로 하여 진행 했다.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치는 것들이 나타났다. ‘예방접종은 항상 간호사만 하는가‘ 이게 왜 중요 했냐고? 내가 우려 한 부분은 간호사의 존재를 학습을 통해 고통을 주는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을까(의사도 예방접종은 가능하다) 이다. 누군가는 ‘혐오감을 주는 사람으로 학습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간호사와 의사는 아기에게 고통도 주지만 보살펴 주는 행동도 같이 한다. 즉 아기는 고통과 보호를 함께 제공하는 누군가에게 늘 일관된 반응을 보일 수 없다. 주사기를 사용하기 전에 사람의 인지를 통해 주된 감정의 반응이 나와 버리면 주사기에 대한 반응을 충분히 살펴볼 수 없다 한다. 뭐 소아과 의사의 말이니 일단 믿고 실험은 포기 했다.

 ‘엄마가 손을 들어 아기 신체부분에 충격을 가할 때 아이들은 고통을 느낀다.’두 번째 실험의 전제 이다. 두 번째는 더욱 어처구니 없이 끝났다. 엄마들이 이렇게나 어린 아가에겐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결국 ‘완벽한 실험 환경은 구성되기 힘들거나 불가능하다‘는 결론만 도달했다.


 책 내용 중 흥미로운 부분을 소개 한다. ‘착한 놈이 먼저 죽는다‘ 소주제가 달린 부분이다. 여기에선 동물들의 상호 이타성에 대해 설명한다. 자신의 배를 채우고 여분의 피를 나눠주는 박쥐, 사자들의 먹이 나눠 먹기 규율, 새끼를 보살피는 동물 등 인간과 비슷한 부분이 소개 된다. 재미있는 점은 동물이 이타성을 가진다는 것만 아니라 같은 종족에게만 동정심 또는 돕는 행위가 발휘된단다. 인간은 타 종족(집 짐승, 야생 동물과 상관없이)에도 이타성을 발휘 하는데 말이다. 이건 우월한 존재가 가지는 특권적 배려 일까?

 뇌에 대한 언급도 있다. 마침 내가 듣고 있는 수업에서 소개한 전두엽이다. 전두엽은 사람을 인간답게 혹은 철들게 하는 부분이라고 알려진다고 한다.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그렇다면 전두엽이 발달되고 나서야 사람은 철이 드나 철이 들어가는 와중에 전두엽이 발달해 가는가. 책과 수업에서도 소개했던 뇌가 거의 없이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었다는 사람은 철없는 인간 이었을까?

 

난 진화론의 대부분을 믿지 않는다. 때문에 이 책을 읽어 가면서 불편한 점이 많았다. 우연의 우연을 거듭한 인간의 탄생. 반응 혹은 현상을 관찰하고서야 왜 진화론적으로 이러이러 해서 이러한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그리곤 빈틈없이 논리를 채우기 위해서 요리조리 가져다 붙이는 것 같은 사설들. 얼핏 보면 상당한 정당성과 명확성을 지니는 것 같지만 창조론자들도 대부분 같은 방식으로 주장(대표적 유신론자로 CS루이스) 한다. 그러니 수십 년간 평행선만 그려 오게 되는것이지...

 이 책에선 인간의 물질 영역, 사회 영역, 정신 영역을 폭넓게 다룬다. 하지만 제목과 달리 아기에 대한 내용이 많지는 않다. 아기들에 대한 실험은 위의 세 가지 주제를 설명하기 위한 도입부 일뿐이다. 저자가 좀 비겁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주장을 거의 숨겨 가면서 내용의 결말 부분의 다른 인물을 통해 슬며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그래서 좀 지루함이 있다. 시원 시원하게 쭉쭉 뻗어가는 저자의 주장이 없어서 김샌다. 저자의 이러한 성향을 보여주는 부분이 책 말미에 있어 적으며 감상을 마친다.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

c******k 2009.03.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