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역사를 향해 승부수를 던진 정조! 정약용은 어떻게 정조의 암살을 막아냈는가? <원행>은 이와같은 흥미로운 문구로 독자들의 시선을 압도했다. 충분히 시선을 끌만했으며 독자들은 정약용이 어떻게 정조의 암살을 막아냈는지에 대한 궁금함을 가지게 된다. 정약용이 어떻게 정조의 암살을 막아냈는가? 이 물음으로 인해 우리가 유추해낼 수 있는 기대감이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정약용이 정조의 암살을 막아냈다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이 책안에 담겨진 내용이 정조의 암살을 막은 정약용의 활약상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시대는 정조의 을묘원행을 앞둔 1794년 동짓달. 삼품의 병지참지로 파격 승급한 홍문관 수찬 정약용은 성역소 총리대신 체제공으로부터 수원 공역장을 살피라는 밀명을 받게 된다. 시파(時派)와 벽파(僻派), 개혁과 보수, 개혁세력과 수구세력의 대립. 사실 ''을묘원행''이라 부르는 이 행차는 표면상으로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갑을 기념하고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회갑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이 화성행차를 통해 정조는 수구세력을 제압하고 왕권을 더욱 확고히 하여 개혁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했다. 훈련도감 기총 장인형은 청룡기의 해체로 목구멍이 포도청이었고 그에게는 ''서방님''이라 부르는 소향비가 있었는데 장인형은 소향비와 새로운 세계, 백성들이 주인이 되어 나라를 이끄는 소운릉에서 살기를 꿈꿨다. 기녀인 소향비를 꺼내기 위해서는 꽤 많은 돈이 들었는데 그러한 돈을 벌기 위해서, 소향비를 위해서 비록 훈련도감 기총으로 주상께 충성을 다짐한 그라 할지라도 이미 해제되어 버려진 그에게 남은 선택은 고작 ''등짐장수''로 전락하는 것이 다였다. 혹세무민하여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옥포선생, 문인방이 장인형을 등짐장수의 호위무사로 두는 것을 기점으로 이야기는 급하게 원행의 밑그림자 아래 모이게 된다. 정란거병 심환지와 구명록, 김권주등 이 모두가 수구세력으로 정조의 왕권의 확립을 막는 자들이었다. 그들에겐 뚜렷한 이유가 있었다. 정란거병, 거병을 주도하자는 것과 역모는 근본부터 다르다하는 심환지의 말처럼 뚜렷한 뜻으로 뭉쳐진 그들이었다. 윗전의 귀와 눈을 즐겁게 해 주상의 신임을 무기로 권세를 휘두르고 외척과 환관이 발호하면서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던 만큼 정조의 왕권확립을 위한 이 행차를 수구세력으로서는 막아내야만 했던 것이었다. 류구해적과 손잡아 물밑작업을 한 문인방과 수루세력 심환지를 등에 업은 정약용은 진퇴양난으로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그의 비범한 추리로 정조의 암살을 막아냈으나 어쩐지 허황된 천재일우와도 같은 비범함이 그에게 내려진 것이 아닌가 싶어졌다. 그는 마치 수사관처럼 과학적인 증거들로 범인 유추에 들어갔고 CSI같은 과학수사대를 떠올리게 했다. 정약용이 물론 화성공역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긴 했지만 그 시대에 그러한 추리로 정조의 암살을 막아냈음에도 그리 놀랍지만은 않았다. 숨막히는 추격전을 보듯 원행을 둘러싼 암살 계획은 끝없이 정조의 목을 쥐어잡으려 했고 원행, 그 시작부터 숨가뿌게 얽혀진 실타래가 풀려나듯이 술술 사건들이 일어난다. 소향비와 정약용의 만남, 그리고 장인형. 문인방의 야비함. 왕권의 확립만은 막아보고자 했던 수구세력과 개혁세력의 맞부딪힘은 치열한 외줄타기 마냥 일촉즉발 그 자체였다. 결국은 정약용이 정조의 암살을 막는다로 끝맺음 되었지만, <원행>은 그 기록과 그림에 없는 부분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운 것이라 했다. 허구와 사실의 결합인 팩션이며 실록의 재구성인 것이다. 읽다가 문인방쪽에는 도통 정이 가질 않았는데 그 이유가 류구해적, 즉 일본인을 이용해 정조, 조선의 국왕을 암살하려 했다는 점이다. 혹세무민하여 새로운 세상, 백성이 나라를 다스리는 세계를 꿈꾼 그들의 심정을 외면할 수만은 없겠지만, 제주도를 류구해적에게 넘겨주겠다, 던 부분에서 거침없이 거부감이 일어났다. 심환지가 말했듯 역모와 거병은 다른 것이다. 아쉬운 점은 정약용이 문인방과 심환지의 계략을 추리해나가는 과정이었고, 심환지와 문인방의 결탁이 다소 허술하지는 않았던가 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시대가 되돌아 온다 할 수 있을 만큼 이 책 속에 드러나 있는 보수세력과 개혁세력의 마찰은 지금 현대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비록 정조는 시대를 너무 앞서가는 바람에 개혁의 불꽃을 다 태우지도 못한채 불씨를 꺼뜨려야 했지만. 숙제처럼 남아있는 개혁과 보수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매듭이다. 이 간과할 수 없는 화두만 뚜렷하게 가슴안에 남겨둔채 오세영 작가는 이야기를 끝내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 그의 메시지만은 아직 끝나지 않은채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든 풀리지 않은 매듭 그대로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영원히 우리에게 남은, 잊혀져버린 숙제처럼.원행>원행> |
| 18세기 조선은 작가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시기인가보다. 원행을 읽으면서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 김탁환의 [방각본 살인사건]이 연상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21세기 한국 사회의 지형이 가장 많이 떠올랐다. 보수와 개혁 그리고 급진, 그들의 대결과 갈등. 대립 속에서 새로운 모색을 추구하던 그 시기에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꿈꾸었을까? 정조와 개혁파 신료들, 실학자들의 꿈이 무엇이었을까? 역사소설을 읽는 재미는 그들의 삶을 오늘에 비추어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훗날 노무현정부의 시기도 역사학자들의 관심을 끌 것인가? 개혁과 보수를 주장하는 그들은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랄까? 어떤 꿈을 추구했다고 기억되기를 바랄까? 아니, 사람들은 진정으로 그들의 꿈에 관심을 가져줄 것인가? 분명한 것은 ''원행''을 읽으면서 채제공이나 김종수, 심환지 심지어 정조나 정약용보다는 길 잃은 무사 장인형과 기녀 소향비의 삶에 더욱 관심이 가더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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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영조의 손자 정조 시대를 다루고 있다. 사도세자의 아들로 태어나 왕위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적을 만들어야 했던 정조는 왕이 되고 난 이후에도 왕위자리가 위태로운 상활에 직면하게 된다. 힘을 가지고 있는 수구세력과 그들의 힘을 억누르기엔 상대적으로 열악한 개혁파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새로운 세상,조선의 개벽을 꿈꾸는 개혁파는 그러나 역사 속에서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이루기 보다는 또다른 기득권을 형성하는데 충실하게 된다. 소설은 정조 임금때 화성으로 원행을 떠났던 정조 대와의 8일간의 원행을 다루고 있으며, 정조를 노리는 누군가의 암투가 펼쳐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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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원행'은 이런 비슷한 작품들의 교본이 될 수 있는 작품이라고 |
| 다른 소설들과 달리 역사소설은 지나온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보고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과정에 따라 평가를 내려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매력이 강하다. 무엇보다도 소설속에서 등장하는 배경이 겪어보지 못했던 우리네 과거라는 점, 그리고 구성이 사료에 적혀있지는 않아도 가능할법한 이야기이기에 한층 호기심을 자아낸다. 작가 오세영의 소설 『원행』역시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어떻게 짜맞추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며 읽을 수 있는 역사추리소설 이라는 점에서 읽기 전부터 설레이게 만들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사도세자의 아들로 알려져있는 정조의 재위가 절정에 달아가던 정조 19년 을묘 원행을 그 배경으로 삼고 있었다. 을묘원행을 계기로 정조를 시해하려는 역모를 꾸미는 벽파와 이들과 목적은 같지만 보수집권 세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들이 만드는 세상을 꿈꾸는 또다른 무리, 그리고 이를 저지하려는 정약용과 채제공이 이끄는 시파. 이 세 부류의 세력을 보여주면서 역모계획을 막으려는 정약용의 활약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작가는 왜 정약용을 끌어들여 이야기를 했을까? 그가 수원산성을 지을 때 거중기를 만들어서일까? 정조가 수원산성으로 원행을 떠난 것 때문일까? 의문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역사소설은 어느정도 지식이 밑바탕이 되어야 허구성을 가미하더라도 받아들이기가 쉬운데 정약용에 관한 지식이 적어 중간에 그에 대해 알아보고서야 나름대로 의문을 해결할 수 있었다. 당파정치의 근절과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해 지어진 것이 수원산성이고, 그 수원산성으로 원행을 떠난 정조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수원산성과 밀접하게 연관된 정약용과 체제공의 등장은 필수요소였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화성공역을 속속들이 알고있는 정약용을 내세워 화성의 내부에 폭약을 설치하려던 자리, 물속에서 다리를 폭파하려던 계획, 왕의 행차길에서 저격당하기 쉬운 곳들을 추리해 정조의 죽음을 막아낸다는 구성을 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정조가 죽음의 그림자의 표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급진적인 개혁으로 인해 기존의 권력층을 잘 다독이지 못하고, 사회에 불만을 가지고 힘에 겨워하는 백성들을 잘 살펴줄 수 없었던 것. 핍박받고 간신히 목숨을 유지하며 왕좌에 올랐건만 여전히 사대부들의 횡포에 과감하세 맞서싸우기에는 미약한 힘이라 이를 근절하고 백성을 위한 성군이 되고자 시도한 개혁이지만 너무나 급작스러워 혼란만 야기시켰기 때문이리라. 정조를 시해하려는 심환지와 구명록, 김권주 등의 수구세력인 벽파와 혹세무민하여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옥포선생 문인방. 이들의 등장은 당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떠한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정조의 개혁을 막고 혼란을 만들지 아니하려는 벽파나 문인방의 계획이 정당화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현 정권의 수장인 노무현 대통령이 떠올랐다. 여야의 견제에 빠져 임기 중에 탄핵도 당하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미약한 세력으로 인하여 의지만 앞설뿐 제대로 개혁하지 못하는 그. 국민들이 노대통령을 지지한 이유는 개혁이었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개혁에 앞장섰지만 국민들의 현실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던 그의 모습과 정조의 모습이 겹쳐졌다. 작가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속에 현재 우리 모습을 같이 내포시킨게 아닐까?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자신의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현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원행』이 추구하는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원행』은 정약용이 가까스로 정조의 죽음을 막는 것으로 그 이야기의 막을 내리지만, 독자에게 어느시대에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개혁과 보수의 끊임없는 갈등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풀리지 않는 숙제를 남긴 듯 했다. |
| [원행]이라는 책 제목.. 사실 원행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를 몰랐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저 그런가보다 하는 느낌이었다. 그보다는 책표지에 끼워져 있던 문구.. "정약용은 어떻게 정조의 암살을 막아냈는가?" 이 문구가 더 강렬하고 흥미를 일으켰다. 정약용이란 인물은 너무나 잘 알려진 위인이었지만 암살과 관련된 기억은 전혀 나지가 않았다. 그런데 암살이라니? 역사를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지 상당히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 [조선선비 살해사건]이라는 책을 읽었기 때문에 [원행]도 혹시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전혀 달랐다. [원행]은 ''소설''이었다. 추리소설.. 다만 역사를 기초로 한 faction이라는 것일 뿐이다. 사실 난 faction을 상당히 좋아한다. 다 읽고 나면 어떤 부분이 사실이고 어떤 부분이 허구일까 상당히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예전에 김진명 소설을 읽고 작가를 만나서 소설 어떤 부분, 부분에 대해서 질문하고 이야기 하고 싶다는 욕구가 마구마구 충동질 쳤던 적도 있었다. 물론, 그렇게 혼자만의 생각만 하고 현실에서 이뤄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ㅋㅋ 개혁을 이루고자 하는 정조와 시파, 그 속에서 발생되는 여러가지 상황 대립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원행이라는 사건이 이 소설의 기둥이다. 화성 천도를 주장하는 정조와 시파가 사도세자의 사갑과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축하하기 위해 화성으로의 8일간의 원행을 가면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이 원행을 노리고 벽파의 거병과 민란이 계획된다. 암살과 그것을 막으려는 약용의 노력. 이것이 이 소설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개혁을 위해 애쓰는 정조의 모습과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정조를 암살하려는 사대부들.. 피폐해진 생활에 힘들어하는 백성들과 민란을 일으키려는 무리들..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희생된 장 차인과 여인.. 참으로 안타깝고 또 안타까웠다. 역사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현실도 마찬가지 아닌가? 부조리한 사회 현실과 그것을 없애려는 노력,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 그 속에 희생되는 일반 시민들.. 항상 보면,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 모습만 다르게 보일 뿐.. 어쨌든 한 가지의 사건을 중심으로 여러 등장인물과 상황들을 통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면서도 재미있게 풀어나갔다는 점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자칫 딱딱하고 어려울 수만 있는 이야기들이었는데도 말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갔을지라도 역사라는 배경 때문에 어려운 말들이 나오는데 몇 가지만이라도 그 단에 관해 주석이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바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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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산'이 방영되는 한동안
죄인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왕의 자리에 올랐던
정조에 대한 책이 많이 발간 되었고
사람들의 관심도 많아졌었다.
나역시 이산을 보면서
그의 운명이 참으로 기구하고 불쌍하며
한편으론 참으로 대단하다 생각했었다.
그리고 정도의 삶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졌다.
이 책을 구매했던 이유도 바로 그때문이였다.
하지만 잠깐의 관심으로 책을 사 놓았을뿐..
책을 읽은 것은 드라마가 끝나고도 한참이 지난 요 며칠이였다.
책은 드라마 속에선 자세히 다루지 않았던
정약용과 정조.. 그리고 화성에 대해 나온다.
물론 드라마에서도 화성에 대해 나왔었지만
책은 그것과는 다른 이야기가 들어있다.
홍국영이 죽고나서 그 뒤를 이어 정조를 도와주고
곁을 지켰던 정약용의 이야기랄까..
정약용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정조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또 시해하려 애쓴다.
정조는 왕이 되기 한참 전부터.. 왕이되고 한참 후까지..
과연 마음편이 쉴수 있었던 적이 있었을까?
정조의 삶과.. 화성에 대한 음모..
참으로 재미있고 술술 읽히는 책이였다. |
| 1795년 을묘년에 행해진 정조의 수원화성으로의 원행이 이 소설의 중심에 있다. 개혁을 꿈꾸는 정조와 거기에 동참하는 개혁파(시파)와 기득권을 쥐고 있던 기존의 사대부들(벽파)의 대립이 한 축을 이루고, 문인방을 중심으로 한 민란의 세력이 다른 한 축을 이루면서 정조를 시해하려는 목적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그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조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정약용이 있다. 기득권세력이나 개혁파 모두 그 근본에는 백성을 위한다는 생각이 깔려있음을 보게 된다. 다만 방법상의 차이를 보일 뿐이다. 400년의 기틀을 다진 조선왕조의 근본을 쉽게 바꾼다는 것이 힘든 일임을 자명하다. 그 힘든 일을 정조는 해 내려고 노력하였고, 아쉽게도 49세의 나이로 의문사하고 만다(이 부분은 <영원한 제국="">과 연결되는 고리가 될 것이다) 격변하는 개혁기에 각자의 위치와 입장에서 그 시대를 나름대로 경영하려 했던 인물군상들이 등장한다. 실제 역사서에 기록된 것이 아닌 말 그래도 ''팩션''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가들의 상상력이 발휘된 바로 그 부분이 어쩌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고 있는 역사의 빈 틈이 아닐지..영원한> |
| 정조의 화성 행차를 둘러싸고 개혁 세력과 수구세력의 일대 격전이 벌어진다. 벽파의 거두 김종수 대감과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 대비를 뒷배경으로 한 심환지가 나서고 시파에선 채제공의 신임을 두텁게 받고 있는 정약용이 버티고 섰다. 그 틈을 타 백성이 옥포 선생 문인방은 주인 되는 새 세상을 꿈꾸며 동조자를 끌어들인다. 일촉즉발의 위기감. 어느 편도 장담할 수 없다. 을묘년(1795) 2월 9일 원행을 시작으로 생사를 겨냥한 화살은 누구의 목을 꿰뚫을지 장담할 수 없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선 그들의 수 싸움이 치열하다. 과연 오세영 답다. 정조시대가 지닌 역사적 무게를 원행이라는 사실적 소재 안에 집어넣고 묵직하게 전개되는 스토리, 정립한 세력간 힘의 각축장을 박진감 있게 그려낸 나는 듯한 필치와 교과서 속에 잠자고 있던 인물들을 불러내 그들의 거친 숨소리를 마치 곁에서 듣는 듯한 착각을 시종 불러내는 생생한 인물묘사 등 어느 것 하나 그 답지 않은 것이 없다. 역사추리소설 장르에서 두드러진 족적을 남긴 저자의 환향(還鄕)은 그래서 더없이 반갑다. 최근 들어 특히 역사를 소재로 한 무겁지 않은 역사책과 역시 작가적 상상이 마음껏 나래를 펼친 소설 등 역사 관련 서적들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아울러 그런 책들의 공로로 역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 또한 상당 부분 달라졌다. 과거와 같이 고리타분하다는 인상을 역사에 갖다놓기가 어색할 만큼 바뀌었다. 그런 현실을 타고 역사추리소설 분야가 새로운 소설 장르로 각광 아닌 각광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작가들의 치열한 역사의식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철저한 고증을 밑바탕으로 한 순도 높은 역사적 안목이 필요하다. 그래야 이야기를 박진감 넘치게 끌고 갈 수 있다. 역사 소설이라는 게 역사 자체의 무게감에 우선 눌리다보면 역사수업처럼 사변으로 흐르기 쉽고, 이야기에 치중하다보면 흥미 위주로 옮겨가기가 용이하다는 걸 이젠 웬만한 독자라면 어렵지 않게 간파한다. 그런 독자를 앞에 두고 얼렁뚱땅 시작과 마무리를 해보려 한들 먹힐 리 없다. 역사추리소설 작가가 모두 역사학을 전공할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역사를 소설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소양들은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 소설 『원행』이 여타 역사추리소설과 다른 위치에 놓여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역사적 사실과 역사적 배경에 충실하려 한 작가적 신념이 작품 속에 충실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진중하다고 표현하는 것이리라. 모처럼 만에 기름진 식단을 마주하고 제대로 된 포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제아무리 음식 담는 그릇이 좋아봐야 담긴 음식이 입맛을 돋구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 맛깔스런 토종 음식 맛 제대로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