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참 인상적이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글을 통해서 당시의 시대상을 살펴본다는 방식인데, 언뜻 생각하기에 과연 그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책을 다 읽고보니 과거엔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글은 개인의 감상이나 신변잡기를 표현하고자 쓰여진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어지러운 시대의 한복판에서 시대를 질타하는 문장들이다. 글을 남긴 이들은 죽거나 귀양을 가기도 하고, 많은 군중을 불러모으기도 한다. 그 문장들은 단지 대중을 선동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마치 한편의 감동적인 시를 읽듯 언어로 더듬어가는 글의 폭은 넒고도 깊고 강한 울림이 있다.
책 속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은 김종직의 /조의제문/과 정하상의 /상재상서/이다. /조의재문/은 단종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림의 영수 김종직의 명문장인데, 그 글은 사초에 실리면서 사화의 참변을 당하며 많은 선비들을 죽음으로 내몰게 된다. 그것이 연산조의 무오사화인데, 그때 사화로 귀양을 간 김종직의 제자 김굉필이 귀양지에서 조광조를 제자로 맞는 기이한 운명을 맞닥뜨리게 되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김굉필에게 수학한 조광조가 다시 사림의 영수가 되고, 그 역시 기묘사화라는 참변에 휘말려 드는 것. 김종직-김굉필-조광조는 모두 사림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비운에 처해지는 것. 그들의 삶과 죽음을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보면서 역시나 지나치게 옳은 것은 부러질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읽을 때 왠지 가슴이 먹먹했던 정하상의 /상재상서/ 책 속에서는 정하상의 /상재상서/를 읽으면서 당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울었다고 쓰여져 있다. 하지만 천주교신도가 아닌 내가 읽을 때도 감동적이다. 천주교의 정당성을 마치 피를 토하듯 호소하는 정하상의 글은 서글픔이 묻어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좋은 글은 시대를 초월하며 독자들의 가슴을 울리는 법이라고. 혹 요즘들어 읽을만한 책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독자라면, 옛 사람들의 융숭하고도 그윽한 이 책을 한 번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죽은 사람의 자취 앞에 술과 먹을 것을 차려 놓는 것을 천주교는 금하고 있습니다. 생전의 영혼도 음식을 먹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후의 영혼이겠습니까? 음식은 육신에게 바침이요. 도덕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효성 지극ㄱ한 아들일지라도 맛있는 음식을 잠자고 있는 부모에게 바칠 수는 없습니다. 잠잘 때는 음식을 들 때가 아닙니다. 잠들 때가 그러한데, 하물며 영원히 잠들 때에 있어서겠습니까? 사대부의 신주라는 것은 교에서 금하는 것입니다. 목수가 만든 분묵으로 칠한 것과 점친 것을 가지고 이를 참된 부모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올바른 이론이 근거가 없고, 양심이 허락하지 않으므로, 오히려 죄를 사대부에게 얻을지언정 천주에 얻기를 원하지 않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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