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서적과 같은 객관적인 정보 매체를 주로 접하다보니 언제부터인가 소설류는 쓸모없는 사실만을 늘어놓은,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이면지의 묶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추해보면 타인의 따스하거나 때로는 애처로운 그런 삶의 얘기들을 억지로 피하고 외면하려는 나의 모습에 적잖이 실망하게 된다. 내 이런 기쁨을 같이 나누자고, 내가 지금 슬퍼하고 있는 이유는 이렇다고 울먹이는데 아랑곳 없이 귀를 틀어막고 있는 나.
객관적인 정보를 접하디 접할 때마다 뜨거운 가슴을 버리게 되는 나이지만,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에 기폭제가 될 수 있는 그런, 즉 정제된 정보만을 갈구하는 현재의 노선을 바꿀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또 냉정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지도 않다.
삶이라는 것이 하나를 잡으려면 잡고 있는 다른 것을 놓아야 하는 트레이드 오프(trade off)의 연속선 그 자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 원리가 하물며 책을 고르는 데에까지 적용될 줄이야.
그러나 만약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가 또 있다면 본서 '알도 시리즈'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장르는 '지식소설'. 저자의 집필 의도부터가 이해하기 어렵거나 의식 있는 이로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지만 자주 접하기 힘든 지식들을, 소설이라는 수단으로써 읽는 이의 머리와 가슴으로 자연스레 유입되도록 하는 데에 있다.
시리즈 중 첫 편인 '알도와 떠도는 사원'은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을 비롯한 플라톤 이후의 서양 철학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 나의 관심을 특별하게 끌었던 대목은 '모든 동물은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그 공간을 인식하며, 그에따라 습득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세상을 재구성하여 바라보게 된다'라는 독일 철학자 육스퀼의 이론을 소개한 부분이었다. 언젠가, 우리가 바라보는 이 세상이 과연 실재하는 세상일까. 혹시 모두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독일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저자는 철학자 답지 않게(?) 구어체를 적절하게 사용, 매우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해 냈다. 어려운 철학 얘기를 하면서도 결코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경박하지도 않게 꾸며낸 저자의 능력이 상당히 돋보이는 작품이다.
[인상깊은구절] 봄베이의 저녁 해안은 반짝이는 진주 목걸이 같았다. 해변을 따라 줄지어 서 있는 야자수 나뭇잎 사이로 밤을 준비하는 도시의 별빛이 무수히 새어 나오고 있었다. 타라푸르 섬 너머로 스러지는 석양은 바다를 번들거리는 한 폭의 비단처럼 붉게 물들였고 그 위에 떠 있는 수십 척의 선박들을 불안한 느낌으로 만들고 있었다.
선창의 후미진 곳에서는 붉은 사리로 몸을 감싼 한 무리의 여인들이 손에 바구니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꽃잎을 던지거나 작은 촛불을 종이 접시에 받쳐 바다로 띄워 보내고 있었다. 요란 경적을 울리며 열차가 지나가자 빈민가의 어둠 속에서 탈란 교수가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수염이 덥수룩했고 넥타이를 매지 않은 차림에 양복은 마구 구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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