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여행을 가서 우연히 만나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 그 사랑의 두 주인공은 왕손이자 불치병에 걸린 남자와 털털하지만 나름대로의 아픔이 있는 여대생. 이 두사람의 사랑이야기가 주를 이루면서 한 편의 기행문을 읽는듯한 생생함도 준다. 간간히 저자가 직접 그리듯한 스케치도 있다. 이 책 자체로 보자면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러나 김미진이라는 작가에 대한 내 기대에는 못 미친다. 첫 소설인 '모짜르트가 살아있다면'을 읽고는 그 새로움과 기발한 구성에 반했고, 두번째 소설 '우리는 호텔 캘리포니아로 간다'를 읽었을 때는 이것이 김미진의 독특한 스타일이구나 하며 즐거이 읽었다. 그런데 간만에 나왔던 3번째 소설 '자전거를 타는 여자'에는 상당히 실망했었다. 그녀만의 독특함은 사라지고 그저 평범한 러브스토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4번째 소설도 그런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소재나 큰 줄거리 라인은 좀 진부하지만, 배낭여행이라는 배경은 생동감있고 사실적으로 잘 묘사했다. 나도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김미진의 여행 에세이를 한 번 읽고 싶어졌다. |
|
많이 흡수하고 함부로 배설하지 않는다, 라는 원칙을 가진 적이 있었다. 함구령이 내려진 도시의 소시민처럼 아주 조그맣게 읊조리는 혼잣말을 제외하면, 어떤 발설도 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혼잣말을 하는 시간이 사슬처럼 길어지면서 그만 치렁치렁 무거워지고 말았다. 그래서 또 한 동안 어깨에서 힘을 빼는 수다 다이어트를 해야 했는데 성과가 그리 신통치 않았다. 결과라고는 고작 이옷저옷 걸칠 수 있는 야윈 몸매뿐,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김미진의 소설은 하염없이 가볍다. 사실 신통치 않은 무거움은 신통치 않은 가벼움과 일맥상통하거나 오히려 그에 못미치는 수가 많다. 접근을 허용치 않는 범상함을 갖지 못할 바에야 한계치 이상의 가벼움으로 정통 문학을 건너 뛰고 대중 문학에 한 걸음 다가서는 게 나을런지도 모른다.
김미진의 생각이 그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소설은 아예 할리 퀸 류의 로맨스 소설을 표방하는 것만 같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로맨스 소설을 폄하하거나 할 맘은 없다. 실례로 내 아내 또한 로맨스 소설 읽기라는 삼십대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또는 보기 드문 취미를 가지고 있다. 잠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아내가 책을 읽고 있는 침실을 엿보면 한 상 가득 눈물과 콧물을 닦아낸 휴지가 차려져 있는 것을 확인케 되고는 한다. 그렇게 슬프냐? 하고 물으면 베시시 웃으며 말하고는 한다. 아니야, 그래도 해피 엔딩이야, 로맨스에서 슬픈 결말은 허용치 않거든.)
주인공의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다. 이씨 조선의 왕통을 계승하는 것으로 그려진 남자 주인공의 이름은 이 빈, 이다. 대학생이며 집나간 젊은 어머니의 기억을 전해주지 않는 아버지를 가진 여자 주인공의 이름은 유 준, 이다. 그렇게 빈과 준은 꽤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운명적인 사랑을 나눈다.
병을 확인하고 마지막 자유를 누릴 욕심으로 유럽을 여행중인 빈의 눈에 그저 돌연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학업을 전폐하고 유럽을 향한 준이 뜨이고, 그렇게 둘은 이국의 정취 속에서 하나가 된다.
배낭여행께나 다닌 것인지 작가는 배낭여행족들이 유럽을 순례하는 루트, 그리고 들르는 숙박 업소를 매우 친절하게 따라다니면서 이 두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을 연출한다.
그리고 일년 후 만나기로 한 약속(아, 상투적으로 이들은 항상 그 약속을 무슨 수를 써서든 지키게 된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약속이 지켜지는 것을 보기는 정치인의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약속이 지켜지는 것을 보는 것만큼 어렵다.)을 위해 병상에 있는 빈을 불러내고, 준은 배낭여행 중에 만난 친구들을 총동원하여 언약식을 치른다.
할리 퀸의 로맨스를 본지(고등학교 땐가 한 두 권 봤던 기억이 있다) 너무 오래 되어놔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김미진의 이번 소설이 바로 그 시리즈 문고들 사이에 딱 꽂힌다면 잘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이다.
소설은 초라한 이성(理性)을 택하는 대신 독자의 가슴에 꽂히는 에로스의 화살이 되기를 갈구한다. 하지만 행색이 추레하니 그마저 여의치 않다. 이국의 정취를 혹독하게 이용하지만 그저 생경할 따름이고, 애처로운 헤어짐과 자극적인 만남이 되풀이되어 싫증이 난다. 독자의 울음선을 자극하는 대미 또한 약하니 심금이 울리거나 하지도 않는다.
어정쩡함. 소설의 약점이고 전혀 극복할 의지 없어 보인다. [인상깊은구절] 내가 귀찮은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런 사이가 아니었던가. 경직된 몸짓과 고독한 표정, 가끔씩 떠오르는 우울한 미소로 중무장하고 있는 남자. 그런 남자가 좋아질 리 없다. 그런데 왜일까. 왜 자꾸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