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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문학상에 관심이 많은 나는 올해 수상작에도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올해는 수상작 있을까. 수상작이있다면 어떤 작품일까. 마치 내작품이 선정되기라도 하듯이 한겨레 문학상 발표날을 기다렸는데 드디어 제6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 발표되고 또 그 수장작이 출판되었을때. 나는 그 설레임으로 바로 서점으로 가서 제6회 한겨레 수상작 박정애의 물의 말을사서 읽었다.
상혁은 오랫만에 민선생을 찾았다. 상혁과 윤아가 여러번 관계를 가졌다는 걸 알면서도 민선생은 윤아한테 청혼을 했다.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처음부터 신선했다. 문학상 응모 당시의 제목은 `사랑의 역사`였으나, 출판에 즈음해 제목을 [물의 말]로 바꾸었다.는데도 나에는 새롭게 다가왔다.그리고 제목이 바꾸게된 동기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물은 생명의 원천이자 만물의 근원으로 이해된다. 생명의 바다인 자궁과 생존의 근거인 젖, 그리고 평화의 도구인 부드러움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물은 여성과 통. <물의 말="">에서 `물'이 상징하는 것 역시 그와 같은 여성성이 되어 왔다. 이 소설에서 우선적으로 물의 속성을 대리하는 이는 주인공인 `님이'이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님이의 물은 고통과 슬픔의 물, 그러니까 눈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자들이 님이처럼 눈물로써 자신의 말을 한다. 그들이 내쏟는 눈물의 말은 남자들이 건설하고 경영하는 세계의 뒷전에서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상처와 상실의 액체화와도 같다. <물의 말="">의 한 축은 대를 이어 반복되는 여성들의 억압과 수난으로 이루어져 있다.
박정애의 '물의 말'이 한겨레문학상이 되어 21세기의 독자들에게 흘러 왔다. 물은 최상의 선이라는 말을 확실히 보여준 이 수상작은 부드러운 물이 그침 없이 내 가슴속에 진한 감동이 되어어 흘러왔다. 끝의 물이 말이 되어 더욱 긴장하게 하였다.
끝의 물의 말 까지 술술 읽혀지는 것은 그만큼 독자로 하여금 동감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대개 공모 수상작하면 재미가 없거나 문학성이 좀부족한면 있는데 한겨레 문학상은 공모작을 내지 않을 정도로 엄정한 심한를 거치며 3000만원이라는 상금에 걸맞게 수상작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실망하지 않게 한다. 한겨레문학상의 특성이 한겨레답게 지역색이 두드러졌는데 올해 당선자 박정애70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서울대 신문학과와 국문과 대학원을 졸업했고, 현재 인하대학교 인문대학원에서 현대문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녀가 태어난 태생지의 경북사투리가 아름다운 문체로 형성되어 왔다. 역대의 수장작들과 함께 한다면 독서의 묘미가 한결 색다를 것이라 여긴다.
[인상깊은구절] 계곡으로 가는 갈 옆 우묵한 자리에 들어선 새집. 이제 얼마있지 않아 저 집에서 늙은 여자와 젊은여자 , 늙지도 젊지도않은 남자가 만날것이다.젊은 여자와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남자는 늙은 여자를 이모라고 부르겠지. 이모야, 이모야,이모야.너무 불러 닳아지도록 그 이모를 부르며자랐던 한 시절이 있었지. 윤아는 달밭골 계곡에서 걸음을 멈춘다. 서울서 짐 싸들고 내려와 사흘 남짓, 윤아가 한 일이라고는 달밭골의 계곡에 발을 담그고 나무와 풀벌레와 돌멩이와친해진 것뿐이다. 윤아는 늘앉던 너럭바위 위에 앉는다. 평평하여 앉기 좋은 바위이다. 차고 맑은 물이 윤아의 벗은 발을 간질이며 소왈소왈 말을 건다. 물의말. 윤아는 손바닥 가득물을 떠 달아오른 얼굴에뿌린다.물이 눈 속에도 들어가고 입 속에도 들어간다. 물방울 어린눈으로 보는 천지간은, 온통 물빛이다.물의>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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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지적이면서도 토속적인 소설이다. 어쩌면 나이도 젊은 작가가 그렇게 토속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요즘 시공간을 거꾸로 가는 작품들이 많다. 이 작품은 현재,과거,현재로 진행된다. 대하장편소설로 써도 될만한 소재이고 분량이다. 여성 3대에 걸친 이야기니까.
필남, 복순, 님이 이모. 처음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범상치가 않다. 약간은 촌스러운 듯하면서도 뭔가 사연이 깊을 것만 같은... 다음장을 넘기면 바로 상혁, 민선생, 윤아등이 나온다. 여기서 난 그저 그런 여자작가들의 글이 아닐까 라는 오해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 오해는 길게 가지 않았다.
다시 충청도 어느 시골 마을로 시공간이 옮겨가며 님이 이모와 그의 어머니들, 그리고 그의 딸, 의붓딸, 조카딸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필남, 예지, 윤아이다. 내가 여기서 등장인물의 이름들을 강조하는 것은 이름이란 것이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받는 것일 뿐아니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규정되고 일생동안 따라다니기에 어쩌면 운명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한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지을 때도 이러한 점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본다. 그런 이름들이 갖는 정체성과 더불어 이땅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모순들이 첨예하게 만나는 곳에
'물의 말'이 있다.
필남은 죽고 예지는 자신의 삶의 전부였던 남편에게서 버림받고 윤아는 정착하지 못한다. 님이와 그녀의 의붓딸인 예지와 조카딸인 윤아는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가부장제 사회의 의미체계와는 분명히 다른, 그러나 훨씬 더 견고한...
어쩜 나는 이 신인작가가 장차 대어를 낚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녀가 훌륭한 여성들의 대하소설을 써주리라 기대해본다. 오랫동안 소외되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인상깊은구절] 님이는 예지와 윤아 둘 다 조금도 덜 소중하거나 더 소중하지 않은 딸들이라고 생각했다. 님이가 그녀의 두 딸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형성되어 왔고 형성될 유대는, 죽은 권개동과 그의 네 아들들 사이에서의 유대보다 질적으로 월등히 견고했다. 이 두가지의 유대가 가부장제 사회의 의미체계에서 가지는 중요성의 정도는 물론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후자가 대를 잇는 유대관계인 반면 전자는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를 잇는다는 것의 의미는, 혹은 대를 이음으로써 한 사람이 얻는 이득은 무엇일까. 자신의 윗대와 아랫대를 분명히 함으로써 너무나 짧고 허무하고 불확실한 이승의 삶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는 의미일까. 그래서 씨받이도 하고 씨내리도 하고, 뼈다귀를 따지고 관향을 따지고 적서를 따지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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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 문학상은 편파적이지 않아서 좋다. 우리나라 문학계를 보면 수많은 문학상들이 공모되고 그 공모 자격에는 신인.기성 작품에 한한다고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독자층을 많이 가진 작가가 그 상을 거머쥐는 것이 당연시된다. 수없이 등단을 꿈꾸는 많은 무명작가들은 기성작가의 이름에 눌러 또 한바탕의 좌절을 겪어야 한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각 문학상마다 너무 일률적이다는 것이다. 웬만하면 수상작들을 빠짐없이 읽어보기는 하는 편인데 그 상을 쥐기엔 너무 빈틈이 보이는 작품들이 참 많았다고 우선 등단이 힘들지 막상 등단만 하면 문학상쪽에 한걸음 가까이 걸어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들곤 했다.
이 책은 월등하다. 물론 수상작다운 면모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고 세밀하고 잔잔하게 삶을 그려내고 있다. 겉모습만 화려한 것이 아닌 책이다. 이 책의 작가 박정애,라는 이름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지만 그 낯설음이 무색케 할 만큼 마음을 끌어당긴다. 깊이 있는 각도로 그려낸 점과 사랑에만 너무 치우치는 여성의 삶을 그려내지 않앗다는 점, 여러 모습의 여성상을 그려내었지만 그 모습 모습이 결코 산만하지 않다는 점. 여성 3대를 별 다른 거부감없이 표현했다. 수상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며 읽을 가치 역시 충분한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그녀는 낯선 운명 속에 자신을 방기하고 싶다. 그것이 운명에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윤아의 전략이었다. 운명에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은 두 가지. 하나는 보육원 원장 처럼 신의 섭리를 믿는 것이다. 신은 당신의 쓰임새에 따라 인간을 창조했다. 윤아도 시의 쓰임새에 따라 창조된 인간이다. 윤아의 앞날은 신의 계획에 따라 예정되어 있다. 신의 충실한 종인 윤아는 신의 뜻을 추종하기만 하면 된다. 어떤 시련도 신의 계획에 합치되는 시험이자 단련일 뿐이다. 그러므로 운명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 |
| 여인들의 삶을 화두로 한 소설엔 끌리듯 손이 가게 된다. 여성작가가 쓴 것이 대부분인 그 소설들에선 나와 같이 여인이란 조건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결, 고통, 느낌이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다가오기 때문이다. 특별히 예술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되지 않는 소설들도 내게는 같은 종족의 애환이라는 이유 때문에 가깝게 다가와서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 대해서 엄격하게 생각해본 일이 없이 그저 공감하며 함께 숨쉬어 왔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음으로써 나는 알게 되었다. 여인의 삶을 화두로 한 소설중에도 문학적인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따로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은 오랜 세월동안 인류사에 있어서 희생과 억압의 대상이 되어왔던 여성의 삶을 차분하게 형상화해냄으로써 독자들 스스로 인류가 여성에게 가한 비인간적 행위를 느끼고 분노하게끔 만든다. 사람을 설득하거나 사고의 전환을 유발하고 싶을 때 우선 설득하는 사람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인 것 같다. 분노가 정제된 상태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문장은 독자의 마음에 거친 분노보다는 잔잔한 반성과 여자, 남자를 막론한 인류전체라는 종족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흡입력있는 이 소설을 벌컥벌컥 들이킨 내게 처음 들었던 생각은 '백년동안의 고독' 같구나. 였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여성들의 삶을 물흐르듯 그려낸 이 소설의 몽환적 분위기는 바로 '백년동안의 고독'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백년동안의 고독의 특이한 분위기를 좋아했을 뿐 그렇게 열성적인 팬은 아니었는데 묘하게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 소설과 더불어 '백년...'을 굉장히 좋아하게 되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동시에 '백년...'이 전달하고자 했던 메세지가 갑자기 강렬하게 와 닿았다고나 할까. 작가가 그 소설을 염두에 두었을지는 모르지만 이 두 소설은 한 그룹을 이루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강자에 의해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삶을 누리지 못했던 약자들의 목소리가 되어 커다란 메아리로 울려퍼졌다. 이렇게 세련된 스토리텔링능력이 있는 작가가 여성문제에 매달려있다는 사실에 나는너무나 기뻤다. 우리나라의 여성운동은 소리만 요란하고 성과는 거의 없는 상태에서 대중에게 이미지만 거세게 자리잡은 빈 깡통이라고 생각한다. 부드러운 제스추어를 취하면서 실제로는 강한 진보적 스텝을 밟아나가는게 최고의 정치라고 생각하는 나는 이런 여성운동이 일면 노무현 대통령과 닮아있지 않나라는 생각마저 든다. 한마디로 진보의 달성을 위해서는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안 그런 척하면서 보수수구를 잠재우는 상당량의 여우짓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분노를 억누르고 세련된 목소리와 몸짓을 하면서 최선의 말과 행동만을 하기엔 아직 우리나라의 근대성이라는 토양은 너무나 빈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애같은 세련된 작가가 여성문제에 뜨거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한없이 한없이 반갑고 든든하다. 이 작가의 앞날에 과도한 기대와 관심을 걸어보아야겠다. |
| 박정애라는 낯선 작가의 작품의 선뜻 선택한 이유는 한겨레문학상에 대한 믿음때문이다. 순수문학을 지향하면서도 다른 문학상 수상작이 문학의 기교적인 부분을 많이 본다면 한겨레문학상은 비교적 기본에 충실한 스토리 텔링을 많이 보는 것 같아 내 취향에 맞기 때문이다. [물의 말]역시 꼼꼼할 정도로 많은 에피소드와 등장 인물이 등장하여 자칫 산만할 수도 있겠으나 사람 사는 이야기가 곧 소설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에게 처해진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해결점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인내하고 모색하는 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가부장 사회와 남성 우월주의가 압박하는 세상에서 그나마 숨통을 틔우는 것은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려는 강한 정신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