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설을 한 문장으로 간단히 요약하자면, 롱아일랜드 꼭대기의 작은 해변 지역인 몬타우크에서 주말을 함께 보낸 남녀의 이야기이다. 남자는 여자보다 서른 살은 더 많고, 둘은 결혼한 관계가 아니며, 심지어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둘은 서로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다. 남자는 소설가인데(이 소설은 자전적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로 이 소설의 등장인물인 '린'과 막스는 막스 프리슈가 출판 문제로 미국에 갔을 때 만났던 출판사 쪽 여성이었다고 한다), 여자는 이 남자의 소설은 전혀 읽어본 적이 없다. 남자 역시 여성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그녀가 붉은 머리를 가졌다는 것, 플로리다에서 태어났으며 캘리포니아에서 대학을 다녔다는 정도이다(이러한 사실들도 조금씩 차차 알게 되는데, 남자는 여자에 대해 하나씩 알게 될 때마다 새삼스러운 기분이 든다). 엄밀히 말해 둘은 사랑에 빠진 건 아니지만, 남자는 그녀와 함께 있을 때 행복하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역설적이게도 여자와 함께 있을 때 자신이 늙었다는 것과 따라서 자신에게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걸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소설의 대강의 내용이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이 소서은 프리슈의 자전적 소설인데, 소설 속에선 린과의 만남 뿐 아니라 이전의 사랑들도 등장한다. 어찌 보면 인생이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 남자에게 있어 '사랑'이라는 것도 '관계'들에 관한 것이다. 그렇게 소설 속에선 이전의 아내들과 만났던 여성들의 이야기들이 전개되는데, 그 중 한 명의 여성은 우리도 잘 아는 잉게보르크 바흐만이다.
여기까지 쓰고 보면 이 소설이 마치 추잡한 폭로의 연속이거나, 카사노바 같은 호색한의 여성 편력기가 아닐까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은데, 결코 그렇지는 않다. 막스 프리슈가 『안도라』의 작가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렇다면 그가 서술하고 묘사하는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라는 것이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이 가진 유의미함을 한 가지 더 꼽자면, 1인칭과 2인칭, 3인칭 시점을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자로서 딱히 시점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비로서 소설가들이 시점을 선택하는 것 역시 전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어떤 중요하고 특별한 '관계'의 사람의 이야기를 할 때(여기서는 마리안네) 2인칭을 사용하는데, 1인칭과 2인칭을 사용하는 것, 혹은 그 둘의 혼용이 가지는 효용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몬타우크'(흔히 몬탁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곳이다)는 유난히 소설이나 영화에 많이 등장하는 곳(영화 <이터널 션사인>도 이곳이 배경으로 나온다)인데, 이 소설을 보니 몬탁에 가고 싶은 마음이 다시 도졌다. 캘리포니아라면 불가능한, 롱아일랜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배경도, 제목도 중요한 것이다. 이 소설은 '몬타우크'가 모든 걸 가능하게 한 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