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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차기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 초등학교 시절 반대항 공차기를 하면서 엉성한 발놀림과 엇박자나는 공의 연결등으로 창피도 많이 당했고 하기 싫은 운동으로 전락해 버렸다.하지만 축구가 싫지만은 않다. 김훈작가의 '공차기 예찬'을 읽어 가노라면 불현듯 운동 부족으로 굳어 있던 두 다리의 발뒷굼치를 뒤돌려차기 하듯 쭉쭉 뻗어 보게 됨은 본능적으로 운동 신경이 죽지는 않았구나,태권도 할때 앞차기,옆차기,뒤돌려차기등을 생각하게 된다. 축구가 놀이로써 가능한 것은 공이 둥글기 때문이고,둥근 것은 거기에 가해지는 힘을 정직하게 수용하고 땅에 부딪치고 비벼지는 저항을 순결하게 드러내서 빼앗기고 뺏는 동작들 사이의 적대관계를 해소시킨다.-서문 중에서- 멋진 화보로 엮어진 사진 한 장 한 장을 보고 있노라면 천진난만한 개구쟁이 꼬마들부터 청.장년의 조기 축구,족구등이 내가 살아 오면서 톡톡 드리블하기도 하고,점심 먹고 PX데리고 가기등으로 지겹게도 해댔던 족구등,팀 대항전에서는 의식을 갖춰 국기에 대한 경례부터 경기가 시작되고 종결되기 까지의 건강하고 생기발랄하면서 온몸에서 불덩이같은 열기로 가득차게 하는 축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정설은 아니지만 공차기의 유래는 고대 보병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저자는 2006년 6월 월드컵 경기로 온 세계가 함성을 지르던 즈음.그리스의 크레타섬을 여행 중에 고대 서양문명의 자취의 숨결을 느끼면서 바람과 시간,아테네로 가는 보딩 게이트 앞에서 TV에서 중계되는 축구 관객들의 응집된 시선들을 보면서 공차기의 집필을 생각하게 된 거같다. 뿌연 먼지 일어나는 누런 운동장 속에서 식식거리며 소리로 신호를 보내면서 했던 반대항전 공놀이,군대에서 카키색 런닝에 두툼한 국방색 바지를 입고 담배내기등을 걸고 하던 족구놀이,일요일 새벽마다 조기 축구의 공놀이등이 내 기억 속의 주요 공놀이인거 같다. 천진난만하게 노오란 공을 꼭 잡고 있는 소녀의 맑은 눈동자,박모의 바람을 타고 하늘 위로 포물선을 그리며 적진으로 달려 가는 힘찬 공의 모습,아이들이 박터져라 싸우고 돌아간 운동장 모래밭 위의 공룡 화석의 흔적을 남기고 간 운동화의 발자국들,저 너머 세월 속의 희미한 기억속으로 남겨진 벽촌 분교의 녹슨 골문,초로의 건강한 공놀이 동호인들이 한 판 승부를 겨루고 난 뒤 수돗가에서 등목을 하면서 몸단장을 하는 혈기왕성한 모습등이 공놀이의 묘미이고 즐거움과 기쁨을 안겨주는 것이다. 공은 나이가 없어서 모든 인간의 어림이나 늙음과 더불어 친숙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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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에 다 읽었다. 이 가로로 길쭘한 사진집을 쓰다듬으며 뭉클한 마음을 쓸어내리며... 김훈의 못읽은 책들도, 내가 좋아하던 월간지<<GEO>>에 사진을 싣던 안웅철의 사진도 더 찾아서 보고싶어졌다.
지면에 머무를 수 없어 책장에서도 툭 튀어나오게 꽂혀있는 살아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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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다친 아이가 유리창 너머로
다치지 않은 아이들의 공차기를 내다보고 있다.
다친 아이의 마음은 다치지 않은 아이들의 동작 속에서
회복되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회복되고 있는 마음이, 다친 아이를 일으켜
창가에 서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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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식어가 필요없는 작가 김훈씨가 글을 쓰고 안웅철씨가 사진에 담은 '공차는 아이들'은 공차는 여러부류이 사람들과 공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에세이집이다. 축구라는 구기 종목에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다가 우리나라에서 열린 월드컵으로 인해서 축구라는 것이 얼마나 재미 있는지 왜 해외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는지 조금이나마 피부로 느끼고 알게 되었다. 한.일 월드컵때 대규모의 사람들이 모이는 시청이나 경기장에서 응원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집에서 가족들끼리 모여서 치킨을 시켜 먹으며 시청했던 기억이 있으며 우리나라가 4강에 올랐을때는 나역시도 시청으로 가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응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김훈씨는 2006년 6월 전세계가 한창 월드컵으로 함성이 드높을때 그리스 남쪽에 위치한 지중해 크레타 섬으로 여행중이었다고 한다. 그곳에 위치한 기원전 3천여년 동안 보관되어 있는 여러 박물관의 유적지를 돌아 보았으며 아테네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다가 대합실에 놓여 있는 TV이를 통해서 월드컵 경기를 보았으며 그때 김훈 작가님은 공을 쫓아서 달려가는 인간을 바라보면서 나는 둥글다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축구가 놀이로써 가능한 것이 공이 둥글기 때문이라고 한다. 축구가 전쟁의 흔적을 지니고 있어도 공은 싸움이 흔적을 지우고 싸움을 놀이로 바뀌어 놓은며 공은 위대한 매개체라고 한다. 인산의 생명으로부터 자연과 문명을 분리 할 수 없듯이 공은 자연과 문명의 복합체라고 말하며 공은 지중해를 건너오는 바람과 같다고 표현했다.
책속에는 축구공을 가지고 있는 앙징 맞은 여자 꼬마도 있고, 드넓은 공원에서 혼자 공을 차는 어린이, 생명의 힘으로 하늘 높이 치솟아 있는 풍경위의 떠 있는 공, 공원에서 드리볼 연습에 열중인 사람, 운동장에서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 어린이 축구교실 아이들이 신나게 축구를 하면서 노는 모습과 축구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축구 경기와 나이를 잊은 노년의 나이 지긋하신 분들의 축구, 군인들의 축구 모습까지.. 여기에 몸이 아파 운동장으로 나가지 못하지만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이까지..
안웅철씨는 말한다. 남들은 축구는 전쟁, 아니 그 이상이라고 말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축구는 단순히 놀이이며 대화라고...
그가 작업하는 동안에 찾아다닐때는 전국의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마술피리를 예로 들면서 피리부는 사람이 아이들을 전부 데리고 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들이 없었다고 한다.
짧은 글이지만 충분히 공감할수 있는 이야기로 되어 있으며 글보다 공을 향해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먼저 들어오며 저절로 미소 짓게 된다.
우리 아이들도 축구를 좋아한다. 축구공을 잃어버린 것까지 합치면 10개 가까이 샀던거 같다. 지금도 우리집에는 축구공이 두개 있다. 커갈수록 학업에 쏟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예전처럼 축구를 즐기지는 못하지만 가끔 친구들과 만나 축구를 하라고 권하고 있다. 여자 축구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모습을 TV 속에서 본 적이 있으며 내가 좋아하는 박지성 선수가 활약하는 맨유 경기를 케이블 TV이로 볼 때가 있는데 박지성 선수가 골을 넣으면 나도 모르게 박수와 함께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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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에 축구 열풍이 불었다. 물론 그 전에도 축구를 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전국민적으로 축구에 열광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취미로 축구를 하는 사람이든, 축구경기를 관전하는 사람이든 모두 작은 공하나에 환호성을 지르고, 한숨을 내쉬었다. 축구란 것은 다른 스포츠와 달리 어디에서나 즐길 수 있다. 물론 팀을 짜서 경기를 할 수도 있지만 둘이라도 가능하고, 혼자서도 공을 차면서 놀 수 있다. 그래서 그럴까, 책 표지에 나온 한 꼬마 아이는 전혀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아이가 혼자서 놀면 외로워 보일만도 하지만 공 하나가 그런 느낌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공차는 아이들에 나오는 사진들은 모두 공과 관련한 사진들이다. 그렇다고 아이들 사진만 있는 것도 아니요, 공을 차는 사진만 있는 것도 아니지만, 대부분 아이들의 사진이고, 공을 차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다. 공 하나로 즐거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달까. 잔디가 깔린 넓은 운동장이든, 학교 운동장이든, 골목길이든, 바닷가 모래사장이든. 공과 사람만 있으면 어디나 놀이터가 된다. 이는 놀이로서 기능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만약 스포츠라면 정식 구장에서 유니폼을 입고 규칙에 맞춰 플레이를 해야하리라. 하지만 그런 공간이 아닌 곳에서 그저 공을 차는 것은 더이상 스포츠가 아니라 놀이이다. 스포츠는 인간들의 싸움이나 전쟁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편을 갈라 서로를 공격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이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스포츠인 것이다. 하지만 놀이에서는 이기든 지든 그건 그렇게 상관이 없다. 그저 즐거우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놀이를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비장한 각오보다는 즐거운 빛이 먼저 떠오른다. 또한 스포츠와 달리 놀이란 개념에서는 나이도 상관이 없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부터 희끗희끗하게 세어가는 머리카락을 가진 노년의 사람들까지 모두 즐겁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놀이이다. 어른이 되서 아이들 놀이를 하면 나잇값을 못한다고 하지만 공을 차고 노는 것은 나잇값과 하등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런 모습에 빙그레 웃음이 지어진다. 지구를 닮은 동그란 공. 그속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도, 군대 시절의 추억도,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찼던 서울 광장의 추억도. 그저 하나의 공일뿐인데 수많은 사연을 담고 있기도 하다. 또한 공은 그 작은 덩치에도 불구하고 큰 존재감을 가진다. 공을 찬다는 것은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래서 공을 차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라도 있으면 그 공간은 가득차 보인다. 물론 혼자 차는 공놀이 역시 마찬가지로 공간을 꽉 채운다. 혼자 가만히 서있었다면 휑하니 비었을 공간이 공을 차는 사람들로 인해 꽉 찬 공간이 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생각해낸다는 것은 분명 또하나의 창작이다. 나도 가끔 사진을 찍지만 수많은 사진을 골라내고 그것으로 이야기를 만들기란 힘들다. 게다가 자신이 찍은 사진도 아닌 다른 사람의 사진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더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에는 찍는 사람의 의도가 담뿍 담겨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전혀 위화감없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탄생했다. 사실 김훈 작가의 소설은 너무 어려워서 달랑 한 권만 읽고 다른 책은 읽을 엄두도 못냈었다. 난 쉬운 말로 씌어진 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이야기라도 눈에 쏙쏙 들어오지 않으면 읽은 느낌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이 포토 에세이는 작가의 다른 점을 발견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아직도 난 작가의 소설에 도전할 엄두는 못내지만 에세이정도는 도전해 볼까 싶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