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는 약간 헷갈렸다. 그러나 에필로그까지 다 읽고 나니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스포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2부까지는 작가의 비범한 극작술에 휘말려 정말이지 정신없이 봤다. 3부는 지식을 쌓은 것 같다. 4부부터는 그냥 보기 아까워 한 장씩, 한 장씩 아껴 가면서 봤다. 하지만 아끼는 것도 한계가 있다. 4부에서 김성효가 일을 당하고 나서부터는(스포를 피하자) 자제가 안돼 에필로그까지 거의 250페이지를 정말 단숨에 읽었다. 47장을 봐보자. 비겁하다는 것, 그건 적자생존에서 살아날 우성형질 정의롭다는 것, 그건 자기주제를 모르는 히스테리 배신한다는 것, 그건 힘의 원리를 꿰뚫은 현실감각 의리 있다는 것, 그건 기꺼이 버림받겠다는 자포자기 김범오가 수목원이냐, 성림건설이냐를 놓고 고민할 때 머리 속에 찾아온 악마가 들려주는 시다. 우리는 하루를 살면서도 이런 상황을 얼마나 경험하는가. 정말 정의는 때로 ‘자기 주제를 모르는 히스테리’일 때가 있는 것이다. 이런 김범오에게 푸근한 위로를 주는 것은 강원도의 자연이다. 매우 아름답게 그려진 자연이 이 소설에는 담겨 있다. 환상적인 자연 묘사다. <가까운 숲을 비추고 있는 수면을 가만히 지켜보면 울긋불긋한 여름 꽃과 열매, 물들기 직전에 더더욱 푸른 잎사귀들이 하나하나 셀 수 있을 만큼 선명하게 떠있었다.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 새카만 가지 위의 새들이 용천배기의 수면 위에 앉아서 두리번거렸다. 지저귀는 노랫소리가 바로 그 물속에서 솟아 나오고 있었다. 물 타래를 거슬러 헤엄치던 어미 숭어가 모감주나무의 노란 꽃잎 속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작은 빙어 한 마리가 수면 위로 펄쩍 뛰어올랐다가 빨갛게 벌어진 석류 안으로 지느러미를 흔들며 사라져갔다.> 자연만큼 김범오에게 위로를 주는 것은 강세연의 사랑이다. <어디선가 뻐꾸기가 울었다. 그가 그녀에게 몸을 기울이자 따스한 체온과 비누 향 같은 게 고여있는 대기의 작은 둥지로 들어서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의 검은 눈동자 속에 들어있는 쓸쓸한 허무함 같은 것을 보았다. 이 남자는, 아아, 여기에 남으려고 하는구나.> <호박벌이 멀리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났다. 백합이 피어있는 곳에서였다. 김범오의 피부는 그와 세계가 만나는 접촉면이었다. 그는 세상을 등지려고 했다. 상처만 주어온 세상. 하지만 지금 그녀의 손바닥이 그의 등을, 살갗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세계를 대신해서 그의 문을 열려고 하고 있었다. 그의 피부 아래로 저릿한 것이 흘러갔다. 그의 몸 속에서 혁명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세상을 향한 혁명이. 그의 눈가로 물기 같은 게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뺨과 목덜미, 가슴의 체온이 서서히 달아올랐다. 그녀는 밀착한 몸으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김범오의 몸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혁명이란 무엇일까. 강세연이 어루만지고 있는 김범오의 몸 속에서 생겨나고 있는 혁명은? 그건 아마 강세연이 후에 수목원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보게 되는 이런 구절 속에 담긴 게 아닐까.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말속에 담긴. <나는 정치의 이상향을 믿는다. 현실을 시험해볼 수밖에 없다. 비록 그 시험이 실패할 게 뻔하다 해도 실패한 그 현실만이 혁명의 정신을 전진하게 만든다.> 그러나 강세연은 이런 격렬한 문구를 본 다음에도 자기와 김범오를 차분하게 들여다 볼 줄 안다. <수목원은 실패할 것인가. 그럴 지도 모른다. 이렇게 남아서 버텨 왔지만. 오늘밤을 견딘다 해도. 그러면 무엇이 남아 있나. 내 인생이 남아 있다. 그리고 또 무엇이? 김범오도 내 곁에 남아있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그도 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그녀는 카메라를 손에 쥐었다.> 비가 억수처럼 오는 날 최후의 격전이 벌어지고, 수목원을 만든 김산이란 누구인지가 맨 마지막 장에서 마치 퍼즐 조각처럼 짜 맞추어지고, 두 개의 에필로그에서 지나간 사랑의 회고담이 쓸쓸하게, 그러나 아름답게 완성되는 과정은 슬프다 못해 참 가슴이 아프다. 책장을 덮고 한참 동안 아무 일도 못했다……… |
| 조금은 지루하기도 했지만, 주인공 김범오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여러사람들의 갈등구조가 아주 적절하게 표현되어 긴장을 풀 수 없는 그런 소설이다. 내용이 조금 방대해서 지루한 면이 있는 것 외에는 크게 흠잡을 때 없이 대단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나는 김범오에 나의 감정을 이입할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주인공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모습이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또는 나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한다. 경제개발을 하려는 성림그룹과 환경과 자연을 보존하려는 도원 수목원 사람들 사이의 갈등 상황속에서 김범오의 갈등을 보는 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 시대의 갈등상황을 적절히 표현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이 책의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진 것 같다. 특히, 어느 한쪽을 응원할 수 없는 그런 갈등 구조였다는 점에서 이 책이 마음에 든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듯이 이 책은 그런 다양한 관점을 존중하며, 독자들 스스로 판단을 내리도록...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작가가 모든 것을 다 결정해서 독자에게 특정결과를 부여해주는 그런 책이 아니다. 독자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그런 책이다. 내용이 방대해서 읽기가 힘들었지만... 읽은 보람이 있었던 책이다.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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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전에 막 다 읽었다. 1권은 진도가 잘 안 나가서 읽는 데 한 일주일 걸렸었는데 구도들이 조금 정리가 되고나서부터는 속도가 점점 빨라져서 2권은 이틀 만에 다 읽었다. 운전할 때는 어차피 못읽고, 전철에 서서 읽는 건 너무 불편하고 택시에서는 책을 꺼내 읽을 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고 버스에서는 주로 자고.. 무엇보다 짐 들고 다니는 걸 너무 싫어하는데, 그래서 결국 잠자기 직전 또는 화장실에서의 뻘쭘한 시간에 주로 책을 읽던 내가 지난 주 내내 반경 1m안에 책을 두면서 틈 날 때마다-심지어 전철에서 서서까지- 이걸 다 읽다니. 두번째 책을 덮자마자 다시 1권을 들었다. 그랬던 책은 평생 지금까지 세 번째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그랬고 -온갖 철학자와 사상가들의 엑기스를 다시한번 꼼꼼히 봐야겠다는 생각에- 공지영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 그랬다. -''오수정''과도 같은, 동일한 상황에 대한 남자와 여자의 마음을 시점별로 다시 보려고- 이 책을 다시 펴는 이유는, 무심하게 지나쳤던 복선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고 싶고, 긴박하게 전개되는 사건들을 급한 나머지 너무 빨리 읽고 지나쳐버린 것 같아 아쉽기 때문이다. [인상깊은구절] 한번 헤어진 사람들은 다시 만날 수 없는 걸까. 우리가 차갑게 식은 채로 드러누운 나무 관(棺) 위에 흙비가 쏟아져 내려오는 마지막 날까지. 만날 수 없는 걸까. |
| 사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요즘 흔하디 흔한 로맨스 소설인 줄로만 알았다. 왠지 로맨스 소설에서 즐겨 등장하는 [파라다이스]란 낱말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막상 책장을 펼치자 레이건 대통령과 알츠하이머병에 관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무슨 의도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배경이 우리나라가 아닌 것일까.. 하는 혼란에 잠시 빠졌었다. 그러다 원직수의 가정사와 그의 파라다이스.. 그리고 뜬금없이 나오게 되는 김범오의 등장.. 김범오의 등장은 살짝 나왔다 들어가는 엑스트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파라다이스 가든에서 가장 정직한 인물, 파라다이스에 대한 가장 많은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물이 서서히 사회라는 집단에 의해 점점더 변해져가는, 그로인해서 또다른 열망을 가지게 되는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김범오라는 인물이 의도하는 파라다이스와 다른 파라다이스를 꿈꾸는 원직수와 원세연 형제.. 어찌보면 파라다이스란 것은 나날히 발전해가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살아남기위한, 다른 사람은 안중에 없고 나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 그래서 어떻게든 다른 사람을 밟고 일어설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인물로 축소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원직수와 원세연 형제의 대립은 우리가 흔히 보아오던 드라마에서처럼, 지금도 방영되는 드라마에서의 모양세처럼 그렇게 자리잡고 있는 듯 했다. 특히 이 작품에서 더 인간적인 면이 느껴지는 건 김범오인 듯 싶다. 수목원이라는 장소와 도연명이라는 인물을 통해 파라다이스에 대한 열망이 세 사람 모두 궁극적으로 같다는.. 약간의 박진감이나 통쾌함은 느낄 수 없지만 요즘들어 보기 드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읽고나서 잠시동안 생각에 잠기게 한다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연 우린 어떤 파라다이스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
| 내면에서 싹을 튀우는 소박하지만 아름잡고 소중한 파라다이스와, 현실세계에게 큰 힘을 발휘하는 거대기업이 꿈꾸는 파라다이스가 충돌한다면... 이 책은 현실을 이끌어가는 거대한 논리와 개인의 의식이 충돌하는 과정을 그린 책으로 파악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백악관을 떠나 치매로 병들어가는 미국대통령과 사람이 죽음에 이를때 도달하는 세상을 그린 프롤로그에서 부터.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이야기하는 삽화, 그리고 작고 아름다운 파라다이스를 산골마을의 현실에 구현하려는 식물원의 존재에까지 저자가 말하는 파라다이스에의 집착은 남다르다. 그러나 현실세계에는 또 다른 유형의 낙원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 거대한 부와 권력으로 상징되는 실제적인 힘의 획득을 통해 사람을 조종하고, 힘을 과시하고, 부를 소비하는... 그럼으로써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거대한 부가 바로 낙원의 모습이다. 세상에는 이 두가지가 충돌하는 공간이 있다. 주인공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힘든 세상에서 어럽게 구한 직장에서 떨려나지 않고, 그저 열심히 살아남기를 원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에 깃든 조그만 낙원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자신의 방의 화분과 옥상에 만든 정원에 열심히 물을 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놓인 세상은 그를 낙원에 머무르게 두지 않는다. 그는 하루를 유지하기 위한 월급이라는 조그마한 댓가를 위해 거대한 권력투쟁과 부의 쟁탈을 위한 음모의 한가운데로 자꾸만 밀려들어가게 된다. 그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하는 것들에서부터 그는 자꾸만 멀어져 갈 뿐이다. 낙원이란 현실세계에서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 그래서 낙원은 다시는 그것을 찾아 되돌아 갈수 없는 깊은 골짝에 숨겨진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그것을 발설하지 않은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만 존재하는 그런 존재인 것인가. 낙원을 마음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현해 나가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야 말로 정말 정신나간 현실감각이 없는 사람들인가. ''현실''이라는 차갑고 강한 힘을 가진 세상의 논리구조를 벗어나, 세상의 한 구석에라도 조그만 낙원을 실현시켜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야말로 이룰수 없는 꿈을 찾아 헛된 노력을 하는 불쌍한 사람들인 것인가... 책은 가슴을 자꾸만 찌른다. 책은 스피디하게 흐르는 음모의 진행속에서도 자꾸만 생각을 한다. 낙원이란, 꿈이란, 진실이란, 아름다움이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세상에 꿈이란 것이 이루어질 공간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한동안 한국소설을 읽지 않았다. 바쁜 세상을 따라가기에 힘들었었다. 시간이 나 소설을 읽을때는 가볍고 흥미로운 외국소설을 주로 읽었다. 한국소설은 어둡고 칙칙하다는 선입견이 아직도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작가상을 받은 이 책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칙칙하거나 느리거나 답답하지 않다. 그 사이에 한국소설이 진화를 한 것이다. 보다 현실적인 문제를 보다 현대적인 취향으로, 그러나 여전히 중요한 주제의식은 잃어버리지 않고서... 현실세계에 파라다이스는 존재하지 않겠지만, 한국소설을 이런 모습으로 싱싱하게 살아있었던 것이다. |
| 참 재미있게 읽었다. 친구의 추천으로 지난 주말을 이 책에 빠져 한 번 잡고는 후딱 읽어버렸을 만큼 재밌는 소설. 읽다보면 생각도 하게 되고.. 누구나 자기자신만의 파라다이스 가든이 있을거란 얘기에 공감했고, 나에겐 그것이 무얼까를 생각하며 읽게되었다. 주관식 답안이 참 어려워서 소설의 등장인물 중 나는 어떤 사람에 가까운 사람일까를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나는 독자로서 작가의 의도대로 된 건가? 물론 시원스런 결론은 없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상반기까지의 우리시대를 잘 그려내서 더욱 공감이 가고 재밌게 읽었다. 나나 작가나 아니 누구나 파라다이스 가든에 멈추지 말고 진짜 파라다이스 찾기를 포기하지 말았으면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더위를 잊을만큼 재밌었다. |
|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다. 단편을 모아놓은 이상문학상 수상집은 꾸준히 보아왔는데 기대를 하면을 책을 펼쳤다. 먼저 아쉬움 하나를 말하자면 80년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약간은 촌스러운듯한 표지와 다소 굵은 글씨의 폰트다. 1권으로 내도 될만한 분량이라는 생각도 든다. 제목에서 오는 무게감 때문에 여름에 읽기에는 다소 무겁고 답답한 심리소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실제의 독서는 빠르고 집중력 있게 읽을 수 있었다.긴 이야기이지만 흐름이 끊기지 않는 매력이 있는 책이라는 결론이다.물론 이 책은 요즘 일본소설들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다소 어려울수도 있지만 선선한 가을에 좀 더 진지한 새 작가와 만나는 기쁨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토피아와 환상적인 몽환, 추리소설같은 분위기에 사랑이야기, 묵직한 시회적 메세지까지 두루 들어있는 복합적인 말 그대로 범상치 않은 작품이다. 그 범상치 않은 인물과 이야기들이 왜 이 책의 제목이 "파라다이스 가든"인지 짐작하게 해 준다. 굿이 줄거리를 언급할 필요는 없다. 뭔가 새로운 소설을 찾는 분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그리고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려본다. |
| 소설 ''파라다이스 가든''은 현대인, 바로 우리 시대 인간들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원직수는 자본주의의 화신같은 인간이고, 김범오는 시장논리 속에서 소모품처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을 대변하고 있다. 소설은 인간이 만든 시장이 도리어 인간들 위에 군림하며 인간생활을 지배하기에 이른 오늘의 현실의 실태와 참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룹 내 경영권을 놓고 피투성이 경쟁을 펼치는 원직수, 원제연 형제와 거기에 연루되어 자신과 수목원을 지키기 위해 힘겨운 사투를 펼치는 김범오의 이야기는 그 축소된 공간과 사건을 바탕으로 현재와 현실의 문제를 짚어내려는 작가의 심중을 읽을 수 있었다. 또 내용 뿐만 아니라 소설의 외형적인 측면도 충분히 흥미롭게 꾸며져 있다. 촘촘하게 배열된 챕터의 빠른 전개와 소설을 이루는 그 많은 정보와 이차적 이야기들, 꽃과 나무등의 식물에 관한 조예도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물론 흥미로운 외형미 만큼이나 내용 역시 충실하게 짜여져 있다. 이 소설에는 자유와 행복의 이미지들이 아련한 상징으로써 많이 다뤄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일것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상자 정원처럼, 누구나 마음 속에 그 자유와 행복을 함의하고 있는 작은 상자 정원을 품고있을 것이다. 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꿈 같은 낙원이 현실화되는 날이 올까? 많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지만 그 꿈을 가지고 계속해서 정진해 나가면 언젠가는 그 날이 오리라, 그렇게 나는 믿고싶다. |
| 오늘의 작가상은 이전부터 좋아하던 문학상 중의 하나였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소설을 외국소설보다 멀리하면서 문학상 소설들도 멀리하게 되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한국문학이 지닌 엄숙함과 여성작가들의 약진으로 심리적 우울함을 깊이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장르소설에 대한 관심과 재미가 더욱 강하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호하는 작가들의 작품이나 요근래 읽은 몇몇 신진작가(?)들의 소설은 새로운 발견으로까지 생각되었다. 소재의 다양함과 이야기의 기발함과 재미와 풍자 등을 자유롭게 그려내고 있었다. 이번 오늘의 작가상은 분량 면에서 적지 않은 양이다. 뭐 이전의 촘촘한 글자들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양은 아니지만 7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다. 하지만 책은 속도감 있게 읽히면서 집중력을 가져다준다. 읽다보면 어느 순간 진도가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작가의 문장이 주는 재미이다. 다양한 사물에 대한 묘사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작가의 능력은 분명 탁월하다. 기업소설로도 읽힐 수 있는 내용과 전개는 악역을 수행하는 성림건설의 사장 원직수의 내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그의 고뇌와 자기합리화를 멋지게 보여주었다. 그와 대칭점에 서있는 김범오의 IMF 이후 실직의 위기에서 벗어나 원죄를 가지고 꿈을 실현하는 과정은 읽는 나의 가슴 속에 자연의 아름다움과 열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책 속에서 자주 무릉도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도연명과 관련된 이야기와 김산 선생이 경험한 무릉도원과 김범오가 느끼는 파라다이스는 모두 다르면서 동일한 곳을 꿈꾸고 있다. 사람들이 결코 가질 수 없는 그 곳. 현실에서 가장 가깝게 실현되고 있던 도원수목원조차 자본주의와 인간의 욕심에 의해 침해당하는 그 과정은 얼마나 무섭고 섬뜩했던가! 목적을 위해 성림건설에서 펼치는 치밀하면서 지속적인 작업들은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적인 그 모습은 뉴스에서 보던 것과 유사하면서도 더욱 폭력적이며 숨겨진 사실은 너무나도 단순하게 처리되어 도리어 비현실적이다. 프롤로그에서 뜬금없이 미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알츠하이머병과 백악관 모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책을 읽어가면서 이 부분에 대해 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다시 한번 프롤로그를 생각하면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와 이 책 속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상자정원과의 관계를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모습을 각자의 입장에서 보여주면서 자본주의와 아나키즘의 충돌로까지 읽을 수 있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작가의 능력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기업과 관련된 부분에서 너무 기업주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모습과 너무 쉽게 사고 처리된 사건들이 아쉬움을 느끼게 했다. 작가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되는 것은 분명히 하나의 즐거움이다. |
| 오랜만에 접해보고 싶었던 소설이었다. 2006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작이라는 선전문구 또한 나의 소설로의 애정에 강한 집착을 나타내기에 충분했다. 작가 권기태의 이름은 생소했지만 제목 파라다이스 가든 또한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일단 2권중에 첫 1권에 대한 서평을 적는다. 주인공 김범오는 성림그룹의 일개 사원이다. 성림그룹은 회장인 아버지를 놓고 큰아들 원직수와 원세연과 치열한 회사의 후계를 놓고서 대결을 벌인다. 계모인 이명자의 아들인 동생 원세연으로 하여금 회사의 후계를 잇지 못하게 하기 위해 원직수는 아버지를 별장에 감금하고 이명자의 애견을 암살해 보내는 역할에 주인공 김범오를 보낸다. 원직수는 향후 회사의 운명을 생명공학에 걸고서 미국의 굴지의 생명공학 회사로 하여금 유전자 변형으로 발광 열대어를 개발하는데 협약하고서 강원도에서 열대어를 기르는 곳을 찾고자 한다. 발견한 곳이 바로 원회장의 아버지를 일제시대 위기에서 구해준 대가로 제공한 산을 공동체로 키운 김산의 수목이었다. 그 수목원과 김산을 동경하던 김범오는 회사에서 그 수목원의 매입에 가담하라는 얘기를 듣고서 평소 동경하던 무릉도원같은 곳이기에 회사를 떠나게 된다. 전체적인 스토리의 구성이 숨막히게 하는 빠른 진행을 하게 한다. 중국시대 도연명의 무릉도원과 현대인들의 절박한 삶속에서도 누구나 그리는 무릉도원을 현실세계에 만들려 하는 김산의 노력이 마음의 안위감마저 들게 한다. 원직수와 원제연의 형제간의 다툼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그리는 듯해 마음 한구석에 아련한 아픔을 남기기 마저 한다. 무릉도원을 쫒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는 김산의 수목원과 현실의 세계에서 어쩔 수 없지만,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원직수와 원제연의 다툼속에서 고민하는 주인공 김범오는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인것이다. 파라다이스 가든... 주인공 김범오가 어릴적 만들어 놓은 미니어쳐같은 낙원에 붙인 이름이 어쩌면 있을법 하다가도 왠지 허망하기만 한 일로 치부해 버리는 나의 감정의 오르락 내림이 소설을 읽는내내 요동을 친다.. 나의 파라다이스 가든을 위해 곧 2권을 펼쳐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