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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무구한 독해는 없다. 자신의 이데올로기, 자신의 사상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기 마련이다. '독일철학' '프랑스 철학'에 대해서 잘 모르더라도 그것들의 존재 가능성을 인지할 수 있다는 것과 '베트남 철학'과 같이 아직 우리의 시각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있어 여러 국가들의 권력관계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닐까? 마찬가지로 일본의 시각과 식민주의적 영향 아래서 규정된 한국 철학과 우리의 시각에서 규정한 한국 철학은 차이가 있게 마련이며, 동시에 우리나라 내부에서의 권력관계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학(萬學)의 여왕' 이라고 불리는 철학을 파악하는 것은 곧 스스로의 정체성을 되찾는 일일지 모른다. 따라서 스스로의 철학을 스스로 규정치 못하게 되는 것은 언제나 타인에 의해 자신을 조건 지워지는 운명적인 삶을 강요당하게 만든다. 식민지 지배를 겪었거나, 혹은 식민지 지배의 경험이 있는 국가 사이의 관계가 '독립' 이후에까지 미치는 것은 사회 경제 정치적인 종속에 국한되지 않고 '정신적 사상적' 종속관계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문화국주의'의 논리나 '탈식민주의 담론'이 학계의 논쟁으로 등장하게 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다시 한국의 정체성에 관해 물음을 던져 보자. 천원권에 등장하는 퇴계(退溪) 선생, 오천원 권에 등장하는 율곡(栗谷) 선생의 사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또 왜 지폐에 등장하는 학자는 두 분으로만 국한되는 것인가? 질문에 답을 하기 이전에 내가 추천하고자 하는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유학사="">를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을 접하기 이전까지 '다카하시 도루(高橋亨)'라는 이름은 그저 이름만 알고 있었다. 식민사관, 황국사관을 우리민족에게 강요한 일본의 학자. 이것이 그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드는 느낌은 바로 '공포'였다. 식민사관에 대한 원초적인 거부감은 있었지만, 내가 그나마 알고 있는 조선의 유학사(儒學史)가 바로 다카하시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머릿 속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카하시의 망령이 살아있었다. 남들에 대해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해 많이 아는 척 떠들고, 붕당의 성립과 학맥(學脈)의 연관관계에 대해 지껄여 대던 나의 모습은 '내'가 아닌 바로 '다카하시'였던 것이다.
서양 철학의 비조(鼻祖)인 소크라테스는 주어진 질문에 대해 답을 내려주는 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대신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을 뿐이다. 즉 철학의 시작은 바로 '기존의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시작한다. 더우기 우리처럼 식민사관의 유령이 아직도 배회하고 있는 현실에서, 일본에 의해 정립된 학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지폐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책의 저자인 다카하시에 따르면 사색(四色)당파의 기원은 바로 퇴계(退溪) 학파와 율곡(栗谷) 학파의 대립이었다고 한다. 그 대립의 구조 속에서 한국의 사상과 민족성을 폄하하기 위한 기원을 마련한 것이다. 여기에 실린 다카하시의 네가지 논문들을 관통하는 핵심 명제는 바로 그 두 학파간의 대립과 민족의 당파성 논쟁이다. <조선 유학의="" 대관="">에서는 조선 유학의 정점을 퇴계와 율곡 두 분으로 놓은 상태에서 조선 주자학의 생성과 발전을 다루고 있다. <조선 유학사에="" 있어서="" 주리파="" 주기파의="" 발달="">에서는 퇴계와 율곡의 대립을 가정하고 그것을 통해 조선조의 당쟁과 정치를 분석하고 있다. <조선의 양명학파="">에서는 '겉으로는 주자(朱者)를 따르면서 속으로는 왕양명(王陽明)을 따랐다'(陽朱陰王, 內朱外王)의 조선 양명학을 서술하고 있다. <조선 학자의="" 토지평분설과="" 공산설="">에서는 조선 후기 실학파의 논의를 주기론과 주리론의 대립, 그리고 노론과 남인의 대립관계 속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 네가지 논문 중에서 두번째의 논문이 가장 논리가 길고 풍요롭다. 그러나 그 숱한 논의를 정리하자면 결국 1) 한국의 주자학은 중국 주자학의 아류에 불과하다 2) 한국의 유학사를 통해 볼 때, 한국인의 습성과 역사는 당파성으로 귀착된다 라는 두가지 명제로 요약될 수 있다.
고등학교 국민윤리 교과서에 나오는 한국철학사의 지식수준과 약간의 한문 독해능력이 있으면, 대강의 뜻을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번역을 하신 선생님의 각주도 꼼꼼하고 역자가 직접 저술한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유학사="" 연구의="" 영향과="" 그="" 극복="">을 먼저 본다면 책의 이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역사 교과서 문제로 한-일 관계가 또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신문이나 TV에서 비장한 각오를 보이면서 일장기와 일본산 담배들을 화형에 처하고 있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들 중에 얼마나 자신의 머리 속에 잔존하고 있는 식민사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암암리에 자기 머리 속에 '진실'이라고 믿었던 한국사와 사상사, 풍습 등이 어느덧 자신의 목을 죄어 오지는 않는지? <다카하시 도루의="" 조선유학사="">의 맨 마지막 장을 닫으면서 내가 느꼈던 공포는 바로 그것이었다. [인상깊은구절] 이상 약술한 것처럼 조선의 유학은 학설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극히 간이하고 또 단조롭다. 고려 말부터 천편일률적으로 주자학에만 골몰하여 학자의 학설도 반드시 주희의 진의에 부합하였는가 여부를 논의하는 양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조선 유학의 가치는 학설보다 오히려 사회적, 정치적으로 국가와 사회에 끼친 영향에서 보아야 하리라. 다시 말해 그것은 인심을 지배하는 힘에 있어서 위대한 것이었으며, 정당과 학맥으로 결합하는 데 이르러 가장 두드러졌다. 그렇기는 하나 조선은 전후 640여년 동안 주자학이 한 차례 수용된 이후 끝내 다른 학파의 흥기를 보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그 선택이 옳았는가의 여부는 또 다른 문제라 하더라도 그와 동시에 사상은 더욱 고착되고 진보나 발전을 잃어버렸다. 아무리 유학의 여러 학파 가운데 가장 온건하고 중정(中正)한 것이 주자학이라고 하더라도 이렇듯 단일 사상으로 만족한 조선인은 여기에서 그 국민성의 특색을 유력하게 보여 준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다카하시>다카하시>조선>조선의>조선>조선>다카하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