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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를 막론하고 어느 정도 제도적으로 일관성 있는 정책이 안정되려면,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의료분야에선 인간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관여한다는 점에서 타 분야와 비교해 볼 때 보다 신중한 기틀이 필요합니다.
저자는 서문의 첫 문장을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공간과 언어와 죽음의 문제에 관한 책이다. 즉, 시선의 문제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의학적 담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추적하려면 그것이 다루고 있는 대상이나 논리의 형식이 아니라 말과 사물이 분리되기 전의 단계, 즉 사물을 보는 방법과 사물을 서술하는 방식이 모두 언어 안에 존재하던 영역을 새롭게 살펴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보임’과 ‘보이지 않음’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했던 근원에 어떤 힘이 작용해서 ‘말해지는 것’과 ‘말해지지 않는 것’을 구분하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학적 담론에서 유일하게 드러나는 것은 바로 언어와 질병의 관계를 특정한 방법으로 분절하던 담론구성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언어와 대상간의 독특한 분절을 문제 삼는데 있어서 어느 것이 더욱 중요하고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는 비로소 자신의 가치와 무게를 갖게 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대목은 의사들이 질병으로 가득 찬 인간의 몸 위에 수다스러운 시선을 던져왔는데도, 일정한 분절을 통해서만 비로소 가능했던 이른바 병리학이 탄생하기 위해서 어떤 ‘공간화’와 ‘언어화’가 필요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하려는 작업, 즉, 글쓰기의 방향을 임상의학이 어떤 의학적 경험위에서 가능할 수 있었는지 비판적으로 추적해 본 사례 분석이라고 합니다. 환언하면, 하나의 의학적 시선이 그 이전 시대 혹은 그 이후의 의학적 시선과 상충된다거나, 어느 것이 좀 더 발전된 형태의 지식이었다고 단정 짓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고, 그것이 어떤 존재론적인 기반을 갖고 있는지 한 번도 의심해보지 못한 담론 구성의 골격 사이로 임상의학이 어떻게 자신의 자리를 마련 할 수 있었는지를 역사적으로 탐구해보자는 것입니다.
공간화는 모든 의학적 시선에 앞서 무엇을 질병으로 인식해야 하는지 결정해주는 전지전능한 자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애초 인간의 육체위에 자리 잡고 있던 질병이 의사들에게 자신의 특성을 삐쭉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곳도 바로 공간화가 긋고 지나간 경계선상이며, 공간화가 명령하고 배열했던 서열 속이라고 이해됩니다.
18세기 의사들에 따르면 공간화는 철학적인 ‘지식’이 아니라 ‘역사적인’ 경험을 통해 진행됩니다. 예컨대 발열, 호흡곤란, 기침, 늑골의 통증 등 네 가지 현상으로 늑막염을 규정할 수 있는 지식이 ‘역사적’ 성격을 갖는다면, 늑막의 기능감퇴, 장액의 분출, 늑막의 염증 같이 발병의 기원이나 원칙 혹은 원인 따위를 캐는 작업은 철학적 지식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질병의 계보를 따지는 '분류하기 의학'과 관련해 풍토병이나 전염병을 구성하던 개념이 18세기에 와서는 독특한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어떤 개인이 앓고 있는 병과 전염병이라는 현상은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어느 질병이 전염병으로 간주되려면 급작스러운 발병이 동시에 여러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것으로 족합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같은 병을 앓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으므로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질병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전염병관리와 함께 의사와 의료행위를 통제하기 위해서 ‘왕립 의학회’가 조직되었지요. ‘왕립 의학회’는 이후 대학의 의학제도와 극복할 수 없는 충돌을 일으키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의학기관의 기본 구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중대한 정치적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1775년에서 1780년에 걸쳐 형성된 새로운 의학적 경험에 대한 통계자료가 프랑스 혁명기와 그 뒤에 있었던 집정관 시대에 등장하는 의료체계 개혁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물론 구체적인 세부 계획안이 그대로 반영된 것은 아니지만, 새롭게 등장한 의학적 시선은 임상의학의 탄생을 예고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18세기의 임상의학은 개별 환자를 상대로 하는 과거의 의학적 지식에 비교하면 대단히 복잡한 모습을 띠었지만, 과학적 지식을 원했던 시대적 요구에는 특별히 공헌한 바가 없다. 진료소는 병원의 주위에서 등장한 주변적 구조였을 뿐, 자신의 독특한 모습을 갖추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상의학은 질병을 분석하기보다는 간단하게 요약해 실제 의료시술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만족했다. 또 임상의학은 모든 경험을 언어적 표현 안으로 끌어 모으려고 했지만, 이것은 다음 단계의 의료 시술을 위한 준비과정, 혹은 전달 과정에 불과한 것이었다.”
새로운 이미지 안에서 임상의학적 경험은 새로운 공간을 위해 자신을 준비하게 됩니다. 인간의 육체를 더듬어가는 새로운 공간이 열리려합니다. 애매하게 남아 있는 인간의 몸 위에 수많은 비밀과 눈에 보이지 않은 기능장애와 신비한 기원이 존재합니다. 임상의학이 병리해부학에 의해 질서 있게 만들어지기 전에 모든 기관과 질병의 발생지와 원인들 앞에서 징후를 따지던 의학이 점차 사라져가게 됩니다.
푸코는 책의 결론 부분에서 언급하길, 사상사에서 제대로 체계가 잡히지 않아 혼란스럽게 남아 있는 분야를 방법론의 시각에서 정리해보려는 시도였다고 합니다. 책의 전체적인 흐름은 ‘의학 철학서’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임상의학을 철학적 관점으로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일반 의학사와는 바라보는 시각이 좀 다릅니다.
자연과학 전공자들에겐 인문학적,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과정을 부여해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철학 전공자들에겐 자연과학적 실증의 학문인 의학이 어떤 과정 속에서 개념 정립이 되고 발전이 되었는가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겠습니다.
저자 미셸 푸코는 프랑스 태생으로 파리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철학박사, 심리학학사, 정신 병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석학입니다. 그의 저서로는 이 책 이외에도 「광기의 역사」 「말과 사물」 「지식의 고고학」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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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중엽 폼(Pomme)이라는 의사는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열 달 동안 하루에 10시간에서 12시간씩 목욕을 시켰다고 한다. 그는 신경조직이 마르게 하지 않고 환자의 열을 내리기 위해 목욕을 시키는 동안 물기에 젖은 오줌으로 배설되는 ‘양피지 조직’(parchemin)들을 관찰할 수 있었고, 오른쪽 요관(尿管)의 일부가 점차 허물을 벗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의학적 지식의 장을 재조직하려는 움직임은 감시와 통제의 새로운 통치기술과 동일한 맥락을 갖는다. 개별 환자에 대한 지식이 객관적으로 구조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질병과 병원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등장해야 했으며, ‘질병을 둘러싼 국가의 관리 체계’가 이를 필요로 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세시대의 나환자를 다루던 권력의 방식으로부터, 중세 말에서부터 18세기까지 페스트를 다루는 권력의 대처방식으로의 변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고전적인 관점에서 삶과 죽음의 권리는 항상 죽음의 편에서 행사되어왔다. 군주는 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때 비로소 그의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때의 생사의 권리는 죽게 만들고(faire mourir) 살게 내버려두는(laisser vivre) 것이다. 그러나 18세기를 통과하면서 정치적 권리의 의미는 변하게 된다. 권력기술이 사람들의 생명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출생과 사망의 비율, 재생산의 비율, 인구의 생식력 , 질병에 걸릴 확률 등이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어진다. 요컨대 오늘날의 생사의 권리는 살게 만들고(faire) 죽게 내버려두는(laisser) 것이다.
결국 의학적 지식의 장을 재조직하는 임상의학의 탄생은, 이와 같은 새로운 권력의 전략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과학의 합리성이란 찬사 아래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켜주고 건강을 유지하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로만 생각되던 근대 의학의 이면에, 이러한 권력의 무시무시한 흉계가 감추어져 있음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래서 푸코는 말한다. “그들이 결코 자명하지 않다는 것, 그들이 그 규칙들을 인식하고 정당화들을 조절해보아야 할 어떤 구성의 결과들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어떤 관점으로부터 합법성을 획득하는가를 정의하는 것”을 지적하라고. 임상의학은 당연히 귀착되어야할 진리도, 여러 의학적 사고 가운데 유일하게 인정받아야할 만한 지식도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역사의 흐름, 역사적 과정의 결과들 중 하나이자 감시와 통제의 권력의 세련된 전략일 따름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훌륭한 의학적 성과들을 무시하자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을 무심코 받아들이는 습관을 거부하는『지식의 고고학』”용기야 말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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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자신이 공간,언어,죽음에 대해 다룬 책이라고 말한 이 책은 18세기에서 19세기초에 걸친 의학적 시선의 변천 과정을 [고고학적] 기법으로 써내려가며 어떻게 주관적이며 실상과 유리되어 있던 의학이 현재 임상의학의 실증적, 부검적, 병리학적 태도를 가진 학문으로 탄생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단순히 이것은 임상의학 하나의 변화를 보이고자 하는 것이 아닌 언어가 그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이며 현대철학의 한 모형의 성취를 예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임상의학은 증상이라는 시니피앙을 질병이라는 시니피에와 동일시하는 시도이며, 증상이라는 언어적 작용을 이해하는 것으로 출발하여 부검으로 몸 위에 보여짐으로 확인되는, 결국 말하여지고 보여지는 곳에 질병이 존재함을 밝히는 인식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분석과 같은 언어모델에 따라 실제세계를 그려나가는 과정의 살아있는 본보기인 셈이다.
[보이게 된] 의학은 증상symptom의 시간적 과정을 조직tissue에서의 공간적 변화와 연결하며, 이런 보여주는 사체의 개방성 안에서 죽음은 삶과 질병을 이해하는 역할에서 더 나아가 삶과 질병의 본질로서 자리하게 된다. 죽음의 개념하에 환자의 특성은 개별적으로 이해되며, 비로소 죽음으로 바라본 개인 공간화의 언어적 포착이 가능하다. 끝이 죽음이라는 것에서 모든 것은 개별화, 공간화, 언어화된 것이다.
나는 죽음이 현재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 변화를 파악하는 우두머리임에 푸코에 동의한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우리가 지금 이해하는 그 위치에 서 있다. 하지만 그런 현실 이해가 결국 지금 우리의 불만의 이유는 아닌가? 만약 우리의 끝이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라면 이런 우리의 이해는 똑같은 고고학적 접근을 통해 어떻게 발견될까? 이제 개별화는 우리의 반응에 의한 것이 된다. 질병은 생명에 이르기 위해 죽음을 거치게되는 과정의 일부가 된다. 그렇다면 의학은 생명의 존재와 그 중요성에 대한 확인의 시선으로 변하게 된다.결국 실마리를 어디로 잡는가는 우리를 전혀 다른 시선의 존재와 인식과 행위로 이끄는 것이다.
푸코의 고고학적 접근은 현재의 의학을 이해할 뿐 아니라 앞으로의 전망에까지 매우 적확하다. 결국, 의학이 분류학적 이해(객관주의, 분류학)에서 증상적 접근(주관주의, 진단학)를 거쳐 증후적 실증주의 이해(객관주의,병리학)에 이르는 과정까지를 보여준 것이다. 또한 말미에 앞으로 이 과정이 현상학적 병인 메카니즘의 구축(주관주의, 질병이 말하는 진원지에 대한 가설에 의거한 메카니즘 규명)을 이룰 것을 예언하기도 한다. 실제 이후 의학은 이 과정을 거쳐 지금은 네트워크형 확률이론으로서의 생명시스템 이해(객관주의, bioinformatics)로까지 와있다. 어쩌면 주관주의와 객관주의의 교대와 인식이해 확대의 나선형 진행이 인간과학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인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의학이 모두의 오랜 노력으로 도달한 그 경로가 과연 [인간과학적 철학]이 눈여겨 보고 따라야 하는 방향이라는건 심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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