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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증언하는 김홍도의 삶과 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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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미술을 일반대중에게 널리 알리고자 노력했던 고 오주석 선생이 단원 김홍도에 대하여 쓴 책이다. 단원 김홍도의 손꼽히는 전문가였던 지은이는 많은 작품과 사료들을 정리하여 일반 대중이 보아도 손색없는 단원 입문서이자 해설서를 만들어 내었다. 사실 이 책은 초보자보다는 단원의 작품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져고 있어 단원에 대해 더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더 맞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나의 경우 몇 년간 박물관을 다니면서 단원의 작품을 감상해 왔고 특히, 간송미술관 정기전시회에서 빼놓지 않고 단원의 작품을 보아왔기 때문에 애착을 가지며 책을 대할 수 있었다. 자칫 책 두께나 많은 한자와 해설로 인해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겐 초반에 손을 놓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책은 단원의 작품 뿐만 아니라 그의 생애와 정치적인 부분까지 거의 모든 부분을 아우르고 있다. 그의 호에 대한 유래와 시대적인 배경 등 단원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하고 종합적인 자료들과 책 뒷부분에 註도 376개나 달려 있어 단원의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대학교나 일반인을 위한 예술강좌의 교재로 사용되어 청강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평생동안 수천점의 작품을 남겼을 그이지만 지금 남아있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남겨진 작품만으로도 그의 천재성을 찬양하지만 지은이가 이야기한 것처럼 그의 최고의 역작들은 사실 자신의 이름과 도서조차 싣지 못했을 군주 정조를 위한 작품이었고, 이런 작품들은 대부분 후세에 전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마상청앵도(馬上靑鶯圖)>, <군선도(群仙圖)>... 유명한 풍속화들과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단원의 작품들이다. 이런 걸작들이 아니라도 평생 단원의 소품이라도 하나 있어 두고두고 즐긴다면 열흘은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것이다.
독자는 이른바 한 이파리의 낙엽을 보고 온 세상에 가을이 온 것을 느끼는 상상력과, 한 숟가락의 국을 떠 입에 넣어보고 온 가마 속 국 맛을 알아내는 예민한 감성을 스스로 불러일으켜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훌륭한 예술작품은 바로 완결된 그 존재 자체 안에 무한한 진술과 맞먹는 깊고 넓은 함축을 담고 있으므로 작품 자체로부터 그것을 찾아주기를 바란다. (40쪽 중에서)
특히 정조시대 규장각을 중심으로 한 문화적인 역량은 조선 후기의 정점을 이루는 것이었다. 여기서 김홍대 예술의 위대함은 다만 그 개인의 천재성만으로 달성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시대의 산물이었으며, 특히 군주 정조의 후광이 지대했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시대와 비교해볼 때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김홍도가 살았던 세상에서는 삶의 가치가 보다 많은 물질의 추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언필칭 보다 인간답게 살면서 맑은 이름을 후세에 남기는 데에 두어졌던 사회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서구문화의 주변에서 진정한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고 있지 못한 지금의 우리와는 대조적으로, 모든 면에 걸쳐서 조선 전래의 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드높았던 시대였다는 점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시대 정신과 사회 조건이야말로 김홍도 예술의 개화를 궁극적으로 가능케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60쪽 중에서)
이들에 대한 정조의 지극한 총애를 확인시켜주는 위 일화는, 항간에 떠도는 김홍도의 춘화 제작설이라든가 일본 잠입 첩자설 등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비역사적인 발상에서 출발한 것인가를 명백히 반증해준다고 하겠다. (260쪽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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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미술 그것도 우리나라 동양화에 대해서는 그 유명한 고스톱판의 화투패를 우선 떠올리는 수준인 내게 이 책은 매우 읽기 힘들었노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김홍도라는 화선이 비록 유명하기는 하지만, 화가 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책을 쓴다는 것은 쓰는 이에게도 전문성을 요구하는 난해한 작업이겠지만, 읽는 이에게도 참을성을 요구하는 고통스러운 무엇이다. 사실, 침침해지는 시력과 소실되어 가는 의식을 흔들어 깨우며-왜냐하면 솔직히 너무 재미 없어서- 읽는 중에도 몇 번이나 읽기를 중단하고자 했지만 완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데는, 뭐라고할까 우리 인문학에 대한 의리라고나할까 또는 배신해서는 안 된다는 책무라고나 할까... 여하튼 어떤 의무감이었다. 그러나 저자 오주석의 성실한 글쓰기와 방대한 지식은 재미를 추구하는 독자에게 죽비같은 경각심을 준다. 재미의 추구가 독서의 전부는 아니라고...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교양서로서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부단히 머리를 흔들며 잠을 깨기 위한 몸부림을 쳐야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의 재미 없음이나 무미건조함은 전적으로 독후감을 쓰고있는 독자의 책임이지 저자의 책임은 아니다. 조선적인, 너무나 조선적인 화가 단원 김홍도에 대한 방대하고도 완결적인 저서가 우리 학자에 의해 연구되고 저서까지 빛을 보았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이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특단의 인내력이 필요한 것처럼 말했지만 우리의 전통 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은 보석같은 존재일듯하다. 특히 고맙게도 그림은 나름 컬러다. 물론. 그림 자체가 수묵화라 큰 의미는 없겠지만. 그리고 본문의 내용보다는 그림에 대한 오주석의 설명이 얼마나 탁월하고 명문인지 지금도 이 책을 한 번더 읽을 자신은 없지만 그림 설명만큼은 두고두고 보고싶은 생각이 들정도다. 내게는 다 똑같은 황칠이지만 오주석의 설명을 보노라면, 마치 김홍도가 직접 자신의 그림을 큐레이팅한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나는 얼마나 무식한지... 오주석의 동앙회화사에 대한 방대한 지식, 한문 원서에 대한 전문성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글쓰기는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진다. 다만, 주석이 왜 각주가 아닌 미주가 되어 일일이 손가락을 책에 꼽아가며 번거롭게 책 뒤를 찾아 헤매게 하는지 그래서 급기야 주석 읽기를 체념케 하는지는 개선됨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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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와 홍신유가 대구 감영을 떠나던 모습을 그린 시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김홍도가 말에 올라타자 마당의 학이 그 거문고갑과 대금집을 보고 우짖었다는 구절이다. 그것은 학이 김홍도가 떠나가므로 좋은 음악에 맞추어 다시 춤추지 못함을 서운해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대구 감영에서도 김홍도는 시화를 즐겼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장기인 거문고와 대금도 연주했던 것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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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이란 호는 박달나무 있는 뜰이라는 뜻으로 원래 중국 명나라 때의 화가 이유방의 호였다고 한다. 김홍도는 그른 특별히 존경해서 호를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이유방은 성품이 고매할 뿐 아니라 학식 높은 문인화가였다고 한다.
단원 자신이 명나라의 고매한 선비 이유방을 본받으려고 호를 만든 것을 보면 그는 중인이었지만 남에게 뒤지지 않는 교양을 갖추려고 노력했다. 김홍도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당시 회화의 삼대 조류인 진경산수화, 풍속화와 남종화는 물론이고 초상화 심지어는 불화, 판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에 두루 명작을 남겼다. 특히 그는 국왕인 정조의 절대적인 후원 속에서 한국적 특성이 두드러진 김홍도 화풍을 확립하였다(33쪽).
저자는 김홍도의 예술의 위대함은 다만 그 개인의 천재성만으로 달성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시대의 산물이었으며, 특히 군주 정조의 후광이 지대했음을 주목하고 있다. 정조는 김홍도를 총애했다. 정조는 학문도 깊었으며 글씨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렸다고 한다. 도장도 직접 새겨 쓰는 취미가 있었다고 한다.
정조의 어제문집인 홍재전서에 실린 내용에는 정조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김홍도는 그림에 솜씨 있는 자로서 그 이름을 안 지가 오래 오래다. 30년쯤 전에 나의 초상을 그렸는데, 이로부터 무릇 그림에 관한 일은 모두 홍도를 시켜 주관케 하였다(35쪽).
서화에 능한 군주로서 자신의 능력을 남다르게 평가해 준 정조가 승하하자 단원 김홍도도 어려움을 겪은 것 같다. 물론 정약용 정도의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자신을 그렇게 알아주던 정조가 승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크나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이 책은 본문이 357쪽인데 주석이 90쪽에 달한다. 책을 앞뒤로 옮기면서 읽기에 불편한 점은 있다. 이 책은 일반인이 읽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하지만 책 속에 있는 그림을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단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