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번이나 이 책을 읽었지만..읽을 때마다 새롭고...또 읽고..또 읽을 수 밖에 없게되는 마술같은 책이다! 이 책은 그야말로 새로운 눈을 뜰 수 있는...그러니까 성경을 새롭게..그리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눈을 뜨게 해 준다. 눈이 좋지 않은 사람이 안경을 썼을 때 보이는 그 느낌이라 하면 정확할까? 성경을 자꾸만 우리식으로, 우리문화로만 보려고 했나보다. 하지만 언제나 text는 context를 이해함으로써 더 잘 이해할 수 있듯이.. 이 책을 통해서 진정 성경의 바탕이 되는 유대문화를 토대로 성경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십자가에 대한 새로운 발견은 더욱더 감격스럽게 한다. 또 한가지 실제적인 사진이 수록되어있어서 눈으로 직접 확인해가게끔 되어있는 점이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성경을 잘 모르는 초보자들에게는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성경을 잘 알았던 이들에게는 새로운 은혜의 길을... 열어주리라 확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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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한 놀이터로 서점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나는 접하는 책이 좀 많다. 그런데 성격은 참을성이 없는지라 왠만한 신간은 시큰둥 받아들고 휘리릭 넘겨버리기 일쑤다. 책을 읽다보면 지루함과 싫증도 금새 느낀다.
이 책도 에고...하고 받아들었으나 어~ 하며 자세를 바로 잡은 책이다. 첫 생각은 어라~ 재밌네였다. 게다가 첫글부터 사울은 바울로 바뀐게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내자...나도 역시 문화적 이해가 부족한 데서 발생한 오류적 해석을 굳건히 믿고 있었다니...하며 정신이 일순 깨이는 듯했다.
정신과 자세를 바로잡고 꼼꼼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해보니 앗, 문화를 이해하니 정말 쉽구나와 아 이랬구나...하는 생각에 정말 재미있고 신선했다.
나름대로 성경공부도 꽤 많이 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이 책을 보니그런 성경구절들이 바로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오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나면 책에서 이야기한 문화적 배경과 사진을 찾아가며 성경을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또 책에서 말한대로 문화적 설명을 듣고 성경을 읽으니 새로운 이해의 눈이 열리기도 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가 정말 좋은 신앙서적은 그 책을 읽고나서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게 해주는 책이라고 한 적이 있다. 이 책을 읽고나니 그 친구가 생각이 났다. 친구에게도 다시 성경을 읽고 싶어지게 만들어준다며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한국 사람을 포함한 이방인들에게 성경은 이해하기 너무 어려운 내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많은 신학자들과 주석 책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목사님들이 가르치는 설교나 성경공부의 상당 부분이 그 당시 유대인들의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배경을 설명하는 데 할애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교회에서는 성경 내용 중에 많은 부분들이 잘못 전해지고 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종교와 문화 코드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춘향전이 유대인들에게 어렵거나 오해를 낳을 수 밖에 없듯이, 성경은 이방인들에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다음 바울이 되었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한국 교회 강단은 물론이고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것을 마치 성경에 기록된 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것은 성경을 잘못 읽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오류다. 사울은 단지 히브리식 이름이고 바울은 로마식 이름일 뿐이다. 사도행전 13:9에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일제시대 때 우리 조선인들이 창씨개명으로 인해 한국식 이름과 일본식 이름을 함께 사용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 당시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히브리식 이름과 로마식 이름이 있었던 것이다. |
| 성경은 바로 생명의 말씀이란 동서고금의 진리를 상기 해본다 나 역시 가톨릭신자로써 매주일 미사 때 마다 접하는 성경말씀은 언제나 현 시제에서 받아 들였기에 2천년전의 시대상황을 각색할 책을 접한 기억이 드물었던것 같다 (예를 들어 형수와 결혼하는 시동생 얘기는 드라마도 아니지 않는가? ^^) 만일 좀더 당시 상황 - 계절 음식 금기 등등의 사회 현상- 을 충실히 보여줄 부교재가 있다면 매일 들려오는 성경말씀이 조금더 살갑게 와닿을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가톨릭 혹은 기독교 신자가 성경과 함께 살아가야 할 숙명을 안다면 나는 이 바이블 문화코드란 책을 강력하게 추천 하고 싶다 책장마다 다양한 삽화와 사진들 그리고 당시 상용했던 유물들이 백과사전식으로 많이 제시하고 있고 더군다나 필자가 이스라엘에 체류하면서 느낀 단상과 그들의 사고세계를 소개해준 점은 맛있고 풍성한 부페식단을 접하는 포만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딱 한가지 아쉬운점이 있다면 필자가 인용한 성경구절이 기독교 성경구절이어서 가톨릭신자가 보기에 문맥의 의미는 이해 되지만 단어들이 눈에 확 들어오거나 익숙하게 읽어 내려가지 않고 뭔가 낯설은 느낌을 주는듯해서 아쉽다 가능하다면 가톨릭판 성경구절과 단어를 이용한 개정판도 선보여주셨음 더할나위 없이 좋을것 같다 거두절미 하고 결론은 이책은 성경 바로옆에 비치해둘만한 책입니다 |
| “바이블 문화코드”는 ‘성경의 민속지’이다. 우리는 왜 성경을 읽을까?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알기 위해서일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살아있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통해 받는 자들에 따라서 같게 혹은 다르게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달아 알고 이해하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할 필수적인 내용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와 다른 히브리인들의 문화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고 있지 않다면, 삶에의 적용도 아전인수식의 곡해가 될 것이다. 히브리인들과 우리는 삶의 양식이 다르다. 성경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의 문화적 배경으로 이해하며 그냥 무심코 넘어갔다면, “바이블 문화코드”를 통해서 이미 수없이 읽고 지나쳤던 말씀들이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저자는 이스라엘 히브리대학에 성서학 박사과정을 6년 동안 공부하며 이스라엘의 문화에 대해 온 몸으로 흡수하였다. 그렇기에 본서는 성서가 발원한 이스라엘 “땅”에서의 관점에서 기술되어 있다. “바이블 문화코드”를 통해 새롭게 이해되는 말씀에 놀라며 전반적인 성경의 흐름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더 넓게, 더 깊게 다가올 것이다. “바이블 문화코드”는 문화인류학의 ‘민속지’같이 성경 전반에 관해 이해를 돕는 귀중한 책이다. 우리가 알기 힘든 히브리인의 정서를 성경 구절과 함께 비교하면서 설명한 것이 독특하면서도, 그래서 한편으로는 더 쉽게 이해된다. 남병식 교수의 “바이블 문화코드”는 생생한 현장감을 주는 ‘성경의 민속지’로서 현재 우리가 갈 수 없는 수천 년 전의 문화를 상세히 알려준다. “바이블 문화코드”는 성경을 우리의 생각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을 더 잘 이해하게 하고, 우리의 삶에 적용시켜서 바른 영적 성장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시키는 사명을 충분히 감당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알기 원하신다면 필히 “바이블 문화코드”를 추천한다. |
| 이책에 대한 감상이 두가지로 나뉠것 같다. 우선은 이책의 가치에 대한것이다. 우리가 그냥 해외의 영화한편이나 소설한권을 읽는다해도 거기엔 우리와 다른 정서와 문화가 담겨있기에 가끔은 낯설어하기도 하고, 때론 그 낯섬에 호기심을 더 하기도한다. 영화처럼 보여주는게 아닌 글(텍스트)로 된 시나 소설같은 작품을 대할때면 간혹 번역에 대한 거부감으로 가끔 실망을 하기도 한다. 비록 그것인 완역과 직역의 경우 어느쪽이든 마찬가지이다. 그럴때 전문 번역가가 단순히 언어를 안다는사람이 아닌 현지의 문화에 정통하고 양국의 문화와 언어에 밝은 사람이 게다가 문학적소양을 갖춘사람이 절실히 필요한것을 느낀다. 그래서 때론 번역문학가라는 장르의 사람들을 평가할만 하다고 긍정하기 까지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생명의 양식이다. 구약에서 말하는 살리라 하는개념이 영생이요 생명인것을 이책에서 히브리의 문화적인 코드로 설명하여 준다.이처럼 성경을 제대로 우리에게 알려주는것은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에 더가까이 가는것에 장애를 없애고 이해를 더하게 한다. 그러기에 요즘도 계속해서 성경의 번역작업이 이루어지고 개정된 성경을 채택하는 교단이 늘고있지만 이책에서 보여지고 지적하는 부분들이 다 수정되어지지는 않는것 같아 안타깝다. 기독교는 너무 멀리떠나와 있다. 먼저는 정통이라하는 카톨릭이 성경에서 벗어나 인간의 길로 간뒤, 다시금 옛초대교회처럼 살자고하던 신교들과 그 종파들도 역시 다시금 성경으로부터 멀어지는듯한 새태를 본다. 그럴때마다 다시금 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구호가 절실하게 들리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그럴때 집어든 성경에서 제대로된 한구절 한구절이 있어야하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복음의 알맹이에 다른 아무것도 끼지않은 맑은 수정같고 다이아몬드처럼 강고한 말씀 그자체이어야한다고 본다. 그럴때 필요한것이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문화의 이해와 언어의 적확한 선택이다. 그것은 신학을 공부하는것과는 어느면에서 관계없이 철저히 기술적으로 검증되어서 본래 히브리적 의미와 한국의 의미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이 수반된다. 그럴때 오리지날(정통)에 가까운 생명의 말씀들로 또 거듭나게 될것이다. 두번째는 메시지에 대한 내용이다. 이처럼 성경에 대한 본원적인 번역상의 오류이외에도 해석에 대한 무차별한 왜곡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격하시키는 것이다. 설교란 어느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뭇성도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맛있게 제공하는일일것이다. 그러나 요즘 대형교회의 목사님들의 잘못된 설교들을 듣자하면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것을 막을수없다. 설교시간에 마치 자신의 정견을 발표하듯이 좌경이 어떻고부터 시작하여 말도 안돼는 보수논리가 마치 진리인것처럼 이야기하고, 게다가 성경구절을 끌어다가 대니 기가막힐 노릇이다. 한국교단이 썩어가는것을 눈으로보는듯하다. 믿지않는 일반사람들에게도 미안할 따름이다. 그러한 자신의 정치적 견해는 국회로 가든지 아님 길거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주먹을 휘두르면서 할일이다. 예배란 본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진정한 마음으로 들이는것이다. 그시간에 설교를 자신이 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입술을 하나님께 빌려주고 자신이 도구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시간인것이다. 자기잘난것 자기못난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들에게 제대로 잘 소화시켜줄 수 있도록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아님을 진정 설마 모르지는 않겠지만 그렇다면 더욱 악한 일일것이다. 즉 다시이야기하면 본래 히브리적문화코드>>한국적문화코드(문화와 번역의차이)왜곡>>설교자들의 주관적인 왜곡까지를 더하니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다. 아주가끔 제대로된 성경강해를 들을때 느끼는 달콤한 말씀의 깊이만이 영혼을 흔들면서 내게 도전을 한다. 너는 어디에 서있느냐? 어디로 가고자하느냐? 이런 도전에 어디로가야합니까? 부족한 제가 무엇을 할수있을까요?라고 대답하는 갈증나는 오늘이다. 그래서 이책에 백권의 위대한? 대형교회목사님들의 설교집보다 백배는 나은 가치를 주고 싶다. 비록 이책의 지적하는 코드의 분량이 적더라도 이런차이를 지적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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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적 방법에 의해 성경에 숨어있는 암호화된 예언들을 역사적 사실로 입증하고 있는 흥미로운 것을 기술하고 있다.
수학자도 아니고 기자가 파고들며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은 경의롭다.
성경이 굳이 암호화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영적 삶에 대한 성찰은 차고 넘친다. 그런 교훈적인 것만이라도 생활에 제대로 접목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