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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사실의 기록이면서, 기록에 대한 해석이다. 기록 또한 나뉜다. 일어난 사건을 ''그대로 기록한 사실''과 일어난 사건을 ''왜곡한 사실''이다. 해석 또한 사관에 따라, 민족, 국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간 우리와 일본은 사실에 대한 이해와 사실을 해석해는데 간극이 너무 컸다. 이 간극을 좁히는데 [마주보는 한일사 1.2]는 첫 발을 내딛었다.
인문학의 한 분야인 역사학은 용어 정리가 매우 중요하다. ''왜구''를 ''일본'', ''조선출병''을 ''조선침략''으로 용어의 합의를 보았다는 것은 단순한 용어의 합의가 아니라 역사를 보는 ''관''이 좁혀졌음을 뜻한다. 매우 중요한 발전이다.
78-80쪽에서''고류지 목조 미륵반가사유상''과 ''백제 금동 미륵반가사유상''의 닮음과 다름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백제의 보살상은 사색에 빠졌으나 강한 생동감이 엿보인다. 반면에 일본 고류지 보살상에는 내적으로 깊은 사유의 고요함이 배어 있다. 얼굴도 몸매도 차분하다. 숭고하고 적막한 사색의 경지를 있는 듯 없는 듯 나타내고 있다." 라고 설명한 부분은 이 책의 백미라고 개인적으로 말하고 싶다. 우리는 지금까지 문화를 일본에 전해주었다는 것에 ''방점''을 찍어왔다. 문화를 ''소유''라는 개념에 매몰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미륵반가상에 대한 닮음과 다름을 통하여 문화란 전하는 자와 받는 자의 관계보다는 서로간에 교류를 통하여 발전하게 됨을 알 수있다.
지배층의 문화에 집중되었던 그간의 역사책들이 [마주보는 한일사]에서는 민중을 다루고 있다. 그럼, 민중을 얼마나 달랐을까? 탈춤과 가부키를 통하여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탈춤은 광장이요, 가부키는 무대이다. 2002 월드컵 때 한일이 보여준 응원전을 보는 것 같았다. 민족성을 그대로 증명한 사건이다. 탈춤과 가부키를 통하여 어느 정도 읽을 수있었다. 민중의 삶을 통하여 양국간의 역사를 읽는 재미도 깊다. 광장에 더 나은 것도 아니요, 무대가 더 나은 것도 아니다. 광장은 광장대로, 무대는 무대대로 민중을 대변하면 된다. 차이가 있을 뿐, 높고 낮음 없다. 민중 문화란 그런 것이다.
사소한 내용일 수 있지만 ''서원''을 두고 일본은 서재의 의미, 우리는 교육기관으로 이해한 것은 재미이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이다. 한일간의 온돌 문화. 우리는 아궁에 불을 때고, 일본은 방바닥을 갈라 재를 통하여 불을 피우는 문화이다. 고려는 무신 계급, 일본의 무사계급. 문화와 정치체제를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역사를 암기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재미와 흥미를 포함하여 문화와 정치체제를 비교한 것은 흥미 있는 읽기에 도움을 준다.
과연 우리는 일제강점기가 남긴 역사적 사실과 해석, 감정의 간극을 언제쯤 매울 있을까? 일본이 열쇠를 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역시 열쇠를 지고 있다. 열쇠는 문을 여는 도구이다. [마주보는 한일사]가 작은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증오가 담긴 역사관은 결코 양국간에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 증오를 걷어내고, 이해와 용납, 용서와 사과가 함께 하는 한일관계의 시작을 이 책에서 만날 볼 수 있다. [인상깊은구절] 백제의 보살상은 사색에 빠졌으나 강한 생동감이 엿보인다. 반면에 일본 고류지 보살상에는 내적으로 깊은 사유의 고요함이 배어 있다. 얼굴도 몸매도 차분하다. 숭고하고 적막한 사색의 경지를 있는 듯 없는 듯 나타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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易地思之(역지사지) –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봄 중 고교 시절부터 익숙하게 들어온 사자성어 중의 하나로 역지사지를 꼽는데 주저하는 사람을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유치원 아이들도 이해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는 당연한 말인데도 이것을 지키며 사는 것은 쉽지 않다. 하물며 역사 속에서 역지사지가 가리키는 균형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생각할 겨를조차 갖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우리의 역사를 흔히들 반만년의 역사라 말한다. 고조선 이전 선사 시대의 역사까지 우리 역사의 범주에 넣으려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도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민족의 자손인 만큼 우리 국민들의 역사 인식도 꽤 강하다. 그런 탓에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중국이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고구려를 자신들의 지방 정권으로 격하시키려 한다는 말만 들어도 흥분을 쉽게 갈아 안치지 못한다. 물론 나 또한 그런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다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말했던 역지사지의 실천이 내가 역사를 보는 눈에서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일본어 혹은 중국어를 직접 배워 그들의 시각을 알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가 ‘마주 보는 한일사’ 시리즈를 접하게 되었다. 겨우2권으로 이루어진 책 이야기를 하면서 서두가 너무 길었다. 그렇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마주 보는 한일사’는 간간히 봐왔던 기존의 역사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역사라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사실이란 다를 수가 없다. 다만 그것을 기록하고 해석하고 그러는 와중에 기록자의 의도에 따라 취사선택(取捨選擇)되어 해석되면서 같은 사실을 놓고도 서로 다른 입장이 되어 말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대표적인 것이 한국과 일본의 역사다. 이 책 ‘마주 보는 한일사’는 그렇게 큰 간극(間隙)이 벌어져 버린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함께 서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둘간의 닮음과 다름 그리고 그 둘의 교류의 모습을 차분한 목소리로 서술한다. 각각 선사시대와 고대 시대, 고려시대와 가마쿠라 막부 시대, 몽골제국 침략 시기, 조선시대와 에도 시대 그리고 조선의 탈춤과 민화와 에도 시대의 가부키와 우키요에를 통해 서로의 모습을 상대방의 시각에서 보여준다. 물론 아직 의견차가 큰 왜구를 비롯해 몇몇 사실에 대해서는 양국의 입장 차이를 명확히 알려주기도 한다. 이 책 ‘마주 보는 한일사’는 우리 역사라고 해서 무조건 ‘소유’하려 들 것이 아니라, 서로 교류하고 그로 인해 발전하는 것을 서로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주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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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북반구가 빙하로 덮여 있을 때에는 한반도에서 일본까지 걸어서 건너갈 수 있었다. 1만여 전부터 해수면이 현재와 같아졌다. 농사르 짓고, 움집을 세워 정착했다.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10세기경부터, 일본열도에서는 기원전 3세기경 청동기 문화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황하 유역에 세워진 중국 왕조는 점차 그영역을 확대해갔다.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진이 통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