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마침 시기에 알맞은 음악을 골라 보았다. 레퀴엠, 죽은 자를 위한 진혼곡이다. 바쁜 일상만이 내 삶인 줄 알고 살아가다 덜커덩 그 날이 오면 어쩔 것인가.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쓴 버나드 쇼우의 묘비명처럼 허망하게 떠나 보낼 내 육신을 생각하면 한편으론 측은하고 가련하다. 그렇다고 너무 한 쪽의 생각에 치우쳐 괴로운 시간을 보내기보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 매사 즐거움을 추구하며 생활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것이다. 예전과 별 다를 것없이 지내는 일상인데 올해처럼 사순시기를 되새기며 부활의 날을 기다리는 기분은 사뭇 다르다. 요사이 개인적으로 마음속 근심이 겹친다. 나를 돌아보고 돌볼 구석을 발견하면 꼭 돌봐야 할 무언의 신호로 알고 근신하듯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짜르트 말년에 미완으로 끝난 그의 레퀴엠을 들으면서 일말의 공포감이 들었다면 오늘 감상한 가브리엘 포레의 [레퀴엠]은 서정적이다. 일생동안 아름다운 프랑스 가곡을 작곡한 포레가 카톨릭 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사실은 일전의 리뷰에서 했다. 내친 김에 그의 종교적인 색채를 지닌 이 작품도 감상해보면 좋겠다. 올 3월의 수확이라면 당연 가브리엘 포레이다. 낭만주의 시대에 활동한 포레의 음악세계가 낭만적인 느낌보다는 시어가 주는 뉘앙스의 강렬함을 사랑한 상징주의 시인들의 시에서 그토록 멜랑꼬리한 멜로디가 탄생했다니, 어느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던 작품에 얽힌 깊은 이야기들! 포레의 음악에는 우리 정서에 익숙한 감동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가브리엘 포레 (1845-1924) 죽음에 대한 포레의 관점이 무척 흥미롭다. 1902년 그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썼던 내용을 보면, " 내가 보는 죽음은 이렇다네. 기쁨이 충만한 구원아닌가, 고통스러운 경험이라기보다는 무덤 저너머 행복이라는 곳을 향해 가는 열망이야. 그러하기에 [레퀴엠]속에 나의 이런 관점이 반영되었지." 포레의 관점에 입각하여 음악을 감상한다면 다른 레퀴엠에서 듣지 못한 몽환적인 선율을 듣게 될 것이다. 제1곡인 입당송, 키리에(Introit et Kyrie)는 죽은 자의 영원한 안식을 신에게 탄원하는 기도이며 키리에는 그리스도에게 연민을 구하는 기도이다. "주여, 영원한 안식을 그들에게 주옵소서" "천주여, 시온에서 찬가를 주에게 바치는 것은 마땅하나이다." 제2곡 봉헌문 (Offertoire) 신에게 희생을 바치고 죽은 자를 죄와 지옥에서 면하게 해 달라는 기원의 노래이다. 제3곡 상투스 (Sanctus) "거룩하시도다" 제4곡 피에 예수 (Pie Jesu) 재차 예수에게 죽은 자의 안식을 구원한다. 제5곡 신의 어린 양 (Agnus Dei)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신 천주의 어린 양" 제6곡 리베라 메 (Libera me) 죽은 자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바쳐지는 기도이다. 제7곡 천국에서 (In Paradisum) 관이 무덤에 실려가는 도중에 부르는 성가로 대개 레퀴엠 안에는 속하지 않는 부분이다.
레퀴엠 op. 48 악보 (1887-1890) 소프라노 키리 테 카나와의 음성처럼 가슴에 젖어드는 투명한 선율로 가득한 서정적인 레퀴엠이다. 항상 존경해온 소프라노로 모든 장점을 갖춘 카나와의 음성은 이 곡과 무척이나 어울린다. 오페라 무대에서는 들을 수 없는 경건함과 끊기지 않고 들리는 무한한 선율은 그레고리오 성가의 그것처럼 정화되고 말끔한 기분을 갖게 한다. 중세 종교 음악의 전통성이란 바로 이런 부분을 말함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영원한 안식을 얻으소서"로 끝을 맺는 이 레퀴엠은 꿈결처럼 평안하고 풍요롭다. 자꾸 죄를 언급해서 뭐하지만 기독교의 일반적 시각이 죄를 빼놓고는 전개가 안되는 일이니 레퀴엠의 진행 형식이 그러하다는 것을 감안하길 바란다. 레퀴엠 전곡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의 원본은 동화 "파랑새"의 작가 모리스 메테르링크의 희곡에서 왔다. 이 드라마를 기초로 음악을 만든 작곡가들이 네 명이 있는데, 그들은 바로 포레, 드뷔시, 쇤베르크, 시벨리우스이다. 포레는 이 네 명중 가장 먼저 이 드라마를 선점했던 작곡가로 이는 당대 여배우였던 패트릭 캠벨의 열정에 힘입은 바 크다.
마지막 장, 포레 자신의 장례식때 연주된 음악이다. Mort de Melisande / 연주가 별로네요. 이 음반 마지막 수록곡은 우리에게 아주 잘 알려진 [파반느]이다. 들으면 바로 알 수 있는 곡이니만큼 감상을 즐겨보자! (1887) 리뷰 제목에서 '벨에포크의 우아함'이란 바로 파반느를 두고 하는 말이다. Pavane pour orchestre avec choeur op.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