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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요즘 시대를 종교의 혼란, 이념의 혼란, 가치관의 혼란시대로 비교되는 용어를 많이 쓰고 있다.
또 그럴만한 사실적 요소들이 늘 시대를 건너가면서 상존하고 있음이다. 테러행위로 인한 미국인들의 또 다른 폭격성을 주시하면서 인간의 굴레를 어떻게 이해하고 또 어떻게 매듭을 풀어나가야 할지 곰곰히 생각나게 하는 구절들이 곳곳에 눈에 많이 띄게 한다.
어쩌면 그 일화들이 잠자리에서 엄마(?)들이 들려주시던 동화속이야기 같기도 하고, 듣는 이의 마음을 혼란스럽지 않고 차분하게 하는 작자의 따뜻한 염력(?)이 보이기까지 하다.
현세적 속세를 떠나 불일암에 거주하시면서도 일상의, 삶의 공식들은 현세를 사는 우리네보다 철저하게 꿰뚫고 계시는 스님의 명징한 문구를 보면서 요즘 종교의 탈을 쓴 비종교적인 사건들과 비종교적인 종교인(?)들의 일탈된 행동을 접하면서, 형식에 휘둘리지 않는 그런 참 종교인을 만들어낼수 있는 여건과 통양은 그저 평범한 우리들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미친다.
그런 사람들을 우린 손가락질을 해가며 비판만 할 줄 알았지 지극정성으로 키워나가는 풍토에는 좀 인색(?)하지 않았나 반성이 되기도 한다. 부처님의 전생설화들을 통해 인드라망처럼 얽혀있는 우리들 삶의 인연이야기를 하나하나 주섬주섬 버리지 않고 모아 따뜻한 가슴을 쓸어부어 만들어낸 법정스님의 인연이야기......
그 인연이야기가 좋은 인연을 또 만나 또 좋은 세상과 인연을 맺게 되어 인연의 과실이 튼튼하게 자랄 수 있는 퇴비를 만들었으면 하는데, 제위 독자들의 의향은 어떠하신지??? 불교도든, 기독교도든 종파를 떠나 -사랑이든 자비든- 저마다 참 삶을 유지하고 가꾸는 모습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인상깊은구절]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자로 세상을 재고, 인생을 재려 한다. 그래서 그 자가 표준인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남이 넘어다 볼 수 없는 우수의 뜰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곧 그 사람의 무게일 수도 있다. 육신의 비애, 육신이 우리들의 현존이기 때문에 온갖 모순과 갈등속에서 부침한다. 그렇다. 이 모순과 갈등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또한 본질적인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게 된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없다는 표현은 우리 안에 갈등과 모순이 있기 때문에 그걸 극복하려는 의지적인 노력을 통해 거듭 형성될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