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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에네이스는 본래 장편의 서사시로 그동안의 출판된 번역본은 무수한 주석이 달려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식겁하게 하곤 했지만,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이 책은 현대 소설처럼 서술형으로 번안되어 있고, 연대기 순으로 편집해 읽기가 무척 쉬웠다. 고대 희극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본 후에 번역본을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아에네이스는 인간과 비너스 사이에 태어난 반신반인으로 트로이인이다. 멸망하는 트로이에서 도망쳐 이탈리아 반도에 정착하게 되는 먼 여정을 그리고 있는데, 마치 오디세우스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오디세우스에서 등장하는 괴물들이 아에네이스의 여정 속에서도 비슷하게 등장하며, 오디세우스와 마찬가지로 신이 그의 여정에 난관을 제공하는 동시에 조력을 제공하기도 한다. 오디세우스와 구별되면서도 흥미로운 점은 그의 여정에 저승세계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베르길리우스의 저승에 대한 묘사는 기존의 그리스 신화에서 차용한 것이 대부분인 것 같지만, 단테의 신곡과 같은 후대의 작품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 같이 보인다. 베르길리우스가 묘사한 지옥은 오싹하지만, 동시에 매우 매혹적이었다. 마치 그가 신화속의 하데스를 만나 지옥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인물들이 더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아마도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가 극명한 대비를 이루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나도 아에네이스와 함께 황금가지의 마력을 통해 살아있는 몸으로 강을 건넜기 때문일지도. 고전작품이 흔히 가진 결점은 주인공이 무결점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반신반인의 완벽한 인간인 아에네이스 역시 삼국지의 유비와 마찬가지로 정이 가지 않는 인간이다. 오히려 변덕스러운 신들이 더욱 인간적이다. 신의 분노로부터 자신의 아들을 구하려하는 비너스나 자신의 모욕을 되갚으려 하는 헤라 덕분에 전지전능하게 창조된 갈등이 쉽게 해소되기도 하고 또다른 음모를 낳기도 하는데, 읽다보면 이처럼 조각난 각각의 이야기들을 꿰어 맞추는 베르길리우스의 재주에 감탄하게 된다. 한편,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대인의 갈등도 오늘을 사는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다만 그들은 설명할 수 없이 갑자기 닥친 불행을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신들을 통해 설명하고 있을 뿐. 아에네이스와 트로이의 후손들은 오늘날로 치면 전쟁 난민이다. 오늘날의 난민들은 그들을 도와줄 신도 없고, 눈앞에 닥친 불행을 합리화할 신화조차도 없다. 그들이 어떠한 문화적 충돌 없이 그들만의 땅을 찾아 정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전능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력한 종이 위에서 그 신을 끌어내려,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이 땅 위에 신화를 건설하면 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