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을 읽을 때 염두에 두는 부분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얼마나 원전에 충실했느냐. 둘은 얼마나 현재 우리의 감성에 맞느냐이다. 첫번째 부분은 독자 입장에서야 원전에 충실히 번역했다니까 그런 줄 믿을 수 밖에 없다. 어짜피 입소문이 중요한 것이다. 두 번째가 문제인데, 이 오디세이아는 거의 요즘 소설을 읽는 느낌을 준다. 원전의 과거 시제를 3인칭 현재 시제로 바꿨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가 보다. 요는 읽기 편하다는 것이다. 또 원전은 역순행적 구성을 취했는데, 이 책은 순행적 구성으로 재구성했다. 오디세이아는 어찌 어찌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작품이 되어 버렸다. 예를 들어 이러저러한 고전이 있는데 고전이기 때문에 한 번 읽어야 된다면 누가 읽겠는가. 고전은 현재에 살아 숨쉬어야 고전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디세이아는 진정한 고전이다. 여전히 수 많은 문학, 영화, 미술 등등등에서 재창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 역시 문제는 인간의 욕망과 신의 뜻이라는 운명의 대결이 문제다. 나도 등 너머로 들은 얘기지만, 그리스 인들은 인간의 헛된 욕망, 시기, 질투를 '정의'롭지 않은 것으로 보고 그 것을 넘어서는 중용을 추구했다고 한다. 그 욕망들이 중요이라는 역동적 균형을 깨트리나 보다. 허나, 인간의 욕망이 없었다면 우리는 오디세이아를 읽을 수 있었겠는가. 또 다시 역으로 생각한다면, 신의 벌이 없었다면 인간은 금기를 넘어설려는 욕망을 가졌겠는가. 미성년자 관람불가 비디오도 보지 말라니까 더 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표지가 조금 중딩스럽다. 요즘 폼 나는 표지도 많은데. 왜 그랬을까. 독일에서는 청소년들이 주로 읽는다니 거기에 맞췄는지. 반면, 책 크기가 읽기에 너무 딱 맞다. 이윤기 선생의 말대로 페넬로페의 정절은 춘향전을 떠올리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