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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감을 교차하게 만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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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라는 책 한권으로 단박에 나의 존경을 한몸에 받게 된(?) 신영복 선생에 대한 지인들의 헌정서 비슷한 책이다. 내가 보기엔 이 책은 신영복 선생과는 무관하다고 하는것이 이 책에 대한 정확한 표현인것같다. 이 책의 기획의도가 어떤 형태로던 신영복 선생을 칭찬하고 격려하기위한 책일테지만, 책에서 신영복 선생 본연의 모습에 대한 내용을 찾기가 쉽지않다. 수십명의
"만감을 교차하게 만든 책" 내용보기
이 책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 한권으로 단박에 나의 존경을 한몸에 받게 된(?) 신영복 선생에 대한 지인들의 헌정서 비슷한 책이다. 내가 보기엔 이 책은 신영복 선생과는 무관하다고 하는것이 이 책에 대한 정확한 표현인것같다. 이 책의 기획의도가 어떤 형태로던 신영복 선생을 칭찬하고 격려하기위한 책일테지만, 책에서 신영복 선생 본연의 모습에 대한 내용을 찾기가 쉽지않다. 수십명의 저자들이 구구절절히 신영복 선생의 일생과 인품과 사상과 그의 그릇됨을 말하고 있으나, 내 눈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지는 글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신영복 선생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책은 동창회 또는 친목계의 명부 처럼 변질되어 있는 것이다. 이 책 대부분은 신영복 선생에 대하여 현학적인 자기표현을 동원한 지나친 숭배와, 당대의 지식권력자(?)인 신영복 선생과의 인연을 강조함으로 무엇인가 누리려는 호가호위의 심리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은 구구절절히 청구회의 추억과 여름징역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지만 내가 받은 느낌은 상당수의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하여 신영복 선생이 만든 큰 수레에 무임승차 하려는 것 같았다. 구구절절히 신영복 선생의 20년 20일간의 징역에 대하여 말하고 안타까워 하고 있지만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삶에 감옥에 있는 <수인 신영복="">을 품고 살지 않은 사람들이라 생각되었다. 다들 제입맛대로의 삶을 잘 살아가다가 어느날 갑자기 되돌아온 신영복의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으려는 사람들로 보이는게 나의 지나친 비약인지 모르겠다. 이 책이 더더욱 날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은 ''역시 우리나라는 연줄이 아니면 안되는가?'' 하는 것과 ''역시 서울대를 나와야만 고개 쳐들고 사람입네 할수있는가?'' 하는 자괴감 이었다. 지연 학연으로 얽혀져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진 우리나라의 시대상황이 신영복 선생을 말하는 책에까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는 것이 날 안타깝게 만들었다. 이 불편한 책을 읽는데 무려 한달이 걸렸다. 11월 3일에 읽기 시작해서 12월 1일에서야 손에서 놓았다.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듯한 불편함 때문에 진득하니 읽어내지 못하고 몇번이나 중도에서 관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뭔지모를 의무감때문에 끝까지 읽기는 했으되 만감이 교차함은 어쩔수 없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을 통하여 느낀 신영복 선생에 대한 내 느낌이 맞다면 이 책을 다 읽고나면 신영복 선생 당신께서도 그리 편하게 내려놓을수있는 책은 아니리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자리에서 묵묵히 도리를 다하고 있는 신영복이라는 숲을 가꾸고 키워가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b***9 2006.12.04. 신고 공감 6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나무에서 숲으로, 존재에서 관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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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던 2006년 8월 25일, 신영복 선생님께서 정년퇴직을 하셨다. 1968년 여름부터 스무 해와 이틀을 감옥에서 생활하고 1988년 광복절 특사로 사회로 복귀한 이래 꼬박 열 여덟 해가 그간 흘렀다. 선생의 책을 손에 넣은 지 한 달, 선생의 인생에서 각기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장소에서 각기 다른 인연으로 만든 예순 명의 지인들이 선생의 정년퇴직을 기념하기 위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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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던 2006년 8월 25일, 신영복 선생님께서 정년퇴직을 하셨다. 1968년 여름부터 스무 해와 이틀을 감옥에서 생활하고 1988년 광복절 특사로 사회로 복귀한 이래 꼬박 열 여덟 해가 그간 흘렀다. 선생의 책을 손에 넣은 지 한 달, 선생의 인생에서 각기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장소에서 각기 다른 인연으로 만든 예순 명의 지인들이 선생의 정년퇴직을 기념하기 위해 한 편씩의 글을 써서 모았다. 내가 선생의 옥중 문집인 [감옥에서의 사색]을 접했을 때의 충격을 다시금 아로새기며 선생의 삶을 되짚어 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이 책 읽기 동안은 책을 거울 삼는 반추의 시간이었고, 존재를 너머 관계로 문을 여는 자기만의 감옥의 쇠사슬을 푸는 시간이었다. 여기서 이런 말을 해도 괜찮을 지 모르겠으나, 선생은 내 아버지의 지인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선생과 아버지는 선생이 통혁당 사건에 연루되기 직전 2년을 한 직장, 한 동네에서 앉은뱅이 탁자를 마주하고, 이문동 선생의 집에서 혹은 아버지의 집에서 책과 삶을 나누었다고 한다. 이나마 나도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라,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아버지가 기억하는 신영복 선생은 곱상하고 조용하면서도 활기차고, 다재다능하고, 늘 책을 가까이하는 분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호형호제하며 지낸 지 이 년이 흐른 어느 날, 아버지는 거짓말 같은 엄청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선생에 대한 사적인 기억을 갖고 있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게 된 계기도 이 책이 아니였으면 훗날로 미뤄졌을 것이다. 그렇게 이 책은 바짝 내 삶 속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나로서는 어느 글 하나 하나 무심결에 스쳐지나갈 수 없었다. 알록달록한 작은 포스트잇은 거의 모든 쪽 가장자리에 붙게 되고, 나의 사유는 나무 하나를 지나 다음 나무로, 또 다음 나무로 이행되는 동안, 거대한 숲에 들어서게 되었다. 나무 하나 하나를 스치면서 나는 그 결을 손끝으로 확인하고, 그 각별한 냄새를 들이키고, 나뭇 가지에 휘감기는 바람의 소리를 들으려 했기에, 큰 숲을 이룬 개별의 나무들을 뒤돌아 보면서 까마아득한 느낌이 들었고, 하나 하나의 나무보다는 그네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숲을 보며 또 다른 낯설음에 아득해졌다. 조정래 선생은 피천득, 법정 스님과 더불어 신영복 선생을 시대의 3대 수필가로 꼽으셨는데, 이 부분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신영복 선생의 위상을 살펴보았다. 동양의 고전에 넒고도 깊은 견해를 갖고 있고, 시서예에 능통하고, 목공이나 미장 같은 기술을 연마했고, 그 무엇보다 영어의 신세로 스무 해를 살았던 세월의 어우러졌으니, 단순히 미려한 문재만 있는 작가가 아니요, 삶과 유리된 ''설''만을 주사하는 논설가도 아니요, 육체의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 인첼리겐차도 아니니, 그야말로 어느 면모로보아도 조정래 선생이 꼽은 세 분들 중에서도 탁월한 쪽이 아닌가 조심히 판단해보게 된다. 너무나도 부끄럽게도 나는 선생이 감옥에서 보낸 스무 해가 부러웠다. 물론 누구나 격세의 시간동안 자기를 극복하고, 고통을 달게 감수하며 사색의 시간으로 승화할 수는 없음을 안다. 그 누구나가 될 수 있는 인물은 역사에 극소수에 그쳤기에 그들의 인생은 위대한 인간의 승리로 인구에 회자된다. 그러니 내 좁은 마음 씀씀이로 선생이 겪으신 인고의 시간마져 시샘하는 태도는, 그 분이 이룬 격리된 존재의 시간이 더불어 사는 관계의 시간으로 탈바꿈할 때까지의 진정한 성찰을 가벼이 여기는 셈이니, 나는 아직도 이 책을 보다 꼼꼼하게 읽으며 행간의 깊은 우물 속을 들여다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같은 물을 먹고도 뱀은 독을 만들지만, 꽃은 꿀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같은 사건을 당하고도 어떤 이는 세상의 이치를 깨치게 되고, 어떤 이는 세상을 원망하게 된다. 선생의 글을 본다. ''더불어 숲'' 획이 일정하지 않으면서도 끊이지 않고, 그리면서도 강직한 힘이 느껴지는 서체. 이른 두고 ''유배체''라고 유흥준 선생이 이름 붙은 대목은 정말 흥미롭다. 강진에 유배간 다산, 제주로 귀향간 추사. 그러고 보니 모두 격세된 처지에서 독특한 서풍을 일구어낸 이 땅의 서예가들이다. 선생의 그림 같은 글씨를 보고 있으면, 그 묵색을 바탕으로 선생의 인생관을 느끼게 된다. 모든 면에서 빼어난 선생의 재능이 마냥 부럽다가도, 재능에 의존에 글씨를 쓰는 사람은 그 재능이 도리어 함정이 되어 손끝의 교를 벗어나기 어렵지만, 필재가 없는 사람의 글씨는 온 몸으로 쓰기에 혼심의 힘과 정성이 배어 ''단련의 미''가 쟁쟁히 빛난다는 대목에서, 선생의 일군 여러 면에서의 빼어남이 그분의 천재가 아닌 단련의 결과요 미덕이란 점 앞에, 마냥 게으른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이는 또 어떤가? 가난한 어린아이과의 ''청구회'' 시절의 가슴 따뜻한 우정 이야기는 아동 문학을 하겠다고 욕심을 앞세워 아이보다는 글과 먼저 친해져버린 내 꼴과 비교해볼 때, 선생이야말로 자신의 주장인 ''관계론''을 몸소 실천하는 행동가임을 입증한다. 또한 살벌한 분위기 때문에 모스크바라고 불렸다던 대전 교도소 시절, 감옥 동료인 이승우씨의 회고담을 통해 볼 때 역시, 선생은 가장 낮은 곳에서도 가장 부족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스스로 낮춰 죄 지은 자들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감회 아닌 감화를 이루도록 하니, 그 분의 그릇은 과연 어느 정도의 크기란 말인가? 내친 김에 선생의 고향 밀양으로 시작된 [나무야 나무야]를 펼쳐보았다. 전주 교도소 시절의 이야기, 낮은 곳에서 비천한 중생과 하나 되는 미완의 미륵, 그리고 그 불상에 대한 이야기 대목에 이르러, 선생의 추운 시절에 대한 절절한 그림움이 사무친다. 어미가 아이를 등에 업고 있는 모습이라 해서 ''모악''이라 불렀다던 산세가 푸근한 모악산의 앞모습을 보지 못했다던 전주 교도소 시절, 선생은 당신의 어머니가 얼마나 그리웠을지 절절하다. 험준한 산을 넘어야 했고, 뜨거운 가시밭길을 헤쳐야 했던 선생의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게 해준 책, [신영복 함꼐 읽기]에서 나는 명시지로서 풀어놓지 않았어도 그 안에 제시된 암묵지로서의 선생의 주장과 교훈을 읽을 수 있었다. 이미 체득한 자가 풀어놓은 육화된 지침을.....
s*****s 2006.09.2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함께 읽음''을 넘어 ''함께 실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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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의 정년을 기념하는 이번 문집은 어느 개인의 우상 만들기가 아니라 살아있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훌륭하다. 자칫 잘못하다가 형식적인 수사로 사람을 현실과 괴리시켜 박제로 만들기 좋은 것이 문집일 지언데 이 문집은 그렇지 않다. 진솔한 삶의 내음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리하여 책을 다 읽은 소감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아, 신영복을 좋아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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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의 정년을 기념하는 이번 문집은 어느 개인의 우상 만들기가 아니라 살아있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훌륭하다. 자칫 잘못하다가 형식적인 수사로 사람을 현실과 괴리시켜 박제로 만들기 좋은 것이 문집일 지언데 이 문집은 그렇지 않다. 진솔한 삶의 내음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리하여 책을 다 읽은 소감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아, 신영복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신영복 냄새가 나는구나.” 이 책의 1부는 각양각색의 학자들이 나서 신영복에 관한 학제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개인적으로는 강준만, 조희연, 김동춘의 글이 가장 탁월한 것 같다. 신영복을 통해 지금의 한국 사회를 비추어보는 성찰적인 관점이 무엇보다 돋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신영복의 삶을 통해 현대사를 재구성해본 한홍구의 시도 역시 뛰어났고, 몇 몇 칼럼 수준의 글을 제외한 여타의 글들 역시 가히 논문 수준이라 할 만큼 공 들여 쓰인 듯싶다. 먼저 강준만은 신영복이 ‘보수-진보’로 대립각을 세운 증오에 바탕을 둔 정치의 속성에서 벗어난 있음을 높이 평가한다. 강준만의 표현에 의하면 신영복은 증오의 정치를 넘어서 화해와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출소 후 신영복은 보수와 진보로 나뉜 현실 정치 영역에서 특별히 누구의 편을 들지 않는 중립적 자세를 견지해왔다. “우리의 개혁과 진보는 투쟁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그래서 정치는 증오를 부추기는 ''적 만들기''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증오와 상호대립의 확대 재생산의 구조를 파악한 신영복은 이 구조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나 이는 정치적 영역에서의 도피가 아니라 그의 말마따나 “사회적 실천은 내포를 강화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외연을 확대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중요한 것은 이념이나 그가 서 있는 위치, 즉 좌, 우로 나뉜 파벌을 넘어서 공동의 가치를 모색하는 일에 있다. 이는 진보든 보수든 패거리 문화에 물들어 모든 것을 흑백으로 가르는 우리의 정치 문화가 그에게서 일면 본받아야 할 점이라 할 수 있다. 조희연은 신영복의 삶에서, 특히 옥중 경험을 토대로 ‘비정치’로 규정된 영역의 정치성을 논한다. (“현실의 정치는 언제나 정치의 출발점이 되는 사회(혹은 사회 구성원)와 괴리되어 존재한다. 또한 언제나 지배적 권력의 요구로 특정한 활동은 정치로 규정되고 특정한 활동은 비정치로 규정되어 배제된다. 이는 우리가 언제나 권력에 의해서 확정된 정치의 특정한 ''경계''를 전제로 하여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컨대 여성해방운동에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고 선언했을 때 이는 남성주의적 권력이 공사의 구분과 같은 형태로 설정된 경계를 허무는 것을 의미한다.”) 김동춘은 신영복의 통일관을 살피며, 백낙청, 강만길 등과 비교하며 노학자들의 견해의 추상성을 비판하고 있다. 현재의 정세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거기에서 대안을 찾기 보다는 이념적인 이야기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동춘의 이러한 지적은 필자가 보기에 신영복의 모든 사상을 관통하는 견해가 아닐까 싶다. 이규성은 “낭만주의가 행정적이고 구체적인 실천에는 무능하고 실패하지만, 억압이 있는 모든 곳에서 역으로 작동하는 생기와 활력을 고취하는 인간성의 한 측면에서 본다면 모든 반항과 방황을 가능하게 하는 추동력이 될 것이다.”라며 신영복의 관계론을 높이 평가하였으나 사실 그러한 낭만주의는 이규성이 명시했듯 잔인한 현실에서는 약점에 지나지 않는다. 신영복의 삶은 낭만주의의 약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성공적 사례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혼자만의 성공이 모든 낭만주의자의 성공은 아니다. 필자에게는 이러한 낭만주의의 난점이 이번 문집을 읽으며 가장 현저하게 인식되었다. 물론 그 까닭은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긴 하지만 이번 신영복 문집의 의미가 이 시대에 희귀한 어느 특정한 낭만주의자를 천연기념물처럼 보존하기 위함이 아니라면 낭만주의의 난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낭만주의적 정서는 일반적으로 현실의 알력을 견디지 못하고 예술이나 종교의 영역으로 도피하거나 추상성 속에 매몰되어 현실에서 멀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신영복의 경우는 하나의 예외라 할 수 있는데 2부에서 신영복과 직, 간접적인 인연을 공유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이는 뚜렷이 나타난다. 그들은 과거에 신영복과 같이 낭만적인 삶을 추구하던 (또는 추구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잠시 후 필자는 혹시 그것이 하나의 회고담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현실과 괴리된 하나의 이상적 논의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회의와 마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어떤 현실적 추동력 없이 그것은 우리의 제도(또는 사회구조)와는 무관한 도덕적 이상, 즉 한갓 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영복을 ‘함께 읽고’ 그의 낭만주의에 감탄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함께 읽는 것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발견하는 기쁨이었다면 함께 실천함은 대개 현실에서는 외롭고 힘겨운 투쟁이며 추한 세상과의 마주섬으로 나타날 것이다. 실천은 때때로 이론만큼 아름답진 않을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최소화함으로써 단지 갈등을 회피하려고만 할 뿐 관계 그 자체의 건설에는 관여하지 않으려는” 기존의 주변자적 태도에서 벗어나 “중요한 것은 ‘나아가면서 길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서 있는 곳으로부터 길을 만들기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나마도 동시대의 평범한 사람들과 더불어 만들어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승인하는 것이라 믿습니다.”라는 말을 삶 속에서 체화하고 긍정해내기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신영복과 함께 할 우리의 실천은 당위적이리라. “우리의 이 모든 괴로움 속에서 태어난 네 자식은 우리가 그것을 겪었었다는 이유로써 구원받을 미래인이 아니겠는가”라는 김승옥의 어느 구절처럼 우리들의 힘겨운 낭만적 실천이 미래인들에게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낭만적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에.
b********t 2006.09.1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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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함께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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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을 잘 아는 사람들과, 신영복 선생과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신영복 선생을 거울로 삼고 닮아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 그래서 그들의 인생이 이전보다 풍요로워지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글을 모아 책을 출간했으니, 그 책이 바로 ‘신영복 함께 읽기’이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진다. 1부는 ‘신영복을 읽는다’로 신영복 선생이 옥중에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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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을 잘 아는 사람들과, 신영복 선생과 오랫동안 함께 해 온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신영복 선생을 거울로 삼고 닮아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 그래서 그들의 인생이 이전보다 풍요로워지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글을 모아 책을 출간했으니, 그 책이 바로 신영복 함께 읽기이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진다. 1부는 신영복을 읽는다신영복 선생이 옥중에서 가족에게 보낸 엽서를 모아 발간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국내외를 여행하면서 쓰신 더불어 숲, 명 강의로 명성이 드높았던 동양고전을 재해석한 강의 등의 책에 대한 이야기와 신영복 선생이 통혁당 사건으로 만 20 20일을 감옥에서 지내게 된 배경, 그리고 그의 사상의 줄기를 그의 동료교수들과 지인들에 의해서 다양한 목소리로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의 2부는 신영복을 말한다로 등장인물과 필진이 매우 다양하다. 감옥에서 동고동락한 옥방동료와 젊은 시절 운동을 하다 군에 들어가 교도소로 배치 받으면서 인연을 갖게 된 교도대원, 서울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던 시절 그에게 과외공부를 배웠던 제자, 감옥에서 출소한 뒤 성공회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을 때 그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 그리고 친구와 더불어 숲 모임의 회원, 그의 생질에 이르기까지 필진들의 기억 속에 펼쳐지는 따뜻하고 가슴 뭉클한 신영복 선생과의 사연들이 감동적인 이야기로 펼쳐진다.

 

신영복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신영복 선생은 한 시대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고 살아남아 우리 모두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하는 사람이다. 그의 지인들이 말하는 그에 대한 몇 줄의 이야기가 그에 대한 함축적인 면모를 가장 잘 보여줄 것이다.

 

그를 말할 수 없다. 굳이 하라면 집 앞을 돌아 흐르는 저 내린천의 물을 닮은 사람이라고 할까.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쉼 없이 찾아 흐르는, 그러다 강을 만나면 강이 되고 바다를 만나면 바다가 되는, 그런 사람. 신남휴(개인산방 주인, 대학후배)

 

그를 말한다는 것은 나를 말하는 것이다. 그는 나를 들여다보지않고는 한 단어도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사람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고요한 언어만으로 세상을 긴장시키는 사람이다. 그와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한다. 허문영(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어쩌면 이렇게 책과 사람이 똑같을 수 있는가? 나는 그때 사상과 존재가 일치하는 드문 예를 보았다. (중략) 신영복 선생과 함께 걷는다는 것,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것, 같은 곳을 디디고 서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축복이고 기쁨이다. 노회찬(민주노동당 국회의원)

 

감옥 안에서든 바깥에서든 울창한 사람들의 숲을 일궈온 선생님은 루쉰뿐만아니라,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와도 닮았습니다. (중략)1989 4월 이래로 십 수년간 잊을 수 없는 인격을 지켜볼 수 있었던 행운을 가졌던 제가 보기에, 선생님은 부피에처럼 척박한 땅에 고독하게 나무를 심는대신, 이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면서 더디지만 여럿이 함께 사람들의 숲을 일궈오신 것 같습니다. 이승혁(더불어 숲 회원)

 

신 선생은 없는 것처럼  보이나 우리 안에 울림으로 다가와 있고, 조용하지만 뜨거운 사랑으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그가 있어 세상은 조금 따뜻하고, 그래서 우리도 조금은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김정남(전 대통령 교문사회 수석비서관)

 

신영복의 글은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울림이 있다.

500년전 율곡 선생이 글이란 모름지기 좋은 울림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는데 신영복 선생의 글에는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울림이 있다. 그의 글은 진실을 품고 있으며, 형식적인 면에서도 단아하고 짧지만, 그 속에 놀라운 지혜를 내장하고 있다. 굳이 누구를 깨우치거나 계몽하려 하지 않지만, 스스로 글이 마음에 와 닿는 그런 글이다. 굳이 그의 글을 세세하게 예를 들지 않더라도 당대의 지식인들의 그의 글에 대한 극찬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신영복의 글은 부드럽고 따뜻하고 너그럽고 온화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역사와 사회와 인간이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한 냉철하고 준엄한 비판의 칼이 들어 있다.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삶을 배우고 또 문장의 극치에 도달한 아름다움을 배우는 것이다. 조정래

 

그의 글은 인생, 자연, 사물, 우리 일상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많은 깨우침을 주기 때문에, 한 번 읽고 마는 글이 아니라 항상 삶의 지침서로서 되새김하고 싶은 그런 소중한 글이다. 이해인

 

봉함엽서 한 장 분량에 쏟아져 있는 글을 읽고 나면, 바로 다음 글로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밀도 있고 감동이 있는 글들이다. 어떤 때는 책장을 편 채로 가슴에 대고 멍하니 생각에 빠진 적도 있다. 책 한 권을 읽는데 두 달이나 걸렸다 유홍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출간 이후 오늘날까지 숱한 찬사를 받아왔다. 정양모 신부님은 이 책이 차라리 우리 시대의 축복이라고 했고, 어떤이는 우리나라의 루쉰과 같은 분이라고 했으며, 소설가 이호철 선생은 파스칼의 팡세, 몽테뉴의 수상록, 심지어는 공자의 논어에 까지 비기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수상록이라고 단언하였다.

 

신영복 선생에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청춘을 감옥에서 보내신 것이 억울하지도 않으시냐 고 물어보면 선생은 말씀하신다. 감옥은 또 하나의 대학이었다, 그는 감옥에서 관계론의 철학과, 관계론의 미학을 가지고 돌아왔다. 인간은 스스로는 존재할 수 없는, 나 아닌 다른 것과의 관계성의 총체가 인간 생명의 본질을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관계론적 패러다임이야말로 물신성과 소외를 극복하고 인간적인 사회를 열어갈 수 있는 사상적 지반임을 강조하신다.

 

c****s 2011.03.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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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평생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움을 얻는다.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 선배들은 말할 것도 없고, 늘상 옆에서 티격태격하는 친구들과 사뭇 어리게만 느껴지는 후배 녀석들도 실은 배움을 전해주는 귀중한 스승들이다.  그리고 얼굴 한 번 마주친 적 없고 살 한번 부대낀 적 없는 사람도 때론 오히려 더 큰 깨달음과 지혜를 안겨주기도 한다. 신영복 선생님은 내게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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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평생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움을 얻는다.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 선배들은 말할 것도 없고, 늘상 옆에서 티격태격하는 친구들과 사뭇 어리게만 느껴지는 후배 녀석들도 실은 배움을 전해주는 귀중한 스승들이다.  그리고 얼굴 한 번 마주친 적 없고 살 한번 부대낀 적 없는 사람도 때론 오히려 더 큰 깨달음과 지혜를 안겨주기도 한다. 신영복 선생님은 내게 바로 그런 사람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1998년 여름, 친구 집에 우연히 들렀다가 마주치게 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삶에 대해 처음으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충격은 '감옥...'이전에도 없었고, 이후로 읽은 많은 서적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 이후에도 아직까지는 없었다. 사람이 합당한 이유 없이 20년 동안이나 감옥에서 (그것도 대부분은 우리 고등학교 바로 옆에 위치했었던 대전 중촌동 교도소에서) 살아야 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와중에서도 치열하게 자신을 가다듬고 내적인 성찰의 기회를 가져져왔다는 것은 말로는 더 설명못할 감동과 부끄러움을 가슴속에 안겨주었다.


  그 이후, 선생의 저서인 '더불어 숲', '나무야 나무야', '강의' 등을 꾸준히 읽어오며 그리고 그에 대한 사회의 반응을 눈여겨보면서 나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더불어 숲'이라는 모임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었고, 이렇게 선생의 정년퇴임을 맞아 '여럿이 함께 쓴' 이 책이 나온 것이 또다시 신영복이라는 존재가 대한민국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웅변하고 있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처음으로 읽어내려갔던 지 벌써 9년이 흘렀다. 그 9년간, 수도 없을 만큼 내 인생의 방향타를 처음으로 제시해주었던 그 책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살아왔다. 앞으로 살아갈 내 인생 속에서 또 얼마만큼의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면 또다시 아득해지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훨씬 험난한 앞길을 살아갔던 한 인생 선배의 발자취를 다시 되뇌이면서 그와 같이 누구보다도 인문학적인 사회과학자, 지식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p.s. 이제부터 술은 무조건 '처음처럼' 이다. ^^

b*****l 2007.05.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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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님 함께 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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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건 대학교때 선배가 건네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부터였습니다. 많은 분들도 저와 비슷한 시기였을 것 같네요. 그때 첫 느낌은 자유가 억압된 구속의 공간, 감옥소에서 인간의 본능에 사로잡히지 않고 저런 마음,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과 그 깊이에 대한 경외심이었습니다. 사회에 대한 분노, 억울함,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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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건 대학교때 선배가 건네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부터였습니다. 많은 분들도 저와 비슷한 시기였을 것 같네요. 그때 첫 느낌은 자유가 억압된 구속의 공간, 감옥소에서 인간의 본능에 사로잡히지 않고 저런 마음,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과 그 깊이에 대한 경외심이었습니다. 사회에 대한 분노, 억울함,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는 희망 한자락 없는 그 공간에서 선생님은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을까요.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그 후 다시 만난 ''강의''에서 동양사상에 대한 넓고 깊은 학식에 다시 한번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정년퇴임이라니... 단지 교수라는 직책에서 물러나는 것일뿐, 시대의 선생님께는 은퇴라는 게 없으시겠지만... 그래도 좀 아쉽네요. ''신영복 함께 읽기''를 읽으면서 ''관계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를 규정하는 것은 내가 맺고 있는 관계, 내 주변의 사람들이라는 명료하지만 확실한 사상이 그동안 머리를 갸웃하게 했던 여러 의문점들을 해결하게 해주었습니다. 대학교때 농활을 가서느꼈던 땀의 가치를 지금 직장인이 되어서는 왜 절실히 느끼지 못하는지. 내가 속한 집단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도 등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전, 선생님의 글씨 ''처음처럼''이 소주 브랜드로 차용되는 것을 보면서, 절대 凡人이 아니면서도 凡人의 세계에 녹아드실 수 있는, 아니 항상 우리들과 함께 숨쉬고 생활하는, 피곤한 일과를 마치고 지인들과 한잔 하는 주말 저녁 소주처럼 따뜻한 선생님의 사상을 여러 각도에서 재조망할 수 있는 훈훈한 시간이었습니다. 한문장 한문장이 소중하게 와닿는 바이블 같은 책.. 이 책은 제 서재에 꽂아두는 것보다는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분들과 함께 나누어 읽는게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책 머리에 메모를 써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l******4 2006.09.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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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사는 사람, 신영복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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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다른 얘기 할 필요 없습니다. 너무도 잘 알려진 이름, 신영복을 앞에 두고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전 개인적으로 쿠바에 체 게바라가 있다면 우리에겐 신영복이 있지 않느냐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질곡을 겪으면서도 맑은 정신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둘이 비슷하고, 현대사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을 세우고 이끈 장본인들인 점에서 그들은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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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다른 얘기 할 필요 없습니다. 너무도 잘 알려진 이름, 신영복을 앞에 두고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전 개인적으로 쿠바에 체 게바라가 있다면 우리에겐 신영복이 있지 않느냐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질곡을 겪으면서도 맑은 정신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둘이 비슷하고, 현대사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을 세우고 이끈 장본인들인 점에서 그들은 다르지 않습니다. 변혁기에 자기 색깔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우린 지난 세월 그와 같은 시기에 변절한 수많은 인사들을 보았습니다. 다들 절박한 이유가 있었겠지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죽 했으면 그러했겠느냐고 동정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된 자에게 있어 그것보다 무책임한 일이 어디 있을까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의 사상과 정신이 전부 인양 좇았던 이들의 상실감과 좌절을, 그리고 막다른 곳에 이르렀다고 생각했을 정말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아니라면 침묵해야 옳았습니다. 변절의 이유를 늘어놓기 전에 사죄해야 옳았습니다. 자기 성찰의 순간에 추종자 전원을 뒤에 세우고 자기 목숨을 부지하고자 하는 것은 선생이 할 짓이 아닙니다. 그러하기에 그렇지 않은 인사와 자기성찰로 스스로를 낮추는 인물이 더없이 높아 보이는 것입니다. 같은 이유로 오늘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이들이 이렇듯 선생의 퇴임을 기념하는 책을 상찬하고 있는 것이리라 믿습니다. 그렇다고 의례적인 퇴임문집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그런 것들이야 과거에 해오던 대로 몇몇 제자들이 모여 격식에 맞춰 내는 것입니다. 이 책엔 글쓴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로 그럴 것이 그들 모두 선생에게서 학문적, 정신적 세례를 오롯이 받은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사사(師事)였건, 선생이 낸 책을 통해서였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선생이 존재하는 이유 하나 만으로도 이 시대가 짠맛을 잃지 않았다고 믿는 이들이 쓰고 엮은 책이기에 책에 실린 어느 글 하나 절절함이 묻어나지 않은 글이란 없습니다. 주루룩 읽어내지 못할 만큼 행간의 무게가 만만치 않습니다. 두고두고 읽어야 할 책, 전 이 책을 그런 책의 목록 위에 올려놓고자 합니다. 한 인간의 사상과 정신이 어찌 한 권의 책으로 묶일 수 있겠습니까마는 이 한 권이 주는 시사는 선생이 그랬듯이 처음처럼 사는 삶의 궤적을 이 책 또한 동일하게 밟을 것이라는 기대에 맞닿아 있습니다. 이 책을 시작으로 선생을 조명하는 책들이 쏟아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거대담론을 쏟아내는 이 시에 올바른 정신을 소유하고 때늦지 않은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거짓 선지자와 선생이 창궐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올곧은 지주(支柱)가 필요한 법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우리의 몫입니다. 과거엔 지주로부터 생산된 카리스마에 의존했다면 이젠 민초로부터 기인한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할 때입니다. 나무가 많아져 숲을 이루듯 이 땅 위의 수많은 민초들이 시대정신을 일깨우고 세우는 일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격변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선생은 다른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굳이 이름 붙이자면 인간해방적 또는 문명성찰적 진보주의입니다. 민족주의적 진보주의와 세계주의적 진보주의가 지닌 절반의 성공을 장차 갈무리할 사상입니다. 사람이 중심에 서면서도 예의 고난 앞에 현실도피적으로 흐르지 않는 강고한 기반 위에 세워진 사상적 기조를 우린 이미 선생이 실천한 삶을 통해 보았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나이에서 징역살이 20년을 빼면 아직도 40대’라는 선생의 너스레처럼 그 40대가 헛것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면 이제 시작인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도 선생이 즐겨 쓰는 말처럼 ‘처음처럼’ 시작하면 될 일일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 사람이 주인 되는 참 세상을 열어 가는 일, 과연 이제 시작일 것입니다.
k*****9 2006.09.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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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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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신영복선생과 같이 하는 이 세대의 양심 63인이 같이 쓴 ''신영복학''에 대한 첫 기념비적 저서이다. 신영복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엽서''는 사상적 경계를 넘어 격변의 시대를 살아낸 지식인의 성찰의 기록이었으며, 양심을 가진 자라면 그 누구도 그 20년20일의 기록의 무게에 반성과 미래에 대한 수정을 가할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 기록은 약관 20대 후반의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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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신영복선생과 같이 하는 이 세대의 양심 63인이 같이 쓴 ''신영복학''에 대한 첫 기념비적 저서이다. 신영복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엽서''는 사상적 경계를 넘어 격변의 시대를 살아낸 지식인의 성찰의 기록이었으며, 양심을 가진 자라면 그 누구도 그 20년20일의 기록의 무게에 반성과 미래에 대한 수정을 가할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 기록은 약관 20대 후반의 청년이 죽음의 문턱에서 거대한 정권의 증오 속에서 시작된 기록이었고 강의에서 해설하신 "실천 없는 이론은 어둡고 이론 없는 실천은 위태하다."는 바로 그 실천의 기록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열악한 상황에서 그 오랜 시간 동안, 최소한의 자아를 지키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그 고립 속에서 존재를 포기하기는커녕 철학을 고양하고 사상을 드높이며 예술까지 수련할 수 있었을까. 단언컨대 그의 기록들과 이 책은 이 시대가 낳은 고전 중의 고전이 이미 되었고, 그의 사상에 대한 연구는 한 갈래 넓고 확고한 사상의 조류가 될 것으로 본다.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으며 중간 중간 삽입된 ''엽서''들을 보며 그 좁은 공간에 압축하여 내보낸 농밀한 이야기들에 어찌나 압도되었던지, 그 선생의 글씨체가 엽서체로 나온다는 소식에 내 일처럼 좋아하고 화제로 삼고 다닌 적도, 그리고 영인본 엽서를 받아즐고 선생의 그 모든 엽서들을 다시 읽으며 뭉클한 가슴에 이 책과 함께 한 저 벅찬 나날들, 내 청춘의 기억들을 되돌아볼 수 밖에 없었다. 선생이 겪은 고뇌와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더 가열찬 삶의 투쟁은 언제나 내 삶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지금은 선생의 글씨와 그림을 더 많이 보고 있다. 유홍준선생의 글처럼,한 시대를 지성으로 살다가 귀양살이나 감옥살이로 생의 창조적 열정을 잠재워야만 했던 인생들이 그 아픔의 세월 속에 자기를 절제하고 자기를 감추고 자기를 단련시키는 과정이란, 마치 대합조개가 진주를 닦아내는 그런 아픔의 결실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원교, 다산, 추사와 같이 선생의 옥중서체와 서화도 이제 세월의 풍진과 함께 고전의 반열에 오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YES마니아 : 골드 h****o 2006.09.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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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이룬 사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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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님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문인 중의 한 분이십니다. 그의 글을 사랑하고, 또 그의 글과 일치하는 그 분의 삶을 존경합니다. 물론 그 분을 한번도 뵌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글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숨김 없이 내보이는 그 진실과 순수성에서 저는 그 분의 성품을 보는 듯 했습니다. 저의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읽었던 은 그분의 담담하고 잔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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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님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문인 중의 한 분이십니다. 그의 글을 사랑하고, 또 그의 글과 일치하는 그 분의 삶을 존경합니다. 물론 그 분을 한번도 뵌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글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숨김 없이 내보이는 그 진실과 순수성에서 저는 그 분의 성품을 보는 듯 했습니다. 저의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읽었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그분의 담담하고 잔잔한 문체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그 어떤 글보다도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이었던 것은 20년 동안을 신체의 자유없이 닫힌 공간에서 억눌리며 살았을 그의 외부 상황과는 상관없는, 그의 단아하고 깊은 정신세계와 따뜻한 마음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살아온 그 분의 글이 이처럼 따뜻하다는 것이 놀랍고 또 놀라웠습니다. 그런데 <신영복 함께읽기="">를 통해 그 분의 모습을 조금은 알게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느꼈던 그 분의 글과 삶의 모습이 일치할 거라는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이 책의 2부속에서 신영복 선생님을 이야기 하는 분들은 모두들 행복하고 달뜬 목소리로 자신의 글들을 써내려가고 있는 듯 합니다. 써달래서 억지로 쓰는 것이 아닌 그 분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렇게 써야 잘 쓸까. 저렇게 써야 잘 쓸까. 고민하고 애써 고른 단어들을 옮겨 놓은 것 같은 글들입니다. 대학동기가 말씀하시는 신영복 선생님은 너무나 재미있는 분입니다. 흔히 각 과마다 한 명씩있는 분위기 메이커십니다. 학문적 깊이와는 정반대의(?) 망가짐도 서슴치 않는 그 분의 모습을 보노라면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려는 배려와 삶을 즐길줄 아는 분의 여유와 흥을 느끼게 됩니다. 어린시절 신영복님이 입주과외를 했던 집의 예쁜 아이, 영복오빠를 그리는 심실님의 글에서는 그가 어느 누구에게나 똑같이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공부만 했던 모범생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마음을 써주고 함께 시간을 나누었던 진정한 ''사람''이었습니다. 대전교도소에서 교도대원과 함께 밤을 새주며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분의 모습은 위로 받아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케 합니다. 나는 당연히 위로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었던 그 생각을 부끄럽게 하는 분입니다. 그리고 회식자리에서 멋지게 <에레나가 된="" 순이="">를 부르는 그 분의 또다른 모습은 ''심지어 유치할 줄도 아는 분''이라는 것을,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사실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런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됩니다. 이 모든 글들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저에게는 같은 시대에 태어나 그 분의 글을 만난 것이, 그분이 가지신 따뜻한 마음을 나눠 받고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쁩니다. 한가지 바라는 것은 앞으로도 신영복 선생님의 소중한 글들을 더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많지 않아도... 그 분의 샘물같이 맑고 바다같이 깊은 글들을 계속 만나고 싶습니다.
j******1 2006.09.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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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빨아들이는 마력을 지닌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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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느닷없이 다가온 실존적 만남이 삶의 지향을 바꿔놓는 일이 더러 있습니다. 나에게도 그러한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접하게 된 행운도 그중 하나일 것입니다. 서점 진열대에 놓여있던 라는 책을 별 뜻 없이 집어들어 눈길 가는 대로 몇 군데 읽어보다가 그만 저릿하게 감전된 듯 한동안 마음결을 추스를 수 없게된 경험을 한 다음부터 신 선생님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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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느닷없이 다가온 실존적 만남이 삶의 지향을 바꿔놓는 일이 더러 있습니다. 나에게도 그러한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접하게 된 행운도 그중 하나일 것입니다. 서점 진열대에 놓여있던 <나무야 나무야="">라는 책을 별 뜻 없이 집어들어 눈길 가는 대로 몇 군데 읽어보다가 그만 저릿하게 감전된 듯 한동안 마음결을 추스를 수 없게된 경험을 한 다음부터 신 선생님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의 자장 안으로 빨려들어 그 분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부단히 스스로를 살피며 세계와 역사에 대해서도 나름의 수준에서 숙고하는 습관을 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나무야 나무야="">에 매료된 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강의>에 이르기까지 신 선생님의 글이란 글에는 흠뻑 빠져 무작정 읽었었는데 어느 정도 냉정해진 다음에야 신 선생님의 글이 왜 이토록 사람을 빨아들이는 마력을 지니고 있는지 비로소 곰곰이 따져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빼어난 글 솜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는데, 이는 신통한 답이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신 선생님은 분명 대단한 필력을 지닌 분이긴 하지만 단순히 문장력 하나로 뭇사람들의 마음을 흡인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충분한 이유라고 보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또 하나 떠올려본 것은 선생님의 파란만장한 삶의 곡절이 흥미를 유발한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또한 합당한 이유가 되지 못함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굴곡 많았던 우리 근, 현대사에서 선생님 못지 않게 역사의 격랑에 휘말려 좌충우돌하셨던 분들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여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 <신영복 함께="" 읽기="">의 제2부 "신영복을 말한다"를 읽다가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따스하고 여린 심성이 촉촉하게 배어있는 선생님의 삶의 모습이 글 속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여 그런 심성에서 우러나온 곡진한 행동이 글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었기에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아보고 그 울림에 공명하였던 것입니다. 따뜻하고 여린 심성을 지니셨던 선생님은 어느 누구하나 소중하게 여기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눈높이를 맞추셨습니다. 성공회대의 사제 후보생들에게는 사제의 세계로 입문하는 동행이 되어 주었고, 교사들에게는 선배 교사가 되어 교육에 대해 같이 속살거렸으며 입주 과외 집의 유치원 아이에게는 딱 그 수준의 소꿉놀이 친구가 되어주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감방에서 무식하고 험상궂은 도둑놈들에게는 그들의 하소연을 살갑게 들어주는 동네 형님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마음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진솔하게 들려주는 글이었으니 어찌 따뜻한 가슴을 아는 이들에게 큰 울림이 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 선생님의 글을 제대로 접하게 되면 누구든지 가슴 서늘해지면서 그간 지녀왔던 사고체계의 작동이 중지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후로는 홀로 결단하여 선생님이 삶으로 보여주었고 글로 간곡하게 일깨웠던 세계로 스스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내밀한 고백들, 간절한 영혼의 회복을 보여준 많은 얘기들이 제2부 "신영복을 말한다"에 빼곡하게 들어있었습니다. 하여 선생님의 삶의 모습과 그것이 오롯이 배어있는 글은 우리들 냉랭하게 굳어버린 심성을, 일그러진 모습을 또렷하게 비쳐주는 거울이었습니다. 내면의 미성숙과 탐욕과 어리석음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하는 감어인(鑒於人)이었던 것입니다. 무감어수(無鑒於水) 감어인(鑒於人)의 그 인(人)이 바로 신영복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런 선생님이 꿈꾸는 더불어 숲의 세계, 선량한 사람들의 땀 냄새가 솔향기와 섞이고 솔바람 은은하게 날리는 곳으로 언제까지나 함께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인상깊은구절]
그의 글을 보고 여전히 내 머리가 아니라 내 몸이 반응할 때, 그 이상(사회주의)은 내가 그것으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져왔지만 한번도 잊은 적 없는, 허약하지만 오래된 소망이자 허기 같은 것이다.--- 그를 말한다는 것은 나를 말하는 것이다. 그는 나를 들여다보지 않고는 한 단어도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사람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고요한 언어만으로 세상을 긴장시키는 사람이다. 그와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한다.
a*****7 2006.09.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