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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은 정말 사소할까 집안에 잡동사니를 쌓아두고 생전 버릴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청소의 달인들은 이렇게 조언합니다. “상자를 몇 개 마련하고 물건들을 나누어 넣으십시오. 상자 하나는 매일 쓰는 물건이나 반드시 필요한 것을 넣고, 다른 상자에는 그리 필요하지는 않지만 꼭 지녀야 할 물건을, 또 다른 상자에는 몇 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을 넣으십시오.” 이렇게 물건을 구분해 넣으면 어느 사이 집안은 말끔하게 청소가 되고 사람은 물건에 치이지 않고 홀가분하게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꼭 물건만 이렇게 정리할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가득 담겨 있는, 또는 우리 사회에 팽배하게 돌아다니거나 흘러넘치고 있는 각종 개념들에 대해서도 한번 이렇게 정리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그러니까 상자 세 개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상자에는 우리가 평소 진지하게 생각하는 내용(개념)들을 담는 것입니다. 이 상자에 담긴 것들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그 자체로 우리의 삶이 한층 가치 있고 향기로워지게 됩니다. 이 상자에는 어떤 것들이 담길까요? 관용이나 자비, 사랑이나 행복, 용기와 같은 것이 담길지도 모릅니다. 심지어는 죽음이나 거짓말, 배반, 비난과 같은 항목들도 우리의 일상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들인지라 이 상자에 담아놓고 왜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지, 거짓말은 왜 하며, 왜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지, 배반과 비난이 정의로울 수 있는지 등등에 대해 고민한다면 우리 사는 모습이 참 성숙해질 것만 같습니다. 첫 번째 상자에는 ‘성찰해야 할 것들’이라는 이름표를 붙여도 좋겠습니다.
두 번째 상자에는 무얼 담을까요? 더 이상 인간의 삶과 사회에 가치를 지니지 않고 오히려 해만 끼치는 것들을 담으면 어떨까 합니다. 예를 들면 증오나 보복, 무절제나 빈곤, 인종차별이나 동물차별과 같은 항목을 담는 겁니다. 어쩌면 이 상자에 가장 많은 항목이 들어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상자에는 ‘버려야 할 것들’이라는 이름표를 붙여보기로 하겠습니다.
세 번째 상자에는 우리의 삶을 현실적으로 풍요롭게 해주고 여유롭게 가꿔주는 항목들을 담아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교육, 소질, 예술, 건강, 여가, 독서, 여행, 사생활과 가족, 선물과 같은 것들입니다. 이 상자에 들어가는 항목이 풍부할수록 당신은 참 행복한 사람임을 입증할 것입니다.
<미덕과 악덕에 관한 철학사전>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세상에 떠도는 무수한 개념(덕목)들을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누어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나를 기절초풍시킨 것은 두 번째 ‘버려야 할 것들’ 속에 그리스도교, 죄, 회개, 신앙, 기적, 신성모독이 들어갔다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그리스도교의 양분으로 지금껏 지탱해온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사람일 텐데 이런 종교에 대한 그의 비난은 신랄하다 못해 두렵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의 따끔한 지적을 보면 인류 역사에서 종교란 것이 얼마나 무지하고 잔인하게 만행을 저질러 왔고 멀쩡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었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게다가 지금껏 자행해온 만행도 모자라서 지금도 인간의 삶에 대해 함부로 정의 내리고 제멋대로 가치를 재고 간섭하려고 한다면서 호통을 칩니다.
‘좀 심한 거 아냐? 그래도 인류역사에 미친 종교의 긍정적인 면도 있는데 어쩌면 이렇게 전적으로 부정할 수가 있지?’하면서도 나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저자의 신랄한 비판이 언젠가는 불교 특히 한국불교에 대해서도 내려질 수 있으리라는 예감에 강하게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문득 저자의 견해에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만약 상자의 이름표를 한국불교에서 영원히 성찰해야 할 것들, 한국불교에서 당장 버려야 할 것들, 한국불교에서 두고두고 아껴야 할 것들 이라고 다시 붙인다면, 당장 버려야 할 것들에는 어쩌면 불사하느라 진 큰 빚을 갚기 위해, 돈벌이를 위해 천도재를 올리는 행태가 가장 먼저 들어가지 않을까 합니다.
종교에 대한 저자의 무시무시한 비판과 경고를 읽어가자니 씁쓸한 심경을 달랠 길이 없습니다.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한 것을 다 읽고 나서 이윽고 만나는 아껴야할 것들 항목에서는 그리 내 마음을 확 끌어당기는 내용이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마지막에 다소곳하니 자리한 ‘사소한 것’이라는 항목은 독자들의 씁쓸함을 달래주려는 저자의 배려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고마웠습니다.
우리가 정말 아껴야 할 것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사소한 것’도 꼭 아껴야 할 것들이라고 합니다. “다양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작은 것은 잘 보이지 않게 마련”인데 “작고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볼 줄 아는 사람은 세계의 본질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역사의 본질은 바로 ‘사소한 것’이라고 대번에 정의 내려 버립니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고 덤비는 것처럼 허망한 일도 없을 터인데 그렇다면 한번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사소한 것이 정말 사소한 것일까 라고요. 그 사소한 것 속에 어쩌면 우리 인간들의 일상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우리의 미래까지도 투영되는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영국 역사가 칼라일의 말을 인용합니다. “가장 사소한 것이 무한을 들여다보는 창”이라고 말입니다.
하찮은 단어 하나, 옆 사람의 무심한 몸짓 하나에 좀 예민하게 반응하곤 하는 나는 이제 위안을 받습니다. 사소한 것은 절대로 사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화엄경에서도 이렇게 누누이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티끌 하나 속에 온 우주가 담겨 있다”고 말입니다.
판도라 상자 속에서 마지막에 등장한 ‘희망’이란 녀석이 인류를 구제하였듯 ‘사소한 것’을 돌아보는 모습에서 사람의 목숨은 제 가치를 찾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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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목적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기에만 급급한 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경쟁과 생존만을 절대적 진리로 여기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타인과의 힘겨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이들에게 주어진 경제적인 부는 달콤하기만 했다. 지난 70-80년대의 고도 성장이 우리의 삶에 가져다 준 풍요로움은 거부하기 힘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 가지의 목표에 매진한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은 수많은 화두들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어둠의 터널을 딛고 살아남은 우리는 마치 주어진 침대에 자신의 키를 맞추는데 성공한 존재마냥 자신을 사회에 맞추는데 익숙하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해 본격적인 의문에 시달려야만 하는 청소년기를 입시 지옥으로 대체해버렸고, 취업을 위해 자신을 단련하는데 20대의 대부분을 투자한다. 30-40대 역시 안정적이지 못한 직장에서의 생존을 강구하는데 매달리며 보내다 보면 결국 자신의 정신을 살찌울 수 있는 기회 따위를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경제적 풍요로움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 혹은 불행하다고 정의할 수 있는 것도 다름 아닌 정신의 힘이다. 성찰하지 않는 자에게 삶은 그저 눈뜨면 시작되고 눈감으면 끝나는 것에 불과하다. 관용, 배반, 인종차별, 독서, 건강 등. 얼핏 들으면 전혀 관련이 없는 주제들에 관한 글들이 한 권의 책이 되어 내 눈 앞에 놓였다. 각 글의 분량은 (제각각이긴 했지만)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였으며, 그 내용은 가벼운 듯하면서도 무언가 무게가 잡힌 수필마냥 느껴지기도 했다. 가디언(Guardian)지에 매주 토요일에 게재되었던 칼럼을 모아 엮은 것이라는 머리말을 보고나니 그제서야 수긍이 가기 시작했다. ‘바삐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손에 들려있을 신문, 그 신문을 펼쳐 드는 순간 영국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짧으나마) 성찰을 하겠구나’ 생각을 하고 나니 한 편으론 부럽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론 짜증나는 소식만을 전하는 것이 신문이라며 도외시했던 지금까지의 내 태도가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있어서 절대적인 진리 따위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사회는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이 아름답게 혹은 추하게 변모하는데 인간의 태도가 미친 영향이 큼을 우리는 인정한다. 그렇기에 성선설 혹은 성악설 등 인간의 타고난 (초자연적) 성품이 모든 것을 가능케 했다고 여겨버리는 것은 모든 논의를 불가능케 만드는 무책임한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오랜 과거가 되어버린 빅토리아 시대를 절대적 선의 시기로 선정하고 오늘날을 ‘위기’라 일컫는 사람들이 현실에 결코 만족치 못하며 동시에 현실을 전혀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관용과 자비 따위를 이야기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처음 접했을 땐 마치 근본적 도덕주의와 맞닿아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과거가 아닌 현대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가 언급한 화두들은 혼란스러운 사회를 살아가는 데 이정표와도 같은 역할을 담당할 것들이었다. 어느 한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는 것을 방지함과 동시에 한 개체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 있어서 주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돕는… 삶은 언제나 적지 않은 교훈을 주며, 우리는 자신이 경영한 하루의 삶을 통해 배우고 또 배운다. 미덕도 악덕도 결국에는 자신이 걷고 있는 ‘하루’라는 시간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게 아닐지… 모든 것이 확실치 않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불편과 긴장은 극히 자유로운 감정이겠지만, 이 모든 감정들은 건설적이기보다는 소모적이다.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다스릴 수 있는 이가 행복에 좀더 근접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간단한 진리에 눈을 뜬다면, 저자가 말하는 많은 주제들이 알게 모르게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
| 한번에 봐도 제목에서 확 끌리는 제목을 달고 있는 <미덕과 악덕에 관한 철학 사전>은 도대체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어떤 글을 담아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어려운 강단 철학이 아닌 아마도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하지만 그 단어가 내뱉는 무게감은 상당한 그런 주제를 가지고 가볍게 또 진지하게 쓰고 있을 것만 같은 이 책 매우 끌린다. 제 1부 성찰해야 할 것들, 제 2부 버려야 할 것들, 제 3부 아껴야 할 것들로 크게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일단 목차부터 재밌다. 저 큼지막한 제목들 아래로는 작은 여러가지 항목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성찰해야 할 것' 에는, 도덕주의, 관용, 자비, 예의, 타협, 두려움, 용기, 패배, 슬픔, 죽음, 희망, 인내, 신중함, 솔직함, 거짓말, 위증, 배반, 충성, 비난, 처벌, 망상, 사랑, 행복이 위치해있고, '버려야 할 것들'에는 민족주의, 인종차별, 동물차별, 증오, 보복, 무절제, 우울, 그리스도교, 죄, 회개, 신앙, 기적, 예언, 순결, 이교, 신성모독, 외설, 빈곤, 자본주의가, 마지막으로 '아껴야 할 것들'에는 이성, 교육, 소질, 야망, 연기, 예술, 건강, 여가, 평화, 독서, 기억, 역사, 리더쉽, 여행, 사생활, 가족, 나이, 선물, 사소한 것이 포함되어 있다. 세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는 작은 항목들을 보고 있노라면 재밌는 점들을 발견할 수가 있다. 버려야 할 것들에 신앙과 신성모독, 그리스도교와 이교가 함께 있는 것이 재밌다. 신앙을 버리라하면서 신성모독을 버리라한다. 겉으로 보기에 서로 상반되어 보이는 것들이 함께 존재한다. 허나 엄밀하게 신앙과 신성모독은 대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눈으로 살폈을 때 얼핏 대립되어 보이는 이것들이 함께 있다는 것은 재밌다. 그리스도교와 이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교는 타 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시각이 강하고, 이교는 그리스도교와 맞은편에 위치해 있는 녀석이다. 둘이 함께 버려야 할 것들 안에 있다는 점은 재밌다. 때로 어떤 이들은 아껴야 할 것들에 있는 요소들을 버려야 할 것들로, 버려야 할 것들에 있는 요소들을 아껴야 할 것들로 옮기고픈 욕망을 느낄 수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개인의 주관적인 관점을 떠나 세 카테고리에 담겨있는 녀석들은 대개 우리가 수용할 만한 고개를 끄덕일 만한 기준으로 나뉘어져있다고 볼 수 있다. 책의 머릿말에는 이 책의 서문을 대신하여 줄리어스 헤어의 수필집 <진리를 향한 추측>의 서문의 일부를 발췌했다. "이 책에서 나는 여러분에게 몇 가지 생각을 제시할 것이다. ...... 생각이라기보다는 거의 꿈이라고 할 만큼 어렴풋하고 희미한 내용이지만...... 만약 여러분이 이미 다른 책을 읽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 책을 읽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 모든 설비를 갖춘 완성된 집을 사고 싶은 사람이 굳이 재료를 구하러 채석장까지 찾아올 이유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 스스로 자신의 견해를 구성하고 싶다면, 그래서 거기에 필요한 재료를 찾고 있다면 이 책에서 여러분은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본래 런던대 철학교수이자 옥스퍼드 객원교수인 A.C.그레일링이 <가디언>지에 <유념해야 할 한 마디>라는 제목으로 매주 기고하던 것을 모아 다듬고 재배열하여 묶어낸 것이다. 각각의 글은 매우 독립적이며 또한 매우 짧다. 그래서 쉽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짧은 글이지만 많은 사색을 할 수 있다. 저자 그레일링은 강단철학보다 일상생활의 철학을 하는 자로 철학의 대중화라고까지 하면 뭔가 거창하지만 일상에서 쉽게 우리가 접하는 철학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는 가디언지 말고도 타임즈, 파이넌셜 타임스, 옵저버, 이코노미스트, 인디펜던트언 선데이,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 뉴 스테이츠먼 등의 신문과 잡지에, 또 BBC 방송의 여러 프로그램에 활발하게 참여하며 자신만의 철학활동을 하고 있다. 이 책은 그저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일들에 대한, 주제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며 주의주장을 담아내기보다는 편안하게 사색하고자 우리를 이끈다. 사색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며 일상의 소재에서 찾아낸 사색은 좀더 무겁고 심층적인 것으로 옮겨간다. 그것이 바로 철학이다. 그런 차원에서 <미덕과 악덕에 관한 철학 사전>은 일종의 입문서이다. 우리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사색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하는 철학 입문서이다. 분류체계나 주제는 맘에 들었지만 내용이 아무래도 매주 신문에 기고한 글을 재구성한 것이다보니 좀더 깊이있는 사색을 기대했던 나에겐 약간의 실망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지나친 기대 때문이지 이 책이 결코 제 몫을 다하지 못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책은 충실하게 독자를 안내해줬으며 독자를 남겨놓은 채 빠져나왔다. 비슷한 책을 원한다면 우리네 철학자인 김용석 씨의 <두 글자의 철학>을 권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책보다는 <두 글자의 철학>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둘 모두 일상의 철학을 담은 철학책이긴 하지만 <두 글자의 철학>이 좀더 사색의 깊이가 담겨있다고나 할까. 또한 아무래도 번역서가 주는 텁텁함보다 본래 한글로 쓰여진 자연스러움이 더 편안함을 안겨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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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평가 : B+ 나쁘지 않은 책이다. 자칫 잘못하면 개인 일기장이나 될 수 있는 글을 지극히 공평한 사유로 잘 서술해놓았다. 글쓰기 자체도 간결하긴 한데, 솔직히 심오한지는 모르겠다.
한 프랑스의 철학자가 쓴 칼럼 형식의 글을 모아 놓은 책이다. 제목으로 봤을 때는 굉장히 재밌을 것 같았는데, 기대에 못 미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
요컨대 훌륭한 야망은 책임성 있는 야망이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대가를 치를 각오가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단순한 야망은 노력 없이 도약하려 하고 손쉽게 사다리를 오르려는 욕심이다.
그 차이를 익숙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면 "작가가 되고 싶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글을 쓰고 싶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전자는 칵테일 파티에서 돋보이고자 하는 태도이고, 후자는 책상에서 홀로 긴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한 태도다. 또한 전자는 지위를, 후자는 과정을 원한다. 어떤 사람이 되려는 것이 전자라면 어떤 일을 하려는 것이 후자인 것이다.
야망에 대한 그의 서술은 현대인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시한다. 결과만을 중시하는, 그저 "그럼 된 거 아닌가?"라는 말을 즐겨하는 우리들로써는 이 철학자의 말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
정말 한심한 노릇이다. 결과가 전부인 줄 안다. 그렇다고 과정이 전부도 아니다. 둘다 반반인 것이다.
진짜 패배란 패배감에 빠져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 하는 경우다.
결과가 전부인 줄 알아서 우리는 단순히 결과만으로 의기소침하게 된다. 왜 결과에 집착하는가? 그것은 아마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갖가지 실생활에 걸친 그의 철학적인 사유가 돋보이는 칼럼들인데 공감할 수 없는 것도 있었고 공감할 수 없는 것도 있었다. 그의 인생에 대한 시각은 대체적으로 괜찮은 견해인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