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설 때문에 기황후라는 인물을 알았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땐 무슨 판타지 소설인가싶었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가 왠지 느낌이 이상해 네어버 검색을 해보니 역사속에 실재로 존재했던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좀 당황스러웠다. 왜 이런 역사적 인물을 그동안 나는 있는지조차 몰랐을까. 아무리 내가 무식하기로 서니 이건 좀 너무 하잖아? 뭐 대충 그런 생각을 했었다. 공녀로 끌려갔다가 황후가 되어 원나라의 부흥과 고려의 영광을 위해 분투했던 여자. 그런 기황후의 말로는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처참하다. 주원장의 세력에게 밀려났다가 나라를 재건하려고 했던 기황후의 최후는 이성계 일파가 보낸 것으로 추측되는 자객에 의해 끝이난다. 이것도 역사적 사실일까? 소설에서는 명확히 말하고 있지 않지만... 아마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이처럼 반원친명 정책을 내세우며 새로운 나라를 건국했다. 그 말은 공민왕이 그랬듯, 이성계도 기황후를 희생양으로 삼아 각기 통치기반을 세워나갔다. 소설은 재미있지만 그런 역사적 얘기 앞에는 삶과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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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황후를 대신해서 박불화가 죽고 주원장이 대도성을 공격하여 기황후가 위급한 상황에서 나타난 최천수의 도움으로 기황후가 위기를 넘기지만 최천수는 기황후 를 위해 죽음을 맞이 한다. 주원장의 세력에 점점 밀려 몽골고원의 동서남북 교통로가 교차하는 중심지인 화 림에 자리를 잡게 된다, 피난 중 황제는 병으로 죽고 그토록 원했던 황태자가 황제로 즉위하며 기황후의 오랜 숙원을 이루게 된다. 기황후는 인생에서 가장 통탄할 만한 일로 권력욕에 눈이 멀어 탈탈을 모함하여 유배 보낸 것이고, 몰살당한 가족의 복수를 위해 군사를 몰아 고려 정벌에 나섰던 일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사적인 감정으로 수많은 피를 흘린 것에 대해 고려에 큰 빚을 진 마음으로 살아왔기에 고려에 그 빚을 갚기 위해 조상의 기상이 묻어 있는 요동 땅을 고려에 주어 죄를 사함을 받고자 50이 넘은 나이에 군사를 이끌고 요동 땅 정벌에 나선다. 하지만, 고려의 군사들과 합세하기로 하였으나 고려의 변심으로 일을 접을 수 밖 에 없는 상황에서 병을 얻어 고향인 고려에 당도한 후 고려의 세력에 처참하게 죽 음을 맞이하게 된다.
어린 나이에 원의 공녀로 끌려가 천신마고 끝에 황후의 자리에 올라 천하를 손에 쥐고 광활한 땅을 지배했던 기황후의 파란만장한 삶에 흠뻑 빠져 지냈다. 기황후가 세상을 떠난 지 700년이 흐른 지금 시점에 故 제성욱작가의 불멸의 혼으로 7천매의 원고로 탄생되어 이 세상에 다시 부활한 기황후의 생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700년전 실크로드를 장악하고 해상무역을 부흥시킨 고려 여인의 생애와 역사를 담은 4권의 장편 대하소설을 읽으며 삶의 처세술과 삶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깊이 있게 생 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였다. 기황후릉이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상리에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리 조상들중에 이렇게 위대하고 열정적이며 고려를 사랑한 여인 기황후가 존재했 다는 사실에 자랑스러운 마음이 생겼다. 한여인의 파란만장한 생과는 달리 쓸쓸하게 고향에서 같은 고려인에게 죽음을 맞이하 며 생을 마감하는 내용으로 4권이 끝나서 가슴에 슬픈 여운이 남았다.
기황후의 올바른 역사를 전달하고자 노력한 故 제성욱작가의 노고에도 깊은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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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를 경영한 기황후 4 나를 고려에 묻어 다오 일송북 제성욱 대하소설
기황후도 사람인것이다. 여우도 죽으면 자신이 태어난 방향으로 머리를 둔다고 하는데 기황후도 고려에 묻히길 원했다. 기황후릉이 사진으로 나오는데 문화재차원에서 단장을 할것도 같은데 방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 더군다나 2차례나 도굴이 되었다니 죽어서도 편히 누워 있지 못한것 같다.
기황후의 수족들이 모두 죽자 황제 때문이라는 생각때문에 황제를 상황제로 만들고 자신의 아들을 황태자에서 황제로 만들려는 한다. 이제는 예전에 고려를 생각하는 기황후는 없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려는 노력뿐이다. 황제의 특권인 인사권도 기황후가 마음대로 주무르기 시작한다. 고려 환관출신 최천수, 박불화를 공신으로 까지 올린다. 원나라 조정에는 기황후를 대적할 이는 없다. 주원장은 천하를 제패하는 꿈을 꾼다. 중국 4천년동안 한민족 핏줄을 받은 여인이 정후자리에 오른것은 기황후가 처음이었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다. 그런 기황후가 못마땅한 황제는 은밀히 어사중승을 불러 황후를 폐후 시킨다는 조칙을 작성하게 만들기도 한다. 순제는 대도성과 중도성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주원장에게 쫓기다 쓸쓸하게 죽는다. 제위 기간동안 많은 업적도 남기고, 소수민족에게 너그러웠으며, 한문화를 이해하여 요나라와 금나라의 역사를 집필하게 했다. 그후 기황후의 아들 애유식리달렵 소종황제로 등극한다. 1368년 주원장은 남정북벌를 하여 대도성을 점령하였다. 고려에선 신돈이 제거되고 공민왕은 술독에 빠지며 고려는 위기에 빠진다. 기황후도 이제 늙어 세상을 후회하고 있다. 하나는 권력욕에 빠져 탈탈을 모함하여 유배를 보낸 것이요. 또 하나는 몰살당한 우리 가족의 복수때문에 고려정벌에 나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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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낳기를 원하는 기황후(奇皇后)의 요청을 원나라 순제가 들어 세워진 것이라 알려진 원당사(元堂寺) 5층 석탑, 몽고인이 아니면 황후가 될수없다는 금기를 깨고 탄생한 첫 외인 출신의 황후가 그녀다. 기황후는 아들을 낳기위해 전국 각지에 이름난 풍수사들을 보내고 그것은 고려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곳이 제주시 삼양동 원당봉에 있는 원당사(元堂寺•현재 불탑사) 오층석탑이며 원당봉이란 산 이름이나 원당사라는 절 이름도 모두 원나라를 뜻한다. 그런 노력 끝에 황태자 애유식리달엽(소종황제)을 낳았고 황제의 어머니인 황태후가 되어 30여년간 원나라의 실세가 되어 나라를 지배한다.
나를 고려에 묻어다오 《기황후》4편의 소제목에 붙은 제목이자 죽어서나마 고향에 묻히고 싶어했던 기황후의 소망이 담겨진 것이다. 여러 작가들의 노력에 의해 소설속에서나마 기황후가 자신의 입장을 변명할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소설가 박상후는 추천평을 통해 '역사는 사실 그대로의 기록이어야 하고 기록하되 지어 쓰지 않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고려 28대 충혜왕은 희대의 패륜아요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왕이란 평을 받아왔고 그것이 맞다고 믿고 있는 가운데 그를 영웅으로 만든 드라마의 출현으로 그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새겨지고 있는 요즘 2006년 출간되었던 책의 재출간으로 충혜왕과 기황후에 대해 극과 극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기황후가 팜므파탈이자 요녀라 불릴지라도 고려에서 보내진 공녀로서 황후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녀 자체의 존재는 측천무후에 비견될만한 여걸로서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기고 있다. 이름 없는 잡초로 살아가느니 차라리 그녀처럼 요부요 팜므파탈로 이름을 남길지라도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인물로 살아가고 싶어. 기황후의 힘이 되어주던 최천수와 박불화도 가고 이제 그녀의 주변에서 힘을 실어주고 믿음을 줄 사람은 없었다.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고 위협을 받고 있다. 황제는 공식적으로 세명의 황후를 정처로 만들수 있다. 예전 제1 황후였던 타나실리가 그러했고 지금의 제1 황후인 백안홀도 황후가 그러하다. 이제 기황후는 정후의 자리인 제1 황후의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
무소불위의 권력자인 황제는 어느 누구에게 권력을 집중해 주기보다 서로 견재하는 상대를 만들어 주는 것으로 명군의 자질을 심판받는다. 과연 기황후는 자신의 남편인 황제에 맞서 자신의 아들을 다음 황제의 위에 올릴수 있을까? 테무칸 칭기스칸을 태조로 하는 원나라, 칭기즈칸은 고구려 광개토왕과 더불어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후손인 순제의 정후 자리에 고려의 공녀 출신 여인이 올랐다는 것을 설핏 들었을때 그녀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더불어 요즘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기황후>로 인해 그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난무하고 있기에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의 등장을 더욱 갈구하게 되었다. 한때 황제의 총애를 받던 여인이 아니라 정실이 되어 동반자적 입장으로 나라를 경영하던 여걸, 이것이 그녀에 대해 받은 나의 인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