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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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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불온한가' 서평을 쓰다가, 이 책'이야말로' 추천해보고 싶어서 한번 써본다. 대학 1~2학년 시절, 소위 '비판적 지식인'이라고 불리우던 분들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분은 김규항씨라고 종종 이야기하고 다녔었다. 내 생각에, 강준만씨와 진중권씨는 다소 공격적으로 보였고, 유시민씨는 조금 무서웠으며(-_-;;;)고종석씨와 홍세화씨는 글 속에 다소 '쓸쓸함'이 묻어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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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불온한가' 서평을 쓰다가, 이 책'이야말로' 추천해보고 싶어서 한번 써본다.

대학 1~2학년 시절, 소위 '비판적 지식인'이라고 불리우던 분들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분은 김규항씨라고 종종 이야기하고 다녔었다. 내 생각에, 강준만씨와 진중권씨는 다소 공격적으로 보였고, 유시민씨는 조금 무서웠으며(-_-;;;)고종석씨와 홍세화씨는 글 속에 다소 '쓸쓸함'이 묻어나와 조금씩 꺼려졌었는데(그래도 그 분들 모두 좋아하긴 했었다) 김규항씨는, 글쎄. 그런 느낌보다는 그냥 위선을 굉장히 싫어하는 분, 때문에 '믿을만한 분'정도로(그렇다고 다른 분들을 믿지 못했다는 얘긴 아니다)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그의 단행본을 읽은 것은 위에 나열한 '비판적 지식인'의 책들을 한권이상 읽은 후 2003년 여름쯤에서나 가능했다. 재생용지에 소박한 디자인은 너무도 '그 다웠고', 때문에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도서관에서 졸릴 때마다 틈틈히 보리라 생각했지만, 책을 잡고 한두시간만에 다 읽어버리면서 굉장히 아쉬워했던 기억도 난다.

흥미로운건, 시간에 따라 바뀌는 그의 글들의 뉘앙스(?)였다. 사실, 김규항씨 본인또한 서문에서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만, 그가 초기에 썼던 글들은 굉장히 냉소적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냉소적이기'만'한 글도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글은 점점 따뜻하고 희망적이 되어지며, 마지막에 가서는 내가 알고 있던 김규항씨가 등장(?)하더라. 아, 그때의 묘한 기쁨(?)이란.

위선을 싫어하지만 도처에 위선이 깔려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고, 좌파로 사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너무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그이지만, 그런 그마저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엇인가 희망을 보았고, 때문에 그의 글들도 시간이 감에 따라 금씩 밝아졌었던 게 아닐까? 세상은 알고보면, 수많은 절망만큼이나 수많은 희망이 함께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그의 날카로운 문장, 날카로운 비판들을 통해 세상에 눈을 뜰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한 진보적 지식인이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은근슬쩍 보게 된 것 같아서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나온 '나는 왜 불온한가'보다 이 책이 더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j***8 2006.03.11. 신고 공감 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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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으로 살아가기....
"중간으로 살아가기...." 내용보기
뭐 책의 제목 'B급 좌파'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대략적으로 이 책의 내용에 뭐가 쓰여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읽어보니 내가 지금까지 잊고 살았던 여러가지를 생각나게 해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대학 다닐때 - 참고로 제가 91학번입니다.- 학생운동이라는 언저리에서 조금이나마 참여했던 나로서는 그 때와 지금의 나 자신을 바라보며 '많이 변했군' 하며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오게
"중간으로 살아가기...." 내용보기
뭐 책의 제목 'B급 좌파'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대략적으로 이 책의 내용에 뭐가 쓰여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읽어보니 내가 지금까지 잊고 살았던 여러가지를 생각나게 해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대학 다닐때 - 참고로 제가 91학번입니다.- 학생운동이라는 언저리에서 조금이나마 참여했던 나로서는 그 때와 지금의 나 자신을 바라보며 '많이 변했군' 하며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오게 하는 책이었다. 그때 나는 내 친구와 선배들과 거리를 두면서 난 기성세대에 들어가 우리들이 예기하는 이런 일들을 기성세대가 활동하는 조직에 변화를 주리라 예기하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내 모습은 현실에 안주하며 회사에서 주는 얼마 않되는 페이와 주식에 목이매어 살고있다. 아무 생각없이 그저 연봉과 주식의 그래프에 울고웃고 하며. 난 책의 저자가 부럽다. 그래도 자기 목소리는 낼수도 있고 최소한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려 노력하지 않는가? 그러나 난 좌파도 우파도 아닌 회색분자로서 오늘도 술을 벗삼아 작게는 직장상사 크게는 우리사회의 높으신 분들을 욕하면서 그 사이에서 줄타기 하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저자는 알아 줬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줄타기를 하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음을.....
b***e 2001.10.16.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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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주의
"엘리트주의" 내용보기
내내 읽으면서 작년에 읽었던 '우리는 부패의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를 떠올렸었습니다. 아주 많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뭔가 부족한 듯한 느낌, 뭔가 맘에 들지 않는 느낌.. 나름대로 글을 잘 쓰고 그 글이 맘에 든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던 김규항씨의 책인 만큼 기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솔직하게 말해서 적지 않은 실망으로 끝났던 책이었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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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읽으면서 작년에 읽었던 '우리는 부패의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를 떠올렸었습니다. 아주 많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뭔가 부족한 듯한 느낌, 뭔가 맘에 들지 않는 느낌.. 나름대로 글을 잘 쓰고 그 글이 맘에 든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던 김규항씨의 책인 만큼 기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솔직하게 말해서 적지 않은 실망으로 끝났던 책이었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다루면서 구체적인 이야기가 없다는 점은 칼럼들을 모아 엮어낸 책이니까 이해할 수 있다 치더라도, 스스로를 'B급 좌파'라고 부르는 저자의 글에서 보이는 엘리트주의는 아주 눈에 거슬렸습니다. 비록 책 이곳저곳에서 지식인이라는 것은 대장장이가 망치질을 하듯이 글을 쓰는 또하나의 노동자일 뿐이라고 하고 그런 지식인의 노동 역시 다른 직업을 가진 노동자의 노동과 다를 게 없다고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계속 은밀하게 풍겨져 나오는 저자 자신의 '난 엘리트야~ 엘리트 만세!!'하는 생각은 계속 제 맘 한구석에 안좋게 남았었습니다. (제가 잘못 이해하는 걸까요?? -_-;) 물론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이 비판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확실하게 비판하는 저자의 확실한 자세는 정말 좋았습니다. 나름대로 훌륭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분같기도 하구요. 하지만 제가 엘리트주의를 워낙 싫어해서.. 평가는 그리 좋지 않네요. 가볍게 읽기에는 좋은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말은 정말 맘에 닿던데..)

[인상깊은구절]
최선의 삶이란 '내가 지향하는 바'와 '실제의 나' 사이에 있는 숙명적인 거리를 줄이려 발악하는 것
r*****o 2003.07.0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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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0]B급 좌파.. 그거라도 어딘가~
"[11/50]B급 좌파.. 그거라도 어딘가~" 내용보기
천당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신이 묻는다.(저는 천당과 지옥이라는 기독교적 믿음을 신뢰하지 않습니다만) "사는 동안에 네 꿈은 무엇이었나?" "전 꿈이 없었습니다.. 그저 삶이 이끄는대로 걸어갔을 뿐..." "내가 너를 세상으로 보낸 이유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땀흘리다 오라는 것이었다. 꿈꾸지 않은 죄!! 너는 지옥으로 가서 참회하거라!!"김규항의 책을 읽으면 내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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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당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신이 묻는다.(저는 천당과 지옥이라는 기독교적 믿음을 신뢰하지 않습니다만) "사는 동안에 네 꿈은 무엇이었나?" "전 꿈이 없었습니다.. 그저 삶이 이끄는대로 걸어갔을 뿐..." "내가 너를 세상으로 보낸 이유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땀흘리다 오라는 것이었다. 꿈꾸지 않은 죄!! 너는 지옥으로 가서 참회하거라!!"
김규항의 책을 읽으면 내내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그가 저의 아픈 구석을 콕콕 찌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살아가는 동안 더 나은 세상을 꿈꾸지 않느냐~는 질책이 마음에 닿기 때문이기도 하며, 저로서는 감히 따라하기 힘든 삶의 내공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의 책을 읽으면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끼기도 하는 것은, 이미 신이 되어버린 '자본' 앞에 모두 바싹 엎드려 경배를 드리고 있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너는 가짜이고 당신들은 바보다!'라고 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독재의 시절에는 그 모진 억압 속에서도 모두가 민주주의를 열망하며 서로의 손을 잡고 연대하는 시대였다면, 지금은 모두가 새로운 권력자 '자본' 앞으로 서로를 밀치며 선착순으로 달려가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경쟁자일 뿐, 어느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되며 누가 쓰러졌다고 일으켜주다가는 경쟁에서 저만치 밀려나고 패배자가 되어 버리는 시대 말입니다. '돈'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세상의 가치를 재지 못하고, 역으로 세상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해 내는 시대입니다. 너무 견고하여 그 어떤 것으로도 깨뜨릴 수 없을 것만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으로 인해 숨이 턱~턱 막힙니다.
과거 독재의 시대엔 야만스러움이나 비열함, 비인간적인 것들이 모두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기에 우리가 분노하고 싸우는 일이 오히려 쉬웠습니다. 하지만, 자본의 시대엔 그 모든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우리를 옭아매고 있어서 싸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니, 대상이 없으니 싸울 수조차 없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어렴풋이나마 그 보이지 않는 실체를 실감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싸우면 되겠구나~하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본의 힘은 제가 그런 걸 느끼는 순간 바로 저를 덥쳐서 싸울 힘을 빼놓습니다. 자본주의가 달리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이미 제 몸이.. 제 영혼이 자본에 꼼짝없이 잡혀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처지라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그냥 자본이 이끄는 길을 따라서 불편한 마음을 이끌고 가야 하는 것인지, 몸부림이라도 치며 그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써야 하는 것인지.. 답은 주어져 있고, '실천'만을 요구할 뿐입니다.
내 양심이나마 간수하며 인간답게 살려고 애쓰기는 하지만 여전히 내 가진 걸 놓지 못하는 우파의 삶이 지금 내 삶이라면, 적어도 내 삶의 기준을 나보다 낮은 곳에다 두고 다른 사람의 양심마저도 지키려고 노력하는 좌파적 삶은... 어쩌면 포기할 수 없는 '꿈'과도 같은 것입니다.
자신을 B급 좌파라고 규정짓는 저자의 말에.. 그래도 그게 어디요~ 라고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저에겐 아직 그 삶이 포기할 수 없는 '꿈'입니다.
제 꿈이기도 합니다만,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는 길은, 모든 사람들이 '노동'을 멈추어 버리는 그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혹은 내 마음에서 '자본'을 영원히 추방하는 그 날이거나...

s*****2 2011.10.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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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좋은 친구들, ‘F4’와 인사하실래요?] ④ 교양을 만나다
"[내 좋은 친구들, ‘F4’와 인사하실래요?] ④ 교양을 만나다" 내용보기
김규항은 직설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글 또한 그에 입각한다. 모든 것은 좌파적 일관성에서 비롯된다. 한국 사회가 지닌 레드 콤플렉스는 좌파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오도하기 일쑤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상식이자 교양이다. 얼마나 이 사회가 몰상식했는지, 몰염치했는지 보여주는 리트머스다. 이 책을 읽고 자신의 교양을 성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유죄! -
"[내 좋은 친구들, ‘F4’와 인사하실래요?] ④ 교양을 만나다" 내용보기

김규항은 직설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글 또한 그에 입각한다. 모든 것은 좌파적 일관성에서 비롯된다. 한국 사회가 지닌 레드 콤플렉스는 좌파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오도하기 일쑤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상식이자 교양이다. 얼마나 이 사회가 몰상식했는지, 몰염치했는지 보여주는 리트머스다. 이 책을 읽고 자신의 교양을 성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유죄!

- 준수 100자평 -

교양을 만나다, 《B급 좌파》

여기 또 하나의 불온. <씨네21>에 연재했던 김규항의 칼럼은 이랬어. 세상의 똥꼬 깊숙한 곳에 똥침을 날리는 글빨에 시원통쾌한 청량감을 느꼈고, 무엇보다 내 민무늬 정신에 통찰과 사유를 자극했었지.

직장생활을 하던 그때. 나는 하루살이였어. 뭐 제대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 일에 쫓기고 마감하는 틈 사이로는 술에 쩔어 지내는 여느 직장인이었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증발시킨 채, 나는 그저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아메바와 같았다고. 이봐, 여기 한 잔 더, 꽐라~


그렇게 지내다가 그 칼럼을 묶은 《B급 좌파》를 만났어. 오오, 이 책, 놀라워라. 거기엔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 교양이 있었어. 당시는 알다시피, IMF를 관통하며, 더욱 강화된 돈지랄과 무교양이 판을 치던 때였지. ‘대박’이 일상어가 되고, “부자 되세요”라는 천박한 인사말이 미덕처럼 퍼진 시대.

그런 시대에 김규항은 혹독하고 삐딱하게 세상의 무교양을 꼬집고 있었지. 아, 나는 이 친구를 만나고서야 그때야 다시 반성을 하게 됐어. 나도 모르게 교양 없음에 편입돼 있었구나, 싶은 깨달음.


그 친구는, 말하고 있었어.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혹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회·문화적 인물․현상들에 대해 우리가 자체 증발시켰던 교양을. 지극히 상식적이고 어릴 때 교과서를 통해, 어른들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였어! 시대가 그걸 박제시켰을 뿐. ‘틀린’ 구석이라곤 없는 지극히 상식적인 교양.

근대화를 스스로의 힘으로 겪지 않고, 남의 손에 이끌려 질질 끌려온 원죄 때문이었을까. 분별없는 열정이 만들어놓은 세상에, 내 친구는 교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지. 뇌에 주름을 새기게 만든, 그래서 너에게 《B급 좌파》를 권한다.

“아마도 교양이란 ‘사회적인 분별력’일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그 뜻과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반드시 자기 힘으로가 아니어도), 그게 교양이다. 그걸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교양 있는 사람’이다. 교양은 근대적인 사회에 주어지는 축복이면서 더욱 근대적인 사회를 지향한다. 말하자면 교양은 그지없는 진보다.” (pp.62~63)

물론, 나는 아직 ‘교양’을 쌓기 위해 김규항을 읽고, 만나. 그것을 ‘좌파’라는 말로 굳이 연결할 필요는 없어. 다시 말하지만, 그건 상식이고, 교양이니까. 한편으로 그의 정체성인 좌파가 얼마나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인지, 김규항을 통해 절감하고 있어. 오랫동안 우경화 혹은 우파 일색이다 보니, 이곳은 너무 침침해졌어. 교양도 없어지고 상식도 증발하고 원칙마저 휘발된 이상한 나라. 그런 의미에서, 김규항은 교양의 회복! 《B급 좌파》의 형제 격인 《나는 왜 불온한가》(김규항, 돌베개, 2005)를 만나도 좋겠지. 이것 역시 직설이야.

이 친구가 좋아한다는 루쉰(노신)의 말은, “지금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할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지. 네가, 당신이, 그대가 함께 길을 그렇게 걸어갔으면 좋겠어.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아, 묻고 싶은 게 있어. 넌 교양을 어떻게 만나고 있니? 
 


j******2 2011.01.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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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책~ 그리고 부끄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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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비판하고 있는 "위선"에 대한 그의 거부감...혐오는 그리 어색하지 않다. 또한, 사회 현상에 대한 그의 비판은 비판을 위한 것에 그치지 않으며,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스스로의 생활 속에 체화되는, 그리고 실천하는, 또는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거침없는 저자의 필체와 논리는 언제 어디서나 시원하게 이어지고 있으며, 아마도... 저
"시원한 책~ 그리고 부끄러움..." 내용보기

저자가 비판하고 있는 "위선"에 대한 그의 거부감...혐오는 그리 어색하지 않다.
또한, 사회 현상에 대한 그의 비판은 비판을 위한 것에 그치지 않으며,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스스로의 생활 속에 체화되는, 그리고 실천하는,

또는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거침없는 저자의 필체와 논리는 언제 어디서나 시원하게 이어지고 있으며,

아마도...

저자인 김규항 스스로를 B급 좌파로 규정해 버림으로 인해

부끄러워 할 많은 이들 또한 생겨 날 것 같다.


- 2002년 어느날.
d*****3 2008.04.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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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하는 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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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 읽는 시간대는 매우 다양하지만, 굳이 책을 주로 읽는 시간을 꼽으라고 한다면 취침 전의 한, 두시간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자기 전에 읽어도 무방한 책과 자기 전에 읽으면 안 되는 책이 있다는 것이다. 이 자기 전에 읽으면 안 되는 책은 사람의 마음을 굉장히 흥분시킨다. 그래서 그 책 생각에, 그리고 책에 나온 내용, 그리고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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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 읽는 시간대는 매우 다양하지만, 굳이 책을 주로 읽는 시간을 꼽으라고 한다면 취침 전의 한, 두시간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자기 전에 읽어도 무방한 책과 자기 전에 읽으면 안 되는 책이 있다는 것이다. 이 자기 전에 읽으면 안 되는 책은 사람의 마음을 굉장히 흥분시킨다. 그래서 그 책 생각에, 그리고 책에 나온 내용, 그리고 저자의 글쓰는 방식 등에 관해 굉장히 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므로 자기 전에는 경계(?)해야 한다. 생각이 많으면 잠을 설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난 개인적으로 진중권의 책을 자기 전에 읽지 않는데, 이번에 또 한 명의 책을 자기 전에 읽으면 안되는 책으로 올려놓았다. 그가 바로 김규항이다. 책의 제목처럼 자기 자신을 "B급 좌파"라고 규정한 김규항은 유명한 독설가-바른 소리하는 것이 이 사회에서 독설로 인정받고 있는 세태에서-인 강준만이 인정한 독설가이다. 그는 우리 사회에 널려 있는 여러 "존만한 새끼"들과 "좆같은"세상에 대해 "잠지를 까고"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김규항은 왜 자기 자신을 "B급 좌파"라고 규정했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 전에 먼저 과연 완벽한 좌파란 존재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먼저 구해야 한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바로 "대단히 어렵다"이다. 과연 "내가 지향하고 있는 나"와 "현실의 나"를 일치시킬 수 있는 좌파는 몇 명이나 될까? 김규항의 입을 빌리자면 없다. 물론 그 사이의 거리를 대단히 좁힌 사람들은 존재한다. "율려"라는 생명사상을 가지고 도사가 된 김지하가 아닌, 옛날 "오적"과 "타는 목마름으로"의 김지하나, "나타와 안정"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김수영과 같은 이가 그런 존재일 것이다. 따라서 아직도 "지향하고 있는 나"와 "현실의 나"사이의 넓디넓은 거리에 괴로워하는 김규항은 자기 자신을 "B급"의 좌파로 규정했을지 모른다. 이 책을 보다보면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물론 조사나 접속사, 좌파라는 단어는 빼고) 단어는 지식인과 조선일보일 것이다. 지식인을 이야기하자면 과연 지식인은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야할 것이다. 우리가 당대의 현실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연 당대의 지식들만 가지고서는 가능할 것인가? 물론 답은 아니오이다. 김규항이 그의 딸 김단에게 지구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바로 지구 밖이라고 했던 것은 지식인 또한 당대의 모습을 가장 잘 보기 위해서는 당대가 아닌 당대를 제외한 모든 시대의 지식들을 섭렵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 것이 바로 일반인들과 지식인들의 차이다. 그리고 지식인으로서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지식들을 바탕으로 당대의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방향이나 조언들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지식인들은 그러한 지식을 마치 일반인들과 자신들을 구별하는 -아주 고상하고 품위있는 족속으로-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김규항은 또 다른 컬럼에서 DJ DOC의 이야기를 하면서 올바른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는 지식인들을 또 한 번 꼬집는다. 과연 수구언론인 조선일보에 글을 싣고 있는 지식인들이 올바른 지식인들가? 그들은 자신들을 좀 더 일반인들과 다른 훌륭한(?) 지식귀족이 되기 위해 조선일보라는 정말 "좆같은" 수구언론에 기대고 있지는 않은가? 조선일보와 만족스런 성교(?)-이건 김규항의 표현이다.-를 하고 있는 지식인들의 명단을 발표한 강준만을 상대하는 것이 조선일보를 상대하는 것보다 더 피곤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이들이 과연 올바른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또 이 책에서의 또 다른 키워드는 사회의식과 문화라고 할 수 있겠다. 스크린 쿼터를 사수하기 위해 벌떼같이 일어난 영화인들, 과연 그들은 그들의 밥그릇이 뺏기기 전에 무엇을 했는가? 그들이 과연 수입산 농수산물에 맞서 싸우는 농어민들의 아픔을 같이 하였는가? 아님 그들의 아픔을 그 영향력있는 매체로 알려본 적이 있는가? 왜, 그들은 자신들이 밥그릇에만 '보이지 않는 손'을 거부하는 것인가? 그 것도 알량한 민족이라는 이름으로...정말 구역질 나는 일이다. 그리고 박광수, 장선우, 여균동, HOT,이수만 같은 이들에게도 외친다. 사회의식을 가지고 예술을 하라고. 자신들의 문화적 컨셉(?)을 의식있는 예술가로 만들기 위해 사회문제를 이용하지 말고, 진정으로 사회의식을 가지고 예술을 하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김규항의 외침은 아직 이들에게 정신을 번쩍 들게하는 채찍이 아니라, 그냥 귀찮은 잔소리로만 들린 모양이다. 장선우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나 HOT출신의 문희준이 락을 한다고 떠들어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처럼 우리 대중 예술에서 사회의식이 부족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80년대의 열혈 청년(?)들이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할 때, 너무나 쉽게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90년대에 대중 문화쪽으로 돌아섰고, 그들에게 사회의식이라는 채찍을 주는 대신, 사회문제를 다룬다는 것만으로도 명예와 부라는 사탕을 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기적이고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평을 듣는 90년대의 청년들이 탄생한 것이다. 이에 김규항은 다시 80년대의 청년들이 90년대 청년들에게 올바른 청년의식을 물려주지 못한데 대한 부채의식을 가지라고 촉구한다. 그 것은 바로 사회의식을 가진 여러 가지를 보여주라는 말로도 들리기도 한다. 암튼 참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아주 빠르게.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진중권이 아주 위트있고 재치있게 지식인들을 씹는다면 김규항은 고종석의 말처럼 아주 비장하게 속에서 잘근잘근 씹어 토해내듯이 글을 쓴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비장은 그의 글 중간중간에 자신의 일상들을 가끔씩 집어넣어 섞음으로서 많이 중화되는 느낌이다. 참으로 궁금하다. 이 책을 쓴 이후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에 대한 김규항의 입장들이...박근혜를 둘러싸고 벌린 최보은과의 토론이라던지, 2002년의 여름을 바라보는 김규항의 생각-김규항은 1998년의 월드컵에서 우리가 파시즘적인 면모를 보였다고 질타했다.- 등등...책의 저자 소개에서 암중모색중이라고 나와 있는 김규항의 근황이 자못 궁금해진다.
p******0 2004.02.03.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읽는 내내 가벼울수 없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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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집증적인 독서경향은 문제가 있다. 특별함에 대한 갈망과 결부된 지식욕은 지식인의 오랜 지성을 겉핥기 식으로 머리속에 우겨넣게 하고 자의식 없이 수용하게 한다. 오랜 지식인의 지성을 얄팍하게 취하도록 한다. 이는 기초가 없는 내게 극미하지만 '전적인' 지식이 되어 나를 휘두른다. 이것은 '잘' 정제된 글로부터 자발적으로 강간된 다른 부분들과 달리, 아직 강간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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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집증적인 독서경향은 문제가 있다. 특별함에 대한 갈망과 결부된 지식욕은 지식인의 오랜 지성을 겉핥기 식으로 머리속에 우겨넣게 하고 자의식 없이 수용하게 한다. 오랜 지식인의 지성을 얄팍하게 취하도록 한다. 이는 기초가 없는 내게 극미하지만 '전적인' 지식이 되어 나를 휘두른다. 이것은 '잘' 정제된 글로부터 자발적으로 강간된 다른 부분들과 달리, 아직 강간되지 않은 주체적 이성을 자극해 토악질을 일으킨다. 아니, 우둔함 탓에 분별력 없이 수용한 '남의 것'에서 이제 막 비집고 나올 힘을 기른 주체적 이성을 자극해 토악질을 일으킨다. 그렇다. 시인하건데 나는, 고매한 지식을 핥아 맛보는 맹랑한 열여섯이다. 그런 나는 소설이나 픽션 보다는 비교적 수월하게 '읽어낼 수' 있는 지식으로 점철된 칼럼이나 기사 혹은 학문서적을 보는 시간에 더 만족한다. 이런 류의 글은 나를 자극한다. 그리고 나는 만끽한다, 그 포만감을. 이런 면에서 김규항의 B급좌파는 내게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을 안겨주었다. 분명 B급좌파는 내게 벅찬 글이었다. 치열했고, 분명했으며, 감정이 격해질 지언정 균형을 잃지 않았다. 읽는 내내 나를 주눅들게 했다. 어려운 이념들의 뜻을 문맥으로나마 이해하기 위해 앞뒷장을 뒤적여야 했으며 불현듯 생각이 넘쳐나 펼쳐진 책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생각하게 했더랬다. 나는 이 책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읽는 중 열두번도 넘게 내게 메모할수 있는 종이가 없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진심으로 껌종이 조차 없다는 것이 불안할 정도로 안타까웠다. 나는 연쇄하며 쏟아지는 생각들을 잡아두고 싶었다. 두고두고 다시금 나를 생각케 하도록 하고 싶었다. 한 문장을 채 읽기도 전에 덮쳐오는 생각들은 당황스럽지만 즐거운 것이었고, 이 생각들을 그저 흘려버릴수 없어 잠시 책을 엎어둔 채 오래동안 곱씹었다. 진정으로 그 과정은 기뻤고 풍부했다. 그래서 나는 무척이나 '피곤한' 독서를 '강행'할수 밖에 없었다. 도서관 언덕을 내려오면서 나는 무시할수 없는 피로를 느꼈다. 머리가 지끈했다. 길게 언변을 토한 사람마냥 가슴은 쿵쿵 뛰고 있었다. 흥분상태였다. B급좌파를 읽는 몇시간은(몇시간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평소 속독을 하는 내게 무척 긴 시간이었다) 아마도 김규항과의 토론이었고(가당치않지만)대화였고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나는 김규항과 가랭이 찢어지고 숨넘어가는 대화를 하면서 수없이 이렇게 생각했더랬다. 머지않아 이 계몽적인 지식인에게 열패감마저라도 느낄수 있는 상대가 되겠다. 그리고는 진정 맹랑함을 느낄만한 그런 상대가 되겠다. 그리고 그토록 맑시즘과 자본주의를 경멸하는 그를 보며 나는 자본주의의 꽃. AE가 되겠다는 다짐을 굳혔다. 그래서 그 사악한 자본주의의 시스템에 이용되어 개평에 일희일비하는 꼴사나운 프로이자, 그 어느 누구보다 사회주의에 영민한 좌파 AE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치이념적인 공백상태이다. 즉, 백지라는 것이다. 그러한 지금에서, 내가 처음 접하는 이념은 곧 처음이자 '전적인'이념이 된다. 알고있던 개념이 전무하니, 옳고 그름을 바르게 판단할수 없고, 그것이 그저 번지르르하면 '옳은것이겠거니'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두려운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어렴풋하게나마 B급, 아니 C급이라도'좌파'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이 책은, 내게 무리한 책이었을지언정 기필코 그른 책은 아니었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김규항의 글을 평가하듯, 공격적이거나 날카롭지 않았다. 오히려 상식적이었고, 이상적이었다.(지나치게 이상적이기'만'한 얘기를 하는 것도 김규항이 지적받는 점이라 들었지만.)무게가 있었고, 또 힘이 있었다. 지금의 내가 그저 핥아 맛보는 허접한 열여섯이라면 몇년 뒤 나는 씹지도 않은 채 삼켜버려 복통에 시달리는 스물이 될 것이고 더 시간이 흘러서의 나는 '그것'을 꼭꼭 씹어삼켜 소화하고 에너지로 비축할수 있는 서른이 될 것이라 자신하는 맹랑한 열여섯이다.
i*******7 2003.01.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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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파]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며 사는 일
"[B급 좌파]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며 사는 일" 내용보기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본문 203쪽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에 이어 연달아 읽은 김규항 저자의 책이다. 사실 이 시점에서 10년이나 지난 칼럼집을 읽는다는 것이 과연 의미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는데 '과연 의미있었다.'   우선 <가장 왼쪽~>에서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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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본문 203쪽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에 이어 연달아 읽은 김규항 저자의 책이다. 사실 이 시점에서 10년이나 지난 칼럼집을 읽는다는 것이 과연 의미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는데 '과연 의미있었다.'

 

우선 <가장 왼쪽~>에서 보여준 저자의 견해가 10년전에는 이런 상태였구나, 이 사람 10년 동안 이렇게 일관성 있는 발언을 해 왔구나, 참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대개 진보적 엘리트들은 자식이 고교 입시를 치룰 나이가 되면 조금 변하는 것 같다) 또한 10년 전 한국의 문제나 지금 한국의 문제나 기본 변화가 없어서 이 십년 묵은 칼럼집이 유용하게 읽힌다는 생각도. 그리고 저자가 줄기차게 엘리트, 이른바 먹물들의 이중성을 경계하고 있다는 사실도.

 

아 참, 변화가 있다. 이 칼럼집은 '우리 안의 파시즘'을 경계하지만 지금의 저자는 '우리 안의 이명박'을 경계한다는 것!

 

내용 자체는 그리 생경하고 거부감 들지 않는다. 정치성향이 강하게 보이지도 았고 그냥 공동체 모두 함께 인간답게 잘 살자,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라는 지당하신 옛 어르신들 말씀을 모아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 내용보다 형식적인 면에서, 거의 문어체 문장이고 대중적이지 않은 비유 사용, 날선 명사 나열 표현이 많아서 글 내용의 진정성에 비해 이 저자가 욕을 먹는 것 같다.

 

계속해서, 이 저자의 책을 읽는 것은 저자를 아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물론 맨 위에 인용한 '양심 건사하기'의 측면에서 보자면 B급은 커녕 C급 좌파도 못 되는 인간이긴 하지만.

m******n 2010.07.13. 신고 공감 1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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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란 이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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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을 갖고 있던 적이 있었다.그 때 뭘 제대로 알고서 그랬던 것 같진 않다.이전에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이념에 대한 단순한 흥미 이상은 아니었을런지도 모르겠다.하지만 그 사상에서는, 기존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확고한 의지같은 게 배어나오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한 때나마 가까이 했던 많은 것들에서 하나 둘씩 멀어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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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을 갖고 있던 적이 있었다.그 때 뭘 제대로 알고서 그랬던 것 같진 않다.
이전에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이념에 대한 단순한 흥미 이상은 아니었을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사상에서는, 기존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확고한 의지같은 게 배어나오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한 때나마 가까이 했던 많은 것들에서 하나 둘씩 멀어지게 됐고,
솔직히 그런 가치들에 미련을 느끼지도 않았다고 생각한다.
내 한몸 건사하기도 힘들기만 한 것 같았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현실에, 시대상황이란 것에  점점 관심이 없어지고 무뎌져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게 성숙의 일부인냥,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적잖이 걱정이 됐다.
어쩌면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보수적인 소시민의 전형이 되어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괜히 기분만 상하게 되는 건 아닐지, 시간낭비만 하는 건 아닐는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책은 정말로 재밌게 읽었다.
제목처럼 '좌파'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글들일 거라는 예상은 당연히 했지만,
이렇게 즐겁게(?) 읽을 거라곤 전혀 예측하지 못했었다.
'온 몸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누군가 이 글의 저자인 김규항 씨를 보고 얘기했는데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순 없지만,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순하게 넘어가곤 했던,미처 두번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까지 예리하게 잡아내는 대목에선
어떻게 이런 부분까지 볼 수 있을까 하며, 그런 생각의 깊이에 놀라기도 했다.
사회 속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던 부조리들을 꿰뚫어 보고 명쾌하게 표현해내는
통찰력과 설득력은 전반적으로 감탄스러울 정도였던 것 같다.
거의 모든 페이지에 덕지덕지 포스트잍으로 도배하다시피했을 정도로,
한 군데라도 인상적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사실 아주 작은 부분에서부터 시작되는 건지도 모른다.
그냥 단순하게, 편하게, 남들과 똑같이 사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김규항 씨를 보고 단순히 피곤하게만 사는 사람이라고 가볍게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사회에 대해서 무관심한 편이었고, 일부러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지만
나를 둘러싼 세상이나 역사에 대해서 무지한 일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너무 무심해지지 않도록, 내가 살아온 시대를 알고
앞으로 살아갈 시대를 제대로 알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회주의는 이론이나 사상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인간 영혼의 가장 고귀한 감정의 항거에서 태어난다.사회주의는 비참함, 실업, 추위, 배고픔과 같은 견딜 수 없는 광경이 성실한 가슴에 타오르는 연민과 분노와 만나 태어난다."(레옹 블룸)
161쪽

 

 

y***6 2011.08.1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