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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정부의 규모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우리의 경우, 지난 참여정부에서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많은 이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아마도 새로이 등장한 정권에서는 시장 질서를 신봉(?)하는 정도가 더욱 심해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보게 된다. 하지만 시장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여도 각국은 나름의 독특함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현재의 영미 중심의 질서가 모든 국가에서 온전히 적용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적인 것에 지독할 정도로 길들여진 우리는 작은 정부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 체계를 아직도 갖추지 못하고 있는 미국을 복지국가라 부르는 건 다소 이상하다. 영국의 경우에도 보편적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 체계를 갖추고 있긴 하나 여타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복지에 지출되는 자금의 비율은 적은 편에 속한다. 물론 오늘날에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주창하던 북유럽 국가들에서도 시장 질서를 따르고자 하는 강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하지만 왜 복지 재정이 40% 이상을 육박하던 이들 국가가 아닌 영국과 미국에서 개혁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일까? 정치적인 색채가 다분히 느껴지는 대목이라 하겠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북유럽의 복지에 대한 자료를 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복지국가의 전형으로 일컬어지는 스웨덴의 경우도 미국이나 영국과 비교할 때 미흡한 수준이다. 사회복지를 공부했다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미국 대학 출신임을 감안할 때 이는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경우, 스웨덴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의 자료까지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희소가치가 높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006년이라는 출판연도는 몇몇 국가들의 변화를 정확히 짚어내기엔 다소 낡아 보인다. 일례로 스웨덴의 경우, 여란 페르손(Goran Persson)이 이끌던 사민당 정권이 가장 낮은 득표율을 기로하며 실권하는 일이 일어났음에도 이 책에는 그와 같은 변화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왜 이들 국가에서 복지국가의 탄생이 가능했는지 그리고 유사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들 국가가 복지국가의 해체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지를 엿볼 수 있다. 동시에 절대적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우리의 개혁 방향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가질 수 있다. 시장을 지향하는 움직임은 북유럽 국가들에서도 어렵잖게 만날 수 있었다. 스웨덴의 SAF나 덴마크의 DA는 이제 단체협상의 일선에 서기 보다는 마치 이익 집단마냥 홍보나 회원 관리에 중점을 둔 활동을 벌이는 것을 즐기고 있다. 노조나 사용자 단체의 집행 이사회에 참여하는 비율이 감소하고 이 빈 자리를 대기업 중심의 개별 기업들이 메우고 있는 현상은 자본 중심의 질서 개편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 국가의 기층에서는 사회적인 연대감이 흐르고 있다. 특히 덴마크의 경우, 보수정부의 신자유주의 노선에도 불구하고 오랜 사회적 파트너십의 전통이 깨어지지 않았으니, 이는 법규정보다는 사회적 파트너들간의 협상을 중시했던 덴마크의 오랜 전통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예는 시장형 개혁을 시도하는 국가에 있어 그 잠재성과 함께 all or nothing 형의 한계를 함께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이 택하고 있는 현재의 시장형 모델 대신에 덴마크 전력산업과 같은 혼합형 개혁 모형을 한 가지 대안으로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p 387 중에서) 그러고 보면 ‘복지국가’라는 같은 테두리 안에 묶이는 이들 국가들 간에도 분야별 개혁의 모습이나 정도는 결코 같지가 않았다. 하물며 미국의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나 결코 미국이 될 수 없는(!) 우리는 어떠하겠는가? 단일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강하게 유통되고 있는 우리에게는 어쩌면 북유럽 국가들이 택한 참여-분권형 모델이 더욱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사회적 안전망이 명확히 설정되지 않은 현재의 상황에서 오로지 시장에 의존하는 것은 사회의 붕괴를 촉진시키는 자살행위(!)와 같은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농후하다. 안타까운 점은 우리의 자본주의가 그다지 성숙하진 못했다는 점이다. 급격한 사회 발전의 과정에서 부의 축적이 정당한 방식으로 행해지지 못하였기에, 우리 사회에선 부자를 향한 경건한 마음이나 존경심 따위를 기대할 수가 없다. 또한 국가를 제일 상위에 두며 항상 노동 계층을 비롯한 여성, 농민 등의 희생을 강요해온 분위기는 참여-분권형 모델의 성공을 위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세력간의 대등한 참여를 불가능하게 만들 소지가 높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이 개혁의 정도(正道)인지 확신을 가지기는 힘들다. 하지만 개혁은 일방 통행도로나 막다른 골목과는 다르다. 언제나 대안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우리에게 어울리는 길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개를 돌려 보다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가 아닐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