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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철이의 모험
주요섭 선생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귀여운 옥희가 등장하는 사랑손님과 어머니이다.
우리 적 교과서에도 실렸던 이 유명한 작품은 지금까지도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오며 영화로 패러디한 코믹 영화로도 만들어졌었다.
그런데 우리 문학사에 큰 점을 찍을 위대한 업적을 이분이 이렇게 남겼는 줄은 몰랐다.
판타지 하면 으레 서양에서 비롯되었거니 생각하며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를 먼저 떠올렸었는데 그보다 먼저 우리나라에 웅철이의 모험이 있었으니 당시 신문물과 지식, 문학 등이 도입되던 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우리나라에 때맞춰 들어왔었나보다.
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웠던 앨리스가 잠이 들어 꿈 속에서 토끼를 따라 모험을 펼친 이야기를
시대와 배경, 인물이 우리나라로 설정되어 이야기 속의 또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도 높은 판타지를 그래낸다.
동네 친구 애옥이와 복실이, 차돌이와 소꿉장난을 하던 웅철이는 복실이와 차돌이가 싸워 놀이를 그만두고 애옥이 언니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으러 간다.
애옥이 언니는 애옥이와 웅철이에게 이상한 나라 앨리스를 읽어주는데 그걸 듣고 있던 웅철이가 토끼가 조끼를 입다니 하며 웃는데 갑자기 진짜로 말하는 토끼가 나타나 토끼는 조끼 못 입나요 하고 되묻는다. 그 토끼를 따라 간 웅철이는 토끼가 건네준 알약을 먹고 토끼장 속의 땅 속 나라, 이어 달나라 해나라 별나라 구경을 하게 된다.
땅 속 나라에서 풀의 정령, 꽃의 정령들도 만나는데 그들을 도와 개미 떼를 물리치고 잠자리 떼가 끄는 수레를 끌고 달나라로 가서 계수나무 아래 절구 찧는 토끼를 만나 바로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에서 경주를 하던 그 토끼라는 것도 알게 된다.
강가로 놀러간 웅철이는 새끼 용을 구해주지만 불개 나라로 잡혀가 죽을 고비를 맞는다.
아슬아슬하게 사형장에서 구출된 웅철이는 이번에는 해 나라에 도착하는데 모든 것이 그림자로 된 해나라와 어른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별나라 아이들에게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몰라 잠시 숨는다.
그리고 자신이 타고온 로켓을 소개하려 하는데......
옛 이야기 같으면서도 우리 전래 동화 속의 인물들이 출동하고 상상 속의 또 다른 상상이 주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도록 잘 장치해놓고 있다.
각 여행한 나라들에서 생명의 소중함이나 당시 우리 민족이 처한 상황을 암시하고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과 믿음을 돈독하게 했으니 새 시대의 형식인 판타지 형식으로 그 당시에 썼다는 것도 큰 기념이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 불운한 시대의 아이들에게 희망과 용기와 꿈을 실어주려 한게 아니었을까.
단순한 판타지 이상의 의미를 지닌 웅철이의 모험.
이 책을 읽게 된 것이 나에게는 얼마나 큰 행운인지.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아직 읽지 못한 많은 아이들에게 이 책을 꼭 권유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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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철이의 모험은 고전미가 넘쳐 흐르고 활력이 솟아나는 소설이다. 시대상을 고려한다면 다소 엉뚱한 표현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만 크게 본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시대가 주는 암울함에 빠진 독자들에게 희망을 선사하고, 가능성을 제시하는 구성이다.
웅철이의 모험을 궂이 요즘처럼 장르로 따진다면 패러디를 차용한 판타지 문학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평소에 익히 들어 잘 아는 이야기들을 곳곳에 비치하고 복합적인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교차하게 하는 구성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한번쯤 읽고 들어봤음직한 설화와 동화의 내용을 새로운 모습으로 만나볼 수 있어서 유심히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무척 흥미롭다.
이런 부분은 웅철이의 모험을 감명깊게 읽게 하는 한 축이 되었다. 앞으로도 웅철이의 모험이 특정한 문학작품으로 국한되기 보다는 요즘 아이들에게도 유년기 시절 늘 들었던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중 하나로, 국내 근대소설의 큰 맥락으로 자라잡아 남기를 바란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부분을 단순하게 생각할 것만이 아니라 시대상과 맞물려 당시 우리나라 근대사의 큰 틀을 확인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패러디 한 내용이 상당부분 설화의 원류와 일치하지만, 우리나라만의 고유풍습이나 서정적인 느낌이 창의성을 띄고 있다. 원본의 느낌을 그대로 빌려왔더라도 웅철이의 모험이 주는 뉘앙스는 약간 다르다. 땅굴 속에서 쥐들이 콩을 만들어 메주를 띄워 호콩 농사를 짓고 풀을 뽑을때마다 숲의 정령들이 고통스러워한다는 표현등은 동심을 건드리고 우리네 시골풍경을 세련된 표현으로 재구성한 것응로 보여진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테마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어 어우러지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근대문학 치고는 다소 뚜렷한 개성과 윤곽이 드러나는 성격의 이야기들이 굉장한 속도로 빠르게 전개되고 새로운 장면이 휙휙 지나가는 경향이 없지않아 있지만 국적을 불문하고 다양한 동서양의 설화를 차용해 하나의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는 것은 근대소설의 판타지적 요소를 바라보며 점검해보아야 하는 의의를 띄고 있으며 한국 판타지 동화의 역사성을 그대로 여실히 보여준다.
이 작품은 주요셉 선생님의 작품 다운 면모와 문학적 묘미가 많이 드러나 있다. 중학생 문학 교과서에도 등장할만큼 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주요셉 선생님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평양 사투리가 등장한다. 사투리 덕분에 언어의 표현력이 보다 풍부해지고 맛깔스러워졌으며 옛 정취를 그대로 흡수할 수 있는데 도움을 준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시대상을 반영한만큼 요즘 어린이들이 읽기에 다소 표현력이 매끄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 수 있을것 같다. 그러나 주석이 있어 내용의 이해를 도와 전개상 삐걱거리는 부분이 없었고 오히려 어휘력 증진에 도움을 주는 표현이 많았으며
작품의 전체적인 이해를 돕기위해 주석과 유성호 선생님의 삽화가 곁들여져 있어 좋았다.
아동문학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나 한국식 근대문학과 판타지적 결합의 쌉쌀한 묘미를 받아들일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예전에 발표된 문학임을 고려해 보더라도 작가가 보여주는 순간적인 재치와 새로운 기법 활용은 감동할 수 밖에 없는 요소인것 같다.
근대사의 어려웠던 시절을 짐작할만한 요소로 개미떼와의 접전과 웅철이의 험난한 여행길은 민족성을 자극하며 당시 일제 강점기의 어린이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구수한 시골일상을 담은 소설이 그리울대, 울긋불긋한 꽃 천지의 풍경으로 접어드는 우리네 서정문학의 상황묘사가 선사하는 친근함은 구수함 그 자체로 남았다.
외국것도 우리 방식 대로 풀어나갈 수 있는 현명한 노하우를 가르쳐주시는 주요셉 선생님의 깊은 뜻, 우리나라 판타지 역사가 이렇게 앞서 있었다니 놀랍고 고전적인 멋과 향취가 듬뿍 배어있어 매우 친근하고 흥미롭게 느껴진다. [인상깊은구절] "토끼가 조낄 입다니! 시곈 또 웬 시계 하하" 하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머리 뒤에서 "왜요 또기는 그래 조끼도 못 입나요?" 하고 말하는 낯선 소리가 들린다. 어리둥절해서 보니까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복돌이네 집에서 기르는 토끼다. 토끼는 사라졌지만 웅철은 복돌이나 토끼니까 복돌이네 집으로 갔으려니 짐작하고 그리로 달려간다. 토끼는 사라졌지만 웅철은 복돌이네 토끼니까 복돌이네 집으로 갔으려니 짐작하고 그리로 달려간다. 토끼가 주는 약을 먹고 몸이 줄어들어 토끼 장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때까지 높은 언덕으로 꽉 막혀 있는 줄로만 알았던 토끼장 뒤가 아주 막힌 것이 아니고 뒤로 통하는 문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웅철이는 땅속 나라를 구경하게 된다. |
| 아이와 동화책을 함께 읽다 보면 어떤 이야기 구조에 아이가 빠져드는지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어서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아니면 동화속 주인공이 바로 자신으로 느껴질 때 아이는 함께 흥분하기도 하고 낄낄 웃기도 하고 화내기도 합니다.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 된것 같은 생각이 드나 봅니다. <웅철이의 모험>은 책소개에서 부터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판타지소설의 효시라고 되어있군요. 더군다나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주요섭>님이 쓰신 판타지동화라고 하니 아이에게 읽어주기 전부터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웅철이의 모험>이 1937년도에 발표한 작품이니 거의 7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는 동화입니다. 하기사 우리나라 전래동화나 외국의 안데르센 동화 같은 작품들은 100년, 200년, 300년을 훌쩍 뛰어넘는 이야기들이니 7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지만, 보통 전래동화나 외국 동화들은 현시점에 맞게 문장들을 고쳐서 지금 아이들이 쉽게 받아들일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웅철이의 모험>은 70년전 문장들, 어법들, 사고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어찌보면 조금 낯선 문장이나 단어들이 튀어 나오기도 합니다. 옛날, 아주 조금 옛날 우리보다 조금 앞서 살았던 어린이들의 언어와 생각들이 담겨 있습니다. 낯설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지만 흥미롭기도 합니다. 이제 일곱살인 아이에게는 너무 긴 내용의 동화가 아닐까, 더군다나 요즘 작가가 쓴 책도 아니고 70년 전 우리나라가 일제시대에 있던 시절에 쓰여진 동화를 재미있게 느낄까 의문을 가지고 이야기를 읽어 주었습니다. 밤마다 잠들기 전 조금씩 나누어서 읽어 주었지요. 처음 몇장은 아이가 낯설어 하는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읽어 나갈수록 이불에 누워있던 몸을 점점 일으켜 세우네요. 주인공 웅철이가 애옥이 누나가 읽어주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듣다가 꿈을 꾸게 되면서 만나게 되는 ''조끼입은 옆집 토끼''와 함께 떠나는 환상여행! 바로 ''땅속 나라 구경'' ''달나라 구경'' ''해나라 구경'' ''별나라 구경''을 하게 되면서 여러가지 모험을 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구조는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시작되지만 네가지 모험 이야기속에는 더 많은 층의 이야기들이 들어 있습니다. 어려서 어른들에게 들었던 달나라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를 찧는 토끼 이야기부터 거북이와 토끼의 달리기 경주 이야기, 용궁 용왕님이 병에 걸려 토끼의 간을 구하러 떠나는 거북이 이야기 등 우리에게 익숙한 옛이야기들이 웅철이의 모험속에 함께 살아서 움직입니다. 아이도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 동화속에 새롭게 들어있으니 재미있나 봅니다. 이야기 중간중간 자꾸 아는 척 하며 참견하려 하네요. 처음에 동화를 읽어 주면서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 달나라 토끼 할아버지는 거북이하고 경주하다가 졌다고 평생 계수나무 아래에서 허리도 못펴고 절구를 찧어야 하지?'' "왜 웅철이가 토끼 할아버지를 도와주려 하는데 순경이 나타나 죄인이 일하는데 방해하면 안된다고 호령을 할까?" ''왜 불쌍한 거북이를 오로지 토끼나라를 위해 옥황상제님께 제물로 바치지?" 그런 의문이 자꾸만 들었습니다. 아이가 혹시 이야기를 진짜로 믿어 죄를 지으면 평생 용서 받지 못하는 거로 생각하면 어쩌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혀도 된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솔직히 조바심이 났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계속해서 읽으면서 그런 의문은 작가가 일부러 아이들에게 거꾸로 생각하기를, 왜? 라는 의문을 갖게 하려는 의도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해나라의 권력을 갖고 있는 원숭이들이 배고픈 거지들은 굶고 있는데 창고에 가득 쌓아둔 달팽이의 썩어가는 냄새를 맡기 싫어 태워버리는 이야기, 달나라에 사는 불개들이 친선을 도모하는 인방(이웃 나라), 토끼나라에 사신을 보내 억지 이유를 만들어 웅철이를 잡아들이게 하고 배상금을 요구하는 모습은 지금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이고 세상의 부조리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들려주면서 "왜지?"하고 아이들의 생각에 물음표를 달게 하려고 만든 이야기는 아닐까 느껴졌습니다. 아이가 이 이야기를 전부 다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은 알겠습니다. 긴 이야기를 나눠서 읽어주는 것이 감질 났는지 중간까지 읽고 "다음 이야기는 내일로!"하고 불을 끄고 재우려고 하니, 아이가 부시시 일어나 스탠드의 불을 켭니다. 그리고는 쪼그리고 앉아 방금 읽어준 <웅철이의 모험> 다음 이야기를 찾네요.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나 봅니다. "엄마, 웅철이가 불속으로 들어갔는데 죽은거 아니지? 그거 가짜지?" 웅철이가 어떻게 됐는지 염려되나 봐요. 일곱살 아이가 읽기에는 책의 분량이나 내용이 버거울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이가 호기심을 보입니다. 웅철이의 멀고 먼 여행, 우주로 떠나는 세상 여행을 아이도 함께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야기에 사로잡혀 버린것 같습니다. 저 또한 즐거웠습니다. 70년 전, 이제는 저의 할아버지의 아버지쯤 되는 웅철이라는 아이의 환상 여행을 함께 하면서 70년 전 세월을 건너가 보았습니다. 그 시절의 풋풋한 마음 속을 들어가 본것 같습니다. 제가 살기 전의 세월속으로... 아마 우리 아이 또한 의식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때 그 시절을 잠깐 느끼지 않았을까요. |
| 무심코 작가의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주요섭. 그 유명한 국민 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지은 그 작가? 전통미와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넘치는 그 소설과, '모험'이란 단어가 들어간 이 소설의 제목이 어울리지 않는듯 하면서도 호기심과 기대감을 주었다. 게다가 책 소개를 들여다보니 이 책이 '우리나라 최초의 판타지 동화'라고 한다. 문학평론가 김경연씨가 어렵게 이 책의 원본을 찾아낸 과정을 밝힌 것을 보니 더욱 궁금해진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듣던 웅철이는 토끼가 말을 하고 조끼를 입으며 시계를 찬다는 말에 '흥' 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등 뒤에서 난데없이 나타난 조끼 입고 말하는 토끼의 출현. 그 토끼 (이웃집 복돌이네 토끼!) 와 함께 드디어 모험이 시작되니, 땅속나라, 달나라, 해나라, 별나라 구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거기에서 눈뜬 쥐의 양식을 만드는 장님 쥐도 만나고, 달에 산다는 토끼도 만나며, 무시무시한 불개를 만나 사형에 처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웅철이의 모험을 따라가보니, 이 책이 1930년대에 나온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무척 재미있게 읽힌다. 그리고 정겹다. 이야기 곳곳에 옛날 이야기, 즉 방아찧는 토끼,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토끼 간을 둘러싼 토끼와 자라 이야기 등이 버무려져 친근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또한 우리 소설이기에 우리 말이 가지는 정겨움과 감칠맛과 곳곳에서 묻어난다. 우리의 옛 말과 판타지의 상황이 이렇게 잘 조화되는 것도 놀라운 일. 그리고 군데군데 등장하는 '창가' 한토막도 참으로 맛깔스러우며 의외로 친근하게 다가오는데, 이것은 우리가 같은 정서를 지닌 한민족이기 때문일런지. 어디 그 뿐이랴. 마치 눈 앞에 보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한 기법은 유명하다는 현대의 여느 판타지 소설에 견주어도 결코 손색이 없다. 여러마리 토끼들이 일제히 ...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자 맨 앞에는 탄 늙은 토끼가 꼭 차돌이 할아버지처럼 침을 퉤하고 뱉더니 종을 쩡그렁 치고 멍에 줄을 들어 낚아채니까 와그그 하고 수백 마리 잠자리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웅철이가 탄 수레가 흐느적하더니 하늘로 하늘로 훨훨 떠올랐습니다. 땅속나라에서 달나라로 날아가는 이 장면에서 웅철이의 수레 비행이 얼마나 생동감있고 시각적으로 묘사되었는가! 잠자리가 이끄는 수레를 탄 웅철이와 토끼의 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가만 보니 이 책, 만약 영화화한다면 2000년대에도 충분히 어필할 것 같은데... 가장 행복한 나라, 별나라에서 웅철이가 만난 세계는 어린이 나라다. 어른이 있으면 나라가 미워지고 더러워지고 악해져서 어른들이라고는 통 안생기는 나라라고 한다. 그곳에서 밤이면 아이들이 횃불을 켜고 돌아다닌다는데, 배도 고프고 병도 들고 얻어맞기도 하는 저 먼 지구 나라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라나. 어린이를 비로소 인격체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일제 강점기의 시대적 분위기를 떠올리며 읽었고, 60여년이 흐른 지금도 전혀 어색한 부분이 아니라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한번 읽어보시라! 해리 포터의 마법학교, 반지 원정대의 활약이 무색한 웅철이의 모험을 여기서 만날 수 있다. |
| 딸아이가 평소에 판타지 소설을 너무 좋아한 탓에 나도 자연스레 판타지 소설에 관심이 간다. 판타지가 담고 있는 매력은 타 소설보다도 상상의 나래를 무궁무진하게 펼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 때문에 아이들은 판타지의 매력에 쉽게 빠지게 되는가 보다. 아이의 말이 판타지 소설 속에서는 주인공이 되어서 마음껏 여행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게 아이를 사로잡고 있는 판타지 소설을 생각하면 외국 작품들이 수두룩 떠오른다. 마법의 시간여행을 시작으로 나니아 연대기, 해리토터 시리즈 그리고 얼마전에 읽은 율리시스 무어까지...온통 외국 작품만 떠오르지 정작 우리나라 작품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판타지 동화의 기원을 보니 1940년 이원수 선생님의 [숲 속 나라]라고 하는데 실은 이보다 3년 일찍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작가로 익히 알려진 주요섭 선생님의 [웅철이의 모험]이라는 작품이 있었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우리 나라 최초의 판타지 동화를 읽는 기쁨을 아이와 함께 누릴 수 있었다. 웅철이의 모험은 기본 구성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표방하고 있다. 앨리스처럼 조끼입을 토끼를 따라서 모험을 하게 되고 결국은 잠에서 깨어나 현실에 오게 되는 결말이 일맥상통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웅철이가 가는 곳은 지극힌 한국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곳이라는 것이 앨리스의 모험과 차별화된 점일 것이다. 웅철이가 여행하는 땅 속나라, 달나라, 해나라, 별나라에서는 작가의 상상력이 십분 발휘되는 모습을 재미나게 경험할 수가 있다. 땅 속 나라에서 풀의 정령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땅밑의 뿌리가 마치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상상력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식물을 이렇게 정령의 모습으로 상상을 한다면 아이들이 함부로 꽃이나 풀을 잡아 뜯는데 멈칫하게 될 것 같다. 지상에서 나비를 보기위해서는 꽃의 정령을 도와 나비 수렝이를 지켜내야한다는 설정 또한 아이들에게 나비를 보기위한 일련의 과정에 상상의 나래를 달아주게 된다. 무엇보다 달나라에서의 작가 상상력이 가장 극에 달했다는 생각이 든다. 계수나무 토끼는 알고 보니 거북과의 달리기에서 진 토끼가 벌을 받고 있는 모습이라니..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난다. 그리고 강가에서 우연히 구하게 되는 새끼용과 이때문에 해를 삼키는 불개의 나라로 끌려가는 대목에서는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해를 삼키는 불개 이야기와 접목시키는 노련함도 엿볼 수 있다. 부와 빈이 극대적으로 묘사되 해나라를 등지고 웅철이가 찾은 별나라에서는 아이들만의 순수함을 담아낸 환상의 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도 없고 돈을 벌기위해 아둥거리는 사람도 없고 공존하고 함께 행복을 나누는 세계 말이다. 그러나 이런 세계 역시 꿈의 세계일 수 밖에 없음을 말하고 싶었는지 작가는 웅철이가 가게 되는 마지막 세계로 자신의 망각의 세계로 보낸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체가 보여지는 세계말이다. 작가는 생각하기 나름에 따라서 세상은 아름다울 수도 있고 무서운 곳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웅철이는 혼자만의 두려움을 견디지 못해 무서운 상상을 하다가 비명과 함께 모든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기본 틀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다를 것이 없지만 웅철이의 모험세계에서는 작가만의 독특하고 창조적인 상상의 세계가 십분 발휘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전래 동화인 토끼와 거북이나 불개 이야기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부분이나 꽃의 정령의 등장으로 식물을 의인화 시키는 부분, 그리고 아이들만의 아름다운 세상과 망각의 세상까지..즐거운 상상력 속에는 나름대로 의식도 담아내고 있는 것 같다. 해나라에서 보여지는 부와 빈의 극대 현상은 아이들 시각에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의 상황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별나라는 아이들의 세상, 물들지 않은 순수함의 세상으로 모든 이가 함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환상의 세상이지만 작가가 원하는 세상일 수도 있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의 꼬마 숙녀 옥희에 대한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다. 옥희라는 인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도 작가 주요섭의 순수한 동심이 바탕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그런 순수한 상상력은 [웅철이의 모험]을 통해서 마음껏 발산되어 졌다고 본다. 기본 틀은 외국 작품을 모방했지만 한국의 정서와 이야기를 담아내려는 모습 속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본다. 초등 2학년인 딸아이에게 책을 권하면서 어투가 제법 어색해서 손을 놓지 않을까 했는데 관심을 가지고 단숨에 읽어나갔다. 역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비슷하다는 말을 하고 불개나 토끼와 거북의 이야기 조합을 흥미롭게 받아들였다. 마지막이 조금 무섭게 끝난다고 말했지만 전체적으로 흥미로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웅철이와 하나가 되어서 말이다. 우리 나라 최초의 판타지 동화가 어떤 것인지 우리 아이들이 아니면 누가 읽어야 한단 말인가? 외국 작품에 너무 익숙해진 우리 아이들에게 이번에는 부모들이 우리 작품을 손에 쥐어주면서 그 가치와 작품성에 함께 빠져보는 것이 어떨까? 재미? 그건 이미 딸과 내가 경험한 후이다. |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쓴 작가의 환타지라니! 그것도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이제서야 이 책을 읽게 되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고 느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따라한 것이 아닐까 했는데 토끼를 따라가는 웅철이가 가는 곳은 대단한 모험이 가득 기다린다. 땅속나라, 달나라, 해나라, 별나라를 여행하면서 희한한 일들이 웅철이를 놀랍게 하는데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아마 통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 같다. 예전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하나도 이해 못 해서 몇 번을 읽었고 또 악몽까지 꾸는 경험이 새록새록하기 때문이다. 내가 앨리스가 되어서 끝도 없는 계단, 아니 위로 올라가면 밑으로 또 내려가는 이상한 미로같은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트럼프 카드 병정들에 의해 쫓기고 갇혀 어쩔 줄 모르는 것이었다. 웅철이의 모험은 해리포터의 환상적인 이야기에 견줄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해리포터가 마법을 하는 점은 빼야 하겠지만서도. 웅철이처럼 꿈 속 나라에서 멋진 모험을 하고 싶은 아이들을 위해 읽어주면 어떨까? |
| 웅철이의 모험은 우리 나라 판타지 동화의 역사를 십 년 이상 앞으로 당겨 놓을 만한 중요한 작품이라고 한다. 1937년에 발표된 작품이니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주요섭 선생님의 글이라고 하니 더 궁금해져서 얼른 책을 읽게 되었는데 책을 읽는 순간부터 나는 서서히 책에 빠져들었다. 이 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아닌 "이상한 나라의 웅철이"라고 하면 딱 좋을 책이다. 도입 부분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애옥이 언니가 들려주는 데 이것을 들으면서 웅철이는 "정말 이상한 토끼도 다 있네" 생각하다가 실제로 그 토끼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만다. 토끼는 웅철이에게 작아지는 약을 먹이고 웅철이는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를 여행하게 되는데 여기서 접하는 곳들이 다 흥미로운 것이 거북이와 토끼의 경주 때 게으름을 피우다가 거북이에게 진 토끼가 달에서 종신형을 받아 계속 절구를 찧는 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던가 토끼를 속여 용궁까지 데리고 간 거북이의 죄가 괘씸해서 거북이를 제물로 바친다던지 불개가 해를 뜯어먹는 다는 것 등 우리의 옛이야기를 적절히 섞어 가면서 전개가 되서 책의 재미를 더해 준다. 그리고 해나라에서 벌어진 거지들의 양반 다툼이라든지 백성의 어려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먹고 마시며 즐기는 원숭이 그림자들의 이야기라든지 아이들만 사는 순수하고 싸움도 없는 나라라든지 꿈나라의 이야기 등은 재미와 함께 뭔가를 생각해보게 여지를 남겨주기까지 한다. 별나라 아이들이 지구 나라 아이들이 울다가도 밤하늘에 별을 보며 기뻐한다고 자신들이 힘들어도 밤마다 횃불을 켜 들어 비춰 주는 것이 좋지 않냐고 하는 대목은 아주 감동적이었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은 후에는 하늘에 있는 별을 보면서 자신들을 위해 열심히 횃불을 켜고 있는 별나라 아이들을 상상하지 않을까 생각하니 내 마음도 정겹다. 사실이 아닐지라도 누군가 나를 위해 밤하늘에 별빛을 보내주고 있다는 상상 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하고 좋지 않을까 싶다. 또한 의성어와 의태어의 적절한 사용으로 문장을 읽는 맛이 더 감칠맛나서 나도 모르게 술술 읽어내려가게 된다. 잊어버리고 있던 정겨운 말투도 다시 보게 되어 반갑고 일제 강점기에 쓰여진 어린이 소설이라니 더 새롭게 보게 된다. |
| 조끼 입은 토끼를 따라간 아이는? 아마 열이면 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릴 것이다. 우리 아이 역시 제일 먼저 앨리스를 떠올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웅철이로 바뀌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주인공인 웅철이는 애옥이 언니가 읽어주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듣다 앨리스처럼 조끼 입은 토끼를 따라가 ‘땅속 나라’, ‘달 나라’, ‘해 나라’, ‘별 나라’를 구경하게 된다. 땅속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토끼처럼 작아진 웅철이는 땅속나라를 지나 달나라를 가게 되는데 여기서 피식 웃음이 흘러나오게 된다. 어릴적 시골에 가면 할머니가 언젠가 이야기해주던 계수나무 아래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어란 말이 생각나서 빙그레 미소짓게 된다. 우리 꼬마는 이 부분을 읽더니 진짜 달에 토끼가 있냐며 눈이 동그래졌다..ㅋ 그렇게 달나라에서 불개들에 의해 죽을뻔한 위기를 아기 용의 도움으로 탈출하고 도중에 해나라에 도착하게 된다. 해나라에서는 거지들의 양반 다툼이라든지 먹고 마시는 양반 원숭이들의 이야기는 재미뿐만 아니라 뭔가를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별나라는 아이들만 사는 곳으로 지구 아이들이 힘들때 기운을 내라며 밤마다 횃불을 켜주는 모습은 기특하기도 하고 감동적이었다. 일제 시대에 쓰여진 만큼 어른인 내가 읽어도 잘 모르는 단어들이 중간 중간 섞여있고, 양반이라든지 지금 아이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 있어 우리 아이는 읽는 중간중간 질문이 참 많았다. 하지만 익히 알고 있는 토끼와 거북이, 별주부전..그리고 아기 용 등 아이들에게 익숙하면서 친근한 캐릭터들이 나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또한, 각 설화와 동화 사이에서 읽어내려가다 보면 요즘 책들에서 느끼는 감동과는 틀리게 마치 시골 집에서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처럼 구수하면서 정겨워 지는 것이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싶다. 만약 아이와 대화하는 것이 힘든 집이라면 더욱 더 권해주고 싶다. 옛날 단어라든지 설화 내용이 있어 우리 꼬마는 중간중간 모냐구 물어보아 아는만큼 이야기 해줬다. 그때의 아이의 눈빛이란... 존경의 눈빛을 듬뿍 받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