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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거란제국사 연구
"다시 쓰는 거란제국사 연구" 내용보기
거란은 우리와 원수였다고 교과서에서 배운다. 특히 왕건은 거란이 선물한 낙타떼를 개천에 버려 굶어죽게한다. 거란의 발원지 목련산까지 갔던 고려군은 전멸의 위기까지 맞았으니까. 특이하게 거란에 대해 연구한 분이 계셔 별다섯을 멋모르고 드렸었다. 고은시인이 그러셨다. 올라갈때 못본꽃 내려올떄 보았네. 다시 읽을 시간이 되어 한 번 다시 정독했다. --------------------
"다시 쓰는 거란제국사 연구" 내용보기

거란은 우리와 원수였다고 교과서에서 배운다.

특히 왕건은 거란이 선물한 낙타떼를 개천에 버려 굶어죽게한다. 거란의 발원지 목련산까지 갔던 고려군은 전멸의 위기까지 맞았으니까.

특이하게 거란에 대해 연구한 분이 계셔 별다섯을 멋모르고 드렸었다.

고은시인이 그러셨다. 올라갈때 못본꽃 내려올떄 보았네.

다시 읽을 시간이 되어 한 번 다시 정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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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우리보다 거란제국사등 북방유목민에 대한연구가 활발했던 이유는 그들도 중국을 지배한 이민족이었기에 좋은 선례가 있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란다.
우린 그저 몽골 요 금 청 위구르 티벳등이 중국을 통치하거나 위협한게 그저그런 침략의 일부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들도 다 세력의 균형이 어긋날때 그런 판도가 생겼다는걸 알았다.예를 들자면 거란은 몽골로 쇠가 들어가는걸 단속했는데 금나라가 그 조치를 완화했기에 몽골의 세력이 강대해질 수 있었다든가
거란이 서남부에 군사력을 집중하는 바람에 북쪾에서 흥기하는 금나라 세력을 견제하지 못했다던가
그저그런 역사의 수순이 아닌 그것들이 어떠한 상황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던가를 구체적으로 지적한 아주 좋은 역사참고서였다.

  거란은 우리나라에게 있어선 숙적이나 침략자란 이름으로 불린게 전부였다.
과연그럴까 터키는 우리나라에 대해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 왜 그건 흉노족을 소호금천씨라 한다
신라도 가야도 조상을 소호금천씨라하고 흉노족이 동진하여 세운나라이고 흉노족이 서진하여
세운 나라가 터키다 지금의 위구르 과거의 돌궐이 그 나라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씨가 김씨 박씨 독고씨라고나 할까

위의 이야기는 지금의 책에는 안나와 있지만 남흉노가 거란이고 북흉노가 몽골이다 즉 우리의 원조상과 한핏줄의 나라인 것이다.
  거란에 대해 싸운 이야기 이전의 우리와 갈라지게 된 뿌리가 하나인 민족에 대해 이 책은 연구하고 있고 중국에 서서히 흡수된 과정을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일본인 학자들의 연구가 우리보다 한 수 위라는걸 느끼며 우리도 조금쯤은 생각하고 있다는데 다소간의 안도를 느낀다.
  역사서이며 우리민족의 뿌리를 느끼게하는 책이며 중국인의 화이사관에 맞선 이화사관을 적립한 민족으로서의 의기를 느끼게하는 책이다.
 한가지 바라는것이 있다면 좀더 다양한 분야에서 좀더 쉽게 정리한 소수민족의 역사서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유라시아 유목제국사를 공동으로 번역한 서울대 김호동교수의 황하에서 천산까지  가 갑자기 생각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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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고난후 리뷰를 달았다.

훌륭한분의 정년기념 역사저술인데 그 분이 보시고 얼마나 욕하고 실망하셨을까

단 하나있는 리뷰였는데... 죄송스럽다.

 

이런 보물창고였는지는 몰랐다.

한가지 아쉬운점은 북위,원,요,금,청 이라 이화사관의 북방정권을 칭하셨는데

차이나는 흉노의 진시황의 진이 지나가 되고 차이나가 된 것이다.

은나라의 건국신화도 간적이 목욕을 하다 검은새가 알을 떨어뜨려 임신을 하고 낳은게 은나라의 시조 설이다. 우리의 고구려건국설화와 비슷하지 않는가.

그러니 중국의 역사에서 이민족이 다스리던 때는 1/3이 아닌 1/2이다. 은 진 북위 원 요 금 청 이 된다

쭉 찢어진 여자의 옷 치파오나 강시옷 마괘자등도 모두 동이족의 옷인데 우리는 중국옷으로 잘못알고있다.

 

몽골과,거란,여진의 발흥에 관한 자세한 내막과 고려의 대장경이 사실은 거란의 원류란 사실도  알게되었다.

예를 두가지 들자면 이책의 69페이지

요나라는 철제무기에 의한 무력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국의 철이 서방으로 유출되는 것을 경계하여 철금정책을 엄중하게 유지하였다. 그리하여 인접한 몽골의 제 부족까지 오래도록 철로 된 화살촉을 사용하지 못하였다가 금나라 시대에 이르러 철의 단속이 완화되면서 철기가 몽고로 유입됨으로써 몽골의 세력이 막강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 칭기즈칸이 그냥 마구잡이식으로 정복한 것이 아니다.

 

무어라해도 지나에서 경제적 부의 원천은 강절지방에 있는데도 금나라는 이곳에 한 발자국도 들여놓지 못하여 항상 재정난으로 허덕이는 한편 원래 적은 수의 민족이 광범한 지역을 수비하고 통치하려 했기 때문에 매우 고심하여 지나인 이외의 민족 중에 거란인에게 국방의 한 부분을 담당하게 한 것이 도리어 결함을 빚어내어 이들의 배반이 강적인 몽골의 침략을 빠르게 하여 멸망을 불러들였다.

희종이후 지나문화에 대한 탐닉으로 궁정으로 들어오는 지나 여인이 더욱 많아져 지배민족으로서의 피가 흐려졌다. 게다가 지나인 여권의 강화가 민족적 긴장을 더욱 풀어 놓았으며 더 나아가 여진족 전체의 문약화에 따라 건국 당시의 강건한 의지를 가속도적으로 사라져버리게 하였던 것이다.

 

북방유목민에겐 타초곡이란 약탈행위로서 식량과 풀을 얻기 위하여 행한 유목적 습관이 있었고 거란군은 전혀 식량을 휴대하지 않았다. 이는 농경민인 지나인의 생활을 궁핍하게 했고 유목민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게 했는데 이로 인해 세폐라는 제도가 생겨났는데 농경민의 입장에서 보면 유목민족의 정기적인 침탈을 중지시켜 주는 요소이며 유목민족의 처지에서 말하면 농경지대에 대한 약탈권을 일정액으로 양도한 것이다.

하지만 거란은 재정 지탱해 준 것은 주로 농경을 하는 지나인이고 군비의 팽창을 마련하기 위하여 농경지의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유목민의 방목지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결국은 요나라가 쇠망하는 원인이 된다.

요나라에는 질립제(선거제)는 유목성이다. 신라의 화백부터 발칸에서 웨일즈로 이동한 켈트족의 테니스트리까지 유목성은 민주주의의 기초가 됨을 느낀다.

 

281-282 페이지는 요나라가 어떻게 지나를 성공적으로 통치한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증을 거친KBS역사스페셜의 내용과도 많이 다르다.

고려는 거란의 10만대군을 격파하여 후세에 길이남을 업적을 세웠다하지만 거란에선 이때가 성종시대였다.     시호가 말해주듯이 성군다운 성종이었다. 강감찬 장군은 이겼지만 약속을 어긴건 고려다 그렇다면 안중근이 이끈 독립군도 졌지만 약속을 어긴건 일본군 아닌가. 시대는 달라도 상황은 같다.

장곡과 남경의 지나인이 요나라의 멸망을 원하지 않은 것은 어저면 같은 시기에 지나인 관료와 지나인이 총체적으로 요나라의 멸망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천조제의 서천 이후 지나인 관료와 지나인이 요나라를 끝까지 지지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요나라 통치하의 지나인 관료이기는 하지만 관료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아 지배계층으로서의 사회적인 권익을 보장받고 있었기 때문에 과거제가 실시된 성종 이래 지나인 관료로서 만족하여 지나인의 총치에 임하고 있음을 긍지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천조제의 서천 이래 지나인이 경제적으로 풍요를 누리고 있었던 것은 중농정책이 가져다 준 결과일 것이다.

 

멀리북방민족 사이에 전해져 돌궐등의 부족은 거란을 음역하여 키타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전승되어 중세 이래 서방사람은 북지나나 지나전체를 가리켜 키타이 또는 카타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나사람들은 거란은 아조 즉 우리나라라 칭했다. 은덕을 베풀어서

발칸에 거주한 서방사람들은 한가지 세금을 거두었고 다음에 지배를 한 이슬람은 여러세금을 거두었지만 모든 세금을 다합해도 한가지 세금보다 적었기에 이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쌍화점이란 영화를 본다. 송지효가 아주 연기가 뛰어난 프로란걸 느낀다. 북방엔 대처제라는 풍습이 있다.

손님에게 부인을 내주는 삼국지에서도 여포가 그러했다. 갈매기는 레즈비언이 존재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역사나 문화가 우리주변엔 많이 존재함을 이 책은 또 다른 시각에서 가르쳐주고 있다.

아주 훌륭한 저서를 참으로 탐독하면서 읽는다. 아주 좋은 책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s*****6 2013.07.0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거란 제국사 연구 - 서병국
"거란 제국사 연구 - 서병국" 내용보기
두어 주 전에 어떤 연예인이 배경으로 찍은 사진 하나를 웹에서 구경하고(그 사진 자체는 더 오래되었을 수 있는데 이건 제가 사정을 모르겠습니다) 새삼 생각이 나서 이 책을 (다시) 골라 읽게 되었습니다. 미국에는 "캔사스"라는 이름을 가진 지명이 여럿 있는데, 좀 엉뚱한 곳에 이 이름이 붙은 사연도 꽤 깁니다. 그런데 전혀 아니다 싶은 (그 중 하나의 캔사스인) 이곳에 해당 문화
"거란 제국사 연구 - 서병국" 내용보기

두어 주 전에 어떤 연예인이 배경으로 찍은 사진 하나를 웹에서 구경하고(그 사진 자체는 더 오래되었을 수 있는데 이건 제가 사정을 모르겠습니다) 새삼 생각이 나서 이 책을 (다시) 골라 읽게 되었습니다. 미국에는 "캔사스"라는 이름을 가진 지명이 여럿 있는데, 좀 엉뚱한 곳에 이 이름이 붙은 사연도 꽤 깁니다. 그런데 전혀 아니다 싶은 (그 중 하나의 캔사스인) 이곳에 해당 문화재가 전시된 것도 알고보면 희한한 사연이 있죠. 여튼 "동방의 비너스"라 불리는 이 유명한 조상도 참 뜻밖의 장소에서 만인을 맞는 셈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정보를 찾아 보면 "요나라[遼朝]" 제작이라고 아주 못을 박아 놓은 곳이 많은데,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어떤 확증이 있는 건 아닙니다. 한참 후 청나라 때 책 하나를 보면 "... 그 시문에 과연 볼만한 게 많다"며 금조의 문장을 높이 평가한 게 있는데 이는 후손들의 자화자찬에 가깝습니다(물론 그 전의 요나라나 그 후의 몽골에 비해서 그렇다는 뜻이겠습니다). 헌데 이 관음상만큼은 정말 조형미가 압도적입니다. "동방의 비너스"라고 하는데 물론 천 년 넘게 차이 나는 제작 시점도 고려는 해야겠으나 그딴 원시적인 것과는 댈 것도 아닌, 정말로 압도적인 미의식과 테크닉을 자랑합니다. 


"관세음"이란, 본디 구마라습(천재로 불린)의 번역 솜씨이며, 한참 후의 현장은 "관자재"라고 옮긴 바 있습니다. 여튼 관세음이나 미륵은 이처럼 미묘한 여성미를 풍기게끔 조각된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전혀] 아닌 경우도 역시 많지만). 우리도 보면 그 대표라 할 만한 신라 때의 반가사유상이 있는데 역시 가슴이 약간 봉긋이 솟아오른 게 묘한 관능미를 풍기지요. 이 보상은 그보다 훨씬 요염(불경한 표현이라면 사과 드립니다^^)하며, 또 그보다 훨씬 후대의 시기에 제작되었습니다. 이런 자세를 "유희좌"라고 하며, 또 이런 자세를 갖춘 불상을 "수월상"이라 지칭한다고 합니다. 관세음을 하든, 관자재를 하든, 그 세월 동안 저런 달관의 자세로 지켜본 안목에 과연 무엇이 더 깃들었을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이 역시 불경한 표현이지만). 


요나라 하면 고려에 수십만 대군을 거느리고 침략해 온 세 차례의 사실이 떠오르는데, 모두 우리가 잘 대처하여 이후 수백 년 동안 번영을 누리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교과서에서 잘 안 가르치는 것 같던데, 저희가 배울 때에는 "... 동아시아의 거대 제국이 그 패권을 결정적으로 장악해 갈 무렵 적절한 견제구를 통해 그 과도한 확장을 좌절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지역 정세의 안정을 .... " 같은 기술을 본 적 있습니다. 힘이 강한 게 자신에게만 좋은 게 아니라 때로는 "남 좋은 일도 시킨다(?)"는 점 알 수 있죠. 

v*****7 2019.09.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