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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드컵이 한창이라 영화보다는 공차기가 더 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우리나라가 16강에 올라갔으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아르헨티나와 겨룰 때 박주영 선수의 다리에 맞아 첫골이 자책골이 되었어도, 차두리 선수가 몸이 덜 풀렸는지 나이지리아 선수를 막지 못해 첫골을 먹었어도, 김남일 선수가 어설프게 공을 다루다 페널티 킥을 주는 바람에 나이지리아와 2:2가 되어 가슴을 졸였어도, 누가 뭐래도 우린 비조에서 아르헨티나 다음으로 16강에 올라 갔다.
그런데 제가 한 일 때문에 역적 아닌 역적이 될 뻔한 박주영과 차두리, 김남일 선수는 그날 있었던 일들을 오래도록 마음에 새길까? 아니면 지나간 일이므로 다 잊어버리고 새로 마음을 가다듬고 우루과이와 16강 싸움을 벌일 생각을 할까?
내 바람은 뒷쪽이지만, 사람은 큰일을 쉽게 잊지 못한다. 아마 오랫동안 세 사람은 이 일을 마음 속에서든 사람들과 이야기 속에서든 되새김질을 할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 생채기가 나면 쉽게 낫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다. 더구나 어릴 때에 생긴 일이라면. 리처드 브룩스 감독이 1967년에 만든 <냉혈한 Truman Capote's In Cold Blood>도 어릴 때 생긴 마음의 생채기가 나중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2. 미국 땅에서 가운데는 어디쯤일까? 동쪽과 서쪽을 오갈 때 지나가야 하는 곳인 미주리주라고 하는데, 미주리와 캔자스주가 맞닿은 캔자스시에서 벌어진 일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궁금하게 만든다.
한적한 곳에 집이 동떨어져 있는 허버트 클러터는 마을에서 좋은 사람으로 알려졌다. 그 아내인 보니 클러터나, 아들 케년이나 딸 낸시도 마찬가지로 착하고 반듯하게 산 사람들이다.
그런데 간 밤에 이들이 죽었다. 총에 맞기도 하고, 칼로 목이 베이기도 하고... 앙갚음을 겪을만큼 나쁜 사람도 아니고, 수표로 돈을 주기 때문에 집에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누가 이들을 죽였을까? 왜?
죽기 전날 허버트는 4만 달러짜리 생명보험에 들기도 했는데, 받을 피붙이가 죽었으니 이 돈은 누가 받아갈까?
3. 페리 스미스(로버트 블레이크)는 1959년 11월 큰집에서 가석방으로 나온다. 옛날처럼 라스베이거스에서 기타 치며 지내면 좋으련만, 그곳에서 사람을 죽여 교도소에 들어간 탓으로 갈 데가 없다.
아버지와는 아예 담을 쌓고 지내는 사이라, 딕(스콧 윌슨)을 만나 같이 캔자스시로 같이 간다. 큰집에서 알았던 윌리가 지도를 하나 주면서 지도에 나오는 그 집에 가면 큰 금고가 있고, 그 속에 돈이 많이 들어있을 거라는 말을 들은 탓이다. 1만 달러를 벌 수 있는 일인데...
돈을 훔쳐 떵떵거리며 살고 싶지만 딕은 사람을 죽이거나 찌를만큼의 간이 큰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간이 크고 무서움을 모르는 페리를 꼬셔서 캔자스시로 가는 셈이다.
페리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같이 알래스카까지 같이 가서 금광을 찾으려 애썼지만, 나중에 일이 잘못 되어 술에 취하면 아버지는 페리를 때리고 나무랐다. 엄마는 나이가 젊은 사내와 바람이 나서 집과 아이들을 내팽겨쳤고... 그래서 돈을 훔치면, 페리는 지긋지긋한 미국을 떠나 멕시코로 가서 살 생각이다.
"둘이 같이 일을 벌였으니 죽을 때까지 같이 붙어 다녀야 해...안 그러면 내가 널 죽일 수도 있어..." 페리가 딕한테 다짐을 한다. 그런데 딕은 멕시코에서 살고 싶지 않다. '돈만 많으면 미국에서 살지 뭐하러 멕시코에서 살아...' 이런 생각이다.
4. 아이들이 보는 데도 젊은 사내와 놀아난 엄마를 둔 아이들은 아마 결혼을 좋게 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살림을 차렸을 때 내 아내가 나중에 엄마와 같은 일을 벌이지 않을까 속으로 걱정할 수밖에 없다. 겉으로는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겠지만, 속으로는 만나는 아낙네들을 믿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죽도록 때리고 미워한 아이들로서는 아버지나 힘이 센 사람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저도 좋은 아버지가 되기가 어려울 수 있다.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귀엽지만, 눈에 거슬리면 옛날 아버지가 저한테 한 짓을 되풀이 할 수도 있다. 나중에 뉘우치겠지만.
대물림은 무섭고 끊기가 어렵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성을 벌컥벌컥 내거나 사람들한테 주먹을 들이미는 사람들이나, 못 미더워하는 사람들은 어렸을 때 생긴 생채기가 낫지 않은 탓이리라.
클러터 집안이 쑥밭이 된 일을 경찰이 하나씩 파헤쳐 가면서, 페리의 삶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한테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그저 안타까울 뿐, 풀어갈 실마리가 없다. 일은 벌어졌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진 않으니까. 이런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제 피붙이를 아끼고 사랑을 듬뿍 주는 어버이를 만나야 한다.
못난 어버이를 만났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팔자가 그려려니 하고 되는대로 살아야 할까? 마음에 생긴 생채기가 크다면, 이를 낫게 하려면 어른이 된 다음에도 꾸준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 길만이 제 생채기를 씻어내고 새살이 돋게 만들 수 있으므로. 그래야 핏줄 내림을 바꿀 수가 있다.
5. 조금 길어 살짝 지겨울 수도 있는 영화다. 멕시코에서 딕이 아가씨와 잠자리를 하는 모습을 보며 제 엄마를 떠올리는 페리의 모습이 나오는데, 오히려 클러터 집에서 그런 대목이 나오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대목에서 차의 유리를 내리고 담배를 피는 모습이 나온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일인지? 감독이 주유소를 다 날려버릴 셈일까?
그런데 불쏘시개를 기름 가까이 두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우리네와 미국은 다른지 모르겠다. 지난 해 미국에 갔을 때 주유소에서 같은 모습을 보았다. 같이 간 구경꾼 가운데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었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나만 놀라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 한 마디 했을 뿐.
있었던 일을 그린 이 영화는 흑백으로 찍었다. 오래된 영화라 디브이디도 그저 그렇다. 예고편만 있는데, 화면이나 소리도 좋지는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