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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루라는 빌딩의 맨 위층에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가슴속에 담아둔 일생의 비밀 한가지씩을 털어 놓는다. 대신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지 말고 자신만 알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사고루 기담 클럽의 불문율이다. 여장 남자인 회장의 사회로 한 사람씩 이야기를 한다.
처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일본도를 비롯한 문화재를 감정하는 대대로 유서 깊은 집안의 당주다. 그는 칼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들, 대단한 감정가들마저 속인 옛날의 검을 비롯해서 전설의 비검까지 만들어내는 <대장장이>이에 대해서. 처음 이야기는 기담이라기보다는 한 집안의 이야기로 들린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보물이나 문화재니 하는 것의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있나 생각하게 한다. 정말 그 값어치가 비싼 가격에 의해 매겨져야만 하는 것일까. 그런 우매한 인간들을 비웃기 위해 천재적인 한낱 대장장이가 등장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전화>는 그야말로 평범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 모든 것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결정되어 일생을 외롭게 산 한 여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전화 한통 하기가 그리 어렵다는 것은 인간의 몰인정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다. 무엇을 바란 것인지도 모른 채 그저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다고만 생각한 남자의 모습이 오늘날에도 반영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벽은 만든 자의 잘못이니까. 그 안에 갇힌 자가 과연 누구일지...
<엑스트라 신베에>는 그야말로 기담에 어울리는 이야기다. 영화를 찍으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무엇보다 은연중에 작가가 나타내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작가의 울림이 왜 신베에의 목소리로 더 크게 들리는 것인지 걱정되는 면이다.
<백 년의 정원>은 <비 오는 날 밤의 자객>과 함께 가장 좋았던 작품이다. 하나의 정원을 백년에 걸쳐 가꾼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 집념이 소름끼치게 만든다. 혹, 일본이 바라는 것이 이렇게 잘 가꿔져서 세계를 그 안에 가두려는 것은 아닌지 이야기만으로 보면 좋은데 그 안의 이중적 느낌이 당혹스럽게 만든다.
<비 오는 날 밤의 자객>은 그야말로 이 작품의 백미다. 한 야쿠자 대 오야붕이 겪은 이야기는 잔잔한 여운과 함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인간이란 가장 열등한 동물이라는 말, 사고루라는 이곳의 이름이 주는 의미가 여기에서 비로소 잘 나타난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위로 올라와 봤더니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그렇게 올라오려고 알게 모르게 얼마나 비인간적인 일들을 했을까를 생각하며 덧없고 부질없는 인간들의 허무한 욕심이 언젠가 모래로 만든 성이 허물어지듯 사라지게 될 거라는 예감을 준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가져 보지 못하고 오야붕의 말처럼 가난뱅이 인생은 도망칠 곳이 없어 그래도 올라야 하는 것을. 그래서 사고루는 계속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모두 사라지는 그날까지! 지금도 누군가 어두운 곳에 삼삼오오 모여서 이런 마음속의 독들을 뿜어내고 들이 마시고 있으리라. 죽는 날까지 살기 위해서... 그 독주 한 잔으로 건배!!! [인상깊은구절] 240-241p 운명의 갈림길에는 늘 누군가 타인이 서 있소. 그리고 이쪽으로 오라고 팔을 잡아끌지. 그 타인이 제대로 된 사람이면 문제가 없는데,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소. 그 갈림길에 서 있는 인간은 신이 대충 성의 없게 정해주는 건지도 모르오. 선악이나 능력 같은 건 전혀 관계없지. 그런 별 볼일 없는 인간에 의해 인생의 행로가 결정되고 마는 거요. 그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다고 할 만큼 고마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놈만 없었어도 내 인생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평생 후회하는 경우도 있지. ''키 퍼슨(key person)'' 이라고 하던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중에 누가 그런 키 퍼슨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인생의 무서운 부분이라오. 285p "당신, 부자와 가난뱅이의 차이를 아시오?" "그거야 재산이 있고 없고의 차이지요." "그게 아니오. 도망칠 길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오." 305p 자신의 독을 토해내는 대신 남이 토해내는 독도 마셔야 한다. 또는, 너무 많은 독을 마셔야 하기에 자신의 독도 토해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사고루의 기담 클럽은 그런 원리로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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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명예를 위해, 또한 하나뿐인 목숨을 위해, 그리고 세계의 평화와 질서를 위해 절대로 발설할 수 없었던 귀중한 체험을 마음껏 이야기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초대장을 받고 참석하기 시작했다는 '도쿠아미'가문의 삼십사대를 이었다는 오히나다 겐이치의 초대를 받고 함께 가게 된 '사고루'. '사고루'는 높은 자리는 무르고 위험하다는 뜻의 모래로 쌓은 높은 누각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더욱 더 경계하라는 뜻일까? 그 자리는 아무나 초대받을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자리에서 정점에 오른 사람들이 바로 '사고루'의 초대 대상이다. 명예와 목숨을 위해 지금껏 비밀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자유로이 털어놓을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사고루'다. 혹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 여겨 '사고루'에 털어놓았던 비밀이 그들의 약점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대장장이/ 실전화/ 엑스트라 신베에/ 백 년의 정원/ 비 오는 밤의 자객까지, 열명의 참석자들 중 다섯명의 참석자들이 자신이 경험했던 다른이들에게 말하지 못할 비밀들을 털어놓는다. 그중 '대장장이'는 바로 화자를 초대한 오히나다 겐이치의 이야기다. 그가 화자를 초대한 이유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란다. 박물관에서 우연히 재회하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동행을 요청한 이유가 그것이었다니. 하지만 특별한 사람들만 초대받는 자리라니 호기심이 생겨나고 가능하다면 나도 참석하고 싶어진다. 절대 지켜야 할 비밀이지만 지키라고 하면 더욱 비밀을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 그런 의미에서 '사고루'는 이발사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던 대나숲과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실전화는 정신과 의사 시마 유지로가, '엑스트라 신베에'는 카메라맨 가와마타 노부오가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절대로 과장이나 미화를 해서는 안되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꿈에서라도 발설하면 안되는 것'이 모임의 규칙이다. '백년의 정원'은 오토와 다에코를 대신해 참석한 가루이자와의 정원지기라는 가쿠라이 시게가 가루이자와 정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정원지기의 이야기 속에 숨겨야 할 비밀이 무엇인지 다 읽어가도록 알수가 없었다. '사고루'라는 장소는 보통 이야기가 아닌 세상에 비밀로 해야 할 이야기만을 들려주는 것이라는데.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비밀은 자신이 여왕이라 불리는 오토와 다에코의 명성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숨겨진 '오토와 다에코' 역활을 하고 있다는 것 아닐까 싶은데.
아니 그것은 나의 착각에 불과했어 비밀이 그렇게 단순할수는 없을테니까. 정원지기 노파가 숨겨야 했던 비밀은 그보다 더 중하고 커다란 것이었다. 정원을 가꾸는데 평생을 바쳐왔다는 노파는 정원을 잘 가꾸기 위해 어떤 비밀스런 행동을 하는데. 고층 빌딜의 펜트하우스에서 열리는 기묘한 이야기 집회 '사고루', 사고루는 이야기 집회의 명칭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들려주는 기묘한 이야기에 빠져있다 보면 어느새 책장을 다 넘어가 버린다. 얼마남지 않은 지면이 아쉬워지는 순간이랄까. '비 오는 밤의 자객' 편에서는 오늘의 마지막 이야기 손님으로 자신을 야쿠자의 대표선수 격이라 말하는 야쿠자 오야붕이 등장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들은 비밀을 보장받는 자리에서 안심하고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는 다 잊어버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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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일본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았던 소설.
일생을 가슴에 담아둔 비밀을 미스테리한 모임에서 한달에 한 번 털어놓는 모임으로, 하룻밤의 5가지의 비밀이야기가 이 책의 내용이다.
다섯명의 이야기꾼이 각기 다른 출신, 배경,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은 그만큼이나 내용도 무게도 다르다.
마지막 이야기 편에서
"신기하지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을 보면 모두 진실한데도, 그런 진실한 인간들이 모이면 어째서 이런 기묘한 일들이 일어나는 건지. 그러고보면, 인간이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신이 만든 가장 열등한 생물이라는 느낌도 드오. 만들어지다 만 생물이란 생각이 들지 않소?"
이라는 대목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모든 사람들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 나에게 그런 비밀이란 무엇일까, 하고 한번쯤은 생각해보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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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다지로의 많은 소설을 봐왔지만 그 중에서 돋보이는 지하철, 철도원, 등이 너무 인상적이어을까 사고루 기담은 제목부터가 굉장히 끌렸다 하지만 희대의 이야기꾼에게 기대가 컸던 탓인지 전작보다 나은 발전을 보여주지는 못한듯하다. 아쉽지만 여타의 소설가는 타의 추종 불가다. 재미라는 면에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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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도 65%
뻔하고 노골적인 자극에도 쉽게 눈물을 흘리곤 하는 나지만,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참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게 만든 작가가 바로 아사다 지로다. 규슈의 오래된 극장에서 본 '폿포야'라는 영화가 그랬고, 그 후에 찾아 읽은 '철도원'이라는 소설이 그랬고, 여럿이 극장에서 본, 그래서 눈물 참으려고 몇 배는 더 노력하게 했던 '파이란'이 그랬고, 추운 겨울 자취방에서 이불 덮고 혼자 읽은 '칼에 지다'가 그랬다. 그래 하나같이 눈물 실컷 흘리게 만든 작가가 바로 아사다 지로다.
그런 그의 소설을 읽었으니 당연히 뭐라도 끄적거려야 할 터인데, 몸도 바쁘고 정신 없었다는 핑계 보다는 사실, 마음이 안 따라 줬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남들 눈을 피해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비밀스런 얘기를 한다는 설정이 낯설기도 했거니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이야기들이 그동안 내가 그의 소설에서 받았던 감동이랄까, 어떤 울림 같은 것과는 약간 거리가 있었기 때문.
하지만, 역시 그의 소설에는 사람이 있다. 문득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을 찾아서 듣게 만드는... 그래서 여전히 이렇게 한달도 넘은 이 시점에, 밤새 자리를 지키는 이 시간에 몇 자라도 적게 만드는 힘이 그가 가진 힘이며, 그가 쓴 소설의 힘이다. 눈물을 흘리게 하거나, 벅찬 감동을 주지는 않지만, 어디서 들은 것 같은 이야기들이야말로 어쩌면 묘하게도 불완전한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닐지. 그래서 소설의 제목이 기이한 이야기가 아니라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지. 결국 이만큼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가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여전히 들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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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위의 누각이라는 이름처럼 뭔가 신비한 분위기의 장소와 사람들. 일본의 냄새가 그리고 미스터리의 냄새가 풍기는 이야기들이었다.
모임의 주최자가 연극 같은 목소리로 사고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밤도 자신의 명예를 위해, 또한 하나뿐인 목숨을 위해, 그리고 세계의 평화와 질서를 위해 절대로 발설할 수 없었던 귀중한 체험을 마음껏 이야기해주시기 바랍니다..(이하생략)으로 시작되는 각 이야기의 시작이 인상 깊다.
소설의 화자격인 '나'는 오랜만에 만난 검의 장인인 친구를 따라 이 모임에 가게 된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하나씩 시작되고 모두 거짓없이 자신이 겪은 신비한 일을 들려주고 한 이야기가 끝나면 잠깐의 휴식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난 후에는 다시 의문을 갖는 것도 금지되어 있고, 정말 실제로 있었다기엔 믿기지않는 이야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마지막 야쿠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앞에서의 이야기는 이 이야기에 비하면 실제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받는다. 어딘가 현실과는 동떨어져있는 것같은 이야기 같던 앞의 이야기에 비해 늙은 야쿠자의 인생이 그대로 묻어나는 이야기는 놀랍지만 그 놀라움 만큼의 진정성이 보였던 것이다.
처음의 시작은 약간 힘들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가속이 붙는 소설. 사고루 기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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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해진, 가을이다. 내일이면 정식 인증 가을 9월이니까 조금 당겨서 지금도 가을이라 할 만하겠지. 가을이면 유독 생각나는 작품들이 있는데 나에게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아사다 지로가 그렇다. 현존하는 작가 가운데 최고의 필력을 자랑하는 작가 가운데 하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작가 아사다 지로(100%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몰락한 명문가의 아이가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글을 읽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얘기는 이제 누구나 알고 있는 후일담이 되었다. 그의 화려한 이력(?)은 이제 더 이상 그에게 특별한 것이 아니다. 글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력을 키웠으니 말이다. 아사다 지로의 소설은 사람의 가장 나약한 부분을 사정없이 헤집고 들어와 순식간에 눈물샘을 공략한다. 그냥 슬프기만 한 신파조가 아니라 참으로 기이하고 슬프면서도 애틋한,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선 굵은 역사소설이든 야쿠자들의 왁자지껄한 일대기이든 아사다 지로가 써내려가는 소설들에는 하나같이 ‘아름다움’이 슬며시 드러나 있다.
도쿄의 어느 고급 펜트하우스에 ‘사고루’라는 모임이 열린다. 모래로 지은 누각이라니, 사람들이 늘 경계의 문구로 사용하던 그 사상누각이 바로 사고루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사회 일각에서 힘깨나 쓰시는 인물들이다. 이분들은 여기에 모여서 무엇을 하는 걸까. 놀랍게도 ‘이야기’다. 자신의 명예와 목숨을 위해 숨겨야 했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 그러나 한 번 듣고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려야 하는 묵계가 지워진 이야기들이다. 이들의 이야기가 바로 〈사고루 기담〉이다.
사고루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펼쳐지는 이 책은 각각 신비하고 아름다우며 섬뜩하고 아련한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첫 장을 장식하는 〈대장장이〉를 필두로 펼쳐지는 다섯 편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실전화〉와 〈엑스트라 신베에〉다. 다른 작품들도 너무나 훌륭하지만 두 작품은 뭐랄까, 서로 다른 인상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알아주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부족한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낸 정신과 의사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의 여인이 있다. 뭐, 내연의 여인과 같은 막장 코드는 아니다. 어렸을 적 단짝친구였던 린이 그 주인공인데, 집안이 몰락한 후 둘은 자연스레 멀어지게 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녀와는 늘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가족과 함께 간 바닷가에서, 심지어 신혼여행지에서까지. 늘 자신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 같은 그녀에게는 과연 어떤 비밀이 숨어 있었던 것일까. 이 이야기가 재미있는 건 닮은꼴 소설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느낌일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머릿속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가 떠오른다. 여기서 그 이유를 구구절절 이야기하면 스포일러를 넘어서 범죄가 될 것 같지만.ㅋ 〈엑스트라 신베에〉는 일본영화와 특별 드라마로 유명한 〈기묘한 이야기〉의 한 편 같다, 얼마 전에 이 책과 닮은꼴 책을 하나 발견했다. 〈촌마게 푸딩〉이라는 책인데, 이것만으로도 스포일러가 된 것만 같다.
가을은 왠지 세상의 이치에 맞는 이야기, 결말을 알아야만 하는 이야기가 아닌 조금은 색다른 이야기를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께는 꼭 추천하고 싶은 한 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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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쏟으며 '칼에 지다'를 읽은 후 아사다 지로의 팬이 되어버린 나.. 마음이 만드는 환상 속에 귀신마저도 인간적으로 그려내는 아사다 지로는 내겐 늘 하얀 수염이 수북한, 동화에 나오는 옛날 이야기 잘해 주는 다정한 할아버지 같은 인상이다.
갑자기 부는 찬 바람에 스산한 요즘.. 오랫만에 아사다 지로의 책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바로 집어왔다. '사고루 기담'
'사고루'는 모래로 쌓은 높은 누각을 뜻한다. 한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 널리 이름을 떨친 사람들이 고급 빌딩의 꼭대기 층 공중정원에 모여 자신의 명예를 위해, 또한 하나뿐인 목숨을 위해, 그리고 세계의 평화와 질서를 위해 절대로 발설할 수 없었던 귀중한 체험을 한 사람씩 이야기하는 모임의 이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들은 사람은 절대 비밀을 지켜야 하는 규칙대로 다섯 사람의 기괴한 체험담이 펼쳐진다.
한 자루의 일본도를 만들기 위해 신을 불러오는 한맺힌 대장장이의 이야기 한 남자를 평생 쫓는 한 여자의 이야기 사무라이 영화 촬영장에 나타난 막부 시대 사무라이의 혼령 이야기 정원의 일부로 평생을 살아온 정원지기의 이야기 원하지도 뜻하지도 않은 우연으로 야쿠자 계의 전설이 된 사나이 이야기...
각각 너무도 다른 삶을 살아온 다섯 사람의 이야기 속에는 그들의 삶이 녹아 있다. '사고루'에 앉은 위인이라 한다면 위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엔 망설임과 두려움, 어리석음과 욕심이 함께 하기에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약하지만 아름다운 인간임을 생각하게 한다.
아사다 지로는 늘 독특한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인 '사람'을 이야기하려 하는 것 같다. 세상의 어떤 생물보다도 기괴하지만, 그 어떤 인간의 기괴함도 속을 들여다 보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듯... 그는 무르고 위험한 '모래 누각'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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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빌딩의 펜트하우스에서 열리는 기묘한 이야기 집회 '사고루(모래로 지은 누각)'. 이 집회엔 성공한 자들만이 초대장을 받을 수 있다. 모임의 여장 회장은 다음과 같은 모임의 규칙을 알려준다.
높은 위치에 오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발설할 수 없었던 그들이 입을 열기 시작한다. 쉿! 이것을 절대 비밀이다. <사고루 기담>(문학동네,2006)에서만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철도원>(문학동네,1999)의 유명한 작가 아사다 지로의 작품 <사고루 기담>은 제목처럼 누구에게도 들려줄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새어나가면 모래언덕이 무너지는것 처럼 자신이 이루어낸 삶이 무너지고 마는 아름답고 기이한 인생이야기.
대장장이 대대로 일본도 감정을 업으로 삼고 있는 유서 깊은 가마쿠라 가문의 종가에 전설로만 전해져오던 역사적인 도검들이 등장한다. 진품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기술과 완성도, 그리고 진정한 장인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그 놀라운 도검들에 감정가들은 혼란에 빠진다. 데릴사위로 들어와 대를 이은 당주 오히나다는 어느 날 우연히 술집 주방장이 쓰고 있는 식칼에서 예의 장인의 흔적을 알아보고 그를 추적한다. 우아하고 화려하며, 강인하고 기품 있는 일본도의 세계. 그 뒤에 숨겨진 가문의 비밀이 밝혀진다.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낸 정신과 의사 시마. 그에게는 어렸을 때 린이라는 단짝 여자친구가 있었다. 린은 집안이 몰락해 명문 학교를 떠나게 되어 그와 헤어지지만, 그후 그는 계속해서 우연한 기회에 린과 마주친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전철역에서, 가족과 함께 피서를 간 바닷가에서, 록밴드의 공연장에서, 그리고 신혼여행지에서까지……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유년의 아름다운 기억에 사로잡힌 한 여인의 기묘한 운명. 전쟁의 상처를 씻고 영화산업이 눈부신 발전을 맞이하던 50년대의 일본. 영화판에 일생을 바칠 각오를 했으나 갑작스런 전쟁으로 인해 그 열정을 가슴속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던 카메라맨 노부오. 마찬가지로 전장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 돌아온 동료들과 함께 막부 말기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 영화를 촬영한다. 그리고 마지막 하이라이트 부분 촬영을 앞둔 그의 앞에 수상쩍은 사무라이 엑스트라가 나타난다. 완벽한 분장과 의상, 실감나는 사극풍 말투, 대본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은 ‘다치바나 신베에’라는 이름의 배역. 그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명예와 부에 대한 욕심도 없이, 오직 신념을 위해 시간과 공간마저도 초월해버린 한 무사의 영혼이 스크린 뒤의 어둠에서 가만히 되살아난다. 우아한 영국식 정원의 주인으로 유명한 ‘가드닝(gardening)의 여왕’ 오토와 다에코. 모임에 초대받은 그녀 대신 초라한 모습의 정원지기 노파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후와 풍토가 나쁜 별장지에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겠다는 일념을 갖고 있던 한 신사와, 그의 뜻에 따라 평생을 정원지기로 살아온 자신의 아버지. 그러나 인간의 일생은 하나의 정원을 완성할 수 있는 기한도 되지 못할 만큼 한없이 짧다. 대를 이어서 정원을 지키게 된 그녀는 어린 시절의 비밀스런 추억을 위해 누구의 눈에도 부끄럽지 않은 정원을 만들 것을 결심한다. 나무와 풀과 꽃과 대화를 나누며 자연의 종으로 살아온 그녀가 밝히는, 인간과 자연에 얽힌 섬뜩하고 슬픈 비밀. 야쿠자 세계에서 대(大) 오야붕으로 불리는 남자가 평생 밝히지 않았던 비밀을 털어놓는다. 무작정 도쿄에 상경해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엉겁결에 야쿠자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소년에게 어느 날 자신의 오야붕을 살해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남몰래 짝사랑하던 여자아이에게 이별을 고하고, 만일을 위해 죽을 각오까지 하며 밤새 총 연습을 하는 소년. 그러나 작전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뒤따르는 우연과 오해와 함께 사건은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고 만다. 한 인간이 영웅이 되는 순간, 그 뒤에 숨겨진 커다란 아이러니에 대한 이야기
'사고루'. 묘한 이름만큼이나 무거운 하룻밤동안 펼쳐지는 다섯개의 이야기들. 이 모임은 자신의 독을 토해내는 대신 남이 토해내는 독도 마셔야 한다. 또는, 너무 많은 독을 마셔야 하기에 자신의 독도 토해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이야기를 듣고, 쉬는 시간동안 그 이야기를 잊기 위해 애쓰며, 또 다른 이야기를 듣는다.
아사다 지로의 작품속엔 언제나 고집스런 사람들이 등장한다. 주위의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들. 이 책속 5가지 이야기의 주인공들 역시 그러하다. 그 사람들은 장인이 되기도, 집착증을 가진 환자가 되기도 한다. 다른 이의 시각으로 볼 때 그들은 기이할지 몰라도, 그들의 시선에선 모두 아름답고 운명적인 삶이다.
'비 오는 밤의 자객'의 입을 빌려 작가는 말한다. "신기하지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을 보면 모두 진실한데도, 그런 진실된 인간들이 모이면 어째서 이런 기묘한 일들이 일어나는 건지. 그러고 보면, 인간이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신이 만든 가장 열등한 생물이라는 느낌도 드오. 만들어지다 만 생물이란 생각이 들지 않소?"-p304
"인생이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죠. 운면의 갈림길에는 늘 누군가 타인이 서 있소. 그리고 이쪽으로 오라고 팔을 잡아끌지. 그 타인이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문제가 없는데,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소. 그 갈림길에 서 있는 인간은 신이 대충 성의 없게 정해주는 건지도 모르오. 선악이나 능력 같은 건 전혀 관계없지. 그런 별 볼일 없는 인간에 의해 인생의 행로가 결정되고 마는 거요. 그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다고 할 만큼 고마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놈만 없었어도 내 인생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평생 후회하는 경우도 있지. 키 퍼슨(key person)'이라고 하던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 중에 누가 그런 키 퍼슨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인생의 무서운 부분이라오."-p.250~241
책 속 화자가 사고루의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독자들에게 알리려 한것은 무엇일까? 기담일지 괴담일지, 혹은 그저 미완성의 이야기일지. 각 이야기마다 미심쩍은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깨끗하게 알려주지 않고 그렇게 무언가 남아있는 듯이 이야기들을 마무리 짓는다. 높은 위치에 오른 사람들의 독을 들었으니, 평범한 자신의 독과 비교해 보란 것인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쯤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인지. 메세지 또한 분명하지 않은 <사고루 기담>은 그래서 더욱 관심이 가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