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히 '가짜 영어 바로잡기 사전(최동욱 지음, 김동길 감수, 을지외국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이른바 '콩글리시'를 바로 잡기 위한 책이겠거니 하고 책을 군데군데 훑어보다가 크게 놀라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틀린 영어 표현을 바로잡는 것은 좋다.
이 책의 항목에서 예를 들자면 (1) 잘못 쓰이고 있는 표현을 바로 잡는 것 (뮤직 비디오 -> 비디오 클립) (2) 영어 단어를 일본식 축약형, 일본식 발음으로 발음하는 것을 바로 잡은 것 (쇼바 -> 쌱업소버) 등 이다.
다만 이 책에서 불필요하거나 부족하거나 잘못된 설명을 하고 있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여기에 대해 지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선 유형별로 나누어보면 다음과 같다.
(1) 영어가 아닌 외국어를 미국식으로 발음하도록 하는 경우 (2) 우리말로 굳어진 외래어를 미국식 표현으로 고치는 경우 (3) 미국에서도 흔히 쓰는 외국어를 미국식 표으로 바꾸는 경우
(1) 이 책에서는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에 대하여 시실리, 시칠리(섬) -> 시설리 라고 하고 있다. 즉, 한국에서 흔히 '시실리' 혹은 '시칠리'라고 부르지만 '시설리'라고 하는 것이 맞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섬의 이름은 '시칠리아'가 맞다. 외래어를 표기할 때는 현지어 발음에 충실하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영어식 발음이나 한자로 된 인명,지명의 우리말식 발음이 널리 알려진 경우에는 그 발음"도" 인정하도록 되어 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줄리어스 시저라고 부르거나, 베이징을 북경으로 부르는 것 등이 그 예이다.)
철자도 영어에서는 Sicily라고 쓰지만 원래 철자는 Sicilia이다. Italia를 미국에서 Italy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필자의 논리에 따르면 이탈리아도 '이를리'라고 고쳐야 한다.
물론 자주 쓰이는 인명,지명의 경우 현지어 철자나 발음과 함께 영어식 표현도 알아둘 필요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구나'하는 것을 알아두어 의사소통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지 미국식 발음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비영어권의 인명,지명의 경우 우리 나라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발음과 영어식 발음이 다를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는 발음이 현지어 발음에 훨씬 가깝다. 우리말에서는 현지어 발음을 존중하는 것이 원칙인 반면, 미국에서는 현지어 발음과 관계 없이 미국식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외국의 지명, 인명을 원래 명칭과 함께 미국식으로 변형된 명칭까지 모두 외우려면 너무 힘들다.
(2) 고무 -> 러버 네덜란드어의 곰(gom)을 일본에서 '고무'라고 읽고 그것이 우리 나라로 전해졌다고 한다. 원래 어원을 찾아서 알아두는 것이 나쁠 것은 없지만, 이미 우리말로 완전히 굳어진 것까지 모두 찾아서 영어식으로 바꿔야 할 이유는 없다. 필자가 주장하는 것이 '영어로 말할 때 gomu라고 하지 말고 rubber라고 해라'는 것인지 (이 경우에는 물론 아무 문제가 없다) 일상 생활에서도 원어인 '곰' 혹은 영어인 '러버'로 하라는 것인지 (이런 주장은 상당한 논란거리가 될 듯 하다) 잘 분간이 가지 않는다.
가요 -> 파퓰러 쏭, 팝쏭 '가요'라는 단어는 일본의 '가요곡'에서 들어온 단어라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말 단어에서 한자어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이들 한자어는 우리 나라에서 생겨난 것도 있지만 대다수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들어온 단어들이다. 이를 모두 순우리말로 대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명백하다. 영어를 조금 배운 사람이면 가요를 영어로 'pop song'이라고 하는 것도 대부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말에서 '가요' 대신 '팝쏭'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인가?
예전에 세종문화회관의 '회관'이 일본식 표현이라고 하여 '세종문화센터'로 바꾸는 것을 추진한다는 황당한 소식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와 비슷한 상황이다.
(3) 카페 오 레 -> 카피 윗 밀크 caffe au lait를 영어로는 coffee with milk라고 한다고 한다. 원래 프랑스어이지만 미국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는데 이것을 굳이 순수한 영어로 바꿀 필요가 있을까? 이미 영어는 수많은 외래어들을 흡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카페오레도 이제 영어의 일부라고 봐도 무방하다. 미국에서 caffe au lait나 caffe latte라는 표현은 많이 봤어도, coffe with milk라는 표현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일본식 표현을 바로잡는다는 것이 지나쳐서 모든 기준을 미국에 맞추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이켜 볼 일이다. 이 책에 유용한 내용도 무척 많이 실려있다. 하지만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다 쓸 수 없을 정도다. 우리말 바로쓰기, 틀린 영어표현 바로쓰기에 관해서는 다른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 있으니 이 책 대신 그런 책들을 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말에 관해서는 우리말 바루기 1~4 / 중앙일보 어문연구소 '우리말 바루기'팀 이 책이 매우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