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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베이트먼 27세.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월 스트리트의
주식 투자회사 부사장의 자리에 있으며, 타고난 것과 후천적인 노력 (?)에 의해 모르는 사람은 그의 직업을 모델이나 영화배우로 착각할 정도로 잘생긴 인물이다. 깔끔하고, 패션감각도 상당하며, 명품으로 자신을 도배하는 그에게 '예절'이란 필수조건이다. 그는 완벽한 인간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번 돈으로 비싼 물건들을 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물건들을 자랑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보다 싼 물건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동정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여자들과(물론, 그의 표현을 빌리면 '먹을만한 년들만') 섹스를 즐기고 부랑자, 개, 창녀, 아이, 택시 운전기사 등 가리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그 시체를 먹기도 하고, 시간하고, 척추로 목걸이를 만들고, 날로 창자를 씹기도 하고......
그러나 그가 즐거워하지 않는 것도 있다. 그의 실존은 '돈'과 너무나도 나약한 '자아'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자신보다 돈을 많이 벌거나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좋은, 그래서 더 비싼 물건을 소유한 사람을 대하는 것을 싫어한다. 어쩌다가라도 자신의 무식을 들키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지식이 쌓여있다.
[American Psycho]는 발표 당시 여피족에 대한 통렬한 풍자로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미국의 대중문화와 그것이 정당화한 미국의 신보수주의, 신자유주의에 대해 고찰해보면, 그리고 문화,정치,경제적인 요인들이 타국에도 막대히 배양되었다는 사실을 고찰해보면, 이건 비단 미국의 사회를, 미국의 여피들만을 비판했다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미 이것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군상의 모습에 대한 비판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이 속한 '상류사회'의 면면을 살펴보자. 썩은내가 나는 것을 느끼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패트릭이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이런 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여자의 경우: 쭉쭉빵빵(원래는 Hardbody인데, 우리나라말로는 이정도가 괜찮을것같아서)한 년인가 아닌가? 그래서 먹고싶은가 아닌가? 남자의 경우: 어지간하면 신경쓰지 않는다. 일단은 병신이라고 상정이 가능하다. 무시하도록. 유일한 예외는 도널드 트럼프 뿐. 그는 존경할만한 사내이다. 아마도... 최고의 부자이기 때문에? 공통적으로 적용: 상대가 입은 옷은 어느 브랜드의 얼마나 비싼 옷인가? 옷들이 서로 매치가 잘 되는가? 패션감각은? 상대는 돈을 얼마나 버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부정적이라면 그 상대는 '무시하는것' 이상으로 대해도 좋다. 등등. 이런 태도는 그의 동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하여 그를 포함해 동료들은 서로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그들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타인이 '무엇을 걸쳤는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 타인이 걸친 액수로 타인을 판단하고 판별한다면, 비슷한 액수끼리는 헛갈리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이런 사회에서 겉치레에 불과한 '예의'를 지키면서 그들은 영국인 악수하듯 관계를 유지한다. 이게 '상류사회'이고 그들의 '매너'이다.
그 사회 안에서 패트릭 베이트먼은 살인을 즐긴다. 작품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는 살인충동을 참아내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328쪽에 I would have found her.라고 이탤릭체로 강조된 문장의 맥락을 살펴보면 이 은유가 조금 더 강력하게 느껴진다. 그녀는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도, 다른 클럽에 갔더라도, 그와 함께 택시를 타지 않았더라도, 그는 그녀를 찾아냈을 것이다. 무슨 의미인가? 그녀는 어디에나 있다. 이름조차 소설 내에서 소개하지 않는 '그녀'는 어디에나 있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그에게 죽임을 당하는 데에는 자격이라 할만한 것이 없을 터이다.
후반으로 치달을수록 폭력묘사의 강도는 심해지고 패트릭의 정신은 분열된다. 주인공 화자의 시점에서 1인칭으로 전개되는 소설이지만 후반에 그는 자신을 '그'라고 칭하곤 한다. 그는 '내'가 아니고 '그'가 된다. 그는 없다. '나'는 없다. 그도 인정한다. 그는 껍데기다.
이 모든 내용이 어떤 대상을 은유하고 있겠는가? 그는 인간을 뜯어먹는다. 이 은유는 너무 노골적이라서 오히려 본래 은유의 대상보다도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자본은 거칠것이 없지 않던가. 자본은 어디에나 있지 않던가. 희생자는 어디에나 있지 않던가. 희생자는 '뜯어먹이지' 않던가. 패트릭 베이트먼은 자본주의다. 겉으로는 잘생긴 모습을 하고 유한 태도로 멋지게 살아가는 '성공의 표본'이지만 속을 살펴보면 타인을 죽이는 데에서 실존을 재확인한다. 그는 살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가면 갈수록 자신의 살인충동을 참을 수가 없게 된다. 그는 자신이 돈을 지불하고 데려온 창녀가 자신의 고문으로 비명을 지르고 그에게 생명을 애걸하지 않으면 발기조차 불가능해진다.
이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소설이 가진 끔찍한 묘사들을 한꺼풀 벗겨낸다면, 얼마나 이 소설이 묘사하는 인간군상들과 '비슷한' 아니 '똑같은' 인간들이 많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솔직히 말해 내가 아는'누군가'가 끊임없이 떠오르는 감상이었다. 그 누구가 누군지는 밝히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내용이 그 '누구씨'에 게만 해당하는 것일까? 정도의 차이다. 패트릭 베이트먼은 나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을 당신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이기도 하다. 단지 나는 사람을 끔찍하게 죽이는 일은 내 손으로 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상당히 괜찮은 책이었다. 풍자를 위하여 고안해낸 장면들이 웃기는 데가 있어서 블랙코미디적 요소도 다분한 책이다. 단지... 폭력의 묘사가 너무 상당해서, 그래도 제법 비위가 괜찮은 나조차도 조금 불편함을 느꼈다는것. 그래서 누구에게라도 추천할만한 책이라곤 말할 수 없다는 것 정도를 지적해두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