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작년 추석에 시어머니께서 주신 선인장이 시들해지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 화분을 잘 키우는 후배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했더니, "언니, 선인장 말고 공기 정화 되는 다른 걸로 새로 하나 사지 그래."한다. 갑자기 맥이 탁 풀리며 씁쓸해 진다. 북치는 꼬마곰, 은행잎 하나, 우체통....이 책에 실린 단편 3편의 제목 역시 새로운 것에 밀려 내 주위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것들이란 생각이 드니 왠지 또한 씁쓸한 아련함이 느껴진다. 디지털이다 인터넷이다 모바일이다 하는 바람에 퇴색돼 가고 있는 아름다운 어휘들이 이 책에선 우리 말의 자태를 뽐내는 듯 잘 드러난다. 이 책의 저자 이주홍이 익살과 감동을 적절히 잘 버무려 이야기를 풀어냈기 때문이리라. 웃으며 기분이 좋아지는가 싶으면, 잔잔한 일상의 의미를 일깨워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정감어린 이야기로 누구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음직한 추억 한 자락을 떠올리게 한다. 야광귀신인 똘똘이가 설날 밤 사람들의 신을 훔치러 왔다가 북치는 곰에게 홀딱 빠져서는 오히려 자신의 신을 잃는다는 ''북치는 곰''. 은행나무와 은행잎을 엄마와 아기처럼 그려낸 ''은행잎 하나''. 아버지를 생각하는 숙희의 애틋한 마음을 담은 ''우체통''. 이 세 편의 동화는 이주홍이 쓴 색깔이 전혀 다른 대표작들이지만, 그 속에는 하나같이 아름다우면서도 잔잔한 웃음이 묻어난다. 신기한 장난감에 넋을 놓아버리는 꼬마 야광귀신은 새 장난감을 보면 넋을 놓아버리는 7살 우리 아들녀석 같고, 재미있고 신나는 모험을 떠나지만 엄마 은행나무의 따뜻한 품이 그리워 다시 돌아오는 은행잎은 자기 방만 생기면 좋아서 매일 혼자 잘 것처럼 큰 소리 치더니 정작 자기 방이 생기자 밤만 되면 베개를 안고 내 옆을 파고 들어오는 우리 딸아이의 모습 같다. 그리고 숙희가 우체통에 넣어 아버지에게 보낸 개떡뭉치가 다시 자기 손에 돌아왔을 때, "아이, 아버지가 이걸 왜 돌려 보냈을까? 맛이 없든가 보이. 아이그 참 미안해서."하고 울 듯이 마음 쓸쓸해 하는 장면에선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내 어린 모습의 한 자락을 보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김동성 씨가 그린 그림은 이주홍의 문학을 빛내기에 한 치의 모자람이 없이 이 책의 가치를 한 단계 높여준다. 판형과 그림이 내용과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이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이제 사랑 고백도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전하는 세상이니, 동네 어귀마다 서 있던 우체통에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 한 통 들고 가서 넣을까 말까 망설이던 그런 경험을 우리 아이들은 하기 힘들 것이다. 그 순간이 얼마나 가슴 벅찬 감동과 추억이 될 수 있는 지도 못 느낄 것이고..... 이 책을 아이가 다 읽으면 이제는 우체국 앞에만 서 있는 빨간 우체통이지만, 발뒤꿈치를 한껏 추켜 세우고 경주 할머니께 새 선인장 화분 하나 선물해 달라는 편지를 써서 넣게 해야겠다. ''우체통''이 선인장 가시처럼 우리 마음 속에 사랑의 가시를 돋게 했으니까. |
| 아이와 책읽기는 TV프로그램인 상상플러스 올댓뉴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얼마전에 5살된 제 딸아이가 그러더라구요. "엄마! 농부는 쌀만드는 아저씨지? " "응" "그럼 흥부는 뭐하는 아저씨야?" 아이는 농부를 놀부로 알았던 모양입니다. ㅎㅎㅎ 아이와 나는 도서관에서 농부아저씨가 뭐하시는 분인지 책을 골라서 다시 읽어보았죠. 하지만 아이는 그새 관심이 허수아비한테 다 쏠려버려서는 하루종일 허수아비 흉내내느라 외다리로 서서는 불러도 대답도 안하고 꼼짝도 안하더니 밤에는 다리가 아프다며 주물러달랩니다. ^^* 그래서 아이와의 책읽기는 더할나위없이 재미있죠. "우체통과 이주홍의 동화나라"에 나오는 동화세편 모두 아이에게는 또 다른 세계였어요. 요즘은 태엽으로 돌리는 장난감이 잘 없잖아요. 모두 건전지가 들어있어 스위치만 ON/OFF하면 작동하니 말이죠. <북치는 곰="">이야기를 읽으며 아이의 귀를 잡고 "끼릭 끼리릭"소리를 내며 돌리는 흉내를 냈더니 아이가 뒤뚱뒤뚱 북치는 곰 흉내를 냅니다. 숙희의 <우체통>도 아이가 무척좋아하는 동화가 되어버렸어요. 당장 편지부치러 가자는 통에 아이에게 메일을 보내면 안되겠니?하고 달래느라 진땀을 뺐구요. 숙희는 편지를 우체통안으로 뚫린 굴속으로 여기저기 배달된다고 생각했다면.... 우리아이가 보내는 메일은 어떻게 보내진다고 생각할까요? <은행잎 하나="">라는 동화책은 저도 가슴이 찡했답니다. 요즘 딸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가을에 대해서 많이 배웁니다. 마침 <은행잎 하나="">를 읽고는 밤에 공원에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갔었어요. 길가에 떨어진 은행잎들을 주어서는 아이의 자전거에 달린 바구니에 몇개 담아서 왔구요. 아이와 그 은행잎을 들여다보며 다시한번 이책을 읽었죠. 책을 다 읽어갈 무렵 아이가 "엄마! 이 은행잎도 엄마나무가 보고 싶어서 울지않을까?"그러더군요.이 야밤에 다시 공원에 은행잎을 도로 갖다놓으러 가자고 조르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얼른 떠올린 말이 "어쩜 이 은행잎은 올봄부터 너랑 친구되고 싶었는지도 몰라. 그래서 네가 자전거 타고 지나가니깐 이 은행잎은 네앞에 일부러 떨어진거야. 너 따라오려구." "정말?"하며 아이가 너무 좋아하더라구요. 비록 저의 잔꾀어린 말이었지만 아이는 순수한 동화로 받아들이더군요. 무척 행복한 시간을 이주홍님의 동화와 함께할 수 있어 참 좋았답니다.은행잎>은행잎>우체통>북치는> |
| 이주홍 할아버지께! 저는 두 아이를 키우는 30대 주부랍니다. 제가 할아버지라 불러 드려도 되겠죠? 아니 그렇게 부르고 싶어요! 어쩜 이렇게 좋은 이야기들을 꽁꽁 숨겨 놓으셔서 이제 제게 들려 주시는지요! 정말이지 할아버지께서 꼭 살아계셔서 저희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시고는 이야기를 들려 주시는것만 같아요! 그래서 제가 고 옆에서 양쪽귀를 화알짝 열고 몰래 몰래 듣고 있는듯! 할아버지께서 들려 주시는 그 야광귀 이야기는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나네요! 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참 많은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또 제가 읽기도 했답니다. 그치만 그 이야기는 그냥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그대로인데 할어버지께서는 새롭게 만드셨더군요! 어느정도 인간세상에 익숙해진 야광귀인거죠? 이젠 체를 세는 대신에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결국 신발을 훔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읽으니 동화가 꼭 요즘 동화 같아요! 그리구 요즘 같으면 롤러슈즈라든지 인라인스케이트라든지 하는것들이 많아서 야광귀가 신발 훔치러 왔다가 뒤로 벌러덩 자빠질것만 같아서 혼자 큭큭거려봅니다. 이렇듯 녹슬은 제 상상력도 자극시켜 주시네요! 그리구 정말 가을이 한창 무르익어야 하는 요즈음 날씨가 자꾸 여름으로 도로 갈려고 하는것만 같은데 할아버지의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은행잎 이야기가 너무나 가을스러워 눈을 뗄수가 없게 하네요! 그래서 한참을 들여다 보며 단풍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느새 가을 바람이 살살 불어 오늘은 정말 가을스러운 날씨가 된듯하여 놀란답니다. 할아버지께서 저희들에게 이야기와 함께 예쁜 가을을 선물해 주신거죠? 그럼 전 무얼로 보답을 해야할까요? 가을이 곱게 물든 은행잎 하나 제게 날아오면 얼른 책사이에 붙들어 예쁜 책갈피로 선물할께요! 그럼 그 은행잎도 그리 쓸쓸하진 않겠지요? 그리구 할아버지때의 우체통은 정말 너무 앙증맞고 이쁘장하게 생겼어요! 제가 알고있는 요즘 우체통은 많이 커다란데다가 구멍이 두개나 나있거든요! 그리구 그렇게 전봇대처럼 원기둥 모양도 아니구요! 상상이 가세요? 갸웃거리실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고 싶으네요! 그런데 혹 그 꼬마 여자아이도 할아버지 손녀쯤 되는건 아닌가 싶네요! 우체통속 편지가 어떻게 배달되는지를 몰라 우체통 아래 땅속에 구멍이 뚫려 있어서 편지를 넣으면 보내고자 하는 곳으로 편지가 보내진다고 상상을 한걸 보면 분명 할아버지와 비스므리하게 상상력이 뛰어난 아이인거 같아요! 그런 숙희는 지금도 빨간 우체통속에 편지를 넣을까요? 요즘 사람들은 컴퓨터란 것이 있는데 그곳에 만든 주소루 메일이란걸 보내거든요! 펜으로 쓰지도 않구요, 종이도 필요없구요, 우표도 필요없어요, 지금이라면 할아버지께서 숙희처럼 그것이 무엇을 하는 겐지 도무지 몰라 우리 아들 아이처럼 편지가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것으로 상상하시는건 아닐가요? 할아버지 이야기는요 정말 김동성님의 그림과 함께 그림동화의 진면목을 보여주네요! 그리고 글을 읽으면서 꼭 할아버지의 음성을 듣는것만 같이 생생하게 살아있어요! 할아버지, 이렇게 부르니 자꾸만 할아버지가 보고싶어 지네요! 지금은 하늘나라 어디쯤에서 다 자란 숙희라는 계집아이를 지켜보구 계실까요? 아니 요즘 자연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지금의 아이들을 보시며 헛기침을 하고 계실까요? 덩그마니 쓸쓸하게 서있는 커다란 우체통을 보시며 슬퍼하고 계실것만 같네요! 그래도 이렇게나마 정겨운 동화를 남겨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동화를 읽고 아이들이, 어른들이 손으로 쓴 편지를 들고 우체통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그럼 이만 총총총! |
| ‘북 치는 곰’에 등장하는 야광귀는 한결같이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앙괭이라고도 불리는 야광귀는 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하늘에서 내려와 자는 아이들의 신을 신어 보고 제 발에 맞는 것을 가져 간다는 민간 신앙 속 귀신이다. 올 설에도 장난끼 가득한 얼굴을 하고 지상에 내려갈 계획을 세우기에 여념이 없는 그들은 다른 때보다 신중해 보인다. 사람들이 야광귀들을 속이기 위해 대문에 걸어둔 체의 구멍을 세느라 성공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내려갈 것인지 여러 의견들이 오갔다. 그 때, 자신만만하게 도전장을 내민 이가 있었으니 막내 똘똘이다. 가족들의 우려와 비웃음에도 아랑곳 않고 기세등등하여 지상 나들이에 나선 똘똘이는, 어둡고 조용한 길을 왔다 갔다 하며 헤매긴 하지만 인간들이 걸어둔 체를 보고 코웃음을 칠 정도로 여유가 넘친다. 어둠을 뚫고 한적한 인가를 찾아 살그머니 안으로 들어간 똘똘이는 생각처럼 신발을 쉬이 찾지 못한다. 그러다 부엌 한 켠에 놓여진 북치는 곰을 발견하고 호기심이 동한다. 곰 뒤에 달린 태엽을 돌리고 또 돌리자 북을 치기 시작하는 곰. 한참을 그 곰을 만지작 거리기도 하고 바라보기도 하며 놀고 있노라니 어느새 새벽이 밝아온다. 그제서야 허둥지둥 쫓기듯 하늘로 올라가지만 어느새 자신의 신발 한 짝이 보이지 않는다. 순진하고 귀여운 야광귀들의 이야기를 읽노라니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솔솔 잠기는 눈을 억지로 비벼대며 열심히 옛날 이야기를 듣던 추억이 생각난다. 야광귀 이야기는 그 옛날 감칠맛 나게 고운 우리네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와 같이 포근하고 구수하다. 나뭇잎들이 생의 이별을 준비하는 가을에 어울리는 ‘은행잎 하나’는 성덕사 큰 절 옆 은행나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늦은 가을, 황금빛깔의 노란 잎들이 다 떨어지고 마지막 남은 은행잎 아이와 은행나무 엄마가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고 있다. 가만 들어보니,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가 울먹이며 엄마에게 떼를 쓰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다 내년에 또 만날 수 있다는 엄마의 다정한 말에 이내 수긍한 듯 자신이 좋아하는 어린아이의 스케치북 위로 떨어진다. 아이와 함께 한 지 얼마지 않아 개구쟁이들의 짓궂은 장난에 시달리고 있는 은행잎을 강한 바람이 빼앗아 달아난다. 바람아 바람아 성덕사 가자 울 엄마 날 찾아 울고 있다 은행잎이 홀로 노래를 부르는 동안 바람은 어느새 따뜻하고 편안한 엄마의 품 속으로 은행잎을 실어다 준다. 푸릇푸릇하던 은행 잎들이 하나 둘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는 요즘 가까운 곳에 은행 나무가 있다면 산책을 다녀와야겠다. 운이 좋으면 그 곳에서 엄마 은행나무와 은행잎 아이의 아기자기한 속삭임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체통’에 등장하는 어린 숙희는 집 앞에 있는 빨간 우체통을 바라보며 넣는 사람은 많은 데 꺼내 가는 사람은 없음에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그러다 저 혼자 상상한 것이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땅 속으로 구멍이 뚫려 있어 그리로 편지가 굴러간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밥 대신 쪄 준 개떡을 먹던 숙희는 문득 아버지가 생각나 기름종이에 개떡을 싸서 우체통에 넣는다. 그 후 아버지가 개떡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상상하며 답장이 오기를 기다리지만 답장은 고사하고 자신이 보낸 개떡이 그대로 되돌아오자 실망을 금치 못한다. 숙희가 아버지를 생각하며 우체통에 개떡을 집어 넣는 장면에서는 콧등이 시큰거려 참기가 어려웠다. 20여년 전에 돌아가신 내 아버지가 생각나 숙희가 더욱 애잔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토속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글과 그에 어울리는 따뜻하고 담백한 그림이 너무 예뻐 읽는 내내 구름 위를 걷는 듯한 포근함을 느꼈다. 내가 아이와 같은 순수하고 해맑은 순간은 동화를 접했을 때만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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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앞에는 빨간 우체통이 있다. 요즘은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면 바로 도착하는데 우체통은 왜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을까? 나는 이주홍 작가의 「우체통」을 읽고 나서 빨간 우체통을 볼 때마다 한 사람이 생각난다. 다섯 살 때 돌아가신 나의 고조할머니다. 책 속 숙희도 빨간 우체통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핸드폰도 컴퓨터도 없던 시절, 숙희는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어떻게 멀리 있는 사람에게 가는지 궁금했다. 들어가는 구멍은 있는데 나오는 구멍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숙희는 우체통 밑으로 땅속 길이 쭉 이어져 있어서 편지가 그 길을 따라 일본에 있는 아버지에게 간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장면이 재미있었다. 지금의 나라면 우체부 아저씨가 편지를 꺼내서 배달한다고 알고 있지만, 숙희는 정말로 땅속에 편지 길이 있다고 믿었다. 만약 정말 그런 길이 있다면 땅속에는 얼마나 많은 편지가 굴러다니고 있을까? 빨간 우체통 아래에서 길이 갈라져 서울에도 가고, 부산에도 가고, 바다 밑을 지나 일본까지 갈 것 같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숙희네 집에는 먹을 것이 떨어졌다. 어머니는 외갓집으로 양식을 꾸러 가셨고 숙희는 개떡을 먹다가 일본에 있는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아버지도 이 개떡을 먹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해 개떡을 정성스럽게 싸서 우체통에 넣었다. 그런데 다음 날 개떡이 다시 돌아왔다. 숙희는 아버지가 돌려보낸 줄 알고 ‘맛이 없어서 다시 보내셨나?’ 하고 생각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웃음이 났다가 조금 슬퍼졌다. 숙희는 우체통을 잘 몰라서 개떡을 넣었지만, 사실 그 안에는 개떡만 들어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보고 싶은 마음도 같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나도 생각해 보았다. 만약 우체통이 정말 어디든 갈 수 있다면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보낼까? 나는 고조할머니에게 보내고 싶다. 고조할머니는 경상북도 안동에 사셨다. 내가 태어난 2015년에 102살이셨다고 한다. 나는 아주 어렸지만 엄마에게 들은 고조할머니 이야기가 있다. 고조할머니는 나를 보면서 예쁘고 귀엽다며 정말 사랑해 주셨다고 한다. 104세 때는 안동의 장수 노인으로 뉴스에도 나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106세가 되셨을 때 돌아가셨다. 나는 다섯 살이어서 고조할머니와 있었던 일을 많이 기억하지 못한다. 그게 제일 아쉽다. 그래서 하늘나라로 가는 우체통이 있다면 먼저 편지를 쓰고 싶다. ‘고조할머니, 소민이에요. 저 기억하세요?’ 그리고 부탁도 하나 할 것이다. ‘할머니, 혹시 저랑 같이 찍은 사진이 있으면 한 장 보내 주세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나를 고조할머니는 기억하고 계실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사진을 보면 고조할머니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셨는지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선물도 보내고 싶다. 엄마에게 들으니 고조할머니는 육회와 생선회를 무척 좋아하셨다고 한다. 숙희가 아버지에게 개떡을 보냈듯이 나는 고조할머니에게 육회와 생선회를 보내 드릴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숙희의 개떡도 일본까지 가지 못했는데 육회와 생선회가 하늘나라까지 갈 수 있을까? 아마 진짜 우체통에 넣으면 안 될 것이다. 상하기도 하고 우체부 아저씨가 깜짝 놀랄 것 같다. 그래도 한 번쯤 상상해 보고 싶다. 학교 앞 빨간 우체통 밑으로 아주 길고 긴 길이 하나 있어서 땅속을 지나고, 산을 지나고, 구름 위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그 길의 마지막에는 하늘나라 우체통이 있다. 내가 보낸 편지와 선물을 고조할머니가 꺼내 보신다. 그러고는 나에게 답장을 보내 주신다. ‘소민아, 나도 네가 보고 싶었단다.’ 나는 숙희가 왜 우체통 밑에 길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이 아주 멀리 있으면 어떻게든 그 사람에게 닿는 길이 있다고 믿고 싶어지는 것 같다. 숙희에게 그 길의 끝에는 일본에 있는 아버지가 있었다. 나에게는 고조할머니가 있다. 요즘 나는 학교 앞 빨간 우체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볼 때마다 하늘나라에도 우체통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오늘 당장 편지를 한 통 쓸 텐데. ‘고조할머니, 답장 기다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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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에서 일 하시는 아빠와 김포에서 살고 있는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만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보고 싶을 때가 많다.특히 할머니가 잔소리를 많이 하실 때는 더 그렇다. 할머니는 항상 나를 걱정해서 이것저것 말씀하시지만 가끔은 듣기 싫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빠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항상 내 편이 되어 주시기 때문이다. 아빠가 주말에 집에 오시면 우리는 우노 카드 게임을 하거나 가끔은 할리갈리도 한다. 할리갈리는 거의 두 달에 한 번 할까 말까지만 그래도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은 항상 즐겁다. 이런 내 마음과 조금 닮은 이야기가 바로 <우체통>에 나오는 숙희 이야기였다. 요즘은 휴대폰이나 영상통화가 있어서 보고 싶은 사람을 금방 볼 수 있지만 숙희가 살던 시대에는 지금처럼 휴대폰도 택배도 없었다. 그래서 보고 싶은 사람에게 편지나 물건을 보내려면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숙희는 일본 공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몹시 그리워했다. 숙희는 아빠가 좋아하시던 개떡을 아껴두었다가 우체통에 넣어 아빠에게 보내려고 했다.하지만 어린 숙희는 우체통이 편지만 보내는 곳이라는 걸 몰랐다. 개떡을 넣으면 땅속을 타고 일본으로 갈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결국 개떡은 일본까지 가지 못하고 다시 숙희에게 돌아왔다. 나는 이 장면이 너무 슬펐다. 숙희도 분명 배가 고팠을 텐데 자기 배보다 아빠를 먼저 생각했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숙희는 그 개떡을 다시 받아들고 어떤 마음이었을까? 속상하고 아쉬웠겠지만 그래도 아빠를 향한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을 것 같다. 숙희가 개떡에 아빠를 향한 마음을 담았던 것처럼 우리 가족도 서로에게 매일 작은 사랑을 담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그 사랑은 꼭 편지나 택배가 아니어도 따뜻한 한 그릇의 국이나 아빠와 함께하는 게임 시간 같은 걸로도 충분히 전해진다. <우체통>은 숙희의 이야기였지만 읽는 동안 우리 가족,내 아빠,그리고 따뜻한 우리 집이 떠올랐다. 그래서 더 특별하고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책이 되었다. |
| 이주홍이라는 이름은 아이들 책을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는 저로서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습니다. 조금 옛날 분이시라 책이 많이 낯설지 않을까 조금 걱정을 했었는데,의외로 차분하고 정감어린 말투와 따뜻한 내용이 시간이 지난 지금에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림또한 잔잔한 색감으로 한국적인 멋과 어린이의 시각을 고려한 듯한 느낌이 잘 어우러져 책의 따듯한 내용을 더 잘 돋보이게 해주는 듯한 느낌입니다. 컴퓨터나 TV의 현란한 색상에 길들여져 있는 현대 아이들에게 한조각의 휴식을 안겨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과연 이런 그림과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또한 생기지만 앞으로 이런 책들이 조금은 많이 나와서 요즘처럼 참을성없고 조급한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개인적으론 은행잎하나의 내용과 그림이 참 마음에 들더군요. 나무와 나뭇잎을 엄마와 아가들로 묘사해 엄마의 사랑하지만 언젠가는 독립을 해야하는 자식들에 대한 연민,그리고 두려웁지만 용기를 내어 세상에 나아가는 어린잎...또한 어려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자 나뭇잎이 기꺼이 한 아이에게로 향하는 모습 등이 앞으로의 저와 제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듯해 잔잔한 감동이 되었답니다. 반면 우체통은 숙희의 어려움속에서도 아빠를 향한 따듯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요, "저 편지는 누가 내어왔수?" 나 "울러메고" "두텁게" 등 예전 말이 섞여있어 엄마인 제가 보기에는 정감어리고 반가운 느낌이 들긴하지만 아이들은 많이 낯설어 할거란 생각이 없지않네요. 물론 이렇게 책을 통하여 조금씩 조금씩 옛말을 접해보는 것은 좋은 일이고 그러다보면 옛말에 대한 낯설음도 조금씩 사그라 들겠지요. 그런면에서 글 밑에 어려운 말에 대해 설명을 달아놓은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되네요. 북치는 곰도 나름 재미있는 이야기였구요, 기왕이면 이런 옛 이야기들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하여 (특히 말투) 본 글과 비교하며 옛날과 다른점이나 같은점등을 찾아보며 읽어볼 수 있다면 더 흥미로울것같네요 |
| 책표지에 나오는 여자아이가 땅에 뭔가를 그리고 있는 모습이 어릴때 내 누이가 일하러 간 부모님을 동구밖에서 기다리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연유에서인지 책을 받아든 내 손이 반갑지만 안쓰러운(?) 그런 감정에 이끌려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한참이나 표지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습니다. 한복을 입은 여자아이와 지금과는 다른 모양의 우체통, 골목길, 평상아래 누워있는 누렁이, 초가집, 전봇대 등을 죽 훓어보며 오가던 눈길이 또 다른 정다운 것들을 찾아 헤맵니다. 어릴적 고향친구녀석이라도 어디서 뛰어나올 것 같기도 하구요. 책에는 세가지 동화가 실려 있습니다. <북치는 곰>에서는 설날밤이면 땅에 내려와 신발을 훔쳐가는 야광귀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데, 여기서는 아버지 야광귀도 네 형 야광귀도 모두 실패한 그 미션(?)에 우리의 당돌한 막내야광귀 똘똘이가 당차게 나섭니다. 사람들이 새벽까지 신발 못찾게 하는 방법을 환히 꿰고 있다고 자신하며 땅에 내려온 막내지만, 지구촌의 멋진 장난감인 태엽으로 움직이는 북치는 곰인형을 보고는 날이 새는 줄 모르고 놀다가 닭우는 소리에 제 신발마저 잃고 다시 하늘로 황망히 달아납니다. 가족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만 그에게는 보이는 아이다움이 웃음짓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은행잎 하나>는 눈부시게 샛노란 은행나무 삽화와 함께 시작합니다. 겨울이 다가오고, 은행나무 어머니와 그 어머니에게서 떨어져 나가기 싫어서 하는 아기 은행님의 따뜻한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봄에 절에 와서 엄마를 잃고 울던 아이가 유치원생들과 다시 은행나무 아래 나타나고, 아기 은행잎은 낯익은 그 아이에게 떨어지기로 작정합니다. 그 은행잎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의 책갈피에 끼워져 있다가 다시 따뜻한 엄마은행나무의 품으로 돌아와 따뜻한 겨울을 나게되는 과정을 그린 동화입니다. <우체통>은 아버지가 일본으로 일하러 가서 편지를 통해서만 서로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순이라는 아이의 우체통에 대한 순수한 상상에서 기인한 이야기입니다. 편지를 넣기는 하지만 누가 내어가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우리의 주인공의 '어떻게 편지를 내어가나' 하는 궁금증은 우체통 밑에 여러곳으로 통하는 많은 구멍이 있어 원하는 곳으로 편지가 전해진다는 생각으로 발전합니다. 그래서 저 먹으라고 준 개떡을 아빠에게 보내려고 정성스레 싸서 우체통에 넣습니다. 물론 그 떡은 우체부 아저씨에 의해 고스란히 집으로 다시 돌아와 버렸지만 순이는 어머니의 자세한 설명을 통해 편지가 전해지는 과정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배웠습니다. 세상 사는 이치 하나를 다시 익힌 것이지요. 아이의 아버지를 위한 마음과 세상 사물에 대한 순전한 상상력의 세계가 마음을 흠뻑 적시는 글입니다. 책에서 보게 되는 어린 야광귀며, 노란 은행잎, 순이는 아주 어렵게 살던 나의 동생, 친구, 누이들의 모습이라는 느낌입니다. 텔리비젼과 컴퓨터 등을 통해서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배워버린 요즈음 아이들만큼 영리하고 똑똑한 건 아니지만 왠지 더 정이 가고 마음이 가는 주인공들입니다. 그리고 책을 묵묵히 읽는 동안은 나의 아이들이 똑똑해지더라도 그런 감성이나 순전함 만큼은 지니고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삶을 풍성하게하고 마음을 넓게하는 그런 감성과 순수한 눈을 나의 아이들이 가슴에 지니고 살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다면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훨씬 살만하고 아름다워 질 것 같습니다, 오늘을 사는 부모들도 어린 야광귀나 노란 은행잎, 그리고 순이와 같은 그런 아들이나 딸을 가질수 있다면 수학이나 영어를 잘하고, 시험을 조금 더 잘 보아온 아이를 가진 것보다 갑절은 더 마음이 부자가 될 거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책을 다 읽고 난 이 시간, 이책을 겨드랑이에 끼고 문을 나서면 골목 어디에선가 낯익은 어릴적 친구녀석들이 하나 둘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밀것 같습니다. 아마도 내 마음의 추억창고 안에서 나오는 거겠지만요. 달콤하지도 고소하지도 않고 투박하게 보이지만 두고두고 찾는 음식이 있듯이, 간단해 보이는 짧은 이야기지만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내 마음을 잔잔하게 감동시키는 울림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서 영영 사라져 버린줄로만 알았던 삶의 아름다움이 아직도 곁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리 마음속에 속삭이는 책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너희도 나같은 마음속 울림이 느껴지니? 이 책을 읽은 여러분들! 여러분들께서도 그런 속삭임을 들으셨나요? 모쪼록 지나치지 않고 이책을 드는 아이와 부모님들께서 보배처럼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 작가들의 속삭이는 진한 이야기가 마음 가득히 울려퍼지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는 이 책이 있어 참 행복했습니다. |
| 어린시절 까만 밤이 되면 할머니의 품에 자리를 잡고 할머니께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던 내 모습이 이 책을 읽어내려 간 후 떠올랐다. 지금처럼 책이 많던 시절도 아니였고 책을 사볼만큼 넉넉한 집안이 아니였으며 한글을 떼지도 못했던 그 때 내 이야기 창고는 할머니밖에 없었다.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끝이 없었고,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행복하기만 했다. 할머니께서 내게 들려주셨던 이야기를 언젠가 나도 내 딸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표지 속 여자아이의 모습은 어린시절의 내 모습과도 먼 시절의 복장일 듯하다. 아마도 우리 할머니의 어린시절 쯤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혹시 내용도 할머니께 들었던 같은 빛깔의 이야기이지 않을까란 기대에 부풀어 글자와 그림에 눈을 빛내며 읽어내려갔다. 읽는 내내 나는 할머니 품 속에 있는 포근함을 느꼈고 그 품에서 그랬던 것처럼 키득거리며 웃기도 했으며 슬픈 내용이 나오면 가슴 속 울림에 놀라서 할머니의 가슴 속에 더 파고드는 것처럼 책에 얼굴을 묻기도 했다. 책은 세가지 동화들이 나온다. #북치는 곰 -똘똘이가 신발을 훔치기 위해 소동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나도 모르게 키득거리며 웃으며 예전에 할머님께서 들려주시던 옛 이야기가 떠올렸다. 설날이면 도깨비들이 발이 추워서 신발을 자주 훔쳐갔다는 이야기에 신발을 내놓자니 훔쳐갈 것 같아 방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신발을 올려놓고 자던 생각이 나기도 했다. 이 동화에서는 하늘세상에 사는 야광귀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장난도 치고 덜렁거리기도 하다는 것을 똘똘이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야광귀들의 장난은 웃어넘길 수 있는 장난이어서 인간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우리에게 친근한 존재로 다가온다. #은행잎 하나 -엄마 품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야하는 은행잎을 보며 어린시절 엄마와 함께 살지 못했던 나처럼 태어나 어미개의 젖을 떼고 나면 다른 고으로 가는 강아지들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에게는 할머니께서 계셨지만 강아지들은 할머니들도 없이 멀리 다른 곳으로 떠난다는 게 어린 나이에는 그렇게 불쌍해보일 수가 없었다. 간혹 뒷집이나 옆집이 새끼 강아지를 데리고 가면 틈이 날 때마다 몰래 강아지를 어미한테 갖다 놓고는해서 할아버지께 꾸중을 듣기도 했던 일이 떠오른다. 노란 은행잎의 씩씩함과 자신의 마음의 상처를 감싸며 다른 아이의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주려는 마음이 가슴을 찡하게 만들기도 했다. 노란 은행잎은 분명 지금도 어디선가 마음의 상처가 있는 아이에게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우체통 -숙희의 정겨운 사투리와 아버지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과 어린아이의 호기심에 빙긋한 미소가 피어오르기도 했다. 우체통에 밑으로 땅 속으로 길이 나서 편지가 오고 가고 할거란 상상은 지금 생각해도 기발한 상상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쓰임새를 모르는 물건을 보고 그 쓰임을 짐작할 때면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며 아이들의 상상력에 나 역시도 그랬나라며 기억을 더듬어 보기도 한다. 또한 일본에 가서 고된 일을 하고도 집으로 돈 한푼도 보내지 못한 당시의 시대상이 나타나 마냥 웃음만 지을 수는 없는 이야기이다. 요즘 아이들은 일제시대의 우리나라 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가볍게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연스레 대화를 유도하는 것도 좋을거란 생각이 든다. #마치면서 이 책을 읽으며 나는 할머니의 따스한 목소리와 품의 온도가 생각났다. 이런 이야기를 기다려왔으면서도 찾으려는 생각을 먼저 하지 못한 것에 반성을 하게 된다. 동화는 지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도 있었으며 그 예전에도 분명 좋은 동화들이 많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을 반성하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시대의 따스함이 고스란히 묻어있으며 그 시대의 아픔도 묻어있는 동화가 우리나라의 동화가 갖는 소중한 모습이 아닐까한다. 좋은 이야기만이 아닌 그 속에 슬픔도 묻어나기에 아름답고 따스하게 다가오는 이 동화는 진주를 품은 조개를 닮아 빛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 <우체통과 이주홍="" 동화나라="">는 정감 있는 글과 그림이 잘 어우러진 그림책이다. 큼직한 판형에 각각의 동화에 맞는 그림체와 색은, 동화를 읽는 맛을 더해주고 있다. 책에 실린 세 편의 동화 중에서 첫 번째 이야기인 ‘북치는 곰’의 경우를 보면 한국적인 느낌을 주는 배경과 색을 쓰고 있는데, 야광귀들의 그림은 다분히 만화적이어서 더욱 친근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둘째 이야기인 ‘엄마 마중’의 경우는 약간은 퇴색한 듯한 갈색의 가을을 배경으로 노란 은행나무의 모습을 잘 살려내었으며, 등장하는 아이의 모습도 정겹기 그지없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인 ‘우체통’은 1930년에 발표된 작품이고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시대도 세 작품 중 가장 일러서인지, 한국화의 느낌을 온전히 살렸고 우체통의 빨간색을 제외하면 거의 무채색 계열의 색만 써서 시대적 배경을 잘 살려주고 있다. 이처럼 글과 그림이 온전히 어우러지는 그림책을 만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낀다. 그런 그림에 샘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 이주홍님의 글로, 읽는 이의 마음을 잔잔한 감동으로 이끌고 있다. ‘북치는 곰’은 설날에 사람들의 신을 훔쳐간다는 장난기 많은 귀신인 야광귀 이야기를 새롭게 각색한 것인데, 야광귀를 막기 위해 체를 준비해 놓은 사람들을 비웃으며 집안으로 들어선 막내 야광귀 똘똘이는 태엽을 감으면 북을 치는 곰에 반해 그만 자신이 할 일을 잊어버린다. 잘난 체하다가 실패하는 똘똘이의 모습은 어리석어 보이기보다는 정겹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 모습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은행잎 하나’는 엄마인 은행나무를 떠나 좋아하는 아이 귀용이를 찾아갔던 은행나무가 바람에 날려 다시 엄마에게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의 이별과 자연의 순환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작가의 입장은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다. 결국 모든 것이 잘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동화는 독자들을 편안하게 한다. ‘우체통’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어린 딸의 따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동화이다. 숙희가 우체통을 처음 보고서 그것이 무엇인 줄 몰랐다가 자신이 먹던 개떡을 일본에 징용나간 아버지에게 보내기 위해 우체통에 넣는 이야기는 우리들의 가슴을 찡하게 한다. 이제 우체통과 공중전화가 길거리의 애물단지처럼 전락해 버린 오늘날, 숙희가 있다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어떻게 전할지 안타깝다. 세 편의 동화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모두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아마도 세상에 대한,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각 동화마다 깃들어 있기 때문이리라. 이제 ‘우체통’이 발표되었던 1930년대보다 70년 이상, 앞의 두 편의 동화가 발표되었던 1980년대보다는 3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지만 작가가 동화 속에 담아내려고 했고, 전하려고 했던 삶의 진실이 우리 아이들 세대 이후로도 계속 전해졌으면 한다.우체통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