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무서운 망상이 계속되었을까 싶은 생각을 간혹 하게 된다. 무섭다고 한 것은 그들의 믿음 때문이다. 그것이 일본과 아시아의 대동단결을 위한 정의라고 생각한! 더구나 이러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순진한 대중을 전쟁의 광기로 몰아갈 때의 그 무서움이란! 힘 있는 사람이 자기 행위를 정의로 믿어버리면 그 이상 무서운 일이 없을 거라 싶다. <바보별>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어쩌면 참 아이러니한 일일 터이다. 왜냐하면 <바보별>은 참 부드러운 분위기를 유지해가는 책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전쟁의, 그야말로 광기라 표현할 무서움을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게 일깨워주고자 글을 쓴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글에는 의외로 전투 장면이 없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전쟁을 이야기한다. 전투를 수행하는 그 많은 군인들이 모두 제각기 한 가정의 순진한 아들이며, 아버지임에도, 순식간에 같은 색깔로 칠해져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해 버리는 모습을, 희한하리만치 평온한 가운데서 묘사한다. 게다가 그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바보이다. 바보스러울 만큼 순진하고, 소시민적이며, 딱 그만큼만 교활하다. 그래서 슬픈 결말을 맞이한다. 그들이 조금만 덜 순진했더라면, 조금만 더 교활했더라면 맞이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슬픈 결말은, 마치 나 자신이 그 상황에서 그러했으리라 싶어 가슴이 아프다. 어느 의미로 이 책은 사회적이며, 참여적이다. 그러나 문체가 아름답고, 묘사가 섬세해서 그저 유미주의적인 작품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건 아마도 이 작가가 우회적인 전략으로 사람의 마음에 스며들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겠고, 그저 작가의 성향이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는 전쟁에 대한 강한 반발이 새삼스럽게 솟구친다. 어쩌면, 인류는 그 헛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수많은 사람을 한 번에 죽이는 전쟁이란 걸 발명해냈을까! 모든 전쟁이 정치적이라는 말에 공감이 되고, 이 땅에 대량학살과 그 뒤의 숱한 비극이 다시는 있어서 안 되겠다는 울컥한 마음이 든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국인 일본. 그러나 일본이라는 단어 속에 강제로 구겨 넣어진 숱한 그냥 소시민들, 평생 호의호식이라고는 꿈도 꿔 보지 못했고, 소원이라면 단 하나 남은 피붙이인 여동생을 남부럽지 않게 시집보내는 일이거나, 겨울밤 어머니와 차를 마시는 일인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새삼스러운 느낌. 그 사람들은 그처럼 끔찍한 일을 당한 우리네와 참으로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인이 쓴 책을 읽으면, 알게 모르게 그 겸양스러운 문체가 거슬리고, 가해자 입장에서 사과하는 듯한 태도가 거슬리고,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깨어 있는 양심이 뭐 별 것인가 싶어서 거슬리지만. 그것 역시 오버센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바보 별>을 통해 우리 역시 어떤 광기에 휩쓸릴 수 있는 부분을 자제하는 환기를 가져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지구가 바보별이면 거기엔 바보만 산다. 이런 바보, 저런 바보. 전쟁을 일으키는 바보, 전쟁을 당하는 바보, 전쟁에 휩쓸리는 바보. 어린이책이라는 사실을 깜빡 잊어버리고 읽은 <바보별>. 어린이들이 이 책의 어느 부분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살살 읽혀보았으면 좋겠다. |
| 전쟁은 승리자나 패배자나, 가해자나 피해자나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다. 이책에 실린 세편의 단편은 전쟁의 와중에 바보가 되거나 바보가 되길 원한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서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상처들을 배우게 한다. 수많은 생명을 빼았은 2차 대전의 가해자인 일본의 군인조차도 군대가 가지는 억압성과 지휘관의 잘못된 판단으로 혹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몸을 사리는 와중에도 인간성은 황폐해지고 몇몇은 의미 없는 전투에서 목숨을 잃어버린다. 전쟁의 무서움과 해악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다만 전쟁의 가해자인 일본인 작가를 통해 그들보다도 더 많은 고통을 당했을 피해자들-조선인과 중국인-에 대한 사죄의 모습이나 위로의 모습이 비치지 않은 점은 끌까지 아쉬운 느낌으로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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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나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유와 평화를 위한 다툼이 끊이지 않는 삶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어색하기 그지 없는 논리가 아닐런지 싶다. 과연 어느 누구를 위한 전쟁이고 그 전쟁으로 해서 얻게 되는 것들이 많을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모두가 힘겨운 과정으로 결코 들어서지 않을 것이다.
전쟁을 위해 희생되고 허비되어져야 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음을 우리는 안다. 전쟁의 순간만으로 끝나 버리는 것이 아닌 몇 세대를 지나게 되어도 그 암울하고 침통한 잔상들은 우리들과 함께 하기에 시대적인 고통으로 표현되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쟁이 벌어지게 되면서 살아남기 위한 각자들의 변화 모습은 정형화 되지 못하고 그때마다의 상황과 논리에 따라 다르게 된다.
이성에 의해 좌우되던 도덕적이고 규범적인 기준들이 사라지고 삶에 대한 집착이 더욱 강화되어진 본능과도 같은 행동들이 난무하게 되는 것이다. 논리에 대한 저항과 거부가 꼭 비인간적이고 비양심적으로 나타나야만 하는 것인지...... 처한 상황을 합리화 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으로 멀쩡한 이가 바보가 되기도 하고, 그러한 바보같은 행동이 당연시 되게 만드는 전쟁의 상처들을 팔푼이의 킨사꾸와 파리의 카야마 그리고 비둘기 피리의 우에다가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전쟁을 통해 영웅이 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 스스로의 자원한 경우도 있지만 시대적 현실의 것들이 그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그들을 내몰은 것이다. 그러했기에 멀쩡한 이가 졸지에 바보스런 팔푼이로 전락 되기도 하고 스스로를 바보로 위장하게도 하는가 하면, 한낱 파리만도 못한 죽음을 당하기도 했던 것이다.
전쟁의 극한 상황으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더 참혹하고 비열한 존재로 타락할 수 있는지 생각하기조차 싫은 것처럼 우리가 스스로와 주변의 모두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모두가 책임지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 모두를 아우르는 이들의 권력행사가 공정하지 않다면 어느 일면으로 치닫게 될 수 있으므로 그 중요성을 더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
| 젊은 날 푸른 제복의 시절은 사람 찌르는 총검술로부터 개막했습니다. 눈앞으로 장구한 세월의 강이 흐르고 지겹도록 비가 우줄거려 안개 속 풀 포기의 허리가 연방 꺾였습니다. 바람이 이따금 날을 세우고 달려들어 조교의 쇳소리 구령을 날려버릴 때 창공에서 퍼덕이는 자유의 무리 우리 시선을 함빡 끌어당겼지만 눈동자를 굴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랬다가는 가차없이 떨어지는 폭력에 의해 땅바닥을 굴러야 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조교의 지시에 의해 조종되는 기계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데 동기 중에 한 명은 자꾸 조교의 지시를 벗어났습니다. 녀석은 총명하기로 유명한 녀석이었는데 조교의 지시를 이해하는 데는 서툴렀습니다. 병영 안에서는 바보와 다름없었습니다. 하여 우리들은 그 한 명으로 인해 얼차려를 계속 받아야 했고 녀석은 모두의 미움을 사는 천덕꾸러기로 변했습니다. 몇 주 동안 받는 훈련이었건만 녀석을 바보로 만드는 데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단 몇 주의 훈련이 총명한 한 청년을 바보로 만들었는데 하물며 실제 전쟁 상황이라면 어떨까 싶습니다. 「팔푼이」는 군대에서 바보가 된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학교 성적도 중간보다 앞이었고 선반공으로서도 실력이 좋았’지만 ‘군복을 입고 나니 바보, 얼간이, 미련퉁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일본으로 돌아간 주인공은 자기를 괴롭히던 상사의 본래 모습을 알게 되면서 새로운 차원의 감동을 줍니다. 「파리」는 날마다 파리 오십 마리를 잡으라는 명령 때문에 거기에 목숨을 거는 바보 같은 군인과 그 바보 같은 군인에게 파리를 잡아 주려다 목숨을 잃는 인텔리 군인 이야기입니다. 그런가 하면 「비둘기 피리」는 철저하게 바보 행세를 하여 목숨을 부지하려고 하지만 끝내 희생이 되어버리는 군인 이야기입니다. 이렇듯 전쟁이 끝나는 시기에 중국에 버려진 일본 군인들의 무기력한 모습을 통해 이 책은 전쟁이 얼마나 인간을 왜곡시키는지 섬뜩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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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18페이지, 20줄, 25자.
작가의 나이가 주인공들하고 비슷합니다. 1976년작이니까 대략 전쟁 후 20년이 지나서 발표한 글인가 봅니다. 아이고, 옮긴이의 말에 보니 1964년작이라네요.
이야기가 셋이 있습니다. [팔푼이] [파리] [비둘기 피리]
[팔푼이]는 킨사꾸라는 분대장이 한 사병을 팔푼이라고 정의한 다음 계속 자기 마을의 '팔푼이' 이야기와 견주어 괴롭힙니다. 팔푼이(글중에는 이름이 없는 것 같습니다)는 중국북부(일본어로는 호꾸시라고 부르나 봅니다.)에 배치되었다가 일본이 항복한 다음 돌아오는 과정 그리고 분대장의 마을에 가서 내막을 아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어딜 가나 좀 덜 떨어진 사람은 있는 것이고, 또 그런 사람이 있어서 다른 사람이 자극을 받습니다. 반전이 말미에 있습니다.
[파리]는 할일이 없으면 큰일이라고 생각하는 부대의 특성상 파리를 잡도록 임무가 주어집니다. 마야마는 약간 덜 떨어진 사람이라서 충실히 파리를 잡고, 오가와는 인텔리라서 외톨이입니다. 오가와는 배운 자 특유의 냉소적인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마야마를 이해하게 되고, 그래서 파리를 묻은 것에서 파리를 건져올 생각으로 막사를 나갔다가 어처구니없게도 초병에서 사살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그날 해가 밝자 일본이 항복한 날입니다.
[비둘기 피리] 우에다는 일부러 바보짓을 해서 편한 군대생활을 하게 됩니다. 미야따 상병은 동향인 야마구찌가 작전 중 전사(사실은 탈영)하자 더욱 광분합니다. 일본이 항복한 다음 팔로군이 포위해 오자 강경파였던 나이또 소위 덕분에 교전이 벌어지고 부대원의 2/3가 전사합니다. 우에다는 숨어 있는 통에 목숨을 건지지만 철수 중 폐렴으로 죽습니다.
작가는 상황에 적응을 한 인간의 모습을 일부 그리고 있습니다. 평상시의 우리가 보기엔 희화적인 모습이지요. 그 상황에서는 자연스러운데 말입닌다.
120222-120222/12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