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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서 4권에 이르기까지 소설 풍수는 그저 한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 아니었다. 그래서 흥미로웠고 더욱더 호기심이 일었다. 흔히 자기계발서나 자기 경영서를 보면서 우리는 성공의 기운을 속에서 찾는다. 하지만 풍수란 색다른 성공의 열쇠였다. 소중한 문화 유산인 동시에 독특한 생사관을 지닌 풍수. 궁극적으론 산사람을 위한 방편이지만 죽은 사람에게 행해지는 의식. 그 완성은 후대에서나 찾을 수 있으니 후손이 잘되기를 위하는 선조의 믿음이 이루어낸 일들인지도 모를 일이다. 읽으면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아무리 과학적 증명이 가능한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도 과학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서 일본인들이 우리를 깎아내리기 위한 일환으로 소문낸 풍수= 미신 이라는 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읽어댔는지도 모르겠다. 20~30대가 되면 10대땐 몰랐던 세상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에는 마을에 굿을 해도 여사로 지나쳐 기억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커서 보는 것들은 또 다르다. 물론 매체를 통해 본 것 외엔 아직 직접 본 적은 없다. 가끔 타로트 카드점이나 몇몇 점술가들의 점을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이고, 풍수사를 직접 본 적 또한 없다. 그래도 참 오묘한 학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풍수라는 공부에 대해서. 내 공부와 직접 맞닿아 있질 않아 어깨너머로 본 게 전부라고 해도 풍수는 자연을 읽고 이치를 깨닫는 학문이 아닌가. 인간이 자연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자연을 읽는 학문은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생각이 똑바르면 독립운동 하다가 붙잡혀 가거나 넋 빠지면 유식한 한량이 되기 십상이던 시대, 득량은 풍수 공부를 하면서 인간의 추악한 모습들을 보게 된다. 암투에, 술수에, 야망에 휘둘리는 무덤들을. 우리의 시선이 득량의 시선과 다를게 무엇이 있을까. 득량은 우리에게 가장 객관적인 시선으로 풍수를 보여주면서 또한 가장 주관적인 마음으로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