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찾아가는 두식이는 침대에 누워 지내는 친구다. 오늘 같이 하늘이 쪽빛으로 물들고 날씨마저 싱그러우면 두식이 누워있는 방은 청명한 가을 하늘과는 대조적으로 더욱 어둡다. 요즘 들어 두식은 오랜 병마에 지치고 힘에 부쳐 그런지 어머니가 들으면 가슴 미어질 말인 죽고 싶다는 나약한 말을 자주 했다. 그래서 두식의 이런 음울한 마음을 어떡해서라도 풀어주고 싶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두식은 여전히 시무룩한 표정이다. 오늘은 두식을 위해 내가 읽은 책을 이야기해 마음을 풀어 볼 참이다. 두식에게 오늘 기분이 어떠하냐? 물으니까 어김없이 또 죽고 싶다고 한다.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다 죽는다고 무덤덤하게 반응하니까 그럼 자신은 그 시간을 앞당기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두식이 버려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시간이 다른 이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말해 주고 싶어 스웨덴 방송국의 여성 앵커였던 ‘울라 카린 린드크비스트’가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약 2 년 남짓한 삶을 기록한 “원더풀”이라는 책 얘기를 꺼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울라에게는 나이 어린 아들이 둘 있는데 울라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나이는 어리지만 아이들도 자신이 겪는 삶의 마지막을 함께 했으면 한다. 그런데 막내인 9살짜리 구스타프는 엄마가 죽는 것이 싫었는지 어느 날 아이다운 천진난만한 생각을 엄마한테 말한다. “엄마는 일 초에 한 번 사는 거야. 그러니까 1초에 한 번 2초에 두 번 이렇게 천 번 만 번 사는 거야.” 울라는 아들의 말에 울컥 감정이 복받쳐 올라 눈시울이 붉어진다. 울라는 구스타프가 1초도 소중한 삶이라고 자신을 깨우쳐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두식이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다. 자신도 시한부 삶이라면 가족들한테 부담도 되지 않고 훨씬 좋을 것이라 말한다. 그러자 우리 먹으라고 과일을 깎아 오신 어머니가 두식이 괜한 소리 한다면서 짠한 속마음을 아들에게 들킬까봐 자리를 피하신다. 두식은 오래전에 사고로 척추를 다쳤다. 급작스런 사고였고, 본인과실로 다친 것이라 보험대상도 되지 않았다. 병원치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끝났고 재활은 집에서 혼자 해야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복지정책은 수혜자 개개인의 사정에 딱 맞는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에서 쏟아지는 불만을 무마하는 것에 정책적인 초점이 맞춰져 있어 두식이네처럼 약간의 소득만 있어도 국가의 도움은 미미한 수준이다. 울라는 루게릭병이 진행되어 걸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는 단계가 되자 사회보장국에 편지를 해서 간병인 신청을 한다. 울라의 신청을 받은 스웨덴의 사회보장국은 직원을 울라의 집으로 보내 환자의 상태를 꼼꼼히 살핀다. 울라는 집을 방문한 직원의 사무적인 딱딱한 태도에 불쾌감을 느끼지만 동석한 사람들의 적극적인 요청으로 결국 신청은 받아들여진다. 스웨덴 정부는 울라를 위해 12시간을 상주하는 전문 간병인과 간병도우미를 제공하고, 나들이의 불편을 없애주려고 대문의 진입로를 새로 공사해서 편안하게 고쳐주고, 전동휠체어에 그리고 특히 손을 쓸 수 없어 타자를 칠 수 없는 울라를 위해 특수컴퓨터를 제공해 지적활동을 돕는다. 그리고 울라는 이 특수컴퓨터를 이용해서 책을 썼다. 사실 울라의 남편은 외과의사다. 그리고 울라도 루게릭병에 걸리기 전에는 방송국 앵커로 적지 않은 수입이 있었다. 그러나 스웨덴의 복지정책은 개인에게 필요한 혜택을 찾아서 제공한다. 두식은 과일 한 입을 베어 물고 아삭아삭 맛있게 먹고 있다. 문득 며칠 전에 두식이 친구전화를 받고 친구가 찾아올 것 같다며 겸연쩍게 웃던 모습이 생각나 친구 얘기를 물었다. 두식의 얼굴이 어둡다. 무슨 일이 있어나 짐작은 간다. 전에 두식을 찾아 온 과거의 친구도 좋은 약이라며 부담스러운 가격의 약을 팔려고 해 두식이 실망한 적이 있다. 두식이 퉁명스레 한 마디 툭 던진다. “과거로 돌아간다고 나아질 것 같지 않아. 지금이나 그 때나 나는 나니까.” 두식은 지금 점점 사회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만나는 사람도 한정되어있고, 그 횟수도 줄고 있다. 두식은 분명 사회에 나와 우리와 더불어 살아야하지만 사회가 그것을 뒷받침 해주지 못하니까 두식 개인은 점점 더 고립되어 외로워한다. 울라는 죽음을 향해 조금씩 변해가는 자신의 몸이 믿어지지도 않고 화가 나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은 자신을 사랑해야만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울라는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속으로 되뇐다. 나는 내 몸이 아니다. 내 몸 안에 내가 있는 것이다. 몸속의 내가 아프다. 그러나 내 정신은 건강하다. 내 자아는 내 영혼이고 내 영혼은 강하다. 이 고통이 내게 힘이 될 수 있다, 원초적인 힘, 마치 태아의 머리가 엄마의 자궁을 한 바퀴 돌아서 빠져나올 때의 힘 같은. 나는 이것이 끝나리란 것을 안다. 나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차분한 자세로. 두식에게 들려준 “원더풀”의 저자 울라 카린 린드크비스트 이야기가 용기를 심어줬는지 모르겠다. 아마 어쩌면 두식에게 이 땅에 태어난 것을 더 비관하게 만든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러나 울라가 시한부 삶을 불꽃같이 살아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가족이었듯이 두식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동력이 돼서 밝은 웃음을 찾아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한다. 다음 만남의 기대감으로 빛나는 두식의 눈을 뒤로하고, 나는 두식의 집을 나왔다. |
| 인터파크 작성자 embers75 서평 내용 "내일(혹은 제한된 일정 시간후에) 종말이 온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학창시절 회지 등을 만들면서 이런 질문에 몇번쯤 답을 달아본 기억이있다.종말....이 세상의 끝이 온다면....나는 과연 무엇을 할까 생각을 하며 황당한 답을 달아본 적도, 진지한 답을 달아본 적도 있음을 어렴풋이 기억한다.아직은 살아온 날보다 살날이 더 많다고 믿고있던 나이였기에 해보지 못한것들이 많아서 해야할것도 많고 미련도 많았는데..... 여기에 세상의 끝을 선고받은 한사람이있다.그럼에도 할수있는것보다 할수없는것이 더많은....아니...할수있는것이 점 점 없어져 더이상 숨도못쉬게 되는 그 순간이 세상의 끝이라는 결말을 이미 받아둔...그리고 아직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을 둔.......한 사람....자신의 병을 받아들여야하고, 자신이 떠나야 함을 받아들여야하고,또 아이들에게 자신의 부재를 받아들이게 해야할.... 누구보다 활동적이던 아직은 살아갈 날이 많을 것만 같던 한사람이...문득 빨래집게 하나 집을 힘이 손에서 빠져나감을 느낌으로 시작된 병마와의 싸움...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자신의 몸을 통해 스스로 알수있기에 한순간 한순간이 더욱 소중했고, 또 어느 순간에는 원망스럽기도 했던 그녀.....힘겹게 세상의 끝을 맞이하며 원더풀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그녀....문장이 길지도 수식이 많지도 않게 간결하게 써내려간 글, 할수있는것이 얼마안되기에 더 안타깝게 한마디 한마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꼭 필요한말들로만 힘겹게 썼을 한문장 한문장...참신한 표현이 없어도,아름다운 수식어가 없어도,문장이 길지 않아도....사람의 짤막한 글이 얼마나 아름답고,슬프고,가슴저리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수있는지를 오랜만에 다시금 느끼게해준다. 문득 지금의 자신이 무기력하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한권사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지금의 자신이 가진 행복이 얼마나 많을지 깨달을 수 있을테니까...막 다 읽은 책을 같이 일하는 동료 책상에 슬며시 올려놔 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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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의 아픔보다도, 이제까지 아무런 감흥도 없는 일상들이 점점 자신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스러져가는 육체를 대면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라도 고통스러운 일일것이다.
울라는 엄청나게 활동적인 여성이었다. 자신에 대한 기대수준도 높았고 치열하게 살아왔던 인물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육체와 인생을 갉아먹는 병과 병에 걸린 상황이 더욱 더 고통스러웠을 테다. 하지만 그녀는 종국에는 자신의 연약한 육체를 넘어선 영혼의 소유자가 되었다. 진정한 자유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지.
그녀를 쳤던 병에 대항하고 죽음과 마주하는 과정을 솔직하게 그려주고 있어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치 내가 울라가 된 것처럼 생생하게 마음의 변화를 공감할 수 있었고, 나의 삶에 대해서 내가 사는 방식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었다.
그녀의 주변에서 그녀가 자신의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함께 해준 사람들, 자신의 시간과 수고를 아끼지 않던 그들에게 마치 내가 울라가 된 것처럼 큰 감명을 받았다.
나는 , 나의 시간과 에너지의 대부분을 , 살림살이와 8개월짜리 조그만 아이를 위해 사용하는 것에 대해 불평스러운 엄마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런 나의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삶을 살아가는 태도,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 누군가를 위해 시간과 수고를 내어준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사랑받는다는 것, 사랑함의 소중함 ... 나열할 수 없이 많은 것들을 곱씹어보게 해주는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생각이 자유로운 한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존재다. 나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으므로 독립적인 존재다. 내 몸을 그들 손에 내맡기는 것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아무도 내 영혼에 다가올 수 없다. 그들은 나의 노가 되어 나 대신 노를 저어줄 뿐이다. |
| 정말.. 내가 이런상황이라면..... 두려워서 몸서리 칠꺼 같은데... 이럴수 있을까.. 과연 내 옆에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럴수 있을까.... 살아있는 순간순간을 기록한...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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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1분 1초마다 사는거야''
낯선 병. 루게릭에 걸린 사람의 이야기.
슬프면서 아름다울 수 밖에 없었다.
삶의 소중함을 절절히 느낄 수 밖에 없고, 감사함이 가득했다.
투병일기라는 정보에
사실 지지리 궁상에 눈물바다일까바
책을 펼치기가 두려웠다.
그러나
담담히 그리고 삶에대한 기쁨이 곳곳에 배어있는 책은
다른 의미에서 눈물이 났다.
세상은
신의 사랑으로 가득하고, 아름답다.
1분 1초가 소중하기에 더더욱 절실하게 살아낸 사람의 모습은
아무 생각없이 보내버리는 시간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불치병에 걸린 환자의 가족들이
병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당당하니 담겨 있어서
책을 읽는 내내 더더욱 흐믓할 수 있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어머니의 병을 받아들이고
그 죽음을 형벌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이해하는 모습은
새로운 각도로 삶을 보게 만들었다.
저자가 남긴 마지막 말.
원더풀~
세상은 숨막히도록 아름답다. [인상깊은구절] 엄마는 1초에 한번씩 사는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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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찬 세상.. 하지만 아름답다.
루게릭병이라 불리는 근위축성측색경화증(ALS)는 운동신경을 퇴화시켜 사지 근력을 떨어뜨리고 호흡장애가 나타나 사망하게 된다.
남편과 네 명의 아들, 딸을 두고 있으며 한 때는 뉴스앵커로써 만족할만한 삶을 살았던 울라카린은 숟가락 들기 힘들어지자 그것이 단순히 허리디스크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이라 여겼다.
하지만 진단 결과는 참담했다. 루게릭병.
불치병으로서 "죽음"이란 선고를 받은 것이다.
자신의 삶을 살아오며 얼마나 대단하게 잘못한 일이 있길래 자신에게 이러한 고통을 주셨나 하고 절망하지만 이내 자기 제어를 한다.
어린 시절을 상기해 보며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아들, 딸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며, 친 자매같은 친구도 생기며 주위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도 말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지만 항상 도움의 손길들이 그녀를 포근히 감싸고 있어 자신의 죽음을 조금 더 늦출 수 있었다. (물론 노력이 없었다면 결과 또한 없었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가족애를 한번 더 느꼈다. 아직 어린 아들조차 엄마에게 희망을 주려하며 더 많은 대화와 감정을 공유해 가며 따뜻함을 느꼈던 부분에서 말이다.
그리고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한 때 암이라는 큰 병을 가지고 계시던 아빠에게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힘이 되주기는 커녕 슬픔만 안겨드렸으니 말이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난 울라 카린처럼 나 자신을 제어할 방법을 알 수 있을까?
혹 내가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해 더 일찍 저 세상으로 가게 되지는 않을까?
내가 아프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또 다른 생각도 든다.
아픔으로서 깨닫는 것이 많이 진다는 것도 원더풀 한 것이 아닐까?
세상은 충분히 W-O-N-D-E-R-F-U-L하니까 말이다. [인상깊은구절]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원까지 인정할 수 있다면, 그때 우리는 자유로워집니다. |
| 루게릭환자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익숙했던 것들과 서서히 거리를 두어가며 또 따른 것에 익숙해져야하는 수고는 아마도 살아가는 동안 가장 걱정하고 겁내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루게릭병으로 매순간 만나야하는 새로운 고통들이 사실적이어서 매번 주인공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주인공의 곁에는 따뜻한 이들이 많았다. 절친한 친구 미미, 한달에 한번 먼거리를 달려와주는 이 그리고 아이들, 그리고 필요할때 꼭 듣고 싶은 말을 해주던 목사, 그녀는 아마도 병과 싸우느라 그 따뜻함을 온몸으로 느끼기에는 역부족이었을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다음 세상에서 편안해진 다음에는 아마도 추억하리라. 그리고 딸의 믿음처럼 언제나 딸이 답답함에 답을 구하고자 할때 딸의 등위에서 혹은 머리 위에서 위안을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리라. |
| 참 괜찮은 책을 봤다. 루게릭 병이라는 불치병으로 삶속에 죽음을 알아가는 한 여성의 1년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책 속에 이런 얘기를 했다. ''사람들은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너무 많은 말들을 내뱉곤 한다. 하지만 말은 틈을 메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사람들은 거짓된 말을 한다. ...중략..말이 사라지고 나면 비로소 진실만이 남는다'' 그래서 일까 이 책은 다른 책보다 간결하게 서술하고 있다. 책장을 넘기는 손이 가볍다. 하지만 그녀의 상념들은 내 가슴속 어떤 감동을 주고 있다. 죽음을 알았기에 남은 시간이 소중했던 그녀의 1년은 매우 인상이 깊었고. 새삼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지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가 임종하기전 남긴 말이 원더풀이라고 한다. 원더풀 ... |
| 나의 삶이 왜 이럴까..내가 이런삶을 원한건아닌데.. 이런 우울함에 빠져들때 손에 들린책이다. 원더풀... 실제로..죽어가는 저자가 한줄한줄 남겨진 글을 읽고 있으려니.. 꼭..내 자신이 남기는 글 같아 마음이 아팠다. 오죽하면..퇴근길 북적이는 전철에서.. 그것도 서서 책들고 읽으면서 눈물에 콧물을 훌쩍이며..(하필이면 휴지한장도 없었다) 꾿꾿하게 책장을 넘겼을까...^^;; 책의 곳곳에 묻어있는 삶에 대한 귀중함이 나의 나른한 일상을 다시 꺠워주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일초에 한번씩사는거야... 마지막으로 느끼는 입맛...물한모금..와인 한모금.. 그 얼마나 강렬할까..... 화장실에서 뒤처리를 못하고 남편에게 부탁하면서 느낄 감정.. 자다 떨어져서..누가 일으켜 줄때까지 꺠진 유리위에 앉아있어야 하는 ... 그런 감정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you wonderful.. 이라고 말해주는 엄마의 모습... 인간의 존엄성이 무엇인지.. 내가 왜 살고 있는지..다시한번 느끼게 되었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한번 잡으면..끝까지...푸욱 빠져서... 자신의 삶을...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킬 기회를 갖길바란다... 제일 먼저....우리 신랑에게 읽어보라고 건내주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