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쌍둥이를 많이 낳는 지역의 산세를 보면 영락 없이 쌍봉이 있는 산의 형상이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를 그냥 무심코 흘려 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솔깃한 말이기에 복을 받기 위한 양택이나 음택의 좋은 명당 자리 잡는 일에 관심 갖는 일은 예로부터 전해오던 전통적인 매장 문화의 한 단면으로 전해오는 우리네 마음의 자연스런 마음 쓰임 일 것 이다. 패철 하나 들고 전국의 명산을 돌며 가문의 명예나 권력의 집권을 위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끝없는 열망을 향해서 불철주야 고생하며 이룩 하고자 하는 파란만장한 욕망의 불꽃을 불태우는 사람들의 수많은 사연들을 흥미 진진하게 풀어낸 대하 소설로서 풍수에 대한 다각도의 접근이 돋보인다. 실제로 정통 풍수를 익힌 저자의 해박한 풍수관이 엿보이는 다큐 드라마 같은 사실적인 문체의 실감나는 전개가 주인공과 함께 풍수 공부를 하는 듯한 착각으로 주인공 정득량의 수행 과정과 그의 삶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어서 소설이 아닌 사실 같은 내용에 관심 갖고 읽게 만드는 마력과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강박사의 이론을 담고있는 풍수에 대한 답사를 소설로 대리 만족을 하게 이끌어 내는 듯한 저자의 친절한 애정이 깃들여 있다. 명당의 비밀과 진실을 찾는 끝없는 여정과 자연과의 조화를 다룬 풍수수행 과정속의 갖가지 일화들이 흥미 진진하고 특히, 천하 명당을 둘러싼 치열한 두 집안의 암투는 손에 땀을 쥐는 긴박감을 느끼게하고, 전설적인 명 풍수들의 파란 만장한 삶의 이야기나 그들의 명당 발복을 바라는 끝없이 욕망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며 풍수란 자연이 다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인간에게 이롭게 하는것이며 이미 죽은 조상에게 몇 대를 걸쳐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나 주변 환경을 따져 공간을 배치하는 데는 큰 복은 못받을지언정 큰 불행만은 피하려는 소박한 소망이 담겨 있다 는풍수에 대한 진지한 조명을 해본 소설이다. 격동기 근대사의 한 인물로 풍수쟁이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정득량의 피나는 풍수 수행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화와 만남을 통해서 군왕이 나오는 명당에 집착하는 정 참판 가문과 그 집의 풍수로 일하다 명당을 훔쳐 달아난 조 풍수 일가의 대비된 삶이, 구한말과 현대에 걸쳐 그려지고 있어서 재미를 느끼게 되고 그 시대의 풍수 사상이 어떻게 해석되고 일본이 우리 민족혼을 말살 시키 위해 벌엿었던 쇠말뚝 사건에 대한 내용은 소설 속에서도 치가 떨리는 생각하기 싫은 사건의 소개로 기억 된다. 사실적인 인물로 그려진 지청오의 활약상은 비교적 가까운 시기의 일이기에 더욱 관심을 끌게되고 윤서의 애인이 윤서의 시신을 이용한 다이아 몬드로 변형시킨 유골은 현대적인 풍수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으로 전통적 매장 문화에서 꽃피웠었던 고유의 풍수문화에서 탈피한 현대적인 풍수문화에 대한 재해석으로 볼 수 있는 메세지가 담겨있는듯한 내용으로 읽혀지는 풍수에 대한 대장정의 여정을 그린 것으로 새로운 풍수의 방향을 제시하는 근래 보기 드문 역작으로 보인다. |
| 얼마 전 100세를 눈앞에 두신 큰아버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3-4년 전 두루미 걷히시고 산을 누비시던 당당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유독 저에게 어린 시절부터 조상에 대한 예법에 관해 잦은 말씀을 해주셨던 분입니다. ‘얘, 넌 할아버지 묘가 어떻게 이 자리를 잡았는지 아니?’ 구구절절 말씀하시던 큰 아버님의 풍수 설명은 알아들 리 없었지만 그래도 좋은 곳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았습니다. 뒷짐 지고 앞에 서둘러 가시는 큰아버님의 모습에선 옛 고향의 흙 냄새가 물씬 풍겼습니다. 이젠 훌쩍 커버린 아이가 제 뒤를 따라오고 있습니다. 풍수는 한국인의 마음과 몸 속에 살아있고 잊히지 않는 코드입니다. 우린 유한한 인생을 살다 가지만 후세에 좋은 인연을 만들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화 같고 미신 같지만 뿌리 속에 살아 숨 쉬는 풍수의 고리에서 빠져 나온다는 건 정체성을 의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종록님의 풍수는 오랫동안 알게 모르게 우리들의 언저리를 지켜주었던 옛 문화에 대한 향수를 맛보게 합니다. 오래도록 지녀왔던 그 무언가.... 풍수는 가끔씩 온 나라를 열병에 휩싸이게 합니다. 특히 대통령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내로라하는 풍수사상가분들의 명암이 엇갈립니다. 우리 민족의 지난 역사는 결코 풍수를 떠나서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고 싫든 좋든 풍수의 양과 음에서 생사를 함께한 민족입니다. 왜 유독 한민족 그것도 한반도에서 풍수가 그리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을까요? 동물의 유전자를 해석하는 초 과학의 시대에 새삼스럽게 풍수를 논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풍수는 해박한 지리적인 설명과 백두에서 한라까지를 어우르는 수십 번의 대장정을 거치면서 동아시아 전체 아니 세계의 판각에서 조명되는 한민족의 자리를 보여줍니다. 사라지지 않는 문화, 양과 음의 문화, 그리고 한민족의 DNA에 숨어있는 코드를 조명하는 것이죠. 전 우리 것에 대한 예찬론을 좋아합니다. 이 소설의 뉴욕 성자로 나오는 앨빈은 한국에 어떠한 정치, 종교의 색채를 띠지 않는 낙원의 공간인 십생지 세계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는 한국의 땅속에 흐르는 한민족의 진실한 믿음과 세상을 바라보는 백의민족의 기상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삶의 진정한 방향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잘못된 것을 인지합니다. 서양의 와스프는 이제 동양의 입향조가 되려 합니다. 풍수(風水) 바람의 얼굴, 물의 마음~ 풍수는 주거자리를 논하는 양택풍수와 조상숭배와 관련하여 명당을 논하는 음택풍수로 나누어집니다. 풍수소설은 음택풍수를 중심으로 정씨 집안과 조씨 집안의 발복, 진태을이라는 당대 천하의 고수와 천재 제자 정득량을 중심으로 한 기가 막힌 풍수에 얽힌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자신의 암울한 처지와 민족의 어두웠던 과거를 개파 하려는 풍운의 철학자이자 사상가 그리고 예언자인 풍수가 진태을, 그는 도대체 우리한반도 땅 밑의 무엇을 보았으며 무엇을 말하려 했던 것일까요? 전주 만호의 아들이자 경성 제국대학 법학과를 다니는 정득량, 미쳐버린 그를 정상적으로 돌아오게 한 것은 진태을 선생의 할아버지 묘에 관한 재해석 이었습니다. 득량은 세상의 비밀이 한데 모여 있는 다채로운 풍수가로의 길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진태을 선생의 제자가 됩니다. 그는 갖은 고초를 견디며 산과 바람을 보고 홀로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수많은 상념들에 맞서게 됩니다. 득량의 총명함은 진태을 선생의 모든 것을 알기에 부족함이 없는 풍수가로의 길을 가게 됩니다. 의로운 스승의 죽음은 그에게 새로운 개안을 경험하게 해주는데 그는 잠룡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지청오라는 비룡을 만나고 한민족의 미래를 지키는 근근한 뿌리가 되기 위해 할아버지가 오매불망하며 점지해놓은 호승 예불형의 자리에 안치됩니다. 그에게는 파란만장한 시국이 있었고 어려운 난국을 이겨낸 슬기로운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풍수는 중국에서 건너와 중화사상을 입은 국가들에게 전파되었지만 유달리 일본은 미신으로 치부하며 수많은 침탈을 통해 한민족의 곳곳에 더러운 쇠막대기를 남겨 놓았습니다. 말도 많았고 탈로 많았던 한반도의 풍수사상. 이젠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개성을 고려의 성도로 만드신 도선국사, 그분은 왜 한 많은 한민족의 땅을 돌아다니시며 그 어려운 풍수를 만들어 놓으셨을까요? 우린 믿기 어려운 기독교적인 신화의 사상을 당연시 여기면서 우리민족이 지닌 풍수의 문화를 미신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극히 작은 지식으로 풍수를 논한다는 게 가히 두렵기만 합니다. 하지만 지금껏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적이 없는 우리의 고유문화에 대한 답사라는 마음으로 옛 어른들의 지극 어린 민족 사랑의 정신을 기린다면 풍수를 알아감은 곧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시작이자 마지막이 될 거라는 생각에 풍수의 사상을 바라봅니다. 풍수는 한민족의 정체성이라는 무언가 말로서는 표현되지 않는 코드를 보여주기에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선택입니다. 몸 속에 꿈틀거리는 한국인의 코드 이젠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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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을 보니 양택풍수는 0점이고 정도령이 트루먼대통령 이름을 파자한 것입니다. 조선시대 송사의 반이상이 산송이었다는게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었다. 일본도 무덤풍수봅니다. 예를들자면 도쿄북쪽 도쿠가와 이에야스 무덤이 '영원한 평화'란 뜻입니다. 임진왜란때 명나라 술사들도 그랬고 쇠말뚝은 측량용입니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보면 최익현선생은 굶어 죽은게 아니라고합니다. 임진왜란이 끝난후 1만명의 왜군이 귀화합니다. 문경에 가면 두사충과 정탁대감의 사연이 있는 마총이 있습니다. 조선이 500년이나 지속된건 정도전이 잡은 경복궁 좌향 덕분인데 이걸 빼먹으셨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고 삶의 교훈도 담겨있고 특히 글재주가 있어 글을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책마다 우리나라에서 무슨 일만일어나면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일이란 말을 꼭쓴다. 한심 (광해군)읽어보십시오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은 조선이 명나라에 환관과 공녀를 끊임없이 보냈는데 그것이 중국에 대한 예의를 다하는 나라라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명나라로 끌려간 조선공녀 잔혹사)읽어보십시오 중앙청은 한국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바로크시대의 대표적 건축양식이며 그 자체가 박물관입니다. 600년 서민의 숨결이 담겨있는 종로 피맛골이 헐릴땐 조용하다.○○ 서경은 평양이 아닙니다.(여말선초 서북국경과 위화도)읽어보십시오 풍수쟁이는 관상에도 해박해야하지만 역사에도 정통해야합니다. 쌍둥이빌딩은 천참살 때문입니다. 펜타곤은 5각형 火구조로 가운데가 텅비고 나무의 높이가 지붕을 넘는 흉가입니다. 소설과 풍수를 이렇게 재미있게 결부시키다니 대단한 글재주다. 집성촌에 있는 사람들은 양반이 아닙니다.(노컷,조선왕조실록)읽어보십시오 재미있고 배울거리도 많았다. 잘읽었습니다 ♡♡ 여름철에 자미원88 |
| 가이아(Gaia)란 그리스 신화에서 ‘땅의 여신’을 가리킨다. 게(Ge)라고도 하는데 이로 인해 ‘지리학(Geography)’이나 ‘지질학(Geology)’란 학문의 명칭 속에도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79년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은 이 가이아에게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다. 러브록이 말하는 가이아란 지구와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 대기권, 토양, 대양까지를 포함하는 하나의 범지구적 실체이다. 가이아 이론은 지구를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 작용하는 생물체로 바라보면서 지구가 생물에 의해 조절되는 하나의 유기체임을 강조한다. 즉 지구는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생물처럼 그 자체에 항상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땅이란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 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땅에 의지해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늘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자. 인간은 아주 오래 전부터 하늘을 연구해왔다. 하늘이라는 존재가 물론 신비하기에도 그랬지만 인간은 그들의 삶을 위해서 하늘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지구가 하늘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하늘에 있는 별들은 저마다 정밀한 물리학적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인류의 선조들은 그것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별자리를 통하여 배를 운항하는 데에 있어서 지침으로 사용했고, 또 달의 움직임으로 통해 계절을 파악함으로써 농경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파종과 추수의 시기를 결정하는 등 과학적인 방법으로 하늘을 활용하기도 했지만 길흉화복을 점치는 데에 사용하기도 했다. 또 어떤 민족은 자신의 선조의 탄생 신화에 이용하기도 했다. 이 하늘과 땅은 동서양 모두에게 있어서 이렇듯 아주 중요한 존재였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천문 기록에 있어서 세계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자료를 만들어 냈으며, 그에 앞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행사 또한 고대 사회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또한 땅에 대해서도 우리 선조들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 인류 선조들은 인간의 입장에서 봤을 때 신비한 것들에 대해서는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나 인류학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한글창제의 원리를 살펴보더라도 하늘(.), 땅(ㅡ), 사람(ㅣ)을 그 기본으로 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렇듯 우리네 삶에 있어서 하늘과 땅은 가장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다가온다. 이 책 <풍수>(김종록, 나남출판, 2006년)는 이러한 하늘, 땅,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하늘과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5권이라는 큰 분량으로 출판한 책이다. 이 책에서 보면 풍수에서는 ‘하늘(천)’과 ‘땅(지)’과 ‘사람(인)’을 ‘삼재(三材)’라고 한다. 여기에서 하늘과 땅은 상수로 작용하고 거기에 인간이 하늘과 땅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 자신이나 후손의 삶에 영향을 주는 변수로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신라 말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 풍수사상은 고려를 건국한 왕건과 연관이 되면서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개경의 기운이 쇠했으니 서경으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이유로 묘청이 반란을 일으키고, 또 조선이 건국되며 새로운 나라의 수도를 정하는데 이 풍수가 활용되었다. 물론 국가에서만이 풍수를 활용하지는 않았다. 개인의 묘 자리를 사용하는 데에는 민간에서도 이용했다. 그러다 보니 풍수와 관련된 많이 이야기들은 알고 있으며, 이것이 어느 정도 효과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과학이 맹신되는 이 사회에서 조차도 풍수는 비과학적이라고 천대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풍수는 1천 년 이상 이나 이렇듯 우리네 정신 세계에서 중요한 가치관의 하나로서 자리하고 있었기에 이에 관련된 이야기는 많이 있을 것이다. 풍수에 관련된 개인의 이야기, 더 크게는 묘청의 난처럼 역사의 변화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건 등 많은 이야기가 이 속에 자리하고 있다. 그와 관련된 많은 인물도 녹아져 있다. 또 우리의 국토에 대한 순례가 있다. 나에게 이 책은 저자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4년 전에 저자의 다른 책 <바이칼>이라는 기행문을 본 적이 있다. 바이칼이라는 호수는 우리가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가면 아마 그 위를 지날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상당히 먼 시베리아 한 복판에 위치한 바다와 같은 큰 호수인데, 그 호수는 우리 민족에게 큰 의미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자 눈이 녹은 길을 통해서 일군의 사람들이 남쪽으로 향한다. 그들이 다름 아닌 우리의 조상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곳에 가서 현재 우리의 주변에서도 찾을 수 있는 무당(샤먼), 소도, 성황당과 같은 우리의 것과 상당히 유사한 문화의 부분들을 찾는다. 우리 민족의 원류를 찾는다는 것, 또 이 책에서처럼 우리 민족이 가치를 두고 있는 자연의 모습은 저자가 좋아하고 또 즐겨 말하는 주제인 것 같다. 이 책은 어쩌면 낙원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 나라 땅에서 풍수에 좋은 곳을 선택해 그곳에 지상 낙원을 건설해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을 개방한다는 좀 황당해 보이는 이야기까지 등장한다. 아니 이것이 이 책의 주제인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원하는 것이 바로 우리땅에 있는 낙원을 찾는 노력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나라 전체를 낙원으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어느 지역에 에덴이나 샹그릴라와 같은 곳을 실제로 건설할 수 있을까? 아마 비무장지대를 그렇게 만들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5권에 걸친 긴 풍수 여행을 마친다.바이칼>풍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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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풍수사상은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어디서 살 것인가? 그리고 죽으면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풍수는 이 땅의 의미와 이 땅 사람들의 독특한 생사관, 이상과 꿈을 담고 있다. 天地人 삼재로 한국인의 얼을 소설화하는 데 주력한 작가 김종록이 20년의 산고 끝에 이 책 [소설 풍수]를 완성했다.
현대 한국사를 관통해온 전설적인 명풍수들의 드라마틱한 삶을 통해서 국가권력과 가문의 명예,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욕망의 불꽃을 태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 속에 담겨져있다. 또한 이 책에는 저자인 김종록씨가 실제로 답사한 전국 곳곳의 풍수 설화가 담겨 있다.
도깨비들이 인정한 대지대혈에 묘를 쓴 동래 정씨의 시조, 하늘이 그 누구에게도 허락지 않은 천하대명당에 아버지를 모시고 아들을 왕으로 만든 이하응, 풍수를 이용해 신라를 멸망으로 이끈 왕건, 무학대사의 도움으로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 등 풍수와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가 흥미를 자아낸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은 풍수사상이 없는 서양과 일본은 물론이고, 풍수사상이 존재하는 중국과도 확연히 차이가 나는 우리 고유의 풍수문화를 담고 있다. 실제적으로 이 책 속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풍수 설화들은 거의 야사에 가깝다. 우리들이 좀처럼 들어본 적이 없던 이야기이기에...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저자가 꾸며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알게 모르게 배척해오던 우리 고유의 풍수 사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개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나라에는 서양을 비롯한 다양한 나라의 문물들이 무분별하게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의 힘에 짓눌린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 고유의 문화보다 다른 여러나라들의 문화를 우월하게 보고 그들의 문화에 몸을 맡겼다. 이 책을 읽다보면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은인자중하며 자신보다는 민족을 생각하며 삶을 살았던 사람과 민족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삶을 살았던 사람... 그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누구의 삶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지 않고 있다.
그저 운명인 양 사람들의 삶의 편린들을 좇고 있을 따름이다. 삶은 유기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모든 이야기의 발단이 된 '명당'에도 어느 정도 관련이 되어 있기도 하다. 누구나 명당을 원한다. 하지만 명당은 어디에 있을까? 아니, 명당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 책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명당은 풍수사상을 뛰어넘고 있다. 풍수적인 관점보다는 인간의 관점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옳다 그르다를 떠나 우리 스스로가 명당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데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잃고 살아왔다. 하지만 잃은 만큼 얻은 것 또한 있다. 그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보편적인 원리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참된 진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찾아야 할 명당 또한 이 세상에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 속에서 몇몇 인물들은 아무런 걱정없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유토피아를 건설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진정 유토피아는 만들어질 수 있을까? 아니,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데 이미 유토피아로서의 의미는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이 책 [소설 풍수]는 우리 고유의 여러가지 풍수와 관련된 이야기들과 우리가 몰랐던 여러가지 사실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우리 고유의 풍수사상과 그것을 바탕으로 찾아야할 저마다의 삶의 의미들이 이 책 속에는 녹아있다. 그러고보니, 이 책을 읽기 전과 읽고 난 후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이 다소 달라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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