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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2009학년도까지 배웠던 7차교육과정 국정 국어교과서와 2010학년도 <두산 (우한용 외)> 1학년 1학기 국어교과서에 실린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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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정지용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운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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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연 생각 : 고향 상실과 인생 무상을 표현한 정지용 시인의 작품입니다.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이 아닌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 없는 듯합니다. 시골의 면소재지였던 제 고향을 30여년 만에 찾았더니, 내 살던 기와집은 2층으로 바뀌어 있었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비롯한 모든 관공서가 새로운 건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지요. 마치 고향을 뺏긴 듯한 상실감과 슬픔을 금할 수 없었지요. 더구나 일제강점기 나라를 빼앗겼던 시기의 이 시를 썼던 시인의 마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대한제국 말기에 태어난 시인에게는 고향뿐만 아니라 고향뿐만 아니라 조국마저 상실한 아픔이 있었을 테니까요. 그러나 인생은 어차피 내놓고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를 키워준 부모님이나 고향은 물론 언젠가는 주위의 모든 것들과 이별하고 내 몸마저 내놓고 떠나야 하는 것이 삶의 이치일 테니까요.
* 정지용(1902~1950 ) : 시인. 충북 옥천에서 태어남.
일본 도시사(同志社) 대학 영문과를 졸업. 1926년 <학조(學潮)>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함. 초기에는 섬세하고 감각적인 시어와 선명한 이미지를 구사하다가 뒤에는 동양적인 관조와 고독의 세계를 주로 다룸. 시집으로 <정지용 시집>, <백록담> 등이 있음.
* 자료 출처 : 2009학년도까지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배운 감상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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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언어를 배울 때 쉴 새 없이 보고 들었던 시인 정지용. 그 땐 그저 입시라는 안개에 가려서 정지용 시인을 한 낯 글쟁이로 치부했었다. 그렇게 입시라는 안개 속에서 정신없이 헤메다 들어온 대학에서 정지용 시인의 시집 [지용詩選]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이란 정말이지 신기하고 놀라웠다. 내가 지금껏 봤던 시하고는 분명 같은데 너무나도 다른 느낌이었다. 정지용 시인의 많고 많은 시 중에 나는 특히 우리가 잘 알고 있던 시 <유리창>과 <고향> 그리고 <향수> 이라는 시가 가장 나에게 와 닿았다. <유리창>은 정지용 시인이 자식을 폐렴으로 잃은 뒤 썼다고 한다. 정말 ‘절제의 미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글로써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이 정지용 시인 말고 어디 있을까. ‘유리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죽은 아들을 볼 수 있지만 만질 수 없는 이러한 상황을, 아들 생각에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보는 별을 ‘물먹은 별’이라고 표현하는 것에서 나는 감탄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자식 잃은 슬픔은 누가 봐도 슬프다. 하지만 이렇게 수 십년이 지난 지금 단지 시 몇 줄만으로 지금의 사람들이 정지용 시인의 찢어질 듯한 마음을 정말 느껴지는 듯이 느낀다는 것에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정지용 시인의 또 다른 시인 <향수>와 <고향>. 많은 사람들에게 <유리창>과 더불어 정지용 시인의 가장 대표적인 시로 기억하고 있다. 자신의 고향의 모습을 토속적인 시어로 정말 생생하게 묘사한 시 <향수>는 정지용 시인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가득히 배어 있다. 또한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라는 구절을 통해 정지용 시인의 간절한 마음을 더 증폭시켰다. 그런데 신기한 점이 있다. <향수>와 <고향>의 내용을 보면 정 반대의 내용이다. 왜 정지용 시인은 이렇게 고향에 관한 소재로 정반대의 시를 썼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이 시에 그대로 반영 된 것 같았다. <향수>는 정지용 시인이 일본 도시바 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쓴 시인만큼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썼을 것 같다. 하지만 유학이 끝나고 돌아온 고향은 일제강점기로 인한 국가상실이라는 현실 상황이 이러한 고향의 상실의 모습으로 표현 된 것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해 본다. [지용詩選]을 읽으면서 나는 시인 정지용의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는 視線을 조금이나마 공감 할 수 있었다는 것에 참으로 행복감을 느낀다. 열 문장이 채 안 되는 글로 사람을 울리고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공감 할 수 있다는 것. 공감 할 수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것. 그래서 우리는 시를 읽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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