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렉산드르 뿌쉬낀 저/석영중 역| 열린책들| 원서:Kapitanskaia Dochka| 230쪽| 2006년07월20일| 정가:7,800원
저자는 나 학교 다닐 때는 책받침이나 연습장 표지에서 꽤 많이 뵐 수 있는 유명한 분이셨다. 그 당시는 이 책의 표기와 다르게 '푸시킨'으로 알고 있었는데, 대표작도 아니었다는 그의 시가 한국에서는 어찌 그리도 자주 낭송되었는지 모르겠다. 삶이 사람들을 참으로 많이 속여서 그랬을까? 삶이 속인데도 슬프거나 노여워하기 싫어서? 재밌는 것은 첫부분을 제외하고 그 시를 끝까지 암송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못봤다. 뿌쉬낀에 대한 또 하나의 기억은 집에 있던 전집 중에 [예브게니 오네긴]이라는 제목의 책 때문이었다. 나는 이 책의 저자도 모르면서 그 발음이 좋아 기억하고 있었다. [청춘의 독서]로 읽게 된 책이건만 괜히 옛기억이 새록새록 한다.
뿌가쵸프의 반란*을 소재로 쓰여졌다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피비릿내 나는 전쟁이 어쩌면 이렇게 평온하고 느긋하게 표현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쟁의 한 복판에서 피어나는 사랑 이야기는 애절하고 뜨겁기 보다 평온하고 여유롭다. 상황은 그렇지 않은데, 문체가 그래서 그런지 밍밍한 하이틴 로멘스를 읽는 듯한 착각도 든다. 전체가 다 평온한 느낌이다. 등장인물과 내용이 그다지 깊고 넓지 않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으나, 이 소설이 나온 배경을 알고 나니 그렇게 가볍게 읽을 일은 아니었다. 남편의 왕위를 빼앗은 아내의 정책들은 겉보기에만 훌륭했고, 그 덕에 농노들은 힘겨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왕위를 빼앗긴 남편은 얼마 후 살상가상으로 살해당한다. 더이상 참을 수 없는 농민들이 일어선 것이 뿌가쵸프의 반란이다. 그런데, 뿌쉬낀의 소설에서 남편의 왕위를 빼앗은 여제를 훌륭하고 공정한 사람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럴듯하게 주인공을 구해내기 위한 소설적 장치이려니 생각했건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단다. 여제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 반대에 선 뿌가쵸프도 나쁜 사람으로 표현하지 않았으니 검열의 칼을 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을까 싶다. 정작 나쁘게 보이는 사람은 주인공의 아버지 그리뇨프 중령과 요새에서 만난 쉬바브린, 그리고 뒤가 좀 찜찜한 주린 뿐이다. 더군다나 반란군의 수장이고 참칭자인 뿌가쵸프를 이렇게 그려도 되나 싶게 호인에다가 자신의 미래를 두고 고민하는 남자로 표현했다. 죽는 그 순간에 주인공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였다는 이야기를 남기면서 뿔하나를 붙여도 모자랄 반란주동자에게 친근감을 부여한다. 그러면서 이 소설이 주인공인 그리뇨프의 수기인 척 한다. 재밌는 장치라는 생각이 들지만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생각도 같이 했다. 하지만, 책 말미에 뿌쉬낀이 이 소설을 쓸 당시 러시아에는 변변한 단편도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장치 또한 꽤 큰 효과를 나타내지 않았을까? 소설이 얼마나 대단한 소설인지 알 듯도 하다. 싱거운 맛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바닥에 깔린 사실을 딛고 생각해 보니 이리도 다르다.
책은 얇고 내용도 잘 읽힌다. 그다지 빨리 읽지도 못하는 내가 출퇴근 시간과 침대 위에서의 잠깐의 독서로 이틀만에 다 읽었으니 말이다. 책 상태는 아주 얇고 가벼워 손에 들고 읽기가 편하다. 역시 Mr.Know 시리즈 답다.
* 푸가초프의 반란 [Pugachov Rebellion]_ NAVER 백과사전
|
|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 소설을 이제야 읽었다. 푸시킨의 소설을, 그것도 유일한 장편소설이라는 ‘대위의 딸’을 이제야 읽었다. |
|
간만에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뿌쉬낀의 <대위의 딸="">은 정말 유명한 고전이지만 막상 읽으려하면 손이 잘 안가는 종류의 책이었다. 제목만 봐서는 군대 얘기가 지루하게 나오고 대위의 허영심많고 아름다운 딸 얘기와 명예욕이나 권력 다툼이 등장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너무나도 깜찍하고 귀여운 책표지처럼 알콩달콩한 얘기였다.
뿌가쵸프의 반란과 그로 인한 전쟁. 주인공 그리뇨프는 그런 사회역사적 배경에 의해 어찌보면 불행한 삶을 살지만 이팔청춘 피 끓는 청춘답게, 그리고 인간답게 그런 와중에서도 예쁜 사랑을 하고 반란군의 두목과도 정을 나눈다. 뿌쉬낀은 이 책에서 반란군의 두목인 뿌가쵸프나 당시의 황제인 예까쩨리나 여제나 인품면에서 보자면 실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사람임을 얘기한다.
부대에 배치되어 가는 귀족 자제님은 도망다니는 반란군의 두목에게 감사의 뜻으로 술 한잔과 토끼털 외투를 접대하고 귀족 자제님이 처형당할 적에 두목님은 외투 받은 은덕을 기억하고 목숨을 살려주는 따뜻한 이야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큰 사건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그것을 가벼운 필치로 얘기하고 결국엔 모든 것이 다 ''사람이 사는 이야기'' 라는 걸 얘기하는 뿌쉬낀. 내가 이래서 러시아 문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쌀람해요!
내용이야 말할 것도 없고 책의 상태도 내 개인적인 취향에 딱 맞는다. 거의 지하철을 탈 때나 누군가를 기다릴 때처럼 자투리 시간이 남을 때 독서를 하는 나로서는 이동성이 좋은 도서(가볍고 한손으로 잡을 수 있는)가 좋다. 이번에 열린책들에서 나온 <미스터 노="" 세계문학="" 보급판="" 시리즈="">는 그런 취향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시리즈이다. 뿌쉬낀의 <대위의딸> 역시 가볍고, 번역도 아주 좋고, 소설의 뒤에 뿌쉬낀의 생애와 작품 세계에 대한 꽤 자세한 해설도 만족스러웠다. [인상깊은구절] ...이것이 한때 우리 시대에 일어났음을 돌이켜볼 때, 그리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는 알렉산드르 황제의 온화한 통치하에 있음을 상기해 볼 때 나는 문명의 급속한 발달과 박애주의적 법규의 확산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청년들이여! 만일 나의 이 수기를 읽게 된다면 기억해주기 바란다. 보다 훌륭하고 항구적인 개혁은 일체의 폭력적 강요를 배제한 풍속의 개선으로부터 온다는 것을.대위의딸>미스터>대위의> |
|
"머릴라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실망도 하지않으니 다행이지!' 라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편이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제가 진정 사랑하고 격하게 아끼는 (!) 빨강머리 앤의 유명한 대사에요. 저는 정말 이 대사대로 살고 싶을 따름이었지만, 이 책을 읽고는 눈물을 삼키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만고의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김하고는 쓸쓸하게 뒤돌아설 따름이었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알록달록 동글동글한 책꽂이에 따로 진열되어 있곤 했던 디자인도 사이즈도 절로 손을 이끄는 열린책들의 Mr.Know 시리즈는 일종의 저의 '로망'인데요. 그 중에서도 디자인에 이어 제목마저 깜찍한 이 <대위의 딸>은 시리즈 중에서도 늘 읽고픈 목록 1위에 올라 있었죠.
그런데. 드디어 두근대는 마음으로 책을 펼쳐들었지만 10페이지 20페이지 30페이지 .. 넘어가고 넘어가도 도무지 책의 매력이 찾아지질 않는 거에요. 아직 앞부분이니 그럴수도 있지. 했지만 이 책은 200여 페이지도 되지 않는 분량인데,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부터 재미를 내놓는다는 걸까? 하는 의문과 함께 책을 계속하여 읽어내려가기 시작한 저는.
글쎄요. 재미의 옷자락도 잡지 못했다는 건 공정한 진술이 아니겠지만 하지만 .. 제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요?
소설의 마지막 구절을 읽고는 별 재미도 별 놀라움도 없이 이 작품의 매력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평소엔 읽지도 않는 뒷부분에 실리는 작품 해설과 작가 설명을 열심히 뒤적거려야 했답니다.
뿌쉬낀은 유명한 시인이었다더군요. 소설을 잘 쓰지 않던 분이 소설을 쓰셔서 놀라워했던 걸까요. 잘 기억나진 않지만, 해설에 따르면 국가?의 운명과 개인의 운명을 각각 분리하여, 역사적인 사건을 양념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요.역시 해설에 의하면 변변찮은 소설이 없던 시대 좋은(?) 소설을 내놓아서일까요.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건지 .. 러시아에 관해선 무지한 저는 아직도 의문을 풀 길이 없습니다.
'고전' 치고는 .. 음 .. 그래요, '고전' 치고는 이 책은 재미있는 편에 속해요. 읽기도 쉽구요. 읽기 쉬운건 꼭 분량 때문만은 아니지요. 게다가 상당히 유머러스하고, 심지어 심각한 장면에서도 희극적 어조를 놓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전 지금도 .. 이 소설의 매력도 가치도, 글쎄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고전 중에서 재미있는 측에 속한다곤 하지만 사실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작품 중 고루할 거란 편견을 깨고 독자를 식음전폐하고 사정없이 몰입하게 만들 정도로 가차없는 재미를 자랑하는 작품이 알고보면 그리 적지 않구요. 그런 작품에 비하면 이 작품의 재미는 다소 초라해보이는게 사실이고. 어떤 위대한 사상이나 인간과 인생을 다루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웃하게 되고. 도대체 어느 부분을 좋아해야 하고, 어디에서 감동을 느껴야 하는건지. 누군가 알고 있다면 가르쳐달라고라도 하고픈 마음입니다. 아무래도 .. 역시 너무 컸던 기대 탓이라고, 그러니까 고전을 이해 못한 내 무지의 소산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을 따름이네요.
책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날은 .. 언제나 마음이 참 허 합니다.
* 글을 다 쓰고 네입어를 검색해보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이 유명한 시를 쓴 분이 뿌쉬낀이었다고 하네요. 잠시 놀람. 그리고 또 좀 더 검색해보니 인간의 순수성에의 옹호, 정치와 국가와 개인의 로맨스의 자연스러운 융화 등이 소설의 장점이라고 하는군요. ^^ |
|
순진하고 풋풋한 러브 스토리다. 그 유명한 푸슈킨의 유일한 장편소설, 대위의 딸이라는 이 대표작을 이렇게 간단히, 무심하게 정의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다.(심지어 90년대 순정만화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든다) 뿌가쵸프의 반란이라는 꽤 굵직한 사건이 펼쳐짐에도 장대한 대서사시나 어떠한 극적인 사랑을 예감하며 긴장하기 보다는 주인공의 고초를 보면서도 가벼운 웃음이 나온다. 이 순진한 두 사람이 분명히 행복해질 것임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설에서는 여제도 반란의 수괴도 모두 같은 사람임을 푸슈킨이 강조하고 있다지만, 그들에게 하늘 같았던 여제 역시 평범한 인간이었던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으니.... 굳이 이 책을 풋풋하고 귀여운 사랑 이야기로 정의하는 것은.. 사실은 그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려워서일지도 모른다. |
|
가끔 소설을 읽고 있으면 기막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작가의 '위대한' 이름에 덜덜 떨면서 마음을 다잡고 읽기 시작했는데 무척 어려울거라 생각한 걱정(?)과는 다르게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어가면 읽을 정도로 재미난 것이다. 얼마나 재미있던지 책장이 넘어가는데 아쉬울 정도로 말이다. 그러 면에서 손에 꼽을 작품은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과 스탕달의 <파르마의 수도원>이 내게는 최고봉이었다. 얼마나 재미있던지. 이번에는 그 책 옆에 한권의 책을 더 적어놔야 할 듯 하다. 푸쉬킨의 <대위의 딸>이 바로 그 책이다.
푸쉬킨의 <대위의 딸>은 읽고 있으면 헛웃음만 피식피식 나오는 소설이다. 때는 19세기 중반의 러시아로 귀족 집안의 한 청년 뾰뜨르 그리노프의 사랑 이야기이다. 멋 모르고 자란 청년이 성년이 되어 군대에서 경험을 쌓을 나이가 되자,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예정된 멋진 근위대를 내버려두고 제대로 된 군대 교육을 받고 성인이 되어 돌아오라며 그를 변방 군대로 보내버린다. 투털투털 거리면서 발령 받은 주둔지로 떠나는 와중에 그는 도박판에 걸려들이 돈을 날리기도 하고, 우연히 눈보라 속에 큰일을 당할 뻔 한 고비를 넘기고 도움을 받는다. 어찌어찌하여 주둔지까지 왔으나 시골인 이 주둔지에서는 군인들이 제대로 사열조차 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할일 없는 동네이다. 이 동내에서 그의 눈에 띄는 일은 이 주둔지 대위의 딸 마리야 뿐이다. 물론 뾰뜨르와 마리야의 사랑을 순단치 않다. 그들의 사랑은 나름 삼각관계이기 때문이다. 마리야를 노리는 장교에게 결투를 신청해 보기좋게 상처를 입기까지 했으니 그에게 낭만적인 러시아식 사랑 조건은 다 해당되는 셈이다. 그러던 중 반란이 일어나면서 뾰뜨르가 근무하는 부대까지 반란군이 밀려오게 되고 도시는 점령된다. 하지만 인생은 돌고 도는 법, 죽음을 맞이할 줄 알았던 뽀뜨르는 눈밭에서 자신을 구해줬던 그가 반란군의 대장이었음을 알게 되고 이 인연으로 목숨을 부지하게 되고, 마리야를 지킨는데도 힘이 된다. 이 이후의 이야기는 책을 통해서 읽어보는게 좋겠다.
이야기를 읽으면 굉장히 심각할 듯 하다고 생각하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야기는 그리 많이 심각하지는 않다. 실제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반란을 소재로 해서 사용했지만 반란 자체는 이 소설에서 심각하게 다루지 않는다. 사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이 소설에서 그리 심각한 것은 하나도 없다. 마리야와 뾰뜨르의 사랑도, 뽀뜨르의 결투와 그 결과 과정에서 입은 상처로, 반란군의 점령도 죽을 뻔한 고비도 사실 그 무엇하나 심각한 장면은 없다.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이야기를 끝맺으면서도 위기가 제대로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야기는 제법 순탄하게 흘러간다. 깊이 생각하고 이마를 찡그리면서 고민을 하며 읽는 재미는 좀 부족할지 모르지만 푸쉬킨의 소설은 소설, 즉 이야기 자체를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재미를 돌려주고, 그 점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푸쉬킨의 <대위의 딸>은 재미난 이야기를 읽는 재미를 한 웅큰 쯤 던져주는 이야기이다. 항상 '닥터 지바고'로 상징되고 기억되는 그 모습을 난 러시아식 이야기라고 기억할 뿐이다. 어쩌면 <대위의 딸>도 그런 내가 생각하는 러시아식 사랑과 러시아식 이야기의 연장선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이고. 너무 어렵지도 않고 가능한 어깨에 힘을 빼고 읽는 러시아식 순진무구 청년의 사랑이야기는 이 겨울에 딱 맞는 그런 이야기이다. 결국 그런게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은 계속 되어야 한다.
대위의 딸 /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 석영중 / 열린책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