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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는 대조영이라는 드라마를 본다. 요즘에는 뉴스도 별로 보지 않아서 이 드라마만 보는 정도다. 많이 진행한 드라마이지만 사실 대조영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아서 궁금한 점도 많다. 포털사이트에서 대조영을 검색해 백과사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검색되었다.
본명 대조영. 고구려 멸망 뒤 당나라의 고구려 유민 분산정책에 따라 요하 서쪽 영주 지방으로 그의 가족과 함께 이주하였다. 696년 이진충 등이 이끈 거란족이 반란을 일으키자 영주 지역에 억류된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동쪽으로 탈출, 자립을 꾀하였다. 당나라 측천무후가 거란족의 반란을 평정한 뒤 그의 집단을 추격하였으나, 그는 장령자 부근의 천문령에서 당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하였다.
이후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더욱 규합하여 국가건설의 기반을 굳히고, 계속 동부로 이동하였다. 699년 지금의 지린성 돈화현 지역인 동모산에 도읍하여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어 국호를 진, 연호를 천통이라 하였다. 발해의 건국 지역은 계루부의 옛 땅이었으며, 첫째 아들 대무예(후에 무왕)도 계루군왕으로 불렀다.
이후 당나라는 그에게 유화정책을 썼는데, 중종은 705년 진에 사신을 보내왔고, 고왕도 둘째 아들 대문예를 당나라에 보냄으로써 우의를 표하였다. 713년 당나라 현종은 좌효위대장군 발해군왕 홀한주도독의 별직을 주고 우의를 나타냈다. 그 후 국호를 발해로 바꾸었고 양국은 건국 초기의 갈등상태를 극복하고 우호관계를 유지하였다.
좀 길게 인용한 것은 대조영과 발해에 대한 역사가 잘 알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이 책은 부모와 함께 읽는 우리나라 인물전이라는 시리즈 책이다. 아들에게 읽어 보라고 할 겸 해서 사 보았다. 이 책의 내용도 백과사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드라마와 크게 다른 점은 드라마에서는 대조영의 의형제로 나오는 걸사비우가 대중상의 의형제로 나온다는 점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울 때는 발해를 상당히 무시했다. 그러나 남북국가가 되고 나서는 많은 관심이 표현되었고 특히 최근에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애국심에 의해서 발해에 대해서 많은 자료가 나오고 있다. 어찌 되었든 웅대한 고구려의 후예가 황제를 칭하면서 나라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대단한 일이다.
우리 역사에서 폐하가 전하로 떨어지는 시대 이전에 아마도 마지막 폐하라는 칭호를 쓰지 않았을까 싶다. 아쉽게도 발해라는 나라가 멸망하게 되지만, 우리는 대단한 나라의 국민이 아닐까 한다. 거란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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