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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풍요한 사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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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한 사회 / 존 갤브레이스 / 노택선 / 한국경제신문]   경제학에서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이 있다. 하나는 낙관적, 또 하나는 비관적 시각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경제이론을 세우고, 해석을 하고, 적용을 하지만 두 가지 관점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낙관적 시각을 지닌 경제학자들은 이 상태를 오래 유지하도록, 비관적 시각을 지닌 경제학자들은 이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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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한 사회 / 존 갤브레이스 / 노택선 / 한국경제신문]

 

경제학에서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이 있다. 하나는 낙관적, 또 하나는 비관적 시각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경제이론을 세우고, 해석을 하고, 적용을 하지만 두 가지 관점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낙관적 시각을 지닌 경제학자들은 이 상태를 오래 유지하도록, 비관적 시각을 지닌 경제학자들은 이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도록 그에 적합한 이론을 만들어낸다. 결국 경제학이 다루는 것은 인간의 삶이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저자는 먼저 주류경제학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경제학자의 이론과 그를 따르는 경제학자들, 또 반대의 이론을 내세우는 경제학자와 그의 무리들의 주장을 쉽게 이야기한다. 경제이론과 정책은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지니고 있어서 밝은 부분을 경계하는 이론이 나오면, 그것을 경계하는 이론이 또 나온다. 서로 부족한 것을 채우는 방향으로 경제이론이 진화를 한다.

 

그러나 주류경제학에서 내놓는 경제이론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주류경제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으로 삼고 있는 것은 생산과 소비의 이론인데, 저자는 이것이 어느 한계에 도달했다고 지적한다. 과거에 수요가 생산을 이끌었다면, 필요하지 않았던 물건도 일단 생산하면 필요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생산을 하고 그에 맞는 소비를 조장하는 일은 소비자가 주체적으로 소비행위를 하는 것이 아닌, 생산자가 소비를 부추기는 시대(광고)를 초래했다. 그리고 이것은 경제학의 근간을 복잡하게 흔든다.

 

우리들은 - 경제학자들도 마찬가지로 - 인간의 삶이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 우리가 풍요한 사회에서 살기를 바란다. 여기에서 ‘풍요한 사회’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그럼 도대체 풍요한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경제학은 우리 사회를 풍요하게 만들 수 있는가. 저자는 이 책에서 풍요한 사회를 명확히 정의하고 우리가 거기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의 경제활동은 - 그것이 사회주의이든 자본주의이든, 예전이든 지금이든 - 경제적 불평등을 낳는다. 빈부의 격차가 생기게 마련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격차를 줄이는 일은 더 어려워진다. 사람들은 경제활동으로 부를 얻기도 하고 상대적 빈곤을 겪기도 하는 것이다. 사회는 부유해지지만 빈부의 격차는 커진다.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적 계급(또는 계층)을 형성한다. 비록 경제가 활발해지고 국가가 부유해지더라도, 이러한 사회구성원간의 불평등은 그 사회를 빈곤하게 만든다. 사회가 빈곤하면 그 구성원들도 빈곤한 삶을 사는 것이다.

 

저자는 경제활동으로 생긴 국가의 부, 지역사회의 부가 정당하고 고르게 분배되는 사회를 풍요한 사회라고 이야기한다. 경제활동으로 생겨나는 빈부의 격차를 직접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간접적으로 사회가 쌓은 부를 개개인에게 분배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공공부문의 투자다. 공공부문의 투자로 인해서 국가와 지역사회의 부유함이 빈곤층에게도 골고루 전해지면 곧 풍요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경제현상이나 사회현상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현상과 그렇지 않은 현상을 확실히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중이 공감하는 이론(널리 수용된 생각)을 펼쳐야 한다. 이것을 통념이라고 하는데, 대중은 편하고 익숙한 것에 머물려고 하는 반면, 세상은 계속 진보하기 때문에 통념(경제적 통념)은 늘 ‘퇴화’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주류경제학이 늘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통념과 경제이론과 정책의 관계 때문이다. 통념에 사로잡힌 경제학자가 내놓는 해결법은 시대에 뒤쳐져있거나 문제의 본질을 비껴서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정책입안자들도 경제이론보다는 사회통념에 입각한 정책을 더 많이 내놓는다. 경제학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부족한 뭔가를 찾아나서야 한다.

 

저자는 우리 시대에 퍼져 있는 통념과 그것이 사회의 긍정적 발전을 어떻게 방해하는지 설명한다. 수요와 생산의 문제로 다시 가서, 수요가 생기면 생산이 증가하는 것이 통념이지만, 현실에서는 생산이 증대하면 기업과 국가는 부유해지지만 그만큼 빈부의 격차는 커진다. 모든 문제를 생산성 증대로 풀려고 하지만, 생산증대는 쉽지만 빈곤의 해결책이 아니다. 이와 비슷하게 동시대의 대중(현실)과 맞지 않는 경제정책들이 얼마나 많은 빈부의 격차와 상대적 박탈감을 낳는지, 증명되지 않았거나 실제 경제에는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제학의 정설들이 얼마나 공허한지 이야기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에서 나타나는 돈과 서비스의 불균형문제(상대적 빈곤, 박탈감)이고 또 하나는 환경문제이다. 개개인의 부가 증대하고, 공공의 부가 공공투자형식으로 개개인에게 분배된다며, 거기에 쾌적한 환경까지 갖추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풍요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그에 비례하여 빈곤의 문제는 더 커진다. 국가가 풍요해져도 국민과 근로자의 삶에는 변화가 없고, 오히려 빈부의 격차가 낳은 상대적 박탈감만 더해진다. 부유층의 남는 재물을 빈곤층의 부족한 곳을 메우는 데 사용하는 것은 산술적으로 맞지 않는다. 부유층의 부는 적고 빈곤층의 부족함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안해낸 방법이 공공부문의 투자다.

 

빈곤이 되풀이 되는 것은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빈곤을 제거해줄 (공공)서비스가 가장 빈약하기 때문이다. 빈곤을 효과적으로 없애려면 가난한 지역의 아이들에게 그 이상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시설 좋은 학교와 탄탄한 보건 서비스, 충분한 영양 및 오락거리 공급 등이 가장 필요한 곳이 바로 이런 극빈지역이다. 요즘 기준으로 보자면 도시와 농촌, 부유층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과 서민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은 공공서비스의 양과 질이 다르다. 특히 교육, 좀 더 광범위하게 말해서 물적 자본이 아닌 인적 자본에 투자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것부터 해결해야지 국가 차원의 빈곤퇴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

 

경제학자답게 저자는 또 기업의 역할을 강조한다. 올바른 기업윤리를 지닌 기업이 생산증대를 통해 부를 쌓고, 그것을 구성원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환경문제에도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가 바라는 풍요한 사회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정부의 투명한 공공부문 투자가 더해지면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기업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냉정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기업윤리, 사회윤리에 어긋나는 기업은 소비자가 과감히 처단을 해야 한다.

 

이 책이 출판된 지 40년이 넘었다. 지금도 이 책이 꾸준히 읽히는 것은 인간사회의 문제가 늘 형태만 다를 뿐 비슷한 문제가 계속 일어나기 때문이다. 개정판 서문에서 저자도 말했듯이 그때나 지금이나 경제 상황과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다만 거기에서 인간이 어떤 자세로, 어떤 이론으로 문제를 해결하는지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진정으로 풍요한 사회인지 묻고 싶다. 공공서비스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사회적 불평등은 여전히 심화되고 있고, 환경오염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풍요한 사회를 향한 사람들의 기대는 여전하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별 성과가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o*****a 2011.02.23. 신고 공감 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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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통념들 깨부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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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과 주식 투자에 관심이 많으리라 여겨지는 경제신문 계열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라 색안경을 끼고 읽기 시작했는데 서문부터 내 선입견을 깨주는 말들이 나와 놀랐다. 경제신문 계열답지 않은 책 선정이란 생각이 들었고 공감 가는 대목이 많았다.    초판이 50년대 나온 책이라니 지금 보면 참 놀라울 만큼 그의 논지는 낡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지금 와서도 쓸모있는 부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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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과 주식 투자에 관심이 많으리라 여겨지는 경제신문 계열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라 색안경을 끼고 읽기 시작했는데 서문부터 내 선입견을 깨주는 말들이 나와 놀랐다. 경제신문 계열답지 않은 책 선정이란 생각이 들었고 공감 가는 대목이 많았다.

 

 초판이 50년대 나온 책이라니 지금 보면 참 놀라울 만큼 그의 논지는 낡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지금 와서도 쓸모있는 부분이 많다. 90년대 광풍처럼 몰아쳤던 신자유주의가 부작용을 드러낸 요즘 들어와선 더 그렇다.

 

 우선 책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기존 경제학의 통념은 19세기 경제학이 막 형성되기 시작할 때 생겨났다고 한다. 빈곤한 시대였던 19세기에 이루어진 경제학이 지금 풍요한 시대-제3세계는 여전히 빈곤하지만-에 있는 서구나 미국 사회에서도 큰 영향을 주면서 많은 오류가 생기고 잘못된 정책, 잘못된 관념을 이루게 되었다고 본다. 리카도와 맬서스의 이론,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이 아직도 영향을 주고 있다면서 그 이론이 풍요한 사회에선 어떤 부작용을 일으키는지 잘 설명한다. 리카도와 맬서스, 사회진화론은 경제학 비전공자인 나도 종종 들은 이름이라 흥미롭게 읽었다. 사회진화론은 지금의 보수 우익이 심심하면 써먹는 논지와 똑같아 19세기에서 더 발전이 없음을 한탄했다.
 그렇게 경제학이 성립한 배경을 설명하고 그 배경 밑에서 어떻게 현재 경제학의 오류와 관념을 만들어졌는지 말한 다음 기존 경제학의 이론, 통념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까대기 시작하는데 이 부분에서 미국만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비슷한 예가 많아서 킥킥거리며 읽었다.


 그가 까기 시작하는 통념에 대해서 하나하나 다 말하는 건 글이 지나치게 길어질 위험이 있으니까 인상적이고 중요한 몇 가지만 말해보고자 한다.

 

 맨 처음엔 경제적 보장에 대한 통념에 대해 깐다.
일반적으로 경제적 보장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 편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경제적 보장은 오히려 잃을 게 많은 기업가가 경제사회에서 판돈 걸면서, 즉 기업 활동을 하면서 그 판돈을 보호하기 위해 조처한 것이었다. 이 부분이 신선했다. 맨날 경제적 보장은 사회주의다, 공산주의다 어쩌고 하면서 자유주의, 자본주의와는 배타적이라 부르짖던 이들이 먼저 원했던 거라니. 이래서 역사 공부는 중요한가 보다. 덤터기 쓰지 않으려면 나와 상대방의 역사를 잘 알아야 한다.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도 지켜야 할 것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보장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경제적 보장은 생산 증대를 방해한다는 통념(이건 어디의 다섯 살짜리 어른과 상관있는 이야기군.)에 대해서도 경제적 불안 요소들이 효율 높이고 경제 발전시키는데 꼭 필요한 요소란 생각도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한다. 경제적 보장에 대한 관심 증가는 생산성 향상과 모순되긴커녕 높은 성장률과 양립이 인증되었다면서 경쟁체제에 따르는 불안요소를 줄이려는 조처로 그 조처 후 오히려 생산 증대가 이루어졌단다. 
 또한 보수파에겐 나태로 말미암은 손실을 크게 부풀려서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불황 탓으로 노동자가 비자발적 실업 상태에 빠지거나 기업가 의욕 마비됐을 때 손실에 비하면 작다. 실업보험에 대해서도 구매력 보호. 경제적 비효율성에 대한 대응책. 자동안정화 장치로 보았다.
 생산의 위상에선 민간생산만 중요시하고 공공서비스는 부담이라 생각하는 통념을 깐다. 그런데 생산성 증대를 위해선 결국 기초산업의 발전이 필요한데 그런 건 민간에선 이루지 못한다. 결국 공공서비스, 공공에 대한 투자가 필요한 셈이다.
 소비자수요이론은 생산의 시급성을 변호하는 이론이므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보고 재화의 중요성에 관한 판단은 경제학에서 분리해야 한다고 봤다. 생산이 욕구의 결과가 아니라 욕구가 생산의 결과. 광고와 마케팅 기법의 목적은 욕망을 만들어내는 것. 이 이론은 그래도 요새는 사람들이 수긍하는데 이 책 초판 나왔을 당시는 난리도 아니었다니 사회학 이론의 타당성은 역시 미래와 얼마나 일치하는가가 중요함을 새삼 깨달았다. 욕망 창조는 재화 생산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소비자 수요 이론에선 욕구 때문에 생산이 이루어진다고 보는데 여기선 그 반대 즉 욕구가 생산에 의존한단다.  
그렇게 생산의 중요성을 강조해 생산이 경제적 관점을 독차지하게 되면서 기업 중역들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개인의 소득증가는 미룬 채 재화 그 자체를 위한 재화 공급에 연연해선 안 된다. 경제적 보장에 영향을 주기에 생산이 중요하며 생산물은 단지 그 부수물일 뿐이다. 생산을 위한 생산을 중요시하는 환상의 체계는 그 자체로도 위험하다면서 광고가 끝없이 생산을 이끌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해 의심했다.
 또한 민간 재화 생산엔 배려 아끼지 않고 규제 다 풀어주면서 공공부분에 필요한 비용에 대해선 심한 제약 가하는 것이 풍요한 사회의 가장 기묘한 특징이란다.
인플레이션에 대해선 통념은 임금 상승이 물가상승의 주범인 양 떠들지만 임금 상승과 물가 상승은 함께 가는 것으로 인플레이션에서는 둘 다 중요하다. 임금과 이윤과 물가의 상호작용을 막아야 인플레이션이 제어된다. 경제활동을 둔화시켜 수요 억제를 수단으로 쓰면 되는데 문제는 그것이 생산이란 과제와 상충한다. 그런 통제수단을 사용하면 자원을 그 용도에 따라 합리적으로 배분돼야 하고, 결국, 자유시장만이 효율적이고 만족스러운 수단이란 믿음과 어긋난다.
 금융정책에 대해선 대기업이 금융정책의 영향을 받기 전에 소규모 기업이 영향을 받는 문제, 불확실성 문제 등을 말하면서 금융정책을 무용지물에다가 폐를 끼칠 수도 있는 정책으로 봤다. 여기선 환율 방어하다 몇조 원 날린 우리나라가 떠올랐다.

 사회 균형론에선 공공서비스와 민간부문 재화 생산의 불균형을 말하고 둘 사이에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민간부문 재화 생산에 공공 서비스가 따라가지 못하면 사회가 무질서해지거나 경제성과가 손상하므로 공공 서비스는 국가 전체에 커다란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민간재화에 대한 욕구는 당연하다면서 공공재에 관해선 부정적인 건 어리석다. 공공 서비스를 공격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떠올렸다. 공공 서비스는 그렇게 욕하면서 존재하지도 않는 욕구를 광고를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사람은 숭고한 인물 대접받는다는 대목도 그렇고.

 생산, 기술적 진보에 영향을 많이 주는 인적 자원의 질과 양의 향상은 교육, 훈련 같은 투자량에 의존한다. 그런 개인에 대한 투자는 공공부문이 대부분 전담해야 하는데 이런 교육에 대한 공공 부문 투자도 개인의 부담으로 넘기려고 한다. 교육 투자는 대부분 개인의 소득 능력 초기에 이루어지기에 자신의 의사와 능력과는 상관없다. 교육 끝나가는 인재에게 투자해봤자 완성된 조각품을 다듬는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책 곳곳에서 공공부문 투자를 반복해서 강조하면서 지식과 교육을 위한 지원을 얘기하는 것을 눈여겨볼 만하다. 보수주의자들이 심심하면 떠드는 생산성 향상 역시 기술개발로 가능한데 그 기술개발은 인적 투자가 필요하다. 그 인적 투자는 개개인에게 전부 맡기거나 성장 초기 단계를 지난 단계에서 지원해봤자 큰 효율이 없다고 한다. 즉 유아기와 초중등학교 때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때야말로 공공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은 주위 사람들, 아이들을 보면서도 느꼈었다. 솔직히 어렸을 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면 커서 갑자기 바뀌긴 어렵다. 어렸을 때 제대로 된 관심과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그가 유전적으로 잠재성이 있었다고 해도 살리기 어렵다. 왜 우리나라에선 기초과학이 발달하지 못하는가를 이와 연관해서 생각해봐도 좋을 듯했다. 결국 유아기와 초중등교육이 공공성을 띠지 못하고 개인에게만 교육 부담을 전담해서다. 그리고 범죄학 관련 책을 봐도 어렸을 때 환경이 상당히 중요하던데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환경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생기는 리스크는 결국 우리 모두의 몫이 된다.

 

 이 책처럼 차근차근 말하면 아주 설득력 있는 논지들인데 왜 우리 사회에선 그렇게 오해를 받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좌파나 중도우파가 읽고서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는 데 쓸모있는 책이었다.   

a****o 2011.01.30. 신고 공감 3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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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비단 경제학 책만은 아니었다,, 내겐,,
"이 책, 비단 경제학 책만은 아니었다,, 내겐,," 내용보기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뭐랄까, 정말 몸에 좋은 그러나 맛은 없는 약을 먹은 기분이었다,, 나의 지식적 충만함이 가득 채워진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나의 지식을 향한 길은 아직 멀디 멀었지만 ㅠ) 흥미위주의 서적들만을 읽다가, 갑자기 보게된 이 책,,, 오랜만에 색연필로 줄을 쳐가면서 읽었는데,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줄을 친 부분을 읽을 때의 느낌도 어려
"이 책, 비단 경제학 책만은 아니었다,, 내겐,," 내용보기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뭐랄까, 정말 몸에 좋은 그러나 맛은 없는 약을 먹은 기분이었다,, 나의 지식적 충만함이 가득 채워진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나의 지식을 향한 길은 아직 멀디 멀었지만 ㅠ) 흥미위주의 서적들만을 읽다가, 갑자기 보게된 이 책,,, 오랜만에 색연필로 줄을 쳐가면서 읽었는데,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줄을 친 부분을 읽을 때의 느낌도 어려움,, 이었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부족한 글을 써봅니다,, ㅠ)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존 갤브레이스의 선지자적 안목에 놀랐다,, 과거에 미국과 자본주의에서 지금의 문제점, 빈곤이라든가 제3세계의 어려움들을 다루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경제학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그것은 최대의 수익을 창출하는 것! 이라기 보다는 사실 최대의 손실을 막고, 인류 모두가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부라는 것이 돌고 도는 것이기에, 그것을 골고루 돌릴 수 있다면, 그러면 모두가 풍요한 사회가 가능할 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 책에선 그런 제3세계에 대한 견해들은 나와 있지않다,,) 그는 과거엔 드러나지 않았던, 지금 조금씩 곪아 터져나오는 자본주의의 문제들을 적절히 포착했다는 점은 정말 높이 살만했다,, 그리고 내가 또 맘에 들었던 첫 부분의 사회와 통념에 대한 그의 생각,, "독창성은 곧 불안정성으로 취급되며, 경전과도 같은 이론을 약간만 수정한 개성없는 주장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는 다른 분야에서는 익숙함이 멸시를 받을 수도 있지만, 사회에 대한 개념에서만큼은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결정적인 요소다." 아 이 맞는 얘기를 어떻게 이렇게 잘 이야기 할수 있지?? 라는 생각과 함께, 지금의 유명한 , 지지를 얻는 사람들은 어떤 말을 하는가? 생각을 해볼수 있는 계기가 되었었다. 한 사람에게 하는 아첨은 아부이고 지양해야하지만, 우리 모두와 사회를 향한 아첨은 진부하고 지루함에도 불구하고, 아첨한 자를 대단한 학자로 만들어주고 그를 띄워주는가! 그런 의미에서 촘스키와 같은 사람이 우리나라에 필요하단 생각을 했다. 그는 미국을 깐다! 하지만 결국은 미국에 이익을 만들어주는 언성높임이다. 우리나라에선 왜 그렇게 힘든것인지,, 정치인들은 대중의 호응만을 얻기위해 이미지 정치를 하고, 대학의 시간강사는 교수가 되기 위해 학생에게도 교수에게도 보신하기에 바쁘고,, 우리나라에서 누군가 맞는 이야기를 했을때, "그래 그건 맞다" 는 생각보다 "니가뭔데!" 라는 감정이 끼여있는 고성이 나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경제학 책을 읽으며 앞부분의 내용에 너무 심취한 기분을 받았다. 읽으면서 계속해서 갤브레이스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며 했으니까,, 이 책 추천해드리고 싶다. 이 책을 읽으신 분은 정말 경제학이든 인간에 대해서든, 생각을 얻게 될 것이다. 나같은 이도 얻었으니,,
v*****6 2006.09.2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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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사회만이 행복한 사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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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한 사회>는 40년 전 초판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비록 수정을 거쳤다고는 하나!) 맥락을 이어가고 있는 존 갤브레이스의 저서로, 제목상의 풍요는 '경제적 풍요'를 뜻한다. 불과 4년 전과 현재를 살짝 비교하기만 해도 교통, 통신, 문화 서비스를 비롯한 생활의 전 분야에서 이뤄낸 경제적 성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저자는 경제 또는 경제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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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한 사회>는 40년 전 초판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비록 수정을 거쳤다고는 하나!) 맥락을 이어가고 있는 존 갤브레이스의 저서로, 제목상의 풍요는 '경제적 풍요'를 뜻한다. 불과 4년 전과 현재를 살짝 비교하기만 해도 교통, 통신, 문화 서비스를 비롯한 생활의 전 분야에서 이뤄낸 경제적 성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저자는 경제 또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이나 체제를 통해 사회신념으로 굳어져버진 여러가지 통념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사회가 변화하는 만큼 통념은 변해야 하며, 필연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음을 설명한다. 사회가 변화하는 한, 통념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고, 통념이라 일컬어진 것에 의존해서 의사를 행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사회 전반,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 경제의 개념이 비집고 들어가지 않는 분야는 없을 정도로 다방면에 영향을 주며, 그로인해 인간의 삶은 진화해왔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풍요한 사회를 과연 올바른 사회로 규정지을 수 있냐는 논란을 피해가기 때문에 약간은 한계에 부딪친 결론을 얻을 수밖에 없다. 본인 스스로 서문에 이렇게 썼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낙후된 지역에서 끊이지 않는 극심한 기아와 높은 사망률 같은 문제는 미처 다루지 못했다. 이 책이 나온 후 죄책감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오랫동안 이 문제들에 매달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명쾌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가난 속에서 어린 나이에 굶어죽는다는 것은 현대사회의 가장 충격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풍요하지 못한 사회'라는 책을 썼다면 사람들에게 그 실상을 좀더 제대로 전할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첫 술에 배부르랴'를 떠올리게 하는 변명이다. 그는 풍요한 사회 즉, 생산의 증대가 사회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력을 단호한 필체로 나열했지만(심지어 모든 문장을 '불평등'으로부터 시작하지만) 그것만은 빼먹는다.

 

경제학자 리카도와 맬서스, 애덤 스미스의 공톰점은? 가격, 땅값, 임금, 이윤을 결정하는 요인을 분석함에서도 애덤 스미스는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9세기에만 해도 사회진화론은 잘 먹혔다. 일단 풍요가 우선이고, 생산성을 높이기만 하면 나머지 부수적인 것들은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각자 알맞은 자리를 찾을 거라던 그의 말은 때로 진실이고 때로 거짓이었다. 경제적 풍요에는 한계점이 없다. 풍요 위에 풍요가 거듭되었다. 부유를 얻은 대신 분배의 개념을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불평등을 초래한 것이다. 사회진화론에 근거하여 19세기 식민지배를 타당화한 제국주의 국가들이 적자생존이라는 미명하에 의무교육이나 극빈자에 대한 국가지원, 심지어 공중위생을 거부할 때도 그들은 더 풍요로운 사회를 위해 달려가고만 있었다. 그에 반해 나온 이론이 절대 평등과 분배를 주장하는 마르크스 학파였다.

 

불평등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평등이라는 사회문제에 열성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에서 불평등의 결함은 경제구조에도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부의 상속이나 독점은 부의 축적에 가장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그것은 경제적 풍요를 위한 필수코스인 경쟁이라는 규칙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야망을 통한 동기부여나 지속적인 경쟁이 주는 자극, 그리고 단조로운 생활의 진부함과 무미건조함을 논하는 정신분석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명백하고 심각한, 그리고 영구적인 불평등이 인류의 행복을 방해하고 있다는 보편적인 확신을 제압하지는 못한다." (pp.53~54) 경쟁은 경제성장에 필수적인 요소지만 상대적 평등이 이뤄지지 않고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지주와 기업가, 노동자의 공동창작물인 생산의 결과로 얻어지는 부유가 하루에 10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에게 최저임금만을 보장해주는 사회가 바로 경제적으로 풍요한 사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평등은 굳이 인플레이션이나 생산구조, 사회제도까지 갈 필요도 없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또한 생활 속에는 그것을 뒷받침해줄 엄청난 뉴스거리가 날마다 재생산되고 있으니 말이다.

 

<풍요한 사회>가 도달하는 지점은 결코 생산을 최고목표로 삼고 죽어라 달려온 현대사회에 불평등이 만연했으니 이제 분배로 눈을 돌려보자는 게 아니다. 생산증대와 부유에도 분명히 목표가 있었고, 계속 가되 잘못된 것은 정리를 해보고 가자는 것이기도 하다. 생산의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한참 소수가 되지 않는 한, 그들에게 뺏을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재분배를 위한 조세 정도 뿐이란 걸 우리 또한 잘 알고 있다. 모든 법에도 권리를 주는 데에는 상대의 동의가 필요없지만 의무를 부과하는 데에는 상대의 명시적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해 놓고 있는데 하물며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러나 '빈곤'의 책임을 사회체제나 경제구조에만 묻기에도 뭔가 꺼림칙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특정 누군가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멀리 와 있다. 풍요를 향한 경쟁이 지금의 눈부신 성장을 만들어준 것만은 감사하지만, 감사만 하고 있기에 많이 잘못됐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언제까지 성장만 할 것인가, 그것도 지주나 기업가에게만 풍요로운 성장을. 이제 분배가 필요할 때다. 성장의 한계선이란 건 애초에 없다. 마르크스 주의로 회귀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분배의 한 형태인 복지는 물론이고 많은 것들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s*****d 2011.02.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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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를 연장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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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브레이스의 1958년 초판되었던 이 책은 40년을 지나 개정판에 이르는 동안 경제학의 개념 뿐 아니라 미국의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 중요한 저술의 하나이다. 그는 빈곤사회의 개념으로 풍요사회를 설명하려하는 패러다임의 정체가 도리어 파국을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생산에 의존한 민간재 중심적 경제가 이러한 패러다임의 핵심이므로 그는 공공재 중심의 생산 이탈적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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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브레이스의 1958년 초판되었던 이 책은 40년을 지나 개정판에 이르는 동안 경제학의 개념 뿐 아니라 미국의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 중요한 저술의 하나이다. 그는 빈곤사회의 개념으로 풍요사회를 설명하려하는 패러다임의 정체가 도리어 파국을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생산에 의존한 민간재 중심적 경제가 이러한 패러다임의 핵심이므로 그는 공공재 중심의 생산 이탈적 경제 체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조세에 바탕한 교육의 기회와 쾌적한 환경과 여가의 제공이 결국 이 사회를 더욱 정신 가치로서 풍요한 곳에 이르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실업보장과 기본소득의 권리 현실화, 그리고 가구규모에 따른 소득액수 산정으로 사회균형을 회복하는 북유럽식 경제를 미국 경제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은 이 모든 변화의 한 가운데 위치하는 것이다. 왠지 현 미국정부의 강조점들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팀 하포드가 [Undercover economist (경제학 콘서트)]에서 중국과 같은 발전모델을 들어 고전적 경제학을 옹호한 반면, 이 책은 이러한 고전 경제학 모델이 얼마나 미국처럼 시장 중심적 경제로 이미 성장한 나라에는 부적합한지를 보여준다. 불황과 인플레이션의 지속적 위협과 그것을 옹호하는 파워집단의 논리의 억지. 왜 미국이 주도하는 현 경제가  2008년말의 곤두박질을 막을 수 없었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생산 중심의 현 경제에 브레이크를 걸지는 않는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슈마허가 이야기하는 이 책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갤브레이스는 그래서 어쩌면 근본적이지는 않은 그러나 더 실현가능한 처방을 제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s***y 2009.07.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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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풍요한 사회''가 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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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에서 이과를 선택하고 공과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경제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다. 회사에 들어오고 재테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까닭에 요즘에야 경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런 차에 존 갤브레이스의 를 읽게 되었다. 초반의 유럽 경제사와 경제학사는 경제와 세계사에 대한 기반 지식이 없어서 독파하기가 참 어려웠다. 그들만의 이야기를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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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등학교에서 이과를 선택하고 공과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경제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다. 회사에 들어오고 재테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까닭에 요즘에야 경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런 차에 존 갤브레이스의 <풍요한 사회>를 읽게 되었다. 초반의 유럽 경제사와 경제학사는 경제와 세계사에 대한 기반 지식이 없어서 독파하기가 참 어려웠다. 그들만의 이야기를 눈으로는 읽지만 머리로는 넘어가지 않는 어려움을 극복하고서, 현실의 이야기인 7장부터는 그나마 덜 어려운 내용이라 차근차근 읽을 수 있었다. 가진 사람들만을 위한 것인지, 사회 전반을 위한 것인지에 따라 지금 사회는 풍요하다고 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저자는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세계는 전자인 가진 사람들만을 위한 풍요한 사회라고 말하면서, 후자인 사회 전반의 풍요를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진 사람들의 소비 욕구를 끌어내기 위해 광고가 판치고, 없는 사람들은 당장 살아가기 힘들 정도로 빈곤한 ‘풍요한 사회’가 바로 미국의 모습이다. 실업 급여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 보장 등에 대해 사회적인 반발이 거세다. 그러나 이윤을 제일로 하는 민간 부문에서는 이와 같은 일을 하지 못하므로 반드시 정부가 나서야 한다. 지금은 전기가 국영 사업이지만, 민영으로 넘어가면 산골 오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전선주 설치비 등 타산이 맞지 않아서 요즘 시대에도 전기 없이 살아야 한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현재도 누누히 강조되는 케인스의 주류경제학을 파괴하는 저자의 주장들 때문에, 내가 그나마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경제학적 지식들이 몽땅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전 세계 리더들은 저자를 경제학의 스승으로 생각하면서, 왜 고전 주류경제학대로 경제를 집행하는지 의문이 든다. 기득권자이기 때문에 진실을 알고 있지만 그들에게 유리하게 끌어나가는 것일까? 자유무역협정도 그런 것일까? 그들처럼 영향력있는 사람들이 알면서도 집행하지 않는다면 배임 행위이고, 아예 모르고 있다면 더욱 무서운 문제이다.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고 노령화가 진행되는 우리 나라의 상황에도 모든 사람이 풍요한 사회가 되기 위해 많은 연구와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y*****9 2006.09.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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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풍요한 사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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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실 경제쪽으론 문외한이다. 고딩때 이과를 선택하면서부터 수학,과학은 열심히 봐왔지만 경제,경영쪽은 접할 기회도 특별한 관심도 없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내던져지면서 차차 내가 알지 못하는 이 분야에도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뒤늦게나마 경제경영쪽의 책들을 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워낙 바탕지식이 부족한 까닭에 그 책읽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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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실 경제쪽으론 문외한이다. 고딩때 이과를 선택하면서부터 수학,과학은 열심히 봐왔지만 경제,경영쪽은 접할 기회도 특별한 관심도 없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내던져지면서 차차 내가 알지 못하는 이 분야에도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뒤늦게나마 경제경영쪽의 책들을 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워낙 바탕지식이 부족한 까닭에 그 책읽기란 매번 어려움에 봉착한다. 이 책 또한 그런 책 중의 하나였다. 세기의 100대 명저, 경제학 역사상 최고의 명작! 이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는 이 문구는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로 칭송받고 있는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가 출판 40년만의 수정판을 내놓을 만큼 대단한 작품은 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그 궁금증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펼치게 만들었다. 사실 이 책은 어렵다. 솔직히 교과서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새로운 분야라는 생각에 흥미진진했지만 이내 나의 가벼운 지식이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정통 경제학서이니 나같은 일반인들이, 그것도 문외한이 보기엔 그닥 수월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쉽게 읽혀지길 기대하진 않았지만 읽은 부분을 또 읽고 다시 읽느라 속도가 아주 더뎠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선 또다시 읽기를 시도했던 터라 이 책을 끝내기까진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나서도 그 내용이 머리속으로 명쾌하게 정리가 되지 않음이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사실 비전공자인 내가 이 책을 한 번 읽고서 모든 내용을 확연히 꿰뚫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우스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세상은-정치든 경제든- 가지지 못한 사람들보다는 가진 사람들에 의해 변하고 있다. 기존의 여러 개념과 논리들은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 활용된다. 통념이 그러하다. 대중은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에 공감하고 박수를 치기 때문에 대중의 공감을 형성하는 통념에는 익숙함이 중요한 요소이다. 학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단 어떤 개념이 형성되면 독착성보다는 그 통념을 전제로 한 안정된 논리들이 기득권을 형성한다. 통념은 자신에게 익숙하고 편리한 것을 바탕으로 하게 되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새로운 것을 폭넓게 수용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통념은 퇴화할 수 밖에 없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지금 꽤나 풍요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각종 재화들이 주위에 넘쳐나지만 기업들은 더 많이 팔기위해 마케팅과 광고에 여념이 없다. 소비가 미덕이 되어있는 이 사회, 진정 풍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더 많이 가졌다고 더 행복한 것은 아니다. 풍요한 사회가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하진 못했듯이. 잘 사는 나라의 빈곤층이 가난한 나라의 빈곤층보다 더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저자의 말은 그리하여 공감할 수 밖에 없다. 가진 자들에 의해 움직여지는 사회, 이것이 바로 우리의 풍요한 사회의 현주소일 것이다. 마지막 후기를 통해 저자는 두 가지 풍요의 위험한 효과를 강조한다. 첫째는 풍요속에 살게 된 우리는 그 혜택과 문화로부터 배제된 이들을 간과하기 쉽다는 것, 그리하여 그들을 방치하는걸 합리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러하다. 가진 자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게 위해 여전히 그것들을 합리화하고 있다. 둘째는 풍요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엄청난 파괴능력을 지닌 무기생산의 위험이다. 자신의 풍요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무장하는 사회. 이것은 풍요로 인해 지속되는 악순환의 연결고리일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진정한 의미에서 풍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 풍요함이란 진정 어떠한 것인가.. 깊이있는 통찰로 세계를 꿰뚫어보는 저자에게 감탄하며 그의 눈을 빌어 나도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끝내고 나면 나름의 보람(?)을 느끼게 되는 책. 나의 부족함을 반성하며 찬찬히 다시 읽어봐야겠다.
t****9 2006.09.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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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갤브레이스의 "풍요한 사회"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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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갤브레이스의『풍요한 사회』를 읽고 요즘의 세상은 분명 ‘풍요한 사회’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 만큼 모든 것을 가진 돈만 있으면 다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 전체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이다. 모든 국민들이 이 ‘풍요한 사회’에서 풍요한 삶을 누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 만큼 우리나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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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갤브레이스의『풍요한 사회』를 읽고 요즘의 세상은 분명 ‘풍요한 사회’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 만큼 모든 것을 가진 돈만 있으면 다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가 전체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이다. 모든 국민들이 이 ‘풍요한 사회’에서 풍요한 삶을 누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 만큼 우리나라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국가간은 물론이고, 남북문제 등 지역간의 빈부의 격차 등의 생활의 차이가 너무 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모든 이 지구상의 국가들은 당연히 ‘풍요한 사회’를 꿈꾸고 있고, 그 ‘풍요한 사회’를 위하여 각종 경제 정책 및 국가 사회복지 정책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은 경제 문제가 가장 중요한 국가 정책의 원천이라는 점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 100대 명저에 선정되었으며, 경제학 역사상 최고의 명작의 하나인 존 갤브레이스 교수의 ‘풍요한 사회’의 저술에 대해 40여년의 격차가 있은 후에 나온 개정판에도 대부분의 내용들을 그대로 살려놓았다는 것은 그 만큼 높은 혜안과 함께 깊은 지식을 갖춘 확실한 세계적인 학자라는 점인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이나 경제학자들 그리고 일반적인 국민들까지도 이 책에 나와 있는 이론이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면서 반영하고 참조 해나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특히 저자가 서문 끝 부분에 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낙후된 지역에서 끊이지 않는 극심한 기아와 높은 사망률 같은 문제를 다루지 못했지만 많은 연구를 했으나 결국은 명쾌한 해결책을 보지 못하여서,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가난 속에서 어린 나이에 굶어 죽는다는 것이 현대사회의 가장 충격적인 문제로 남아 있어서 ‘풍요하지 못한 사회’라는 책을 썼더라면 하는 저자의 아쉬움 표현에 정말 진정한 경제학자로서의 모습을 엿볼 수가 있어서 가슴이 뭉클하였다. 결국 이 지구상의 모든 국가 모든 사람들은 공생과 상생의 정신으로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이론이라면 정말로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너무 풍요로움과 건강한 삶만을 쫓다가 결국 쉽게 놓칠 수 있는 빈곤과 질병 등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범세계적인 인식아래 한 마음으로 협력하고, 상부상조하는 그런 인간 본연의 마음으로 회귀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지금도 미국 등 일부 강대국들의 영향력이 너무 큼과 동시에 그 힘에 눌려서 아직도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는 세계의 여러 지역과 국가들에 대한 적극적인 배려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정말 지금까지 나타난 각종 경제적인 문제점들을 과감히 혁신시켜 나가면서 균형적인 정책들 시행으로 하여 이 지구상의 빈곤의 문제를 풀어 나가는데 모든 힘 있는 국가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정책의 배려가 중요한 것 같으며, 또 하나의 바람은 제발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 종 분쟁들과 전쟁들의 예방과 함께 무기 개발과 구입, 군대 육성과 전쟁 준비 비용들을 과감히 제거하거나 대폭적으로 줄여서 그 비용들을 바로 전 세계 빈곤 퇴치 운동에 투자해나갔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경제학적인 여러 지식의 나열에 대한 느낌 보다는 이 책을 통해서 정말 온 세계가 인 지구상의 모든 국가 국민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같이 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멋진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는 것에 그 의의를 두고 싶다.
m***3 2006.09.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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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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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미래 마라톤을 끝낸 후 바로 자부심을 가지고 들었던 책이지만 읽을수록 부의 미래보다 더 깊이있는 사고를 나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 혼자 그런 부담감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부의 미래란 두터운 책도 다 읽었으면서 이 정도는 못 읽어 하면서 진도 안나가는 내 자신을 책망 했을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읽을 내내 난 감기와 몸살로 인해 약을 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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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미래 마라톤을 끝낸 후 바로 자부심을 가지고 들었던 책이지만 읽을수록 부의 미래보다 더 깊이있는 사고를 나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 혼자 그런 부담감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부의 미래란 두터운 책도 다 읽었으면서 이 정도는 못 읽어 하면서 진도 안나가는 내 자신을 책망 했을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읽을 내내 난 감기와 몸살로 인해 약을 달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인지 읽을 때마다 사경을 헤매고 자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 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제 정신일때 이 책을 대했을 땐 정말 배우는 것도 많고 나의 식견이 좁음에 반성을 하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고 난 자부한다. 하지만 이분의 일의 시간을 허비해버린 그저 글자만 읽어 버린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뒤로 갈 수록 정신을 차렸다는 점이다. 본격적인 풍요한 사회 이야기로~~~~~ 우리는 이제는 빈곤이라는 단어가 어색해 질정도의 부를 누리고 있다. 한끼를 못 먹어서 구걸하는 사람을 내 주위에서는 아직 찾아 볼 수는 없으니깐 그리고 우리는 보통 가정조사에서 망설임없이 중산층을 택한다. 그런데 그런 안정감이 다는 아닌 것이다. 그로 인한 조장되고 있는 불평등과 차별 우리는 그동안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면 나 혼자만 몰랐을 수도 있지만 재화적인 부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회보장. 지금의 우리는 이제 웰빙을 외칠만큼 어느 정도의 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신경쓰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그리고 이 지구 어디에선가 이 부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그것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들 힘들게 살던 시대에는 모두들 힘을 합쳐 하나가 되었지만 이제 부의 축적이 이루어진 시대에 이르러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간과하고 있었다. 우리는 필요치도 않은 것을 경쟁심리와 광고로 인해 축적하게 되고 소비심리를 조장시킨다. 풍요한 사회에 내면에 감추어진 많은 폐헤를 놓치고 있었던 것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존은 우리에게 가난한 사람들의 지켜달란 말과 함께 지구를 전쟁으로 부터 보호해 달라는 당부를 남긴다. 지금의 사회는 사회보장제도에는 인색하면서 엄청난 신무기를 개발해내고 서로를 견제하게 된다. 부를 어느정도 이제는 지키고 싶은 것이다. 어떻게 존 갤브레이스는 이런 책을 40년전에 썼단 말인가 지금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이런 책을 그 때 썼단 말인가 다시 한번 감탄하며 존 갤브레이스의 마지막 당부를 마음 속 깊이 되새기며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9월은 나에게 아주 뜻깊었다. 진정한 독서를 한것 같이 마음의 양식을 채운 느낌이다. 앨빈 토플러와 존 갤브레이스와의 만남은 내 인생에서 결코 잊지 못할 그런 경험이였다. 깨어나라 이 시대의 주역들이여!!!!
e*******d 2006.09.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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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풍요한 사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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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살기 좋아졌다, 라는 말을 하곤 한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은 이제 안녕이고 먹고 사는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이 되었으며 명품 브랜드가 난무하고 오늘도 거리엔 배부른 자들의 방황으로 가득하다. 배고팠던 시절을 지나온 어르신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살기 좋아졌다.'' 이 책의 제목 또한 『풍요한 사회』다. 나는 제목을 보고 그런 어르신들의 말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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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살기 좋아졌다, 라는 말을 하곤 한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은 이제 안녕이고 먹고 사는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이 되었으며 명품 브랜드가 난무하고 오늘도 거리엔 배부른 자들의 방황으로 가득하다. 배고팠던 시절을 지나온 어르신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살기 좋아졌다.'' 이 책의 제목 또한 『풍요한 사회』다. 나는 제목을 보고 그런 어르신들의 말씀이 먼저 떠올랐다. 과연 우리는 풍요하고 살기 좋은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솔직히 경제학서는 이 책이 처음이다. 그래서 냉정하리만큼 툭툭 던져주는 용어조차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장을 거듭할수록 흥미로운 얘기에 점점 빠져들었다. 물론 중반을 넘어선 부분에서 다시 허덕이긴 했지만. 내 짧은 식견 탓으로 저자 존 갤브레이스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지만 그가 언급한 맬서스나 리카도, 애덤 스미스는 교과서나 다른 매체를 통해 익히 들어본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나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었는지 이 책의 전반부를 읽으며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주류 경제학파의 대표자들이었고 반드시 깨뜨려야할 통념의 대부들이었다. 저자는 통념을 버리라고 이 책 전반에 걸쳐 누누히 말한다. 그리고 그 통념이 애써 배제해온 문제, 바로 빈곤퇴치에 주의를 집중하고 정부가 나서서 실질적인 대책을 세워야한다고 주장한다. "하나의 학문으로서 경제학은 가난과 궁핍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태어났지만, 부가 만들어내는 차별을 인식하는 데는 인색했다" 바로 이 때문에 저자는 이 책을 썼다. 얼핏 보면 이 사회는 풍요로 넘친다. 욕구를 충족하다 못해 생산자들은 광고와 마케팅으로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내고 그에 휘말린 소비자는 필요도 없는 물건을 구입하는데 열을 올린다. 저자가 말하는 미국의 정부는 ''중요하지도 않을 뿐더러 위협적이기까지 한 무기를 사들이느라'' 기업들의 배만 불릴뿐, 공공시설이나 복지에 대해서는 더없이 인색하다. 그러하니 자꾸 벌어져가는 빈부차는 없는 자들의 피고름만 더 뽑아댈 뿐이다. 이 책 제목이 풍요한 사회인 건 아마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사회에 날리는 냉소적인 일격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미국인이고 이 책 또한 미국과 유럽의 경제학사와 경제현상을 다루지만 겉으로 보기에 점점 풍요한 사회로 진입해가는 우리에게도 유용한 지침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우리 정신을 지배하는 통념에 저항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나아가 더불어 잘 사는, 진정으로 모두가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저자의 따스하고 진실된 충고를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YES마니아 : 로얄 j***7 2006.09.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