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0.0
리뷰 총점 종이책
현대사를 온몸으로 끌어안다
"현대사를 온몸으로 끌어안다" 내용보기
82세를 이른 죽음이라 칭할 순 없겠지만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경험해온 리영희 선생의 죽음 소식을 접했을 때 많은 이들은 마음 한 켠이 허해지는 것을 느꼈다. 제목은 ‘역정’. ‘나의 청년시대’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리영희 선생의 역사를 담고 있는데, 청년시대라는 단어는 허투루 붙인 게 아니어서 이 책에서 우리는 5.16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정권이
"현대사를 온몸으로 끌어안다" 내용보기

82세를 이른 죽음이라 칭할 순 없겠지만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경험해온 리영희 선생의 죽음 소식을 접했을 때 많은 이들은 마음 한 켠이 허해지는 것을 느꼈다.

제목은 ‘역정’. ‘나의 청년시대’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리영희 선생의 역사를 담고 있는데, 청년시대라는 단어는 허투루 붙인 게 아니어서 이 책에서 우리는 5.16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정권이 기세등등할 무렵까지를 만날 수 있다. 1929년생인 리영희 선생에게 그 시절은 30대 초반으로 인생의 절반 이상이 남은 시점이었다. 이 책에 담기지 않은 그의 인생을 잠시 살펴보자면 언론사에서, 교수직에서 강제해직 당하고 반공법 위반혐의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수차례 감옥을 들락날락거리는 등 상당한 굴곡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은 단 한 순간도 고요했던 적이 없었다. 기술되지 아니한 후반부 못지않게 책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반부 역시도 혼탁함 속에 놓인 물고기마냥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이는 그의 동년배 사람들이 감내해야만 했던 보편적인 생이었는지도 모른다. 1800년대 후반에 태어난 이들이 망국의 설움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끌어안아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제는 갈 수 없는 땅이 되어버린 평안북도 운산군 북진면이 그의 고향이었고, 삭주군 외남면 대관동에서 그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둘 다 상당히 북쪽이어서 사시사철 추운 날씨일 것이란 짐작만이 가능했는데 오히려 황해에 가까운 개명한 곳이라며 그는 제 고향에 대한 향수를 토로하였다. 일제시대에도 그랬고 한반도가 둘로 갈린 이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은 북쪽이 남쪽보다 나은 상태를 유지했었다는 소리를 들은 바 있는데, 아무래도 그것이 사실이었던 건지 그의 고향 설명 부분 중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운산금광이었다. 군 전체가 금광이었다는 설명. 상상이 가질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일 그 공간에 왜 나는 오로지 ‘가난’만을 채워 넣으려 발버둥치고 있단 말인가.

어린 시절 그에게 한국어는 금지된 언어였다. 공부를 상당히 잘 했기에 나름 엘리트의 길을 걸었고, 그 결과 일본인에 다름없는 일본어 구사 능력을 습득할 수 있었으나 언어 능력이 한국인을 일본인으로 만들어주진 않았다. 가정하고 싶지 않은 바이지만 만일 일제시대가 계속되었더라면 모를까, 해방 후 그의 엘리트적(?) 삶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같은 학교를 나온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것, 그로 인해 누군가와 뭉칠 수 없다는 사실에 아마도 그는 뼈저리게 외로웠을 것이다.

가장 끔찍했던 부분은 다름 아닌 한국전쟁이었다. 여느 전쟁이 아름다울 수 있겠느냐마는 7년에 달하는 그의 군대생활은 전쟁 중인지라 더더욱, 너무도 길었다. 통역장교로서 그는 복무했다. 직접 적을 총으로 쏴 죽이는 경험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루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죽음을 목격했고, 아찔하게도 자신 대신 나간 이가 차갑게 식은 시신이 되는 일도 발생하였다. 비참하기 짝이 없는 시간을 기회로 삼아 출세를 엿보는 이들도 있었고, 영원한 우방이라 믿었던 국가의 이중성을 엿보기도 한 시간을 통해 그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고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승만 정권이 독재로 변질되고 마침내 무너지던 순간까지, 그는 언론인으로 활약했다. ‘와싱톤 포스트’에 수차례 자신의 글이 게재 되는 것을 보며 한 편으로는 기쁘고 다른 한 편으론 서글플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7년간의 고행이 빚어낸 성숙의 결과물이었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사람의 가치임을 전장을 누비며 깨달은 그는 학생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주장했고 민주정치를 염원하는 마음을 놓지 않았다.

그가 떠난 지도 어언 2년. 세상은 진보한다 말한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지금 즈음 자신의 입을 꿰매버리고픈 충동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 사회는 퇴보를 거듭해왔다. 최근에는 레임덕 현상까지 더해져 한숨이 절로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과연 희망을 말해도 좋은가를 묻고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은 이르다. 이 책을 읽고 있자니 더더욱, 지금의 시련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에서조차도 상상이 가지 않는 지난 세월은 격변을 넘어선 혼란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대체 그 시기를 어찌 견딜 수 있었는지, 책을 읽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만일 전혀 다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그는 이번과는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어쩌면 애써 각성하려 들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차라리 그 편이 나았을 텐데, 굴곡진 이 땅의 현대사가 뿜어대는 향은 참으로 쓰디썼다.

이달의 사락 q*****2 2012.06.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