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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저녁의 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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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님의 <저녁의 해후> 입니다. 작가님의 단편집을 모은 책입니다. 원래 단편집은 선호하는 편이 아닌데 작가님의 단편은 짧은 각자의 이야기만으로도 꽉 찬 느낌이 드네요 , 역시  시대적 배경이 많이 녹아들어가 있는 작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소재가 겹치는데 시선은 달라서 이 사람들이 저 작품의 저 사람들의 이야기인가? 생각하면서 읽게 되는 구간이 있었고요. 그래서
"[도서] 저녁의 해후" 내용보기

박완서 작가님의 <저녁의 해후> 입니다.

작가님의 단편집을 모은 책입니다.
원래 단편집은 선호하는 편이 아닌데 작가님의 단편은 짧은 각자의 이야기만으로도 꽉 찬 느낌이 드네요 , 역시 
시대적 배경이 많이 녹아들어가 있는 작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소재가 겹치는데 시선은 달라서 이 사람들이 저 작품의 저 사람들의 이야기인가? 생각하면서 읽게 되는 구간이 있었고요.
그래서 또 좋았습니다 

c********4 2023.01.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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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함이 냉소를 띄지 않을 때 더 상처받는 지점들
"냉철함이 냉소를 띄지 않을 때 더 상처받는 지점들" 내용보기
작가가 독자들에게 일부러 고통을 주고자 하는 소설이 있다. 이런 책은 주제 의식을 다시 없게 각인시키고 싶어서 고통스러운 지점을 두 번 세 번 여러 레이어로 반복한다. 최근에 읽은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이런 책이었다. 제주 4.3을 역사에 묻히게 하지 않으려 작가는 참 독하게 글을 썼다.   하지만 때로 독하게 쓴 소설보다 상처를 받는 소설이 있다. 일부러 보
"냉철함이 냉소를 띄지 않을 때 더 상처받는 지점들" 내용보기

 

작가가 독자들에게 일부러 고통을 주고자 하는 소설이 있다. 이런 책은 주제 의식을 다시 없게 각인시키고 싶어서 고통스러운 지점을 두 번 세 번 여러 레이어로 반복한다. 최근에 읽은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이런 책이었다. 제주 4.3을 역사에 묻히게 하지 않으려 작가는 참 독하게 글을 썼다.

 

하지만 때로 독하게 쓴 소설보다 상처를 받는 소설이 있다. 일부러 보려 하지 않았던 인간들의 속물적인 편린을 깊게 파고들어 감정을 싣지 않고 냉철하게 써내는 작가, 박완서의 소설이 그렇다. 오늘은 수 많은 작가의 수작 가운데 문학동네에서 펴낸 단편소설 전집4 《저녁의 해후》에 실린 단편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작가는 독자들이 말랑한 멘탈로 애써 외면했던 지점들을 여러 사람들의 수다를 통해 재현한다. 작품들을 보다보면 이 수다의 가해와 피해는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재이산>의 나이 지긋한 숙모는 막내 고모와 비슷한 연배의 외모를 하고 주인공 몽동필을 고아원에 버린 사연을 악의 없이 당당하게 피로한다. 그 때는 본인도 여유가 없었고 고아원에 버리긴 했지만 이제는 아이들도 낳고 잘 살고 있지 않느냐는 논리다.

 

그녀의 손자들 또한 아주 당당하고 순진무구하게 몽동필의 아이들을 가해한다. 아이들이 몽동필의 아이들을 가해하는 이유는 본인들보다 나이가 많은데 몸집이 작고 한글 수준이 떨어져셔이다. 숙모의 말대로라면 '잘 살고' 있던 몽동필 가족은 재이산으로 이 아파트에 오는 순간 멀쩡히 딛고 있던 지면이 요동치는 경험을 하며 법으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피해자가 된다.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의 성남댁은 본인만 무고하면 사람들의 억척스럽다거나 색을 밝힌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아무 영향이 없을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읽는 독자들은 안다. 그리고 사실혼 관계였던 배우자의 며느리가 과장된 슬픔을 연기함으로써 배우자가 자신에게 약속했던 재산을 채갔음에도 손가락질 받지 않을 것이란걸.

 

성남댁은 결국 '천벌'이라는 형벌을 얘기하지만 이것은 독자들과 성남댁의 심층 사고 속에서도 이미 알고 있는 망상에 가까운 바람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망상에 가까운 현실도피 없이 사람이 살아갈 수 있을까?

 

질문형을 띄는 문장이지만 당연히 확신형이다. 그럴 수 없다.

박완서 작가는 이렇게 어딘가 구석에 묻어뒀던 이 현실도피적 망상을 작품 속 인물들의 수다를 통해 아주 자연스럽게 띄워 올려 내가 받았던 피해 또는 주도했던 가해를 복기 시킨다. 그래서 괴로운 것이다. (만약 그런 경험이 없다면 축하드린다. 축복 받은 삶이다.)

 

...그리고 이 일상의 수다 속에 가해와 피해가 끊임없이 꼬리를 무는데 가부장적인 남자들은 그 공론의 장을 쏙 빠져나가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점도 재밌었다. (아니 사실 재미 없었다) 박완서 작가는 이런 남자들을 일컫어 토종이라고 부르더라. 이렇게 사회비판적인 작품들을 통속소설이라 불렀다니 당대 평론가들의 눈높이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이 또한 반어법이다.)

 


 

 

10대에는 냉철한 사람을 동경했다. 이성적이고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그럼으로써 스마트해 보이는. 근데 20년이 지나고 나니 그것은 스마트한 것이 아니고 이기적인 것이며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삶이란 걸 깨달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기적인 사고가 부를 축적하는데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이들이 능력있어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기에 사람에 대한 통찰력을 얻기 원했는데 그 가장 궁극적인 지점에 박완서 작가가 있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읽는 내내 괴로웠지만 그랬기에 작가를 존경하게 되었다. 

 

 

 

 

u****h 2022.03.0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