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첫 눈에 반하면 이토록 가슴이 뛰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일까요? 제 인생의 음악인 Pomp and Circumstance Op.39 March No.1 in D(일명 위풍당당 행진곡) 은 말하자면 "첫 귀에 반한" 케이스였습니다.
첫 만남
1993년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하여가'로 가요계를 평정했던 한해였지만, 김건모 (잠못드는밤 비는 내리고), 신승훈 (널 사랑하니까), 이승환 (내게), 신해철 (N.EX.T 도시인) 등 90년대를 풍미했던 대가수들이 신보를 발표하고 전람회(93년 대학가요제), 김윤아(밴드 풀카운트) 등 2000년대까지 활동할 가수들이 데뷔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기억속에 1993년은 엘가의 위풍당당행진곡을 처음 듣게된 해로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새학기가 시작된지 얼마 안되는 초여름쯤이었습니다. 하릴없이 누워서 TV를 보던 어느 휴일, 모 항공사의 광고가 시작되고 한 교향곡이 시작되었는데, 저는 숨이 가빠지고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처음 듣는 곡이었는데 오랫동안 들어왔던 곡처럼 너무 익숙하고 친근했습니다.
그렇지만, 무슨 곡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길고 긴 추적
어머니와 누나는 몰랐습니다. 반 친구들도 하나같이 본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다른 반에 가서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그 당시 여기저기 교내에 일주일정도 수소문을 하고다니자 누군가 우리 반으로 찾아왔습니다. 전혀 모르는 한 학년 선배였습니다.
"여기 광고음악 찾는 녀석 누구야?" "어.. 저..전데요?" "내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볼때 들은 음악같거든?" "아, 그래요? 그럼 OST에 있나요?" "그렇겠지?" "아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당장 레코드샵을 뒤져서 2개의 CD로 구성된 OST를 거금을 들여 사왔습니다. 하지만 없었습니다! 이미 다 포장을 뜯고 들어봤으니 환불도 안되고, 알지도 못하는 선배이니 머라 따질수도 없는 상황이었죠. 괴로웠습니다. 너무나 알고싶고 듣고싶은 곡인데 알수 없다는게 그렇게 괴로울줄 몰랐습니다.
음악선생님
그렇게 3주가 흘렀습니다. 이젠 반 친구들도 다 광고를 보고 대충 어떤 음악인지는 알게되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곡이 무슨곡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짝이 한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음악선생님은 알지 않을까?" "에.. 설마" "그래도 클래식인데.." "그런가.."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음악실로 찾아갔습니다. 선생님은 피아노 연주를 하고 계셨습니다.
"저.. 선생님" "응? 무슨일이니?" "그 혹시 항공사 광고에 나온 배경음악 아세요?" "응? 광고를 본적이없는데?" "아... 네........ -_-"
교실로 돌아와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짝이 또 새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야, 그러면 불러보면 되지." "엥? 클래식이 잖아 멀 불러" "머 그냥 멜로디만 부르면 되지." "에 그래봤자 모를거야. 또 가창시험도 아니고 창피하게 머냐" "그래도 이번 수업 끝나고 가보자"
다시 음악실로 갔습니다.
"선생님?" "응? 왜 또?" "저기 들어보세요.... 빠빰 빰빰빰 빰~빰~ 빠~ 빰빰빰~ 빰~...."
짝과 저는 손을 앞뒤로 힘들며 발을 구르며 최선을 다해 불렀습니다.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흘렀지요.
"엘가의 위풍당당행진곡이네" "네? 먼 당당이요?"
한달만의 재회
하교길에 레코드샵을 찾아갔고 라이센스 음반이 아닌 것이 분명해 보이는 '세기의 행진곡들'이란 레코드판을 들고 집에 왔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턴테이블을 돌리고 핀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음악이 울려퍼졌습니다. 어머니는 볼륨이 크다고 하셨지만 저는 음악이 끝날때까지 계속 듣고 있었죠.
내 인생의 음악
첫 경험이라는 것은 누군가의 말처럼 아픔과 판타지가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제 인생 처음으로 간절하게 음악을 알고싶어서 한달넘게 짝사랑했던 기억. 최근에 대부분의 결혼식에서 신랑 입장 음악으로 쓰이고 있어서 그 희소성과 새로움은 퇴색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언제나 좋습니다. 정말 미치도록 알고싶었던 저의 첫사랑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