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G. 웰즈의 작품 중 The Door In The Wall 이라는 게 있다. 웬만한 명작 전집에는 '벽문'이라고 해서 단골로 끼던, 다소 왜색풍의(?) 제목 하에 국내에 알려진 단편인데, 여기 보면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비유적 의미가 아닌 물리적 실체를 지닌 '문'을 통해 드나드는 설정이 있다. 이는 단지 판타지를 말로 푼 게 아니라, 누구나 갖고 있는 과거에 대한 막연하고 아련한 그리움을 훌륭한 필치로 잘 묘파하였기에 정평이 난 그런 가작이다. 여하간 '문'으로 우주 간의 통행이 가능하다는 건 내가 알기로 그 작품이 시초이다.
'좀 모양이 갖춰진 입구'가 본격 영상 매체에서 아이콘으로 구현된 건 이 영화가 또 하나의 대표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94년 개봉되었을 때, 이 독특한 '게이트'가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곤 했다. 역시 cg가 본격 기술로써 활성화되던 시점이기도 해서, 이 작품에서 선뵌 여러 특수효과는 당시로선 신기해 보이는 점이 많았다. 고대 이집트 문명이 주는 다른 시사점에 대해 대중이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 영화가 한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 셈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영화에서 단연 눈에 띄는 요소는, 바로 조연 배우 제이 데이빗슨일 것이다. 그는 묘한 인상, 표정, 바디라인, 의상, 헤어스타일 등 거의 모든 앵글로 extraordinary함을 과시했는데, 극중의 그 묘한, 지배자임과 동시에 자유도 0%의 절대노예, 지구인이자 외계인이요 소년이자 노인인 그 기묘한 캐릭터를 소화하는데 정말로 잘 어울렸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이 배우에 반해서, 그가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완성도조차 (심지어) 이 작품의 그것을 넉넉히 하회하는 속편을 보려 막무가내로 나서기도 했다. ㅎㅎ 그 속편은 내가 알기로 극장개봉조차 하지 못했다.
이 영화에서 특기할 것은 그것뿐이다. 롤랜드 에머리히는 이미 우리가 '고질라', '10,000 BC'등에서 보았듯 연출력이 수준 이하인 인물이다. 이 영화도 예외가 아니라서, 당시로서 신기했던 여러 피처를 제외하면 지금 시선으로 정말 지루하고 식상하다. 다만 그런저런 화젯거리들을 회상하며, 과거의 연관 추억을 조용히 화면과 함께 떠올려보는 즐거움은, 투박한 시멘트벽을 소통, 초극의 벽문으로 재활용하는, 보는 관객의 슬기가 아니겠는가 그 정도의 생각은 해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