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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를 보고 나서일까? 시집을 읽고 싶단 생각 간절.... 책장을 올려다보며 (시집은 맨 꼭대기 줄에 있다. 왜냐? 평소에 많이 보는 편이 아니니까...)
마종기의 내가 지닌 유일한 시집, 난 전업작가, 전업시인, 전업음악가, 전업주부 보다는 뭔가 다른 '세속적인'일을 하면서 글을 쓰거나, 음악을 하거나, 살림을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뭐랄까...더 치열한 느낌? 세상을 향해 더 치열한 숨쉬기를 하는 것 같달까.... 루시드폴이 학문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을 때의 안타까움은 나의 이런 세계관 때문이었을 거다.
의사이면서 시를 쓰는 사람. 교사이면서 시를 쓰는 김용택(그만두었던가?)과 의사이면서 시를 쓰는 마종기가 다르다고 생각지 않는다. 돈을 잘 버는 일이든, 못 버는 일이든, 도회에서 일을 하든, 시골에서 일을 하든, 어느 일이나, 세속적인 직업이란 것은,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이고 동시에 세상과의 싸움이며 또한 세상과의 화해의 작업이다.
시집 제목과 같은 동명의 시는 없다. 그런데 시 '이름부르기'에 시집의 제목이 드러난 시구가 있다.
우리는 아직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처음 시집 제목을 보며 멍해짐이 있었다. 그런데 이름부르기에는 시집제목에 드러나지 않은 시어가 하나 더 있다. '아직' 그 단어가 들어간 문장, '우리는 아직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이 문장을 볼 땐 그저 멍해짐이 아니라, 눈물이 흘렀다. 왜냐구? 모르겠다. 그냥 울고 싶었다.
잡담길들이기 7은 묘한 울림을 준다. 이방인으로 살며, 그러나 이젠 그 나라 사람으로 사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월드컵 4강진출은 거창했었지. 미국에서도 오대호 근처에 작은 도시에 살아서 혼자 새벽 2시나 4시에 일어나 대한민국을 외치며 흥분했던 한판의 역사. 월드컵 다 끝난 날, 오래 같은 촌에 모여 사는 한국 친구들 몇 모여 축하주를 나눌 때 자동차 공장 노동자로 30년째 일하는 대졸 미스터 김의 눈, 술잔 부딪치며 언뜻 보인 붉은 눈시울은 무슨 뜻이었을까. 기쁨이었겠지 , 슬픔이었을까, 충만감이었을까, 아니면 외로움의 한이었을까.
너무 아름답게 빛나서 보이지 않는 시. 의미가 없어진 시. 너무 순하고 깨끗해서 이해할 수 없는 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시 혈혈단신의 몸이 다시 되어 그 시속에 들어가 살고 싶다. 그 시의 눈물에 빠져 끝없이 헤엄치고 싶다.
문득 영화 <시>가 생각나기도 하는 시.
이 시집엔 2006년, 이 시집이 발표되던 해에 문예지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된 시가 두 편 있다. 캄보디아 저녁1, 악어.....
천 년을 산 나비 한 마리가 내 손에 지친 몸을 앉힌다. 천 년 전 앙코르와트에서 내 손이 바로 꽃이었다는 것을 나비는 어떻게 알아보았을까
그 해 내가 말없이 그대를 떠났듯 내 몸 안에 사는 방랑자 하나 손 놓고 깊은 노을 속으로 다시 떠난다 뜨겁고 무성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뒤뜰로만 돌아다니는 노란 나비.
흙으로 삭아가는 저 큰 돌까지 늙어 그늘진 내 과거였다니! 이제 무엇을 또 어쩌자고 노을은 날개를 접으면서 자꾸 내 잠을 깨우고 있는가
노을이 아름답던 앙코르와트사원의 기억이 나에게도 있다. 누구나 앙코르와트에 가면, 근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나 보다.
악어는 마치 수필같은 시이면서, 황동규의 시집 <악어를 조심하라고?>를 떠오르게 하는 시이다.
또 먹기만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아픈 것에도 다 의미가 있다지만 해질녘이면 삭정이 가슴이 조인다. 풍경들이 점점 멀어지고 무엇이 살아 있다는 신호인지 분별이 되지 않는다. 꿈의 제일 밑층에 살던 냉혈 동물이 불면증으로 신음한다. 머리에 두 개의 충혈된 눈을 달고 악어 한 마리 집 앞의 호수에서 떠오른다. 악어 우는 소리를 밤마다 들으며 선잠에서 깨어나 불치의 냄새로 아침까지 헤엄쳐 나간다.
악어는 모두 혼자 산다. 짝짓기의 며칠과 새끼 키우는 철을 지나면 모두 혼자서 자고 먹는다. 날카로운 3천개의 이빨이 악어의 일생 중에 부러졌다가 다시 생긴다. 따뜻한 기온에서 부화된 알은 모두 수컷이 되고, 차가운 물에서는 암컷만 나온다. 물에서는 귀와 코와 기도를 닫고 눈꺼풀 하나도 닫는다. 악어는 파충류, 그렇게 왔다갔다 물에서도 땅에서도 산다. 고국과 외국에서 오락가락 살고 있는 나도 눈감고 사는 파충류, 또는 양서류인가
20년 전쯤 내 친구는 악어를 조심하라며 복개된 청계천 밑에는 악어들이 새끼치며 산다는 소문까지 일러주었다. 그 악어들 다 자라서 한강을 내려가 살고 있는지. 황해나 태평양 바다에서는 오래 살 수 없을테니, 지금은 누구 가슴에 숨어살고 있을까. 얼마 전 환하게 복원된 청계천에는 맑은 물에 물고기들 뛰어놀던데....기념식날 청계천에서 만난 그이들이 설마하니 악어의 환생은 아니겠지.
악어고기를 잘게 저미고 술안주 삼아 자주 먹어대는 이 마을로 이사온 뒤에야, 사람이 악어를 조심하기보다 악어가 영악한 사람을 조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찢긴 타이어 같은 갑옷을 입고 배부르면 한 달씩 아무것도 먹지 않고 명상과 수면으로 시간을 헤매는 악어. 악어는 더이상 보호동물이 아니지만 지난 태풍에 너무 많이 죽어 고깃값과 가죽값이 급등했다던데, 악어는 왜 아직도 말없이 뻘밭을 기며 외국에서 혼자 사는가.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저에요, 저, 저, 글쎄, 누구실까, 목소리는 귀에 익은데 - 몸 속 깊이 감추어둔 내 부끄러움이 목을 조인다. 저에요, 진 땅에서 우는 아들, 버려진 회색 배경이 시들고 해 지면 온 동네가 입 다물어요. 저에요, 저, 악어요 아, 이제 알겠네, 이제 - 민감한 풀숲이 어꺠를 움츠리고 이슬 한 방울 물풀잎 끝에 핀다.
내 나이에 걸맞은 삶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점잖게 흙바닥까지 몸을 낮추고 끝날을 준비하는 것인지, 어디서든 죽기로 부지런히 뛰는 것인지. 해가 지면서 그림자들이 점점 커지고 분명해졌다. 낮에는 몰랐던 나무와 집과 권태가 검은 색으로 나를 밀어내기 시작한다. 이것이 무서움인가. 작은 호수 주위에 무더기로 피어 있는 난초과의 연한 보랏빛 꽃들을 흔들어 본다. 진한 향기에 흰 물새 한 마리가 옆에 서서 웃는다.
원시의 동물을 모두 화석으로 만들고 공룡의 씨를 말린 긴 천재지변에도, 용케 살아남은 큰 동물이 악어뿐이라는 것을 혹 아시는지. 물밑의 그 땅 밑에서 두 눈 감고 귀까지 감고 살아남은 악어 몇 마리. 심장 하나로 하늘과 땅이 전하는 말만 믿고 따른 무리, 흰 낮달을 올려다보며 살아낸 60몇 년의 악어의 유랑, 찢어져 피 흘리는 악어의 손발, 참다가 넘쳐 흘러나와 약이 된다는 한밤의 악어의 눈물. 그 두 뺨 뜨거운 후회 밤마다 내 호수를 채운다.
시집은 묘하다. 내 머리 모양만큼 묘하다. (엊그제 헤어숍에서 새로 펌을 했는데, 다 해 놓고 점장선생님 말이, "묘한 분위기를 주는 디자인"이라고 했다. ㅋㅋ) 읽고 넣어놓고 또 읽고 넣어놓고 또 읽고....그래도 다음에 읽을 땐 또 새로 보는 기분이다. 그래서 한 권을 사도 아깝지는 않은.....다만 한 편을 읽더라도 대충 읽을 수는 없는 부담감. 대충 읽으면 읽히지가 않아서, 뚫어지게 읽다보니 힘이 드는.... 그러나 읽고 나면 환해지는 기분....
이따금 읽는 시집이 우울증을 막는 건지도.....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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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시인의 시집을 오랜 만에 읽는다. 본업이 의사인데, 얼마나 잘 쓰랴 싶은 의심에, 건성으로 몇 장 넘기다 시가 너무 좋아 다시 처음부터 읽었던 것 같다. 이것도 추억인가. 어쨌든 오랜만에 다시 읽는다. 첫 느낌은 나이가 많이 드셨구나이다. 나이 먹은 시인은 조금 다를까, 생각해 봤다. 주위의 60대 들을 보면서, 나이 먹으면 다 저렇게 되나, 생각했던 적이 있다. 불만이다. 저렇게 기운이 다 입으로 모이고, 귀 막고 살게 되나, 생각했다. 다 좋은 사람들인데, 그 좋은 사람들 주위의 사람들은 얼마나 피곤할까, 생각했다. 마종기 시인의 시를 읽으며 내 걱정은 일반화될 수 없겠구나, 안심하게 된다.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 자기 내면으로의 침참(긍정적 의미에서), 그리고 그 과정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결국,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 예외가 없다. 겨울에 집중수행을 갔다가 잘 죽기 위해서 수행처를 찾아 왔다는 전남 강진에서 평생 농사만 지으셨다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시인의 모습과 그 아주머니의 모습이 겹쳐진다. 나도 시인처럼 아주머니처럼 그냥 좀 담담하게 노년을 맞이할 수 있을까, 뭐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시집 한 권 읽고 너무 엉뚱한 생각들을 두서 없이 한다. 시인의 시를 더 잘 이해하기에는 나는 너무 어린가. 나는 그 나이가 됐을 때 기운이 입 보다는 귀에, 관계에 대한 갈애보다는 내 내면에 침잠할 수 있을까? 글쎄, 모를 일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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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읽었던 이 시집이 아직도 제 가슴 속에 남아있는 이유는 이 시집의 후반부에 기록된 해설에 나온 하나의 시 때문입니다. 그 시는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3부 였습니다. 저작권 문제로 그 시를 다 기록할 수 없어서 그 시에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면... 그 시는 아들과의 대화입니다. 아들이 아빠에게 묻습니다. 아빠가 가려고 하는 곳은 어디냐고? 아빠는 아들에게 대답합니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어둠 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나라라고! 아들은 등을 돌리고 기어이 길을 떠나는 아빠에게 말합니다. 그 나라는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꼭 찾아보세요. 찾아서, 이제 헤매지 마세요.
마종기 시인은 의사이자 시인입니다. 사람의 몸을 치유하기 위한 그의 몸은 사람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문장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문장은 그 자신을 치유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3부를 읽고 알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에 수록된 많은 시들을 통해서도 알았습니다. 그의 언어가 만든 문장은 현실을 때립니다. 존재로 존재하지 않고 사랑을 미움의 얼굴로 바꿔버린 사람들을 때립니다. 아니, 그는 사랑을 때리지 않습니다. 다만, 앞으로 걸어갑니다. 친구들과 아들이 말리며 그를 붙잡지만 그의 언어는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를 찾아서 걸어갑니다.
왜 세포는 살아있는가? 왜 사랑은 죽어있는가? 의사인 그는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위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보고 싶었고 그가 찾고 싶었던 나라는 우리 안에 있는 작은 세포 속에 있겠죠. 생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퇴화해버리는 세포들은 아마도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로 가고 있겠죠. 단 하나의 생명도 존귀하지 않게 대우받지 않는 그 나라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귀한 시집을 모두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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