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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발원(發願)>일까? 두산백과사전에 의하면 발원(發願)은 “서원(誓願)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서원(誓願)은 무엇일까? 역시 두산백과사전에 의하면 “불교에서 부처, 보살이 중생(衆生)을 구제하고자 하는 맹세”라고 한다. 그렇다면, 발원(發願)은 고통 받는 중생(衆生)을 구제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한다는 이타(利他) 행위를 통해 ‘성불(成佛)’이라는 이기(利己)를 달성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발원(發願)이 자신의 이익만을 얻으려는 욕심이 아니라 남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이 책의 제목을 <발원(發願)>이라고 지었을까? 압량주(押梁州; 현재의 경북 경산시) 출신의 육두품(六頭品) 소년이 모든 인간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간절히 꿈꾸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그가 처음부터 그런 꿈을 꾸었던 것은 아니다. 숙부의 연(緣)을 따라 서라벌로 온 원효(元曉)1)는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자식을 노비로 파는 모습을 보고 돈을 주고 그 아이를 사서 가족의 품에 되돌려주었다. 하지만 그가 마주친 것은 차가운 현실이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여인에게 다시 데려다 주었을 때, 원효가 상상한 것은 어린 딸을 꼭 끌어안는 어미의 모정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원효에게서 아이의 손을 잡아채는 어미의 몸짓은 따스하기보다 강퍅했고, 그 순간 원효를 보는 눈길은 여전히 고통이 가득했다. 원효는 숨이 막혔다. 어미의 눈빛이 자신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다는 느낌이 덮쳐 왔다.2)” <헨델과 그레텔>에서 볼 수 있듯이 한 번 자식을 버린 부모는 위기상황이 닥쳐오면 또 자식을 버릴 수 있다. 그렇기에 원효(元曉)의 행동은 보현지도의 대낭두(大郎頭) 야신이 “원효! 너는 그 천하고 약한 것들 앞에서 영웅이 되고 싶었을 뿐이야. 그 역시 속물근성이지!3)”라고 비판한 것처럼 자기 위안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원효(元曉)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 여기에 대한 해답은 대낭두(大郎頭) 야신이 원효(元曉)에게 한 말에 담겨있다. “자네 생각은 우리가 그 계집아이를 못 본 척하고 지나갔어야 했다는 것인가, 아니면 노비 부리는 풍습을 없애야 한다는 말인가. (그 어느 쪽도 아닌) 자네의 행동은 결국 그 어미에겐 비루한 근성을, 계집아이에게는 반복되는 고통을 안길 뿐이다.4)” 따사로운 한 줄기 햇살이 되기 위해 오랜 전쟁과 지배층의 수탈로 백성이 굶주린다는 것은,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약했던 장 지글러(Jeon Ziegler, 1934~)가 말한, “그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구조로 인해 필연적으로 빚어지는5)” ‘구조적 기아’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려면 사회구조를 바꾸는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 해결해주기를 기다리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행히 원효(元曉)에게는 혜공(惠空)이라는 선례(先例)가 있었다. 성골(聖骨)과 진골(眞骨)만을 위한 신라(新羅)가 아닌 삼국의 백성 전부를 위해 스스로를 내던진. 여기에 더해서, 원효(元曉) 개인에게는 불행이겠지만, 우리에게는 다행스럽게 그는 서라벌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진골(眞骨) 귀족도 아니었다. 단지 그는 견고한 골품제(骨品制)의 벽 때문에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육두품(六頭品)에 불과했다. 이것 또한 중요한 요소였다고 생각하는데, 프랑스 대혁명 당시 부르주아가 그러했듯이 신라의 육두품(六頭品)도 서민들과 어느 정도 공감하고 그들에게 비전을 제시할 능력을 가진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골뜨기 화랑(花郞) 지망자 원효(元曉)가 ‘해동보살(海東菩薩)’이라고 불리는 승려 원효(元曉)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스승 같은 도반(道伴) 혜공(惠空)의 죽음 등을 거치면서 깨달은 바를 원효(元曉)는 이렇게 말한다. “자리(自利)와 이타(利他)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원만하게 실현되는 상태가 바로 불국토의 한 모습일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세상 어디에도 나보다 기꺼운 것은 없습니다. 그토록 소중한 것 남 또한 그럴지니 저 자신을 참으로 아끼는 이는 남을 해하지 않습니다. 기억하고 또 기억하십시오. 나는 고정된 나가 아닙니다. 나라는 실체가 따로 존재한다는 환각을 벗어나면 우리 모두가 나입니다. 당신이 바로 나입니다. 남과 내가 둘이 아닙니다. 귀족과 평민이 둘이 아닙니다. 본래적 깨달음은 나에서 남을 보고 남에서 나를 봅니다. 나의 이익과 남의 이익이 별개의 것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내가 나 자신과 내 가족과 가문을 소중히 여기듯 우리 모두가 그토록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6)” 사랑, 그리고… 원효(元曉)에게 닥친 시련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요석(瑤石) 공주와의 문제였다. 요석(瑤石) 공주는 헐벗고 약한 이들이 모인, 아미타의 숲을 위해 염색 목면을 개발하고 그들을 위해 판매할 수 있게 해주었다. 혜공(惠空)이라는 디딤돌을 딛고 자신의 길을 가는 원효(元曉)가 부담을 갖지 않도록 사랑을 숨기고 바라보았다. 서로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면서도 ‘승려’인 원효(元曉)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사랑하던 동지가 물건 팔려가듯 정략결혼의 제물이 되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에게 절망하여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 남편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도, 원효(元曉)의 사상에 동조하여 그녀의 아버지에게 반항한 대가로 별궁에 감금되어도 원효(元曉)는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를 보다 못해 한때 벗이었던 보현랑은 원효에게 “그대는 모든 중생을 구하고자 하면서 어찌 한 여인의 삶은 저토록 만신창이가 되도록 방치하는가? 그대가 구하려는 세상에 왜 요석은 포함되지 않는가 말이다!7)”라고 질타한다. 그녀의 사랑을 거부하면 자신의 말이 거짓이 된다. 뿐만 아니라 자루 없는 도끼로 찍어버리겠다고 한 ‘하늘 바친 기둥’인 기득권자와 차이가 없게 된다. 반면에 받아들이면 파계승(破戒僧)의 낙인이 찍히게 되고, 분황사(芬皇寺)에 모인 반전(反戰)을 외치는 무리들이 머리를 잃고 흩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원효(元曉)에게 타격이 갈 수 밖에 없는 외통수였다. 여기서 원효(元曉)는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파계(破戒)의 길을 걷고 스스로 ‘소성거사(小姓居士)’라고 칭하며 백성들 사이에서 잘난 체하지 않고 그들을 묵묵히 돕고 부처의 길을 알려준다. 제정 러시아나 일제시대 조선에서의 ‘브나르도(v narod)’ 운동과 달리 선민(選民) 의식을 버리고 진짜 민중 속으로 들어간 셈이다. 그렇게 보면 그는 파계(破戒)를 통해 원효(元曉)라는 널리 알려진 큰 그릇을 버림으로써 진정한 ‘해동보살(海東菩薩)’ 혹은 ‘활불(活佛)’이 된 것이다. 1) 엄밀히 말하면 원효(元曉)는 법명(法名)이기에 출가(出家)하기도 전에 ‘원효(元曉)’를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15세 무렵 출가했다고 하니 속명(俗名)을 쓰거나 아명(兒名)으로 알려진 서당(誓幢) 또는 신당(新幢)을 쓰는 것이 더 좋았을 듯하다. 2) 김선우, <발원> 1(특별보급판), (민음사, 2015), pp. 66~67 3) 김선우, 앞의 책, p. 69 4) 김선우, 앞의 책, p. 67 5) 장 지글러 지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유영미 옮김, (갈라파고스, 2007), p. 49 6) 김선우, <발원> 2(특별보급판), (민음사, 2015), pp. 163~164 7) 김선우, 앞의 책, p. 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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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알 수 없는 갈증으로 허덕일 때마다 습관처럼 종교를 찾았다. 종교의 얹어리를 서성이는 것은 세속적 욕망을 강화시켜줄 구세주를 찾는 인간의 본질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했다. 여러 번 실밥처럼 뒤채이다 떨어져 나왔고 다시 생의 골목 구석구석에서 마주쳤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불가에 퍼지던 낭낭한 스님의 독경 소리는 위안이 되었다. 소풍 오듯 풀쩍 세상에 내려앉아 긴 병고를 끝으로 떠나신 아버지의 넋을, 북새통 같던 장례식을 치러내고 한 사람의 죽음과 관련된 행정적 절차들을 처리하느라 파묻혀 지내면서, 어떤 방식으로라도 오롯이 마음을 모아 마음껏 흐느끼고 추모할 기회가 있었겠는가. 고통 뿐이었던 육체의 지옥을 벗어나 훨훨 날개를 펴고 부디 좋은 곳 가시라고 잠시나마 고인을 기려주는 곳이 있는 것만으로도 종교의 힘은 큰 위안이 되었다. 그것만으로 감사하기로 했었다. 인간은 왜 종교를 발명했을까 생각해본다. 수렵채집을 하던 원시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만 년을 호모 사피언스로 살아오면서 우리는 한 번도 종교가 없었던 적이 없었고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민족, 어느 고립된 작은 부족조차 초자연적 대상을 떠받들지 않은 집단이 없었다. 진리와 영원의 안식을 향한 갈증은 단지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헌금과 보시를 통한 사후 보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소설 속에서 아비를 잃은 소녀 단은 불단 앞에 들어가는 일이 허락되지 않아, 거대한 장륙존상 꼭대기에 매달린다. 불단은 한 발짝만 더 디디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천민들에겐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먼 거리였다. 그 금지된 한 발자국은 죽음으로 응답했다. 신성한 불단 앞에 천민들의 출입을 허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신라시대 신분제가 가진 귀족과 천민 상의 거리였다. 그 거리감이 당시 불교의 상징이었다. 귀족들을 위한 종교, 배우고 깨친 사람들만을 위한 위안과 구복. 가난하고 배고픈 민중을 품을 수 없이 고귀하게 높은 정신적 세계를 지향했던 불교는 닿을 듯 가까이 있지만 결코 다가갈 수 없었던 높고 단단한 신분의 벽이기도 했다. 불교가 공인된지 채 100년이 지나지 않은 때의 일이었다. 소승불교가 권력과 결탁한 귀족 승려들의 야망을 실현시켜주는 도구로 차차 자리잡아가는 동안 가장 밑바닥에서 소처럼 일하며 천시 받던 민중들에게도 종교는 서서히 마음 속에 구원의 희망으로, 위안의 상징으로, 아늑한 쉼터로 스며들고 있었던 것이다. 주린 배를 감싸안고 비어 가는 항아리 바닥을 긁어 한톨한톨 그러모은 한줌 쌀을 바치며 불공을 드리는 것이 목숨을 건 소망이 되게 만드는 그 무엇이 모든 종교의 이름에 있는 것이다. 원효는 고민했다. 이 선량한 백성들은 왜 고통스러워야 할까. 왜 노역과 부역으로 하루하루를 겨우 부지하는 데도 늘 굶주려야 할까. 사라지지 않은 똑같은 질문이 천오백년 동안 공명하며 우리의 허공에서 똑같이 메아리친다. 이제 이 대답은 원효 대신 현대를 살아가는, 더 많이 살아온 책임 있는 우리 기성인들이 대답할 차례다. 그 때 원효는 알았다. 민중의 타는 목마름을 이해했다. 구도자의 정신으로 수행에 몰두하는 것만이 부처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발딛고 서 있는 그 땅 그 현실 속에 부처가 있고 진리가 있으며 우리 모두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이며, 바로 부처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기 위해 민중의 삶 속 한 가운데서 흙과 함께 뒹굴던, 예수이자 무하메드이자 석가모니였고 공자였으며 소크라테스였다. 급변하는 시대를 만나 민중의 삶을 고뇌하던 원효는 목숨과도 맞바꿀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을 자주 하게 된다. 백제군이면서 자신을 돌보던 소년이 반대로 아군의 포로가 되자, 미래를 주저 없이 털어버린 채 스스로 반역자가 되어 소년을 구한다. 단을 구하기 위해 부딪힌 언행은 그에게 모진 고문을 불러온다. 단의 비참한 죽음이 조금씩 민중의 마음에 자각으로 스미고 깨우침으로 쌓여 1주기가 되자 단을 추모하고자 하는 행렬이 이어져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무리가 되어 겹겹의 물결로 들이차던 시간, 귀족들의 기마부대 말발굽에 채여 스러져가던, 밟히고 상처받아 성난 민중들의 아수라장 속에서 홀연히 자신의 목숨과 이들의 안위를 맞바꾸고자 했다. 천상천하유아독존. 구도자위 길을 걸어가고 있는 스님이었지만, 원효는 신에 종속되지 말 것을, 더 큰 파이를 차지하기 위해 금은보화를 바쳐 부처에게 복을 빌지 말 것을 설파한다. 우리의 존재 가치가 그것보다는 고결하지 않은가. 헌금과 바꿀 수 있는 욕망. 그 모든 것들을 신의 이름으로 부추기는 행위들. 한 발 다가가면 이렇게 치사한 방법으로 한 발 물러서는 종교의 때탄 겉모습에 나는 상처받았고, 외로웠다. 나는 빌어서 가질 수 있는 것들보다는 더 가치있는 걸 갈구하지 않았던가. 원효는 모든 존재가 존재 자체로 소중하고 존엄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수천 년을 지나도 변치 않을 단순하고 명료한 생각.그래 맞아. 이 단순한 진리를 알기 위해 그토록 오랫동안 종교의 얹어리를 맴돌며 갈구했구나. 소설은 기록이 남기지 않은 공백을 허구의 이야기에 담고 있지만 그 공백을 받치던 뼈와 기둥이 워낙 단단하기에, 그리고 작가가 표현한 원효의 고민과 가치가 깊이있고 밀도 있기에 허구가 전해주는 힘은 불법을 능가하는 호소력과 전달력을 갖는다. 이렇게 해서 비전공자인 평범한 우리들에게 그냥 하나의 이름이었던 원효가 세상의 빛 아래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요석은 원효에 대한 사랑을 당당하게 밝히면서도 그의 결정을 존중하여 출가를 응원해주고 자신 또한 자신이 도전해 이루고자 하는 뚜렷한 삶의 목표를 갖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시대극 속의 드문 여성이다. 육체적 결합이 사랑의 완성일까에 대해서는 논쟁할 생각이 없다. 적어도 터부시하는 소재를 이토록 자연스럽게 당연한 수순처럼, 평생을 애닯았던 시간을 보상하듯 단 한번의 절정과 완성된 사랑의 환희를 독자와 함께 경험하게 한 작가의 선택과 탁월한 감성에 감사한다. 결국은 고달픈 민중과 함께 나란히 같은 길을 걸어가는 두 사람. 한 곳을 바라보면 따로 걸어가도 함께 걷는 것이고 그렇게 함께 열심히 걷다 보면 함께 본 그곳에 도달하여 만나게 되는 새로운 사랑의 진리를 역설하고 있는 것도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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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싯다르타가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은 뒤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면서 읊었다는 구절은 이 우주에서 인간보다 더 존엄한 개체는 없다는 뜻이다. 비루함과 존귀함을 떠나 삶의 주인으로 당당히 설 수 있는 자질을 지닌 유기체는 발심하여 정법을 실천하며 계율을 지키는 수행에 나설 때 스스로 깨쳐 살아갈 삶의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다. 신라가 중앙집권적 귀족국가로 발전하면서 엄격한 신분제인 골품제 성립으로 6두품 출신이 오를 수 있는 최고 관직은 아찬에 머물렀다. 6두품 출신인 원효가 이상을 펼치기 위해서는 승려로 나랏일을 도모하는 국사가 되는 길이 한 방법이었다.
불지촌의 불등산 아랫마을, 자신의 생일이 어머니의 기일인 숙명의 고리로 모성을 느낄 새도 없이 태어난 새벽은 아들에게 몸을 주고 저세상으로 떠나버린 어머니를 떠올리며 삶과 죽음의 길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것인지 반문하는 시간은 늘어났다. 새벽에게 승려의 길을 권하며 훌쩍 떠나버린 숙부의 청을 떠올릴 때마다 새벽은 현실의 장벽에 맞서 대결하려는 열기로 가득했다. 새벽은 김준후 공 문하로 들어가 낭도의 길을 걷기 위해 심신을 수련 하는 결사의 전통을 이으며 서라벌 정치권의 개혁을 위해 권력의 핵심으로 가야 함을 인지하고 아호를 버리고 원효로 바꾼 뒤 실천의지를 다졌다.
골품을 나라의 근간으로 여기며 춘궁기를 이용해 빈한한 이들을 노비로 삼아 소유물로 여기며 인권 유린을 자행하는 일을 목도한 원효는 불평등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일을 관철시키기 위해 힘을 가지고 싶다는 바람을 세웠다. 그의 생각과 대척점에 있던 야신은 비천한 이들을 구제하기는커녕 극한의 고통만을 안길 뿐이라며 원효를 노골적으로 비난하였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불성이 자리하는 경주 남산을 오르며 석불 앞에서 기도하는 여인을 보며 일심으로 소원하여 성취하는 열락을 맛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삿된 마음으로 평화와 안정을 뒤흔드는 전쟁의 야욕은 죄 없는 인간을 헤어나기 힘든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여 고통 속에 들끓는 번뇌로 심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목숨일지라도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존재의 의미가 있을 뿐 경중이 없다는 생각은 전쟁 와중에 생명을 잃은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살려달라는 간청을 저버릴 수 없는 인간애는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피어났다. 백제군의 공격으로 신라의 요충지인 서곡성이 함락되었을 때 부초처럼 나뒹구는 주검을 목도한 원효는 화랑도를 파하고 출가 사문의 길을 걷기에 이르렀다. 살려달라는 백제군 포로인 소년의 목숨을 구하였고, 그 일로 인해 일신은 고달팠지만 어긋난 법도를 따르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전쟁에 몰두하는 귀족들은 도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백성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었고 세력을 확장해 패권을 장악하려는 일에 혈안이 되었다.
백고좌 법회가 열리는 날 원효는 가난하고 소외되어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하여 이 땅에 여래가 온 뜻을 들어 그동안 백성들의 삶을 살피는 대신 도량을 화려하게 장엄하고 불상에 금붙이를 입히는 등의 불사에 치중되었던 일을 소리 높여 비판하며 임금은 하층의 삶을 있는 이들까지 끌어안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전쟁의 참상을 목도하고 혼탁한 현실을 혁신하여 새롭게 태어나려는 원이 모아질 때 전쟁과 차별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은 도래할 것이라 믿었다. 혜공 스님이 아미타림을 조성해 거리에서 굶어 죽어 가던 이들, 국경 지역의 유민들, 도망 나온 신라인과 백제 인이 뒤섞여 공동체적 삶을 잇는 모습은 불국토를 이루려는 여래의 뜻을 발현한 것처럼 보였다.
승과 속의 길이 다르지만 첫 만남에서부터 서로를 가슴에 품고 각자의 길을 열심히 걷기를 바랐던 원효와 요석은 모든 사람들이 차별 없는 세상에서 함께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깨어 있는 현재에 충실한 삶을 이었다. 파리한 소녀 단은 귀족의 절인 황룡사 장륙존상에 올라가 마음에 맺힌 것을 풀어보려 했지만 끝내 소녀는 죽어나갔고 그 일로 원효는 갖은 고초를 겪으며 거짓 자백을 강요하는 이들과 맞섰다. 잔혹한 고문에 목숨은 부지하였지만 일신의 건강을 회복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원효는 부처의 행위로 세상을 장엄하려는 원을 세웠다. 단의 가묘 옆에 불탑을 세워 소녀의 죽음을 추도하며 힘없는 백성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나라 일을 살피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 선덕 여왕은 백성의 소리를 듣기 위해 첨성대를 준공하였다.
하늘에 물길을 열어 소통하려는 일을 새로운 변화를 위한 희망의 발아로 여기며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위한 일에 수행자로 정진할 뜻을 품고 있었지만 현실은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요구했다. 승병단의 승장을 맡게 된 원효는 창검 대신 물통과 구급약으로 부상병을 치료하는 일에 나서겠다고 하여 비난에 휩싸였다. 극심한 대립과 불신이 사태를 이루는 시대에 삼독(三毒)을 여읜 선지자를 만나 수행하고 싶은 원효는 여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고 싶은 바람과는 달리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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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발원 - 밖으로 나오니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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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보기 참으로 좋은 세상 아닙니까? 요 자그마한 휴대폰 하나로도 온갖 진창을 구석까지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물로 된 창으로 머리를 베여 생사를 넘나들고 흉측한 폭탄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터져 죽습니다. 갓난쟁이를 내던지고 부모 자식이 서로의 얼굴을 못 알아본 채 칼을 꽂는데 질병과 재해마저 단골손님처럼 번갈아 드나드니. 지옥천하를 이룰 작정이 아니고서는 이래도 되나 싶습니다.
그것을 논하는 사람들은 어찌나 뒤틀려있던지. 각진 키보드를 누르는 건 매한가지인데 그것을 총알로 쓰는 이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경쟁하듯 열리는 지옥문과 그것을 태연하게 치부하려는 위선의 말씀 아래 주렁주렁 열린 악한 활자들을 훑어 내리다가 냉큼 창을 닫아버렸습니다. 네모진 것이라면 지긋지긋해졌습니다. 화면이 선명할수록 좋은 것이라던데 좋아질수록 눈도 마음도 버리는 기분입니다. 기진해진 몸으로 방에 들어가 방문을 걸어 닫고 들어앉은 이유가 나름 있었단 말입니다.
정사각형의 네 평 남짓한 방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나니 막상 할 것이 없었습니다. 제 몸에 가시 박힌 사슬을 칭칭 감고 바닥을 기어다니기엔 영원처럼 흐르는 시간이질 않습니까. 그리하여 네모진 것이라면 질색이라 했으면서도 기어이 네모진 책을 꺼내들었던 것입니다. 두 권의 책이니 두 권을 읽는 동안의 시간은 버릴 수 있겠구나. 의미 없는 시간이거든 기꺼이 버려주마. 호기롭게 책을 넘기니 책장이 술술 넘어갑니다.
흥이 나 읽으려니 원효대사, 그 유명한 스님이 나오셔 슬퍼하십니다. 굶주림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자식을 파는 어미를 보며 ‘인의예’를 묻고 계십니다. 이곳이나 서라벌이나 지옥을 보는 건 매한가지인가 봅니다.
원효 계시는 신라엔 ‘아미타림’이 있습니다. 국적도 신분도 무용한, 모두가 차별 없이 자유로이 어울려 지극히 평온하고 안락하게 살아가는 세계. 꿈속에서나 볼 법한 천국 같은 마을이 버젓이 존재한단 말입니다. 버려지거나 도망쳐 나온 아픈 자들이 서로를 의지하여 새 삶을 꾸려갑니다. 불우한 채 이곳으로 흘러왔던 아이 하나가 입술을 끌어당겨 웃습니다. 미소수행이라면서 말이죠. 수행은 키가 크는 것과 거의 비슷하니 이리 수행하다보면 어느새 자신을 변화시켜 더는 울보가 되지 않을 거라면서.
아아, 무릎을 한번 쳤습니다. 수행이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입술 한번 끌어당기는 것으로 마음의 키를 키울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을 작정하였기에 시도도 못해보고 좌절하여 방안에 처박힌 것입니까.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원효께서 사모하는 요석공주에게 글로 써 마음을 전하시기를, 두 번째 화살은 맞지 마시라.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슬프고 괴로운 첫 번째 화살이야 피할 수 없이 맞아도 빠져나오면 되느니. 그것에 끌려가 스스로를 감옥으로 데려가는, 나의 내부로부터 쏘아진 두 번째 화살만은 피하시라. 그러니까 저는 죄인처럼 한참을 꿇어 앉아 있을 수밖에요. 찌르르 저려오는 두 다리를 형벌처럼 제 몸으로 눌러앉아 어리석은 패배를 인정하는 수밖에요. 졌다, 졌습니다. 저는 제 화살에 당해버렸습니다.
너도 꽃, 나도 꽃. 모든 꽃은 생겨난 그대로 어여쁜 거지! 너희는 모두 꽃씨들이니, 피어나기만 하면 된단다(267p). 꽃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껴안는 아이들의 모습이 책을 덮고도 오래도록 눈앞에 선연합니다. 존귀한 존재임을 스스로 깨달아 그 존재로서 서로를 보듬어 안는 것. 그런 포옹이라면 지옥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도 따뜻함을 잊지 않을 수 있겠구나. 비관을 세 살 버릇처럼 안고 살아온 저도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스스로 어설프게 다독인 모난 마음으로 당신의 모난 마음을 다독이고, 그리 주고받은 우리의 손으로 상처 난 다른 이의 마음을 매만져주고. 이런 어루만짐이 물결처럼 이어지다보면 각진 키보드로도 총알을 던지는 일이 줄지는 않을까. 스스로 쏘아올린 화살에 맞기 전에 서로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이승의 말이 아닌 듯 느껴졌던 희망이라는 것을 언약처럼 서로의 마음 귀퉁이에 새기고 열정으로 뛰노는 날이 오진 않을까. 생각하는 동안 이틀의 밤이 훌쩍 흐르고 난폭하게 비뚤어져 가슴을 짓찧던 모난 마음이 놀랍게도 마모되었습니다.
닫힌 창을 열었습니다. 세계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고 볕 없는 몸속에서 번뇌는 물을 주지 않아도 무럭무럭 자랐지만 그래도 열어야겠다고 이 책을 읽은 저는 생각했습니다. 틀어박힌 영혼이 어디 저 하나뿐이겠습니까. 님도, 벗도, 이름 모를 숨들도 각기 허청거릴 세상인 것을.
그러하니 저는 문까지 열어젖힌 것입니다. 허청거림이 춤사위로 바뀌는 것이 그리 어렵지만도 않은 일이라는 걸 배웠기 때문입니다. 비틀거리는 몸뚱이를 서로에게 포개며 버티고 그리하여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 그런 걸음이 반복되어 신명난 춤판이 이어지고 바로 거기에 꿈만 같던 아미타림이 있지 않을까. 지옥 없는 세상은 바람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행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니.
방에서 나오니 첫눈이 내렸습니다. 저는 공교롭게도 가장 사랑하는 벗의 차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히트곡을 부르다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 세상에 닿으려는 흰빛들은 송이송이 아름다웠습니다. 이토록 감격하여 첫눈을 본 것이 얼마만인지. 툭하면 방안으로 숨어들던 제가 영영 잊을 뻔한 설렘이지 않습니까. 잃어버렸을 지도 모를 장관입니다. 그러니 저는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밖으로 나오니 좋구나.”
오늘 저는 허청거리는 당신을 만나러 갈 것입니다. 이 추위 속에서도 기어이 당신을 보러 가겠습니다. 허청거림이 허청거림이 아니게 될 때까지 함께 어울려 몸을 살갑게 부딪치고 춤을 추겠습니다. 아물지도 원만하지도 않은 마음으로도 서로의 것을 맞대고 비비면 매끄럽게 둥근 날이 올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창을 여십시다. 문밖으로 나오십시다. 속 편하게 숨지 않고 비겁하게 떠넘기지도 말고. 그저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의 춤을 부지런히 춥시다. 우리의 춤바람이 지옥에서 서로를 구해줄 것입니다.
이곳에도 아미타림을 만듭시다. 귀하고 유일한 우리들이 살아갈 우리들의 세상을. 무기력하게 휩쓸린 생에, 모처럼 간절해집니다.
-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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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원' '원효다' 책 표지만 보고 바로 구입했고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가슴이 터질 듯이 읽었다. '아름답다' 경탄을 하면서 평소 소설책은 보지도 않는 내가... 1300년전 서라벌에서 태어난 사내 20년전 내 가슴속에 각인되었고 흠모하는 사람이 되었던 원효 당대 동아시아의 최고의 사상가 '원효' '원효의 꿈' 꿈을 실현하기 위한 '원효의 삶' 살면서 가장 많이 생각하는 화두는 대자(大慈), 대비(大悲) 그리고 '관계' 원효는 나의 화두를 온몸으로 보여준 살아있는 '부처' 였다. 왕이 부처인 시대에 저잣거리에서 비천하게 살아가는 당신들이 부처라고 당신들이 꽃이라고 당신들이 주인공이라고 외쳤던 사람 '원효' 목숨을 건 사랑이었고(大慈) 목숨을 걸고 슬퍼했던 사람(大悲) 현실속에 불국토를 꿈꾸고 실천한 개혁가 불국토라는 말은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이 땅에 한번도 실현된적이 없는 민주주의 사회일 것이다. 원효를 떠올리면 요석이라는 여인이 따라다린다 당대 가장 존경받던 그에게 여인이라니... 파계를 할만큼 요석은 원효에게 어떤 존재란 말인가 알수가 없다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책을 쓴 김선우 작가도 원효를 살리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일연은 '송고승전' 에서도 언급하지 않았던 요석을 삼국유사에 기록하고 그리고 '파계승' 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무신정권시절 국가불교의 국사였던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할 때 정치적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국정화 교과서' 역사기록이 정치적일때 어떻게 '왜곡' 될 수 있는지 삼국유사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원효의 사상을 쉽게 풀어내고 김춘추의 딸 요석과의 사랑을 통해서 대비심(大悲心)으로 승화시켜낸 작가에게 찬사를 보낸다. 이땅에 원효가 꿈꾸었던 발원이 저잣거리에서 민중들이 저마다 꽃으로 피어나 주인공으로 사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나도 발원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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